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손응(孫凝)의 본래 이름은 순응(荀凝)으로 순씨였으나 고려 현종의 이름이 순(詢)이어서 그 음이 같다고 하여 손씨의 성을 하사한 것으로 전한다. 또 일설에는 고려 태조가 손씨를 하사 하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손응 이후의 계대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후손들은 고려 때 상의직장 동정(尙衣直長 同正)을 지낸 손세향(孫世鄕)을 1세조로 하고있다. 그러나 갑자보(1744년)에는 장군(將軍)을 지낸 손간(孫幹)을 1세조로 하고 있다. 고려 충목왕 때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이 복주(안동의 옛이름) 부원군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일직으로 하였다.
[가문의번영]
손홍량(孫洪亮)은 1287년(충렬왕 13년) 일직에서 출생하여 6대의 왕조를 거쳐면서 벼슬이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고 복주 부원군(福州府院君)에 봉해져서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특히 그는 40여 년의 벼슬길에서 나라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고려 말기의 어려운 국정에 크게 이바지 하다가 1351년 (충정왕 3) 65세로 치사(致仕)하여 고향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홍건적의 침입으로 복주에 피난하는 공민왕을 중도에서 평복으로 맞이하여 난국에 대한 수습책을 진언하니 왕이 그의 충의에 감탄하여 "충정이 하나같이 곧은 사람이 늙을수록 나라위한 마음이 더하도다(子誠一直人 老而益篤)"라는 시와 함께 정평공(靖平公)의 시호(諡號)를 하사하였다. 1364년 난의 평정을 축하하러 개경에 갔을 때 왕은 영정(影幀)과 구절산호용장(九節珊瑚龍杖: 용을 아로새긴 아홉 마디의 산호 지팡이)을 내리며 "경의 두 아들도 나를 섬기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손홍량의 맏아들 손득수(孫得壽)는 정순대부(正順大夫)로 밀직사 좌대언(密直司左代言) 등을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초계 군수(草溪郡守)를 지낸 아들 손웅발(孫雄發)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으며, 차남 손득령(得齡)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전공 판서(典工判書) 겸 진현관 대제학(進賢館大提學)을 지냈다.
조선시대에 손홍량의 증손 손관(孫寬: 영유의 아들)이 진성 현감(眞城縣監)을 지내고 밀양의 용평리로 이사하여 살면서 오늘날 밀양군 산외면 다원리를 비롯한 영천, 김해 등지에 취락을 이루게 되었다.
손관의 아들 손조서(孫肇瑞)는 1435년(세종 17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과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병조정랑(兵曹正郞), 등을 거쳐 봉산 군수(鳳山郡守)로 나갔다가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이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순절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지내며 호조 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학문이 뛰어나고 경전(經傳)과 도학(道學)에 정통하여 심경연의(心經衍義)와 근사록연의(近思錄衍義)를 저술했으며 시문(詩文)의 대가로서 당대의 석학(碩學) 김종직(金宗直)과 친교가 두터웠고, 문하에서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등과 같은 거유(巨儒)를 배출하여 명망이 높았다. 그가 죽은 먼 훗날 정조는 예조(禮曹)에 명하기를 "한림 손조서는 드높은 명망과 절조가 있어 일컬을 만한데, 어찌하여 인물조에 올려 상세히 주를 달지 않는가"라는 유시(諭示)를 내렸으며, 1812년(순조 12년)에는 이조참의(吏曹參議)와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증직하고 그 자손에게 잡역을 면하게 하였다.
그밖의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왜적과의 싸움에서 눈부신 공을 남긴 손처눌(孫處訥)과 인조반정 후 단성 현감을 지내고 정묘호란에 의병장으로 활약한 손인이 유명했으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 樞府事) 손필억(孫必億)의 아들 손명대(孫命大)는 숙종 때 선전관(宣傳官)과 진도군수(珍島郡守)를 지내고 영조 때 역신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에 승진하였으며 훈련도감 별장(訓練都監別將)과 선천 방어사(宣川防禦使)를 역임하여, 현감을 지낸 손처신(孫處愼), 손숙(孫璹), 좌랑(佐郞) 손단(孫湍) 등과 함께 학문과 도덕의 전통가문인 일직손씨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계 파]
상서공(尙書公) - 안동송천파(安東松川派), 안협파(安峽派), 척곡파(尺谷派), 춘양파(春梁派) 좌승지공(左承旨公) - 경광파(鏡光派), 경산파(慶山派), 구계파(龜溪派), 김해파(金海派), 대구파(大邱派), 동래파(東萊派), 밀양파(密陽派), 세촌파(細村派), 송동파(松洞派), 신흥파(新興派), 예천파(禮泉派), 일직파(一直派), 청도파(淸道派) 판서공(判書公) - 경주파(慶州派), 묵계파(默溪派), 봉화파(奉化派), 안동송천파(安東松川派), 영주파(榮州派), 영천파(永川派), 의주파(義州派), 조양파(朝陽派), 책구리파(冊求里派), 풍기파(豊基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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