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9일 망우사색의길-코스모스축제
- 망우사색의 길 후기
10월9일은 569번째의 한글날. 세계에서 으뜸가는 우리글, 한글을 반포한 날입니다.
절기로는 한로(寒露). 차가운 공기로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지요.
높은 산에는 곱게 단풍이 물들고 하늘은 높고 푸른 계절이지요.
3일간의 황금휴일임에도 적잖은 분들이 함께한
망우사색의길 산책과 구리시 코스모스축제장을 찾았답니다.
양원역 2번출구에서 나와 바로 앞 중량캠핑숲에서 출발에 앞서 가볌게 몸 풀기 준비운동을 합니다.
처음 오신 회원(닉을 깜빡해 죄송)께서 나오시어 스트레칭을 맡아 주셨지요.
서튼 듯, 그러나 열심히 진행하셨답니다. 여기저기 웃음이 터지기도 하였구요.
처음으로 명찰을 받으신 여섯 분.환영의 박수 속에 첫 인사를 나누었지요.
오래오래 함께하시는 길동무이기를 바랍니다.
사색의 길을 가기에 앞서 공동묘지 아운데 사잇길로 들어섰지요.
무언가를 헤아리고 생각하는 사색(思索)에 앞서 죽음의 색깔(死色)을 상상해 보자는 의미였지요.
조금은 가파르고 비좁은 길 주위에 죽은이의 유택을 돌아 보았습니다.
파묘한 산소 자리에 심은 나무(화살나무?)에는 붉은 잎이 피었지요.
찾아가는길님이 잠시 설명을 합니다.
앞뒤 좌우의 봉분들을 지나며 당신은 누구를 떠올리고 또 무엇을 그려 보셨는지요?
누군가는 삶도 위대하지만 죽음은 그 이상 위대하다고 했던가요.
생의 마침표를 찍은 점점..... 언젠가는 우리도 선명한 점 하나를 남기겠지요.
그 위에 어떤 묘비명을 준비하실건가요?
그냥 말 없음표의 ...으로 남기 실건지요.
누운이들이 활보했던 세상의 모습은 많이 변했습니다.
높은 고층 아파트며 하늘을 오를 것같이 솟은 빌딩들.
그너머 너머 북한산의 줄기는 그대로입니다.
참고로 여기 망우동의 묘 터가 명당이라고 합니다.
후손들이 발복하여 잘 살고 조상의 음덕을 오래오래 기리기를 바라봅니다.
아! 그러나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한 산소도 보여 깔끔하게 벌초한 묘와 대비 되기도 합니다.
돌보지 않은 저 봉분의 주인이시여 그럼에도
이 동네의 이름처럼 망우(시름을 잊다)하옵기를.
비석이 세워진 묘도 있지만 관리사무소에서 부여한 번호표만 있는 곳도 많습니다.
결국 숫자로 기억되는 마침표...
그 옆에는 껍데기 밤송이가 너부러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지를 순례하 듯 때론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하였지요.
왜내고요? 살아 있음도 성스럽지만 그 끝의 죽음 또한 거룩한거니까요.
당신도 이 길에서 그런 마음이셨겠지요.
아~ 이 사람. 명동의 휴머니스트, 참 모더니스트 시인 박인환.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 가슴을 따뜻하게, 아니 강하게 찌르는 시어(詩語)로 사로잡던 그 사람.
우리는 낮은 음성으로, 떨림으로 고인의 명시 '세월이 가면'을 노래했지요.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끝까지 불렀나 모르겠어요. 아마도 속으로만 끝까지 부르셨지 않았을까요.
제가 그랬지요.저도 노랫말을 잇지 못했지요. 차마...
올라오며 꺽은 한 다발의 야생화를 시인 앞에 바쳤지요.
언젠가 다시 찾으리라 다짐을 하며.
가파른 계단을 다시 올라 11번 전주아래 또 한분을 차아 갑니다.
어두웠던 한 시대를 꿁고 짧게 살다 간 또 한분. 이중섭 화가를 찾았습니다.
황소와 닭을 주제로 불후의 명작을 남긴 화가 이중섭.
말년에는 몸과 마음이 아팠다지요. 정신이상 등의 병세로 쓸쓸히 눈을 감은 대향 이중섭님.
