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은 슈퍼맨과 유일하게 어깨를 걸거나 그보다 더 유명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스타 슈퍼 히어로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배경만큼은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1938년, 슈퍼맨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열광했고, 출판사에 엄청난 돈을 벌어다 주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즉시 수많은 만화 사업가들이 그 인기를 샘하며 따라 하기에 나섰다. 그런 슈퍼맨 따라 하기 중 하나가 바로 배트맨. 그저 그렇게 슈퍼맨을 흉내내다가 배트맨이 그려진 것이라면 그리 부적절하다 지적 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는 만화가 밥 케인의 태도와 행적이다.
당시 미국 만화계는 철저한 개인 작업이나 소규모 창작 집단과 같은 형태로 유지되며 대형 출판사에 작품을 납품하는 형태였으며, 밥 케인도 그러한 만화가 중의 하나였다. 슈퍼맨의 엄청난 인기 이후 수많은 만화가들이 그를 따라 하자 슈퍼맨의 출판사 DC는 방어적 차원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밥 케인에게 주문한다. 비록 박쥐를 모티브로 하긴 했으나 밥 케인이 1주일 만에 그려온 디자인은 지금의 배트맨과 너무나 달랐다. 붉은색 옷을 입은, 전형적인 슈퍼맨의 아류였다. 그것을 현재의 배트맨 모양으로 다듬어낸 이가 바로 빌 핑거. 그렇게 두 사람이 창조해낸 배트맨은 1939년 만화책으로 등장하게 되고, 오늘날의 배트맨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밥 케인은 그 모든 공을 자기가 차지하려 했다. 출판사의 주문에 따라 1주일 만에 그려온 디자인을 자기가 몇 년 동안 고심했던 아이디어라 우기며, 그 증거로 디자인 초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배트맨의 거의 모든 모습을 만들어낸 빌 핑거의 역할을 축소하려고 온갖 험담을 만들어냈으며 실제로 그것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발표한 초기 디자인이란 것 역시 다른 사람의 그림을 베낀 것이 밝혀지고, 수많은 소송에 시달려야 했으며 급기야 1920년대 발표된 영화 [박쥐]의 시퀀스를 베낀 사실도 밝혀지게 된다. 특정한 초능력을 가지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지만 스스로 개발한 무기와 기본적인 정의감으로 세상을 구하는 배트맨의 출발이 그리 정의롭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