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이야기 3
돌발사건
백 정 자
환자를 모시고 온 며느리는 말했다.
“어머니의 치매는 남들과 달아요. 어떻게 보면 똑똑한 것 같기도 하고, 치매를 앓기 전에는 인내심과 배려심으로 시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인형처럼 사셨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부부는 30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함께 살았어요. 어머니는 혼자된 상실감이 컸던지 갑자기 치매 증상이 나타났어요. 환자를 돌보며 1년을 같이 살았는데, 가족의 삶이 피폐해져 최선의 대안으로 요양원을 찾았어요.”
그녀의 말처럼 할머니가 이곳에서 보여준 사건을 보면 이색적이다. 할머니는 요양원에 입원하면서 유명해졌다. 이곳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온돌방에 모신다. 침대를 사용하게 되면 일어나다가 발을 헛디디어 낙상으로 이어지고, 때로 골반이 깨져 사망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분은 침대를 쓰시겠다고 고집했지만, 만일의 사태를 예방하려 온돌방을 쓰시게 했다. 그렇게 되니 식음을 전폐하고 발을 벽 모서리에 콩콩 짓 찢어 엄지발가락에 상처가 나고 뚱뚱 부어올라 칭칭 붕대를 감아주기도 했다.
며칠 후 입주할 환자를 위해 침대를 준비해 두었는데 할머니는 그것을 낮에 눈여겨보았다가 밤중에 당직자가 일하는 틈을 침대를 차지하고 볕이 잘 드는 창 쪽으로 가야 한다며 질질 미는 것을 보고, 할 수 없이 직원이 함께 옮겨 주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필요하면 피 흘리는 투쟁은 기본이고, 연기도 일품이다.
어느 날 복도를 지나는데 할머니가 더듬거리며 벽에 붙은 안전바를 붙잡고 걷고 있었다. 나는 당뇨병으로 눈이 나빠졌다고 생각해 안타까웠다. 곧장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며느리에게 알리고, 다음 날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눈에는 이상 없었다. 집에서도 병원에 가고 싶으면 그런 행동을 하셨다고 한다. 어르신은 병원에 다녀와 기분이 좋아져서 한동안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석했다.
이분은 노래 교실을 무척 좋아해 신이나 즐거워했다. 강사님의 열창에 맞춰 꼭 쥔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무아지경으로 모두를 즐겁게 했다. 그런 모습은 어머니 같지 않다며 며느리는 걱정부터 앞섰다.
얼마 후 먹던 약을 모두 끊어 버렸다. 몸에 해롭다는 이유로 약을 거부하니 췌장이 급격히 나빠졌다. 콩팥에 문제가 생겨 인슐린을 맞고 있지만, 투석전 단계로 온몸이 풍선처럼 탱탱하게 부풀었다. 목울대에서는 쌕쌕 소리가 나고 갑뿐 숨을 몰라 쉬셨다. 요즘은 1회에 마이신 7개와 다른 약까지 한 주먹이다. 좋은 세상 오래 살아야 한다며 약을 꼬박꼬박 챙겨 드셨다. 그러던 할머니가 얼마 전부터 조급해졌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야근자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간밤에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다. 그녀가 한숨을 길게 쉬며“지난 밤에 내가 십 년은 늙었다고요. 할머니가 밤새 변기에 앉아서 가슴이 답답하시다며 가슴과 배를 주무르고 소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몸이 아프니 팔다리를 주물러라. 대변이 안 나오니 약을 달라. 병원에 가야 하니 아들을 불러 달라고 소동을 피웠다고요.”
왠지 조짐이 이상해 며느리에게 빨리 오라고 연락을 했다. 그녀가 도착해 변기에 앉아서 소리를 지르고 좌불안석인 시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라 남편에게 서둘러 오라고 했다. 8시쯤 아들이 도착해 어머니를 보더니“우리 엄마 또 왜 그래!”하며 웃었다. 부부가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려고 기저귀를 채우는데 갑자기 소변을 쏟더니 혼절하는 것이다. 아들이 심폐소생술을 했고 며느리가 팔다리를 주무르고 간호사가 이어 했지만, 혼수상태가 되었다. 할머니의 걱정에 며느리의 눈이 그렁그렁해지는가 했는데 울음이 터져 나와 우리는 급해졌다.
