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과 5일 ‘청와대 한우반납운동’이란 팻말이 붙은 트럭이 전국 각지에서 상경 운동을 벌였다. 절반으로 싹뚝 잘린 소값, 천정부지 치솟는 ‘금사료’에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한우농가들이 서울행을 저지당한 도로 한가운데 앉아 끄억끄억 울었다. 죽기 일보 직전이다. 자식같은 소를 굶겨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실제 전북 순창에서는 소 20여마리가 굶어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여름부터 사료를 줄인 것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태, 전문가들은 ‘절망적 자진폐업’이라고 판단하는 이런 처지를 전국 대부분 한·육우 농가들이 겪을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고 있으나, 농가들이나 업계에선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정부가 4일 내 논 소값 안정대책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긴급 진단해 본다.
생산기반 파괴할 암소도태장려금
‘송아지생산안정자금을 줄이고 암소도태장려금을 신설하는 한편, 한우농가를 조직화하고 축사시설을 현대화한다’. ‘한우자조금을 투입해 판촉행사를 벌이고 군납 물량도 확대하겠다’. 농식품부가 내논 소값안정대책 요지다. 정부는 이 지경까지 이른 배경 분석에서 그간 소값이 지속 상승했고, 이에 따른 송아지 과다 입식으로 사육두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사태를 불러왔다고 해석했다.
이런 분석에서 나온 대책이 바로 한우 암소도태 장려금 지급이다. 한우사육두수 감축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미경산우 또는 1~2산의 젊은 암소 위주로 없애버리면 당장 효과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올해 300억원을 확보해 미경산우 50만원, 60개월령 이하 30만원씩 돈을 주고, 여기에 암소도태장려사업에 동참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어느나라이고 1년에 한 마리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소 수급조절 정책으로 생산기반을 무너뜨리는 사례는 없다. 더욱이 현재 농촌 형편으로 볼 때 근본 재산인 젊은 가임암소를 내다 판다는 얘기는 축산업을 접는다는 뜻이다. 정부 의도대로 가임암소를 20여만마리 도태할 경우 수급조절이 원만해질지도 미지수다.
수입물량을 절대 배제한 상태에서는 실효성이 있을지 몰라도, 쇠고기 공급과잉은 이미 예견된 터라 추가적인 가임암소 도태사업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갖가지 FTA로 한육우산업에 대한 전망이 어둡기 때문에 농가들의 자진폐업이 줄을 이을 전망까지 보태져 한우산업은 생산기반 붕괴가 자명해진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소값 정책이 농가들의 줄도산을 더욱 부채질한 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관련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는 “한미FTA에 호주, 캐나다와의 개방 협상까지 소사육농가들이 느끼는 장래에 대한 체감 강도는 절망적으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미봉책에 불과한 한우안정책은 농가들에게, 정부 지원이 있을 때 팔아버리는 게 경제적으로 낫다는 판단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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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송아지생산안정제
그간 실시해온 송아지생산안정제사업 개선 대책도 문제다. 정부는 사육두수에 관계없이 송아지가격이 떨어지면 지급하던 보전금을 가임암소수를 기준으로 사육두수 규모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는 복안이다. 즉 농가들이 손해보는 것 까지 지원해주다보니 무턱대고 송아지를 양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게 정부의 판단인 것이다. 결국 적정 가임암소수를 90만~100만두로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사육두수가 늘어나면 보전금 지급을 중단키로 했다.
가임암소가 90만미만이면 마리당 40만원, 90만~100만두일 땐 30만원, 101만~110만두 범위는 10만원, 110만두를 초과할 경우엔 보전금을 취소한다. 안정기준가격은 현행 165만원에서 185만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조사대상월령은 현행 4~5개월령에서 6~7개월령으로 늦추기로 했다. 이를 가임암소 127만두인 현 상황에 적용하면 한우송아지를 80만원에 팔아도 정부 보전금은 한푼도 받을 수 없단 얘기가 된다. 개선책으로 내논 것이 농가들의 형편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 악재로 작용하는 것이다.
“할인판매라 글쎄…”
향후 4~5년간 공급과잉이 예상되는 한우에 대해 농가들은 ‘죽을 맛’이고 소비자들은 ‘시큰둥’하다. 농식품부는 판매촉진이 차선책이라고 판단, 대대적인 할인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500여 정부 산하기관과 100대 기업, 경제 5단체 등에 한우고기 선물세트 5만세트를 공급하는 한편, 설 이후에도 한우고기 대폭 할인행사를 전국 농축협 판매장에서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8억원의 소요예산까지 편성해놨다. 여기에 군납 돼지고기 및 수입 쇠고기를 국내산 한육우로 대체 공급한다는 계획도 포함시켰다. 이 또한 한시적인 미봉책이란 지적이 쏟아진다. 당장 한·EU FTA에 발목이 잡힐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또한 올 상반기 발효예정인 한미FTA도 장애요소다. 정부 정책으로 특정품목을 정부조달 품목으로 정할 경우 과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나 외국의 수출업자들이 가만히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한시적인 ‘땜질용’이란 점을 직접 피해자인 한우농가들이 간파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앞으로 축산업을 영위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정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들 또한 한우값 폭락을 체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육우 축산물 유통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상태에서 소비촉진 행사를 벌이는 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현재 농장에서 최종 소비단계까지 6~7단계에 이르는 유통구조는 산지가격과 관계없이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정부의 가격안정정책의 대부분이 이들 유통업자의 이득으로 돌아가는 악순환만 거듭할 뿐이란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료가격연동제는 안되나요?”
이번 소값 폭락의 주범인 배합사료에 대한 정책도 질타 대상이다. 농식품부는 사료값 안정을 위해 우선 사료업체에 사료원료구매자금을 600억원 지원키로 했다. 수입 사료원료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품목도 현행 11개에서 22개로 늘렸다. 무관세 적용품목은 5개에서 16개로 확대키로 했다. 배합사료 부가가치세 영세율 적용기간은 앞으로 10년간 원칙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일몰제 취지를 고려해 3년 단위로 연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들은 이미 시행해온 것들이어서 농가들이 체감하고 있는 사료값 부담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란 주장이다. 지난해에도 사료원료구매자금을 400억원 지원했고,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것은 배합사료업체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일 뿐 농가들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특히 배합사료 생산단가가 전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체들을 지원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도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간 국제곡물가격, 해운운송비 등이 오를 경우 배합사료업체들은 즉시 사료가격을 인상한 반면, 곡물가격이 떨어지거나 달러환율 하락 등으로 인하요인이 발생해도 묵묵부답인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게 농민들 반응이다.
정부가 나서서 농협중앙회 사료공장과 민간배합사료업체들의 생산단가를 비교해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일정한 시기를 정해 사료가격을 조정하는 배합사료가격 연동제를 마련하는 게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여기에 조사료생산에 필요한 실질적인 지원사업과 사료원료 수입루트를 다변화하는 과제들을 정부가 직접 나서는 적극성이 시급하다는 요구다.
출처:농업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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