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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JrFeRW0B-gU&t=3s
2021년 11월 14일 시 37:1~7 불평하지 말고 맡기라.
본 시는 자신의 삶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악의 문제와 또 나타난 현상들을 보면서 믿음의 갈등을 일으키는 신앙인을 타이르고 조언하는 지혜 선생의 권고시입니다. 시인은 오늘 권고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악인의 형통을 인하여 부평하거나 부러워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하며 삶 속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조언합니다. 결국 이 시는 여호와의 언약백성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권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이러한 문제에 부딪힐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시대는 서로 다를지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보면서 여러분에게 직접 조언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지기를 소원합니다.
1. 악인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1,2절)
우선 1절에 시인은 악인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1절 같이 읽겠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성도는 누구 때문에 불평하지 말아야 할까요? 우선 불평의 금지 대상은 1절의 ‘악을 행하는 자들’(1절)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입니다. ’불평하지 말라‘의 사전적 의미는 격정적으로 흥분하며 분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버럭’하는 것이지요. 또한 1절에 비슷한 말로 ’시기하지 말라‘는 것은 열정적으로 덤벼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악인들은 교묘하게 자기 이득을 챙기기에 탁월한데,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니 우리는 그들로 인해 맘이 상하고 버럭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들의 성공과 번영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악인의 번성이나 불의를 행하는 자의 성공과 형통을 보고 계속적으로 그 분한 마음을 키우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그렇게 쉽게 불평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을 수 있나요? 우리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악인과 불의를 행하는 자를 미워하고 계시는 데, 성도가 그들의 불의한 성공을 보면서 화를 내는 것이 뭐가 잘못된 건가요?‘ 또한 ’그들의 성공과 번성의 불합리함에 대해서 분을 내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시인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2절 말씀에 보니 그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 나옵니다. 2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불평을 그쳐야 할 이유는 악행을 일삼는 자들은 풀처럼 속히 시들고, 신선하고 푸른 채소처럼 곧 말라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2절). 여기에 ’풀‘과 ’푸른 채소‘는 일시적인 것, 특히 하나님이 다시 새롭게 일으키지 않으시는 무상한 것을 묘사하는 직유로 흔히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시 90:5,6]에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도 도처에 횡행하는 악에 대해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대해 불평했을 뿐 아니라 죄악을 묵인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묻기도 했습니다(합1:2~2:20). [합 1:13~17]을 보시면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나 본문의 시인은 악인들과 행악자들의 성공과 형통이 일시적임을 단언합니다(2절).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악하고 불의한 이들은 잠시 번성하는 듯 보여도 직접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없어도 풀과 푸른 채소같이 시들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자연적인 이치이며 통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도들은 악인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로 인해서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의 바이러스는 코로나19나 독감바이러스 보다 더 강하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가운데 역사해 왔습니다. 특히 모세오경에는 ‘원망’이란 단어가 무려 21번이나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자마자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 고기가 없다. 마늘과 파도 없다, 편하게 걸어갈 길도 없다, 가나안 땅에 거인들이 있어서 들어가기 힘들다” 하면서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고 광야 길을 행진하였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있는 불기둥과 구름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솟아나오는 물, 하나님을 만나는 성막, 출애굽의 은혜와 가나안 땅의 비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무척 화가 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민 14:27). 하나님께서는 배은망덕의 느낌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원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계시는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 19:3). 원망과 불평은 실패와 멸망의 인생의 지름길이 됩니다(고전 10:10; 약 5:9).
원망과 불평은 나쁜 습관입니다. 불평은 불평을 낳고, 그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게 됩니다. 사실 원망과 불평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원망을 하게 되면 저주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복이 떠나고 불행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성도들로 하여금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인정하고 칭찬하는 경건한 욥의 입에서 원망과 불평의 말이 나오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해서 고통과 불행을 갖다 주었습니다. 재산도 잃게 하고 자녀도 죽게 하고 심한 악창으로 고통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욥 1:22). 욥은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과 입술에서 자꾸 부정적인 말과 불평이 나오면 “마귀가 나에게 시험을 주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빨리 돌이키고 감사의 제목을 찾고 찬양과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서양 격언에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의 조건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감사를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바이러스가 감사를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불평으로 가득한 가정이나 사업장이나 교회에 축복이 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불평하면 복이 떠납니다. 그러나 감사를 하면 큰 복을 받습니다.