마침 배식시간인데 통곡 소리에 놀란 할머니 몇 분이 식사를 거부하고 서성댄다. “심정지다” 소리도 들리고. “119 불러!” 다급한 목소리도 들렸다. 간호사가 급히 방에서 뛰어나온다. 당직자가 다급하게 구급대로 전화했다. 환자는 초를 다투지만, 시내에서 떨어진 산속 요양원까지 구급대가 도착하려면 20분쯤 소요된다. 요양원 설명서에는 환자가 임종이 가까워지면, 슬그머니 영면 실로 이동해 다른 어르신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돌연사로 그럴 틈이 없었다.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에 놀란 토끼처럼 어르신들이 술렁거리니 한 직원이 보호자에게 울지 말라고 했다. 그들도 놀라 울음을 그쳤다. 배식이 마무리될 때쯤 119대원 두 명이 도착했다.
자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환자가 사망했으니 경찰을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들도 어떤 매뉴얼이 있는듯했다. 평일 오전에는 어르신들에게 목욕을 시켜드리는데. 할머니의 사망으로 모든 일상이 정지되었다. 구급대와 경찰이 신발을 신고 침실까지 들어와 진을 치고 있으니, 어수선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경찰이 수사한다며, 방 하나를 막아놓고 목격자를 한 사람씩을 불러 갔다. 보호자가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설명을 했지만, 이런 사건은 과학수사대를 불러야 한다며 연락을 한다. 얼떨결에 놀란 직원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두 근 반 세 근 반 가슴만 뛸 뿐이다. 왠지 모를 위압감으로 어르신들과 직원들은 말문을 막고 숨죽여 지켜볼 뿐이다. 30분쯤 기다리니 등에 과학수사대라는 노란 표식의 검정 조끼를 입은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이 관계자를 불러 들어 캐묻더니, 만약 보호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다시 수사할 수 있다면, 시신을 병원으로 옮겨도 좋다고 돌아갔다.
그들 모두가 돌아가고 오전에 할 일을 하려고 서두르는데, 드르륵~ 마루를 긁는 괴성과 함께“누가 울지 말라고 했어!.”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건장한 사내가 핏발선 눈알을 굴리며 손에는 의자가 들려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 아들이다. “부모가 돌아가서 우는데.” 서운함을 참지 못하고 저지른 행동이다. 다급한 직원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의자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내려치려는 순간이었다. 놀란 직원들의 저지로 의자는 내려졌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사태를 재치 있는 직원의 대응으로 무마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할머니 사망으로 숨 가쁘게 3시간이 흘렀다. 남달랐던 그분을 지켜보면서 며칠 전 한 할머니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할 수 있으면 무엇을 하고 싶어요?”라고 물었더니 걷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걸어서 어디 가시려고요?”하고 여쭈어보니“집에 가야지.”라고 하셨다. 그분은 삶을 정리하기보다 건강을 회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이미 함께 하는 삶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갈 곳을 잃었는데도 집에 가야 한다며 밤새 짐 보퉁이를 쌓다 풀기를 반복하는 어르신을 볼 때면 인생의 끝은 어딘지 모르겠다. 삶은 좋은 일과 궂은일이 번갈아 온다고 했던가? 인생은 새옹지마다. 우리는 단맛이 좋다고 그것만을 탐할 수는 없다. 때론 입에 쓴 약도 먹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고난을 준 것도 겸손함을 가르치려는 신의 지혜일지 모르겠다.
치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질환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여러 가지 원인으로 뇌 손상을 일으켜 기억을 위시해 여러 인지기능의 장애가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지만 치매가 노인성 질환이라고 해서 노인만이 앓는 병은 아니다. 가끔은 사오십 대 젊은 치매 환자도 본다. 그들을 돌볼 때면 내 입은 어느새 감사의 기도가 절로 흘러나온다. 지금, 이 시각 내 육신을 움직여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러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내게는 축복이다. 나의 주변에 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도 내게는 소중한 선물이다. 그것들이 나를 성장시켰고, 나를 발효시켰다. 삶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은 과거의 기억과 분노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의 보장과 불안함에 기대하지 말며, 오직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