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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원장
인광스님을 만나다
취재 | 전현자 (미주현대불교 한국주재기자)
인광스님
기자: 스님! 인터뷰 허락에 고맙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기자: 이렇게 훌륭한 명상마을이 월정사, 한국에 생겼다는 것에 매우 감동입니다. 명상마을을 만드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스님!
인광스님: 명상마을은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께서 6년 전에 큰 발원을 하셨습니다. 일반, 재가자가 한다면 요즘 많이 알려진 여러 가지 명상을 배워서 또 재가인 중심의 수행법을 전달하고 공유하기 위해서 그런 장소를 만들겠지요. 출가인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불교에는 절이 있잖아요. 절은 명상 곧 수행의 장소였고 수행으로써 2500년 또 우리 한국 불교 1500년의 역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그 절 자체가 명상의 터요 수행의 터이자 참선의 터이지요. 그래서 달리 만들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러나 현대인들의 수행에 대한 접근방법이 넓어져 참선수행만으로도 충분히 깨달음을 이룰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수행을 통한 삶의 향상을 원하는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며 경험하게 하려는 발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참선은 물론이고, 남방불교권의 명상법들과 서양에서 응용되어 개발된 명상방법들도 기회가 되는대로 소개하며 나누려는 시도입니다. 또한 신앙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해온 불교신자님들께도 이곳에서의 참선을 비롯한 여러 가지 명상을 통하여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 하는 삶의 길을 열어 드리고 싶은 것은 그동안 불교를 지켜오신 신도님들의 보시하시며 기도하시는 마음에 대한 보답이기도 합니다. 기도도 좋은 수행입니다만 기도하는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바라는 것을 지혜와 자비로의 실천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살펴보자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수행을 통하여 이곳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공동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으로 가능한 많은 분들께서 함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또한 인간의 본질을 체험함으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그런 의도에서 발원을 하셨고 자연명상마을 건립을 시작하였다고 봅니다.
기자: 많은 분들의 행복과 자유를 체득케 하시려는 발원에서 시작 되었다는 말씀에 뭉클해집니다.
인광스님: 저 또한 마음 깊이 발원 해왔고 지금도 발원하는 것입니다.
기자: 한국 불교가 통불교라는 것을 실천하는 도량이 되겠습니다.
인광스님: 맞습니다.
기자: 스님! 현대인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실 것입니까?
인광스님: 많은 사람들이, 청춘들이 행복하지 않아 하는 것을 압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원래 인간은 행복, 불행이 없습니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행복한데 안으로부터 행복을 모르기 때문에 밖으로 계속 행복을 찾고 있지요.
항상 변하는 세상에서 안의 행복을 모르니까 변하는 세상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서 그 부분에서 안정성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면이 있겠지요. 안정성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은 평온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평온하지 않다는 것은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면이 있는데다, 현대에는 여러가지로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삶이되어 정신작용은 뇌신경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으로 더욱 피곤하게 되어 더 고통을 느끼고, 그러함의 반복으로 연결되어지는 구조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서로 영향을 주고 또 그 영향을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상관관계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의 행복 추구와 사회의 행복 추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경제성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함께 정신 성장이 함께 발전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제라도 삶을 사는데 있어서의 물
질을 구하고, 유지하도록 하는 것과 그 물질의 한계는 물론 진정한 정신적 추구에 의한 행복과 자유를 터득해냄으로써, 물질이 정신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설령 부족한 물질에서도 정신적 행복과 평안을 이루어 내는 수행이 필요하겠지요. 이러한 상황이기에 더욱더 진정한 행복 추구가 절실한 때이라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기, 지금” (here and now)이라는 뜻으로도,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시점에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말을 주고 받는 가운데 깨어 있는 이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이 관계에서는 어떤 물리적이라든지 이해관계라든지 갈등의 구조가 없잖아요. 그래서 바로 이런 순간순간들이 행복이다. 그걸 알아차리는 방법을 통하여 우리는 부처님의, 진리의 법으로써 절대 자연의 섭리로써 알아차리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알아 차린다면 계정혜 세 가지가 다 갖추어지게 되지요. 이전부터 말해왔던 청정한 몸체, 청정한 환경체에 집중해서 사마타가 되는 것이고 정(定)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의 혜(慧)가 되서 통찰이 일어나지요. 계정혜 삼학을 실천했을 때 불교적 관점에서는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숨 쉬고 살아있는 자체가 행복임에도, 밖에만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니까 행복하기가 어렵습니
다. 그래서 그런 관점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의 인연체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런 역할을 한다면 전세계의 수행마을 좀 더 구체적으로는 명칭은 다르겠습니다만, 명상마을이라든지 교회라든지 이슬람 사원이라든지 또 우리 불교 절이라든지 그런 관계의 흐름들이 좀 더 많이 수행의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그 모든 종교의 곳이 바로 행복한 곳이고, 또 가정에서 이뤄진다면 가정이 바로 행복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이곳에 오면 행복한 사람이 되어 가는 길을 열어주시고 그걸 실천할 수 있게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실천만 하면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알려 주시면 매우 고맙겠습니다.
