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시편 85: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시편 85편의 기록자는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자 중에 하나입니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갔을 때의 그 고통스러운 시기를 기억합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나그네의 설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을 타향에서 당할 만큼 당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의 무거운 징계의 채찍을 당한 슬픔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땅에서 울며 눈물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옛 선지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을 다시 고토로 돌아가는 기적같은 일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짓밟았던 침략국을 하나님께서 징벌하시고 새로운 나라가 도래하게 하시고, 유대인 해방령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8.15 해방의 기쁨과 같은 기쁨이 유다 백성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들은 고향 땅에 돌아왔습니다. 황무했던 그 땅에 돌아와 그들은 땅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을 힘썼습니다. 그래서 부족하나마 성전을 짓고 다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귀환자 중에서 경건한 이들은 이러한 은혜 중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한 노여움이 아직 다 풀리지 아니한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날의 그들의 조상의 죄와 허물을 사해주셨지만, 그 지었던 죄에 대한 죄책감이 여전히 무겁게 심령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아직도 어두운 구름이 끼어 있는 것처럼 그들의 기도는 위로 향하여 가로막힌 듯한 중압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심령에는 영적인 자유로움과 담대함이 없었습니다. 고토로 돌아왔고 형식적인 성전 예배는 재개 되었고 용서는 받았지만 그들은 심령 깊은 곳에서 아직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렇게 호소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시 85:6)
이 영적 회복을 위한 기도는 모든 시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성도들의 기도 제목입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시대에, 하나님과 교제가 막히고 하나님께로부터 노여움을 감지할 때에, 하나님의 참 성도들이 늘 이렇게 회복을 위한 기도의 소원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시편에 보면, 영적 회복을 위한 기도들이 여럿 있습니다. 시편 80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시편 126편 기록자도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71편 기록자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
시편 143편 기록자도 역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왜 우리는 이렇게 영적 회복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 할까요?
이는 영적 회복이야말로 생사가 걸린 중대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물질적 풍요나 지위의 안정이나 사람들의 인정 여부는 부초와 같아서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다시 생기곤 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생명은 영원한 영혼의 행복이 달린 절대적인 관건입니다.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바가 그 뜻입니다.
또한 영적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회복은 우리가 새롭게 되겠다고 결심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영적인 지식을 많이 얻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성령이 감동 감화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4:6 말씀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한 것이 그러한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 광야처럼 황폐하고 사막처럼 말라버린 우리의 심령이 강물이 흐르고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은혜의 동산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복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교회들과 우리 심령들은 바로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드려야 할 때 같습니다. 1907년의 평양 대부흥의 은혜의 물결을 다시금 허락해달라고 2007년에 일년 동안 한국 교회는 크고 작은 대규모 기도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 없이 벌써 7년이 지났습니다. 왜 그러한가 생각해보면, 그러한 부흥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우리 심령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찾는 가난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 진정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건대, 세상적인 물질, 세상의 평안함, 세상적인 안정에 그리스도인들이 만족을 찾고 거기에 주저앉게 됨으로써 영적 상태가 침체되고 나태하게 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지 못했던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영적 상태는 매우 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영적인 지식 외에 수많은 지식들이 광범위하게 꽃피우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식의 폭주 시대에 영적인 관심이 뒤처지고 있습니다. 또한 세속적 즐거움이 만발하는 시대입니다. 세속적인 예술, 문화, 복지, 사회적 향락과 여러 행사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성공과 부에 대한 관심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성도들의 관심사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영적 추구보다는 개인적인 삶의 안정과 축복만을 추구하는 것에 만족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적지 않은 교회들이 생존 전략으로 복지, 교육, 문화 사업을 벌이면서 복음의 본질보다는 지엽적인 사회 문화 사업에 더 시간과 관심을 쏟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을 찾는 간절함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 교회가 점점 그 영적 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인한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야말로 더욱 이 기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만이 교회를 살리고 우리 심령을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도로 찾고 우리 심령에 하나님을 인한 즐거움으로 충만하기 전까지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거룩한 욕구 불만이 우리 심령에 가득 차올라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종교적인 형식만으로 얼마든지 평안하고 행복하고 만족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부흥의 대적입니다. 이 거짓 안전감, 영적인 안전 불감증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영적 위험의 증거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
하박국 선지자가 이 기도를 한 배경은 이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등진 유다 백성을 징계하시고 그 후에는 바벨론 국가를 심판하신 후에 반드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는 말씀대로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신다는 비전을 그에게 제시해주셨습니다. 비록 유다가 바벨론에게 시련을 당하겠지만 다시금 회복하실 것이고 더 큰 부흥이 온 세상을 뒤덮을 것이라는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비전을 깨닫고 난 하박국 선지자는 조국이 처한 현실은 지금 엄중하고 비관적이었지만, 하나님의 비전을 놓고 간절히 그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보았던 뼈가 가득한 골짜기의 환상에서도 이렇게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고 하였습니다. 골짜기에 널부러진 말라버린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들은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오자 그들은 다시 죽은 무덤에서 일어나 다시 고토 이스라엘로 들어가 큰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 환상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생기는 곧 성령의 부흥의 바람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의 현실이 그와 비견한다면 과장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생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부흥의 생기가 우리 각 사람과 교회에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바람 없이 우리는 결코 참된 생명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반적인 영적 침체의 무겁게 드리운 분위기를 주변에서 느낍니다. 하나님의 은근한 노여움을 느낍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움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회복을 구할 때입니다. 영적 부흥을 부시길 매달릴 바로 그 때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시 85:6)
우리 모두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을 다시 살리사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만족하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립시다. 마침내 성령이 비처럼 우리에게 쏟아져 우리 마음을 감동하사 우리 안에 모든 더러운 것들과 세상에 매인 것들과 두 마음을 품은 것들과 뜨뜻 미지근한 영적 안일함이 청산되기를 바랍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거룩한 영적 부흥이 온다면, 그 다음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축복은 덤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급선무는 영적 회복의 축복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이요 본질적 축복입니다. 이 시대 이 본질적인 축복을 눈물뿌려 간구하는 무릎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옛 선현 중에 시대의 어둠을 보고 성전에 나와 엎드려 눈물로 하나님의 임재와 백성의 회개를 구하였던 파수꾼들이 있었습니다. 주여, 이 시대에도 가장 필요한 것이 이 영적 회복과 부흥을 우리가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주여, 이 수년 내에 우리에게 거룩한 부흥을 허락해 주옵소서. 늘 부흥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자로 삼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