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일 주일예배 설교문 / 요 20:1-10 / 예수 부활의 증인, 부활 생명으로 사는 자
할렐루야! 사랑하고 존경하고 존경합니다.
본문은 주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날은
1. 끝내는 날입니다(6-7절). ➡ 옛 생명에서 새 생명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새 무덤에 모셨습니다. 장사지낸 지 사흘 만에 예수님의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예수님의 몸을 둘렀던 세마포는 잘 개어져 있었고, 머리를 쌌던 수건도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무덤에 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나사로가 나오는데 수족이 베로 동인 채, 얼굴은 수건으로 싸인 채 나옵니다. 시체가 생명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사람들이 수의를 풀자 다시 살아난 나사로가 다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신 후, 누군가에게 생명을 얻어 부활 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무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일어나셔서 수의인 세마포를 풀어 잘 개어놓고, 머리를 싼 수건도 잘 개켜 놓으신 것입니다. 시신 예수님의 몸은 온데간데없고 세마포, 수건만 있다는 것은 천연적인 옛 생명은 끝났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날은 옛 창조가 끝나는 날입니다.
2. 첫날(1절) ➡ 새 창조
첫날이란 새로운 시작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가 되었습니다. 옛 창조 안에는 칠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육일까지 창조하시고 칠 일째 안식하셨습니다. 이제 칠 일이 지난 다음 날 팔 일째는 새로운 첫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옛 창조, 옛 생명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 새 창조, 새 세대, 새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첫날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저녁이 아닌 아침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도 첫날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작,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기,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창조, 새로운 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3. 한 주의 첫날 ➡ 첫 열매
한 달의 첫날이 있고, 한 해의 첫날이 있듯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한 주의 첫날입니다. 이는 구약의 초실절을 상징합니다.
레위기 23: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안식일 이튿날. 안식일은 토요일 일곱째 날이며, 이튿날은 일요일 즉 한 주의 첫날이 됩니다. 초실절은 수확물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날입니다. 수확물의 첫 열매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흔들어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흔들어 드리는 것은 거제와 요제가 있습니다. 거제는 하늘에 올려 드리는 것이고 요제는 허리를 앞뒤로 흔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움직인다, 동작을 상징합니다. 생명은 죽어있듯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생명의 첫 열매가 되셔서 오늘도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셔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4. 제 팔일은 할례일 ➡ 새 생명의 시작
원래 우리의 생명은 아담의 타락 이후 요한복음 8:44처럼 마귀가 우리의 아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은 필경 사망이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팔 일째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제 천연적인 생명이 죽고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을 명하셨습니다.
창세기 17: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이것은 예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할례받는 날인 제 팔 일째 되는 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천연적인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할례, 즉 부활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주 예수님으로 사십시오. 이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할례요, 신약에서는 세례입니다. 즉 주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믿는 우리는 예수 생명으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는 새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5.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
예수님은 납치당했던 자가 풀려난 후 급히 도망치는 것처럼 흥분하여 무덤에서 뛰어나가지 않으셨습니다. 세마포, 수건을 잘 개켜 놓으시고 평안히 그 자리를 떠나셔서 약속한 대로 갈릴리에 먼저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평화롭고 매우 여유 있으셨습니다. 사망은 주님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사망을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셨다는 것은 사망을 이길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사망 권세 즉 뱀의 머리를 짓밟으셔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내 승리가 되도록 무엇보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모시고, 주님의 뜻을 추구하십시오. 반드시 이기는 자의 반열에 이를 것입니다.
6. 새 생명을 낳는 날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신부로, 군인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고 하셨습니다. 허락하신 말씀처럼 우리를 자녀로, 신부로, 군인으로 낳으셔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이 있는 자로, 가장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자로,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우신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7. 부활의 증인 막달라 마리아를 본받아라.
11절 말씀부터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11절. 빈 무덤을 보고 다른 제자들은 떠났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시신이 없어졌다고 울면서 끝까지 무덤가에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ex1)의리의 사람들 – 상대방이 떠나기 전에는 절대로 떠나지 않는 사람들.
내 친구(요 15:15)되시는 예수님은 나만 떠나지 않으면 주님은 영원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15절. 천사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물어보았습니다. 무엇이든 먼저 판단하지 말고 물어보십시오. 예수님이 안 보이면 어디계시냐고 천사든,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물어보십시오. 이때 교통이 일어나는 것이요, 주님께서 나타나실 줄 믿습니다.
ex2)묻는 기도로 더 깊은 교제를 얻음.
17절. 나를 붙들지 말라고 하신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세상은 누구보다 먼저 잡으면서 예수님은 항상 후 순위. 이것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내가 될 것입니다.
8. 부활 생명의 새로운 피조물 ➡ 예수님으로 살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부활의 목격자, 증인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목격한, 내가 발견한 부활하신 예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를 자녀로, 신부로, 군인으로 낳으셨다는 것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로 낳으셨다는 뜻입니다. 새 생명, 예수 생명의 사람은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모든 사망 권세에서 “끝내 이기리라”. 땅에서 예수님으로 살아서 이기는 자로 복을 받고, 천국의 누림까지 얻어 마침내 하늘 영광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