인광스님: 우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행복”인 것 같습니다. 실은 아마 100년 전만 하더라도 행복이란 단어는 한국 문화, 동양 문화에서 거의 쓰지 않았죠. 말 그대로 복이 되는 것이고, 덕이 되는 것이고 또한 정(情)이라는 단어로 이뤄지고 있는 거에요. 물론 정이 이제 사랑이 되었고 복덕이 이제 행복이죠. 사람이 지어놓은 것에 따라서 복이 있어야 되고, 그 영향을 받게 되는 게 덕이다. 그래서 복덕이 구족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복덕이 구족하다는 것은 지혜가 있어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happiness 라는 단어가 오면서 물질적인 행복이라는 것이 먼저 왔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부가 결혼을 하거나 가정에서도 돈의 경제구조로 의식주가 해결이 되잖아요. 그것이 이전보다는 나아지고 있습니다만, 그건 욕망이고 욕망의 실현 과정이기 때문에 끝이 없죠. 물질적 부분이 부족하게 되거나 그 부분으로 인해서 관계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면 그 자체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하는 거죠.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그로부터 발생된 불행은 행복하지 않은, 전환이 안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전환을 찾는 사람들이 명상이라는,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제2단계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 행복을 이야기하고 행복을 추구합니다. 물론 현세적 행복과 내세의 행복 그리고 절대적 행복으로 불교에는 세 가지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내세의 행복과 또 절대적 행복인 해탈의 상태에 가는 것이고, 또 본인의 업 따라서 수행하는 마큼의 결과로 생명을 받게 되면 그건 내세의 행복이 되겠고. 현실적으로 현세의 행복이 무엇이냐 했을 때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부처님께서는 현세의 행복이라고 정의를 하십니다 .
그럼으로 삶이 더, 진정 행복하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곳 명상마을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격 함양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필요한 일들을 해나갈 것입니다. 세계의 여러나라에 다양한 수행처가 잘 운영되고 있는 것에 명상마을 또한 이곳의 특수성을 살려내어 귀한 수행처로 만들었고 더 보완하며 특히 행복하여지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원력으로 만들었더라도 우리가 살면서, 또 운영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관계, 시설 확장이나 대내외관계, 사람관계, 프로그램, 즉 모든 것을 통찰하여 지나치게 목표 지향점이 아닌 진정 수행처로써의 참된 길을 가는 운영을 할 것입니다. 제가 책임감을 갖고 잘 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관점으로 미래를 생각해 보아도, 즉 10년.20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되어있을까 생각해보는 것에도 ‘세계적인 명상센터’ 이런 말에 휘말리지 않는 자세로 운영할 것입니다. 명상이란 고통으로부터, 무지로부터 벗어 날 수 있도록 지혜로움을 터득해 나가는 것인바 그것에 맞는 인연과 공간체를 제공했을 때에 명상이라는 생명력이 제대로 살아나는 것이지요. 이제 첫단계입니다만 그런 부분에 어려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이란 말도 관념적인 면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어 저 개인적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여“깨어 있다” 절대적 자유와 절대적 진리, 지혜에 의해서 깨어 있다 한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이 행복하고 물질적 안정이 되어야만 남의 행복을 위할 수 있다는 인식들이 있는데 지혜로운 관점에서 보면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이 서로 얼마나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여 저는‘지혜의 물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지혜는 깨어 있는 상태로 우리가 노력했을 때 그 상태가 고정된 게 아니라 계속 그 상태가 진행(ing) 과정에 있었을 때 그게 정말 인간다운 인간, 붓다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정신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차원입니다.