옛날에 어떤 왕이 아주 큰 돌을 길 한가운데 굴려다 놓고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보려고 숨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모두 투덜대고 불평만 할 뿐 다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한 농부가 수레에 채소를 싣고 시장에 팔러 가다가 그 큰 돌을 보고서 말없이 치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돌을 치운 자리에 커다란 돈주머니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많은 황금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돈은 누구든지 이 돌을 치우는 자의 것이다”라는 왕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큰 돌과 같은 인생의 장애물이나 어려움이 와도 절대로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원망과 불평의 바이러스를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치료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불평과 원망의 이유가 무엇인든지 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로 치료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카드를 받고 거기에서 한 걸음 나가서 감사노트를 5가지 기록해서 몇일 전부터 저에게 보내오십니다. 그러다 보니 받고 있을 수가 없어서 저도 감사제목 5가지 씩 보내드리고 있답니다. 감사노트가 대단한 게 아닙니다. 평범한 것입니다.
《11월11일 감사노트》 송##집사
1)저희 부부가 오산역에서 막내동생 송은춘을 만나 점심식사를 같이하먼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2)피곤함에도 오늘 왕복 7시간의 오산여행에 함께해준 집사람에게 감사합니다
3)파주평생교육원에서 실시하는 "한글2016" 컴퓨터 교육에 최종 등록을 확정시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4)오늘 하루도 형제간 우애를 다지는 귀한 시간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5)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집사람과 많은 교감을 나누게 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감사노트 [11월 12일 금요일 감사노트]
1. 여고 보건선생님에게서 다음주 월,화,수,금 출근 요청왔는데, 모든 일정 재조정하고 수락하게 하심 감사드립니다(원래 온라인수업이라 한주 쉬라고 했었음).
2. 전도건빵 5상자 주문해서 아침8시에 천안에서 무사히 찾아오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3. 오집사님 주신 대봉시 감을 너무 맛있게 먹고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4. 순천향대 교직원식당에서 먹은 점심메뉴중 배추된장국과 무나물이 너무 맛있게 먹어서 감사드립니다.
5. 처음에 막막했는데, 주일설교가 잘풀려서 주보 마무리하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2. 여호와를 의지하고 기뻐하라(3,4절).
이제 시인은 악인의 형통을 불평하고 부러워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4절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선 불평하지 말고 ‘여호와를 신뢰하고 선을 행하라’(3절)고 권면합니다. 다시 말하면 악인이 번성하고 형통하는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하나님은 100% 옳습니다”라는 믿음의 생각과 행동을 하라는 것이지요. 만일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악인들처럼 번성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방법을 쓰고, 세상적인 옳지 않은 방법을 통해,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과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는 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그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신뢰한다는 것은 삶 속에서 ‘선을 행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또한 시인은 악인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로 인해서 불평하지 말고 ‘땅에 거하며 성실함을 유지하라’(3절)고 권면한다. 이 구절에서 평행관계로 보면 ‘성실함을 유지하라’(3절하)는 말과 ‘선을 행하라’는 말은 서로 같습니다(3상).
중독을 극복하는 길은 그것을 끊으려고 집착하지 말고 다른 일에 재미를 붙여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불평을 극복하는 길은 선을 행하되 성실함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불평하면 마음의 평강이 깨집니다. 불평할 때 마음이 분산되고, 삶이 집중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외부적인 것에 집중하지 말고 항상 옳으신 하나님께 집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여 선을 행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여기에 더 하나를 붙여서 성도들에게 ‘여호와를 기뻐하라’(4절상)고 한다.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뻐하라의 ‘기뻐하라’는 명령형은 유쾌하고 즐겁게 축제를 즐기듯이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이것도 불평을 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제1조에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라고 했으니 축제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껏 기뻐하면 ‘그가 너에게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4절하)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주님을 기뻐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는 주님의 뜻에서 벗어난 소원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이지요. 이것이 의인의 형통함이요 의인의 번성의 길인 것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소원으로 자신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이라고 약4:3에서 말씀하고 있구요, 또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할 때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시66:18).
