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
히브리서 2: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우리는 지난 주 수요일에 하나님께서 장차 올 세상 곧 장차 우리가 맞이할 종말론적인 복된 세상을 영원하신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장차 올 세상을 다스릴 자는 천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애초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권세 곧 세상을 통치할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며, 천사들보다 더 존귀한 영광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장차 올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까닭은 죽음의 고난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지난 주 살펴본 본문이었던 히브리서 2장 9절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그와 같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고난과 죽음을 맛보아야 했을까요? 그 이유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10절 이하에서 계속하여 설명해주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예수께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그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하여 본문 말씀 히브리서 2장 10절 한 절 말씀만을 가지고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0절을 다시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원문에 보면, ‘왜냐하면’이라고 이 문장의 서두에 써 있습니다. 왜 예수께서 그렇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난을 당하셨는가 그 이유는 바로 그렇게 고난을 통하여 예수께서 온전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10절의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바로 만물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신 분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세상 만물이 운행되는 세상 만사의 원동력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 점을 두고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36 말씀에서 이르기를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돌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시며 모든 영광이 그에게 돌려야 할 목적이 되시며 만사가 진행되는 그 원인자가 되시며 만물이 결국 돌아가야 하는 최종 귀결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아들들’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하심으로 택하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리킵니다. ‘많은 아들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당연히 ‘여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들들이라는 표현 자체 속에 남녀가 다 함께 포함된 용어입니다. 이와 같이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곳은 곧 영원한 영광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구원자를 두고서 10절 말씀에서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이끌어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해들이는 ‘구원의 창시자’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말합니다. ‘창시자’라는 헬라어 단어는 ‘아르케고스’라는 말씀인데, 이 뜻은 ‘창립자’라는 뜻도 있지만 ‘선구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맨 앞에 앞장서서 들어가신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의 많은 아들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로 들어가는 데 있어서 맨 처음 앞장서서 들어가시는 선구자십니다.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서 기록자는 택한 자들의 구원의 창시자는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렇게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라는 말씀이 그러한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을 입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께서 고난을 통하여 죄를 씻고 정결하게 된다는 의미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기록자는 다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전혀 없는 분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15 말씀에서 밝히기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7:26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게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씀하신 바 있으며, 사도 요한도 그의 서신 요한일서 3:5 말씀에서 이르기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으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어내는 결과를 맺고자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구원의 주로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하여 고난이 필요하였다고 히브리서 기록자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케 되기 위하여 고난이 필요하였다는 말씀은 히브리서 저자의 중요한 가르침 중에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5:7~10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인간의 구원을 이루시기에는 아직 온전치는 못하신 것입니다. 즉 그가 인간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사명을 완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는 온전해지실 필요가 있으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셔야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을 경험하고 시험을 받고 고난을 당하여 했던 것입니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깊은 고통 속에 울부짖으며 고뇌와 번민을 하나님 앞에서 쏟아야 했으며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주로서 온전해지는 과정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제자들의 배신도 겪어야 했고, 십자가의 위에서 악한 자들의 조롱을 견뎌야 했고, 육체적 고통과 영적인 고통을 다 겪으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여짐으로써 하나님의 택하신 아들들의 구원의 선구자가 되어 그들을 이끌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끌어들이기게 합당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고난과 죽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이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철저한 고난과 역경과 쓰라린 고통 속에서 연단받아 순종하며 하나님께 매달리신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심으로써 그의 공로로 구원을 은혜로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의 단번의 영원한 완전한 제사로써 완전히 영원히 사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하여 온전케 된 순종의 구원 행동 때문에 완전한 구원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땅에서 종종 넘어짐이 있고 범죄함이 있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결코 버림당하지 않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징계를 주시고 시련을 주십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다시 자기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다시 온전케 되려고 몸부림을 치는 회개의 노력을 행하게 됩니다. 이는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당연한 바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반드시 죄 때문에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죄와 상관없이 우리 구주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온전한 사역을 위하여 고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시련을 당하게 하시고 인간의 비참함을 경험하게 하시고 실패를 맛보게 하시고 낮아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깊은 고뇌와 번민을 맛보게 하시고 주님 앞에 눈물로 탄원하는 캄캄한 밤을 지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대개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 때문이 아닌가, 그 죄로 인한 저주가 아직도 남아서 이렇게 끈질기게 시련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낙심하며 좌절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시사해주시는 바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들, 쓰라린 시험들, 번민과 눈물의 경험들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죄와 상관없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인격과 믿음의 그릇을 온전케 하시려고 주님께서 주시는 연단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조차 그의 대제사장적인 구원 사역 곧 대속의 사역, 영원한 왕으로서 그 백성들을 저주와 죽음과 마귀의 결박에서 온전히 구출해내기 위하여 온전함이 필요하였으며, 그 온전함을 얻기 위하여 이 땅에서 고난을 겪는 과정이 필요했다면 우리에게 어찌 그런 과정이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고 죄를 범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에게 무섭도록 거친 고난과 끈질긴 시험과 고민과 번민을 당하는 이유는 바로 주님처럼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기 위함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함으로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사명들, 주어진 사역들을 온전해진 인격과 잘 다듬어진 온전한 신앙으로 너끈히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조차 이 땅에서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워가셨다는 점을 깊이 마음에 새깁시다. 그래서 우리도 거듭되는 시련과 가혹한 시험들과 환경의 어려움에 처할 때에 결코 낙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지난 날의 자기의 지은 죄만 계속 붙들고서 너무 자책하며 괴로워하지 맙시다. 사실은 주님께서 그러한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온전케 하심으로써 우리를 통하여 주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뜻을 너끈히 성취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고자 하심임을 알고서, 기꺼이 그 시련을 믿음으로 기도로써 인내로써 잘 감당합시다. 그리하여 점점 더 고난을 통하여 점점 더 잘 다듬어져서 온전해져서 주님께서 우리를 마음껏 붙들어서 일들을 맡겨주시고 영혼들을 붙여주시고 주님의 귀한 사역을 맡겨주실 때에 주님께 온전히 붙잡혀서 평안히 잘 쓰임받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