기자: 부처님의 길을 따라가는데, 그것이 언제 어떤 때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깨어 있기. 이것이 명상 마을의 생각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광스님: 깨어 있다는 것도 어느 문화에 따라서 전부 다 열심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사는 거니까 모든 존재가 그 절대적 자기의 가치성이 있다고 봐요. 하여, 참 사람다웠으면 좋겠다. 나는 이것이 깨어 있다는 것으로 봅니다. 사람이 사람다울때 자연과도 함께 어우러지는 상생 관계가 된다고 봅니다.
기자: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께서 승가를 결성하셨고 그 전부터 고대에도 사람들은 모여살아 왔는데 요즘은 특히, 젊은이들이 홀로 살기를 추구하기도 합니다.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곳에 와 보니 음식도 매우 좋은 것이 채식이면서도 영양적인 것과 맛도 아주 좋습니다. 이곳에 일하시는 분들도 매우 친절하고 장소는 좀 부풀려 천상세계 같다고 할까요! 스님! 몇분이나 함께 머무를 수 있습니까?
인광스님: 150명이요.
기자: 150분들이 함께 계실 때도 있고 몇 분일 때도 있겠지만 일종의 공동체 아닙니까?
인광스님: 예. 맞습니다.
기자: 그런 면에서 지금 홀로 서기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면 공동체적인 삶을 만드시고 하시는 것에 가장 핵심적인 철학이나 이유가 있으시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인광스님: 저는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봐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 홀로 사는 게 아니고 그래서 사회라는 게 형성되는 거니까. 그래서 예전하고 지금 다른 게 있죠. 지금 급자본화되고 과학이 만능이 됐고, 과학이 모든 걸 이끌어가는 이 세계에서는 개인화가 된 게 아니라 실은 개인화되더라도 우리가 휴대폰을 통해서나 모든 정보를 통해서 이미 공동화를 이루고 있는 겁니다. 이 세계에서 일어난 걸 저 세계에서 금방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오늘 같은 경우 아침 10시에 유튜브가 다운이 되었는데 바로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하나가 돼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개인화가 형태처럼 보이지만 그 개인화가 정말 큰 공동화를 이루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농경문화가 아니죠, 이전의 유목문화, 농경문화, 또 숲속의 문화에서 탄생했던 그 문화가 지금은 과학 문화라는 쪽으로 왔다는 것을 먼저 받아들여져야 되요. 우리가 만들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의 역할이 커졌죠. 자기 혼자만이 세상을 다 쥐락펴락 할 수도 있지요. 게임을 하면서 자기가 대장이 될 수도 있고요. 인간의 폭력성을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걸 게임을 통해서 해소를 하고 살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전쟁을 통해서 나가서 대장이 되고 누구를 죽여 가면서까지 해왔죠. 실은 우리의 동물적 본능을 해왔던 건데, 형태가 지금 다르게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필요가 더 커졌죠. 그러나 현실에 와서는 그런 다양한 세계에 정보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자기의 능력 같은 건 되는 것 같은데 실재적 능력이 될수가 없는 것이지요. 돈이 없거나 지식이 없거나 아니면 관계가 미약하거나 자기의 몸이 아프거나 하는 현실 상황에 부딪칠 때 그 부분에 대해서 분노나 소외감들 또 좀 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소극화 되는 거죠. 그게 이제 개인화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원래 개인화, 공동화가 하나죠. 이미 우리는 지구라는 공동체에 살고 있는 겁니다. 누구나 지금 일부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구 밖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우주의 지구라는 감옥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이 안을 벗어날수도 없고. 더더욱 나아가서 국가에 또 뭉쳐 있고 사회에 뭉쳐 있고 지역에 뭉쳐 있는 거예요. 그래서 ‘화엄’이라는 뜻입니다. 화엄은 이미 갖춰져 있어요. 그런데 화엄을 알게 되려면 금강반야, 지혜가 있어야 그걸 알아차리는 거예요. 내게 보물이 있는데 보물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알아차리기 위해서 명상이 필요했던 것이고, 수행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정말 이 지구라는, 또 우리 한국이라는
예를 들면 민족이라는 그 가운데에서 개개인의 자유와 질서와 이런 것을 형성해가면서 모든 부분을 마음으로써 연결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살아갈 때 진정한 공동체이지요. 이런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기관체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성당이, 교회가, 그리고 우리 불교의 절이 다 그런 역할을 했는데 무언가 어긋난 듯 보이고 고착화되어 있으니까 벗어나야겠다고 해서 새로운 공동체가 생기고 공동화가 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오대산 명상마을이 불교 내에서 작게라도 나아가 사회에는 더 작은 힘일지라도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는 씨앗을 뿌려준다면 진정한 가치성이 있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기자: 스님!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어느 절에 가서 이렇게 행복하게 하룻밤을 지낼 수 있고 더욱이 스님들께서만 수행을 주로 하시는 곳으로 절은 주로 유지되는데 누구라도와 명상, 수행 할 수 있다는 것에 감동입니다. 스님께서는 어떤 명상을 가르치십니까?