이제는 제주에서 부산에서 뜻을 기리는 거리와 기념관이 생겨 발길이 이어진다지요.
배고픈 시절 종로(현서촌마을) 하숙방에서 담배 은박지에 그렸다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두 분의 산소를 찾은 후 사색의 길을 걷습니다.
어느새 1시30분입니다. 앞서 가는 저를 부르는 소리.
"힘들고 배고파요."라며 휴식타임을 강력히 요청, 아니 압력을 가합니다.
삼삼오오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눕니다.
고구마 사과 배 포도 등....
휴~ 솔직히 저는 다른게 고팠지요. 그러나 꾸욱~ 참았습니다. ㅎ
이 사색의 길의 묘미는 풍광이 좋은 곳이란 겁니다.
북한산은 물론이구요. 도봉산과 수락산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지요.
북한산의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백운대 인수봉이, 도봉산의 오봉 주봉 신선봉 자운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한폭의 산수화를 감상할 수 있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제 발길이 닿았던 곳이고 나름 당시의 추억이 떠올라 걸음을 멈추고
지나간 세월도 반추하지요. 저를 돌아보는 타임머신을 탄 느낌입니다.
돌아봄은 단순히 어제만 보는게 아니지요. 거기서 걸러진 그 무엇으로 오늘을 찾는 겄이지요.
이 곳에는 위에 적시한 분들말고도 한 시대를 풍미하고 굵은 획을 그은 분들의 발자취를 돌아 볼 수 있습니다.
하루로는 모자랄 것 같습니다. 이 가을이 가기전 한 번 더 찾으려 합니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의 묘와 백치 아다다의 계용묵,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김상용
그리고 일본인으로 녹화사업과 문화예술을 사랑한 아사가와 다꾸미의 산소도 가보렵니다.
조봉암님의 묘역도 찾았습니다.
1959년 반공법 위반으로 사형을 당항 후 50여년이 지난 2011년 무죄로 신원이 복권되었습니다.
만해 한용운님의 묘소와 소파 방전환선생의 묘도 찾았지만
설명을 하다보니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했습니다.
뚱이아빠님과 찾아가는길님, 길벗님이 후기에 올리셨나 모르겠네요. ㅠㅠ
2시30분께 사색의길 걷기를 마치고 식당으로 향합니다.
파란 하늘 아래 벚나무 잎이 빠알갛게 물들었습니다.
어디 저 잎들만 물들었겠나요.
저도 당신도 조금씩 가을에 물들지 않았겠어요~
가을은 이렇게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여러 색으로 물들겠지요.
님은 어떤 색으로 물들을 까요?
하산에 앞서 단체로 찰칵~새로 나온 카페 펼침막입니다. 오늘 첨으로 선보이는 게지요.
아시겠지만 거름님이 도안해 주신것이지요.
이번에는 다음(Daum)로고는 빼고 카페 영문 주소를 새로 넣었습니다.
담벼락이나 나무를 타고 오른 담쟁이의 잎은 다른 잎보다 먼저 단풍이 들지요.
한여름 물한방울 없는 담을 혼신을 다해 오르고 나무를 기어올라 가는 담쟁이의 삶은 정말 대단합니다.
도종환 시인은 이 끈질긴 삶을 시로 썼지요.
참고로 담쟁이는 한방에서는 석벽려라고도 하구요. 땅의 비단이라 하여 지금(地錦)이라고도 한답니다.
뿌리 줄기 열매에 여러가지 효능이 있다는 군요.
열심히 여름을 산 담쟁이의 휴식, 화려하게 빨깧게 물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눈에 띄여 객기의앵글을 맞춰보았습니다.
낙엽이 깔린 한적한 하산길입니다.
인적이 드문 호젓한 오솔길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카메라 앞에서 웃음을 보여 주십니다.
몇몇분은 시장도 하시고 시간도 그렇고 그래서 인지 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군요.
모두가 고개를 숙이 셨습니다.
깊은 상념에 빠진 순래객 같습니다.
아줌마, 오늘 산책길 주위에 많이 보이는 아줌마들의 보물찾기(?) 모습입니다.
도토리를 줍는 모습이 눈에 많이 뜨였습니다.