그러므로 하나님께 뭔가를 구하기에 앞서서 그 분을 100% 옳으시며 그 분은 항상 의로우시고 그 분의 행하심은 오류가 없으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그 분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 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신앙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에게는 왜 주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불평할 때 길이 어그러지게 되고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니 하나님을 기뻐하지도 못하고, 그 분의 선하신 응답을 받을 수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옳으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선을 행하며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여호와께 맡기고 잠잠하라(5~7절)
그리고 5~7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의 좀 더 성숙한 단계를 제시하는 데, 이는 자신의 인생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라고 권면합니다.
5~7절 함께 읽겠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여기서 ‘길’이란 일이나 사업을 포함한 생활 전체, 인생전체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즉, 자기의 모든 일에 대한 결과를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더 포괄적으로 하면 자신의 인생의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 전체, 아니 인생 전체를 맡기겼습니까? 아니면 그중에 일부분만 맡기고 나머지는 여러분이 맡아서 주관하고 계십니까? 여기서 ‘맡기다’(갈랄)라는 말은 “돌을 굴려 버리는 것처럼 자기 손에서 놓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의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의지하는 것’은 ‘나의 전 생애를 하나님의 방법에 맞추는’(잠 16:20; 잠 28:26)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면서 성실함으로 선을 행하면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것을 참고 기다리는 자의 기대를 절대로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일단 하나님께 모든 일, 염려를 포함해서 맡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맡아 행하신다면 어느 누구도 당해 내지 못하므로 해결되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내가 그것을 맡아서 할려고 하다보니 자꾸 어그러지도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그 실패를 하나님께 돌리고 도와주지 않았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우리의 신앙이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그 모양으로 살아가지 말고 시간이 지나 신앙의 연수가 좀 더 쌓일 수록 조금 더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맡기지 못하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그렇게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시렵니까?
오늘 본문 5절 6절은 제가 청년 때 수련회가서 주신 말씀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 드렸습니다. 목사님 목양실 달력에 있는 말씀이 나에게 확 다가와서 제가 그 때부터 붙잡은 말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말씀을 그렇게 신실하게 붙잡은 것은 아닙니다. 정확한 의미도 모르고 너무 좋아서 그렇게 붙잡고 또 힘들 때마다, 원망과 불평이 나올 때마다 또 붙잡았구요. 앞 길이 너무 캄캄해서 보이지 않았을 때에도 붙잡고 위로받던 말씀입니다. 또한 나의 남은 인생을 걸어갈 때에도 이전과 동일하게 붙잡고 살아가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요. 하나님께 자신의 길을 맡기고 의지하며 믿고 신뢰하는 자에게 의를 빛같이 나타내주시고 또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환하게 비춰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6절). 이 약속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라고 하면서도 인생의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요즘말로 개고생(?)하지 말고 그 짐을 하나님께 맡겨버리시기를 바랍니다(마 11:28, 벧전 5:7).
이제 주보뒷면을 함께 보실까요? 오늘 설교의 주요성경구절인데요. 성령께서 아이디어를 주셔서 만들어보았는데요. 함께 보시면요.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시37:1)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6:7)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 지리라(잠16:3).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여러분 불평이나 원망은 불신앙의 증거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에서 제하여 주시도록 성령을 의지하고, 이제 우리의 모든 문제와 인생의 모든 길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십니다. 언제까지 원망과 불평에 갇혀서 사시겠습니까? 이제 믿음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시면서 살아가시지 않겠습니까?
이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함께 찬송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