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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교회는 망한다. 몇 년 전 대한민국에서 잘나가는 유명 <개신교> 대형교회 목회자가 이런 말을했다. “누가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고 했는가? 진정 하느님은 작은 교회보다 큰 교회를 원하신다.“라고 하면서 목회에 실패했거나 능력이 부족해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자들의 염치없는 자기변명이라고......... 글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알고 보면 대형교회도 천막교회에서 시작해 목회자와 신도들의 온갖 고생과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이다. 목회자의 타고난 말 재주와 성도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헌금과 재물이 쌓이면서 세속적인 부(富)를 일군 것이 마치 하느님의 축복과 은혜의 결과라고 말하는데 한마디로 말해 개구리가 올챙시절을 생각 못하고 하는 소리다.
결국 부자 교회는 성경적이거나 우리가 기대하는 교회는 아니다. 진리와 복음의 순수성을 찾아보기 힘들고 세속적인 상업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배 하면서 하느님의 진리와 복음은 늘 물질과 연관시켜 설파한다. 설교로는 끊임없이 ‘교회는 사회의 소금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소금은 커녕 사회의 암 덩어리로 걱정을 안겨주는 게 현실이다.
넓은 사회 속의 아주 작은 공간인 교회에서 조차 사랑을 나누고 서로 감싸 주는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교회 안에서 편이 갈리고 네편 내편으로 나눠 서로 미워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세속의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교회들이 있다. 사랑이 넘치고 하느님의 성령이 임하시어 은혜가 가득하여야 할 교회에 언제부터 인지 미움과 저주와 갈등이 가득한 집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라도 사건이 없고 조용할 날이 없다. 세상을 구휼(救恤)한다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기는커녕 거꾸로 근심과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대형교회 일수록 내부 분열과 갈등이 심각하니 사랑, 소망, 믿음은 이제 벽에 걸려 있는 표구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어쩌다 교회와 사회가 이렇게 타락했을까? 예수님의 참사랑의 의미와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목회자의 평가가 부도덕한 인물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기독교TV(CTS)에 나오시는 목사님의 근엄하고 똑 소리 나는 설교와 성도들의 반응은 가히 환상적이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목회지도자나 종교원로들의 충고와 가르침이 사회에서 조롱거리로 회자되고 정의와 도덕적인사회로 발전하는데 기여하지 못함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개척교회 시절엔 단합도 잘되던 교회가 교인이 늘어나고 재물이 쌓이면 영락없이 전임 목사, 후임 목사 거기다 장로까지 끼어들어 주도권을 잡기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교회를 심심치 않게 봐 왔다. 강북의 어느 상가 건물외벽에 현수막이 붙어 있는데 “교회 입주 결사반대/입주자일동”이라고......어쩌다 교회위상이 이 지경이 됐는지 모두 자업자득이라고 생각된다.
물질 만능시대가 되면서 교회는 인간 욕심이 지배하고 세속의 관습이 기복신앙을 낳고 하느님의 교리를 왜곡시키면서 교회의 신성함과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약화되면서 각종 파렴치한 범죄, 성직자간의 폭력, 상호비방, 중상모략 등 그야말로 시정잡배들이나 다를 바 없다. 교회 내부의 갈등은 차치하고 교파의 단체인 한기총회장, 감리교감독을 뽑는 선거를 보면 가관으로 이권 단체장 감투싸움은 뒀다 오라고 한다. 소위 인격을 갖췄다는 교회 지도자들조차 명예와 종교권력에 목을 매고 상대방 당선을 절대 인정하지 못하니 그 후유증은 심각하다. 당사자들끼리 싸우다, 싸우다 안 되면 세속적인 법정에서 가리기도 한다.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당회장목사의 권력은 커지는데 비해 부목사나 예비성직자들의 위상은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신분보장커녕 파리 목숨처럼 당회장목사에 의해 가슴 아픈 해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성도들조차 이에 익숙해져 있는지 누구하나 부당 해직에 대해 이의를 제기 하거나 제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혹 당회장목사보다 설교를 잘해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이는 자살행위로 만약 설교를 잘해 성도들에게 인기가 높아지면 이는 해직 영순위가 된다고 하니 참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쯤 되면 교회는 성서나 하느님의 진리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세속의 관습이 지배하는 인간시장과 다를 바 없다. 부목사나 예비성직자들이 살아 남기위해서는 종교적 신념이나 도덕과 인격수양보다는 변칙적인 수단과 방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성서에서 ‘낮은 데로 임하소서’ 라는 겸손이 사라지면 무슨 구원이 있겠는가? 툭하면 타 종교를 비방하고 저주하면서 당회장목사의 정치성향에 따라 사회적 이념 갈등과 계층간 분쟁을 조장하고 내친김에 재물 쌓기와 교세 팽창에만 열중하는 목회자들이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성직자를 인격과 자질로 평가하지 않고 성도 수, 교회크기, 교회 자산규모로 평가한다니 이것이 바로 교회를 더욱 타락시키는 요인이요, 세상사람들이 교회를 가까히 할 수없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 우리는 그런 대형교회를 부러워하며 그들의 노하우를 벤치마킹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절대 따라하거나 절대 부러워할 대상이 아니다. -담아 온 글- Jesus Christo-Paul Mauriat |
첫댓글 작은교회 운동의 슬로건이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이더군요. 더 엄밀히 말해 '작은 교회만이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는 아름답다'고 해야겠지요. 어찌보면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상은 자발적 청빈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기독교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럽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대형교회로 몰리면서 교회도 '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두둘어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큰교회의 탐욕스런 몸집불리기에 작은교회가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현실이구요.
네,공감합니다.
십자가의길에는 오로지 주님밖에 내 세울것이 없는데
너무도 그 잣대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고 그 행위가 이루어지니 답답합니다.
그리고 이에대한 평가는 스스로 하느님 보시기에 좋으셨는지?
누구도 결론을 내릴수가 없겠지요.
작금의 시대에 더욱 고민하는 가장 큰 이슈입니다.
우리 성공회라고 예외일수는 없겠지요
합리화의 단어로 묻어버려서는 않될것입니다.
미사중에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함께 ,우리라는 공동체로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가 섬기는자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문득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산상설교가 머리를 때리네요.
좀더 현실에서 더불어 살아가기위해 기도합니다.
좋으신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