억척같은 아줌마들의 별난 장면....글쎄요~~ 쩝쩝~~
산길을 내려와 한우물동네로. 다시 긴 한 정거장을 지나쳐 식당으로 갔습니다.
죄송합니다. 팍팍한 길로 안내를 해서요.
아치울마을 외할머니집식당. 꽤나 알려진 맛집입니다.
돌솥밥이 결들인 청국장 등 식사를 합니다. 3시30분이 넘었습니다.
사색의 길에서 길이 어긋났던 해가님을 만나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맛난 점심을 마치고 커피 등 차 한잔을 한 후 코스모스축제를 보기 위해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다시 30여분을 걸어야 축제장을 간답니다.
가을 빛으로 물드는 날 사색의 길에서 무엇을 담으셨는지요.
오늘 걸음을 통해 무엇을 마음속에 그리셨는지요.
여러분의 마음살이에도 예쁜 결실이 이어지기를 빌어 드립니다.
오랜 날이 지난 후 오늘을 떠오르신 다면
저는 작은 보람으로 적어 놓겠습니다.
함께하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10월9일 이같또 로따
Legends of rhe Fall ost(가을의 전설)
후기를 쓰며 이 음악이 떠올라 양해 없이 띄웁니다.
첫댓글 생각지도않고 참석한길
뜻밖의 깃발을메고 앞장선길
하지만 사색의길
많은것을 생각하고
그무덤의 주인들을 되뇌이며
다시금 오늘을 생각한 길 이었습니다
좋은길 만나게해주신
로따님 감사합니다
찾길님이 계시어 신경도 덜쓰고 편했답니다.
코스모스길 리딩 훌륭하게 해주심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축제장에서 광나루역까지의 걷기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삼겠습니다.
대부분 고인들은 짧고~
굵게 살다 가셨더군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뭐 이런 느낌!!
한 시대를 '굵고 짧게' 산 분들을 돌아 볼 시간이었지요.
삶의 너머 죽음의 세계도 생각해 보는 걸음이었지요.
처음 시작할때는 망우 사색의 길은 구리 코스모스길로 가는 작은 길목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망우길은 길 자체로도 생각보다 좋았고 그속에 우리의 아픈 역사와 아름답지만 너무나 일찍 떠난 분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준비로 하루를 풍족하게 해 주신 로따님 감사합니다
비록 그들의 삶의 흔적은 알 수 없지만 고요히 누운 생애의 끝자락을 음미할 수 있었지요.
고운님의 발길이 함께하시어 다뜻한 길이었구요.
내내 건강한 가운데 보람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어째서 가져진 마음인지 모르겠으나 사색길 걷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졌지요. 죽음의 길목을 걷고 있어서 일지, 방치된 듯한 모습이 죄송해져서인지.
여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내념에 담고 있었네요.
사색의길에서 넘 충격(?)을 받으신거 아니겠지요.
저의 경우는 마음이 헝글어 질 때면 슬그머니 다녀오곤 하는 곳입니다.
남의 일인 듯,내 일인 듯 다가오는 큰 명제이지요. 삶의 종점 말이지요.
듣기만했던 망우묘 사색에길 처음으로 걷는길이였습니다
명인들님묘 앞에서는 숙연해지고 짧은 삶을살다 가셨기에 마음이 찡했습니다
로따님 설명으로 순간에 삶과 죽음도 생각하게되고 그날은 산교육가을날에 고운걸음 이었습니다
로따님 덕분에 망우묘 사색길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윤실비아님도 찡한 심경이셨나 보군요.
가끔 이 길을 걸으며 자신을 돌아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박학다식한 로따님 자세한 설명에 그날의 행적이 떠오릅니다
다음길에도 좋은 안내 부탁드립니다
길벗님, 처음 뵈었지만 든든한 우리 카페의 길동무라고 느꼈답니다.
자주 걷기에 참여해 주옵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한 말씀 드립니다. 닉네임 건입죠.
님의 닉은 님을 지칭하는 고유명사 이전에 함께 걷는 길동무를 총칭하는 통상명사이기도 하지요.
전에도 어느분이 '길벗'이란 닉을 쓰다가 개명한 적이 있습니다. 고려해 주시면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