인광스님: 저는 제 개인적으로는 전생을 떠나서라도 제가 출가한 지가 27년 됩니다만. 누가 가르쳐 주어서가 아니라 제가 스스로 제 전생의 습연, 업에 의해서 부처님의 경전을 많이 보게 되었고 그 경전을 통해서 ‘아! 이것이로구나!’고 터득한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관상법을 해왔습니다. 그 관상법이 5가지에요. 광명법인데. 개인적으로 오대광명법이라고 하고요. 이곳에서는 오대광명하면 너무 불교적인 또 어떤 개인화가 드러난 것 같은 의미여서 자연명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관상의 의미는 말 그대로 계정혜이고, 계는 우리가 살아있으면서 갖춰나가고 매순간 조절, 절제하고 또 그것을 알아차려서 또 다시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 이 몸을 중심으로 해서 관계론이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우리가 끊임없이 수행 삼아 진행하는 부분이고 또 승가라는 관점에서와 각 승려의 개인적 특성부분은 부분인대로 개인과 승가 공동체적인 관계 등등의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즉 사마타 위빠사나를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첫 번째 호흡을 관찰하고, 두 번째 몸을 관찰하는데 몸을 관찰하게 되면 얼굴은 물론 모든 게 드러나게 됩니다. 세 번째, 주위의 소리부터 모든 자연과 수행하는 곳의 공기, 환경을 관찰하고.
네 번째, 제가 개인적으로 했던 광명붓다를 대신하여 자연명상을 하게 합니다. 즉, 다시 본인의 호흡의 관상, 호흡의 광명체를 관하게 해서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회향관상을 합니다.
‘옴’이라는 숨쉬기에 또 이 부분의 발산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하는 관계에 서로 에너지를 나누고 자기 진동을 우주와 함께 할 수 있는 이런 다섯 가지 방법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저는 오대광명의 가피명상을 ‘자연 명상’이라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양한 수행법이 있는 것을 마치 여러 영양소가 담겨진 음식을 먹고 소화하여 에너지가 생기듯이 수행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전제하에 자신에게 잘 맞는 수행을 찾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곳에 저를 포함하여 현재 공감사(수행, 요가지도자)가 세 분 계시는데 각자의 역할에서 조화롭게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대산자연명상 조감도
기자: 머무는 것 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난 것 같은 오대산 월정사의 훌륭한 명상 마을입니다. 스님! 이곳에는 누구나 올 수 있다 하셨지요?
인광스님: 누구나 올 수 있지만, 머무시는 값을 내야 하니 그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기자: 아, 그런 면이 있군요.
인광스님: 명상마을에 머무시는 것이 숙박비를 받고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면입니다. 지금도 배고프고 또 살아가는 데 힘든 분들은 명상이란 단어는 필요 없지요. 살아있는 현장이 수행장소이기 때문에, 삶의 현장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업 명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우리가 명상을 너무 한 쪽으로 고급화시키고 어떤 특정인들만 하는 것으로 한다면, 큰 잘못을 불러일으킬 인간답지 못한 부덕한 일이 됩니다.
기자: 누구라도, 특히 해외에 계신 분들께서 오래 머무시고 싶으시다면 가능합니까?
인광스님: 예. 지금 현재 한 달간 머무시는 분이 이미 들어오셨어요. 한 달은 물론 1년도 계실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애정을 가지시고 많은 분들께서 다녀가시면 고맙겠습니다. 회원권도 지금 준비하고 있으며, 장기숙박, 단기숙박 모두 가능하며, 단체의 대관도 가능합니다. 조용히 머무시다만 가셔도 좋습니다. 제공해 드리는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하시지 않으시고 원하시는 대로 쉬셨다 가셔도 됩니다. 그리고 오대산 월정사에는 많은 분들이 이 좋은 공간을 한 번쯤이라도 인연 삼으시면 좋을 대단한 단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신문화, 역사 문화, 신앙문화, 자연문화 등 큰 단지로 형성되어 서로 협력하면서도 독특한 개성적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함께 했을 때 좋은 추억이 된다면 그것 또한 정신적 큰 행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기자: 제가 다녀본 명상센터 중에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며 온전히 스스로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은 처음입니다
인광스님: 아 그런가요?
기자: 네.
인광스님: 스스로 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각자의 방식을 존중해 드리는 것입니다.
기자: 교포분들은 비행기 타고 오시게 되니 할인이라도 해주시는지요?
인광스님: 교포들 돈 많으시면 쓰셔야지요.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잘 쓴다는데. 잘 쓰는 분이 돈을 써야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거죠.
기자: 그런 관점도 있을 수 있겠네요.
인광스님: 우리가 반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해서 1년에 공공적 프로젝트를 형성할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재산으로써 좋은 기부하는 것도 정말 훌륭한 명상입니다. 명상을 실천하는 것이지요. 자기의 재능을 나누어 쓰는 것이니까요. 돈이 많다는 것도 자기의 재능이에요, 능력이에요.
그 능력을 같이 나누는 거죠. 이곳은 어떤 이익금이 창출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라도 넉넉히 머무시다, 오고 싶어도 못 오시는 분들을 위해 주시면 고맙게 받아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돈에 관계없이 정말 이곳을 누리고 싶고 또 그런 정신문화에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들께 우리가 나눴을 때 진정한 회향, 아까 얘기한 다섯 번째 제가 추구하는 같이 공존, 공생하는 우리 명상의 사람다움의 마지막 플랫폼이 아니겠어요.
기자: 말씀 듣고 보니까요. 미국의 세계적인 명상센터인 IMS에서는 기부자들한테는 명상 신청 할때에..
인광스님: 인센티브를 주는가요?
기자: 아뇨.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한테 장학금 제도가 좀 있는데 기부자들께는 최고의 값을 내고 참가하라고 합니다. 기부자들께 계속 복을 지을 기회를 준다는 그런 해석일 수 있겠죠. 그런 관점에서 교포분들 할인 부탁드린 것 취소하겠습니다.
인광스님: 아니에요. 하하하.
명상마을은 50년, 100년 이상 계속될 겁니다. 물론 건축이나 외부적인 모양은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여기에 머무는 저를 비롯해 원장님이나 공감사 분들은 바뀔지라도 명상마을에서 수행을 통한 쉼! 그냥 머무름! 행복! 자유! 사람다운 삶을 지향하는 관점은 유지 될 것입니다. 저 또한 물 흐르듯 살며 함께 하고 싶어요. 희망이나 발전을 없애는 것이 아닌 희망을 갖되 물흐름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태도로 살려합니다. 그렇기에 명상마을을 보여주기나 몇 번의 행사로 갑자기 유명해지는 하여 ‘세계적인’ 곳을 만드는 것에는 아예 생각도 없습니다.
기자: 명상을 하면서 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은...
인광스님: 예, 호텔이나 리조트등에서 일부적으로 프로그램은 하지만 종교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핵심이 다르지요.
절이라는 훌륭한 자연과 수행 공간에 단지 누구라도와 쉬며 삶을 음미하며, 웃고 놀이도 하며 그냥 삶 그 자체가 행복임을 경험하게 하고 싶습니다.
기자: 스님께는 스님으로써의 자부심이 느껴지며, 감동이 느껴집니다!
인광스님: 고맙습니다. 말씀을 고급지게 해주셔서. 하하하.
기자: 자부심 넘치시는 스님은 누구십니까?
인광스님: 네?
기자: 스님은 누구시냐고요?
인광스님: 나요?(잠시 침묵하시다) 두 가지로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 “누구냐” 물었을 때 바로 답하지 않았던 것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이 말장난 일때가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알더라도 순간순간 알아서 그것이 나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그로인해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큰 틀을 보기 위해서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일반적으로 “누구냐?” 했을 때는 상식적으로 바로 답할 수 있지요. 관상법상으로는 말로하지 않은 것으로도 예를들면 그저 웃기만 할 수도 있지요.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그 무엇이든 관념에만 치우친 것은 답하지 않겠습니다.
기자: 매우 고맙습니다, 스님!
인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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