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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숨은 고개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잡다
호남선 열차를 타고 백양사역에서 내린다. 역 광장에서 불과 150미터만 걸으면 사거리 버스터미널이다. 여기서 사거리는 4거리라는 뜻이 아니라 지명(북이면 소재지인 사거리)이다. 이곳에서 남창계곡으로 가는 군내버스는 하루 4차례밖에 다니지 않지만 시간표를 미리 알고 간 덕에 얼마 기다리지 않아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탈 때도 나 홀로, 내릴 때도 나 홀로.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어 불과 15분 만에 남창계곡 버스 종점(주차장)에 이르렀다.
남창계곡은 입암산, 갓바위, 시루봉, 장자봉, 상왕봉, 사자봉, 향로봉, 가인봉 등의 준봉 사이로 굽이치는 멋진 계곡이다. 내장산 국립공원 지역에 편입되어 있지만 내장산과는 그 뿌리가 다르며 진입로도 동떨어져 있다. 남창계곡은 산성골(남창본계곡), 은선골, 새재골(반석동), 하곡동, 자하동골, 내인골 등의 여섯 지류가 흘러들면서 이루어져 있다. 산성골 상류에서 황룡천에 이르는 남창계곡의 총길이는 8㎞ 남짓하다.
버스 종점인 남창마을은 장성 특산물인 대봉감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감을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대봉감은 ‘과실의 왕은 감이요, 감의 왕은 대봉’이라 하여 옛날부터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꼽혀올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난 과일이다. 11월경에 수확한 대봉감을 깎아 그늘에서 50~60일 자연 건조시킨 후 다시 햇볕에 10일 정도 말리면 당도가 매우 높은 곶감으로 변신한다.
주차장에서 삼나무 숲과 단풍 숲길의 정취에 젖어 20분쯤 걸으면 장성새재 옛길 입구 갈림길에 다다른다. 흔히 새재라고 하면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있는 고갯길인 문경새재를 떠올리지만 이곳에도 새재가 있는 것이다.
장성새재는 옛 선조들이 장을 보러 가거나 한양에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정읍으로 넘어갈 때 지름길로 이용한 고갯길이다. 새재라는 이름은 ‘새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겨서’ 또는 ‘새도 넘다가 쉬어가는 고개’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샛길이라는 뜻에서 새재라고 불린다는 의견도 있다. 이곳 장성지역 사람들은 한양으로 가는 삼남대로인 갈재(노령)보다는 샛길인 장성새재를 더 친근하게 느끼고 애용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통행하는 사람이 많아 주막까지 들어서 있었던 정취 있는 오솔길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군사적 목적으로 길을 넓히고 군용 차량들이 오가면서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되었다. 1970년대 들어 차량 통행을 금지했으나 한번 훼손된 자연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법이다. 이에 따라 국립공원 측에서는 길을 다시 좁히는 한편 생태계 복원을 위해 힘쓰고 있다.
장성새재 옛길은 경사가 완만해 편안하게 산책하며 오를 수 있는 숲속 탐방로다. 길 오른쪽으로는 새재골을 굽이치는 계곡물소리가 정겹게 들려오고, 왼쪽으로는 우거진 수풀이 늦가을로 치달으며 알록달록 물들어가고, 머리 위로는 산새들이 재잘대며 합창한다. 그럴진대 걷는 내내 명상과 사색에 잠기다가 시나브로 행복감에 빠져들 수밖에. 노부부 한 가구만 살아가는 오지 마을 불바래기
고갯마루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달도 숨은 고개를 아시나요?’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달도 숨어 안 보일 만큼 깊은 고개여서 월은치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사실 옛 지도에서 장성새재라는 명칭은 찾아볼 수 없으며 대동여지도나 대동방여전도를 보면 월은치(月隱峙)로 표기되어 있다.
옛길 입구로부터 45~50분쯤 걸어 장성새재에 이르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장성새재 옛길 입구에서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만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 아름다운 길을 나 홀로 독점했다니 야릇한 기분이 든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기 전에 꼭 한번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장성새재는 순창새재를 넘어 내장사로 가거나 입암(정읍 신정동)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불바래기에 다녀오는 것도 좋다. 순창새재 쪽으로 드리운 예쁘장한 오솔길을 20분쯤 자박자박 걸으면 하늘을 가린 숲이 걷히면서 갑자기 앞이 훤히 터진다. 불바래기에 다다른 것이다.
불바래기는 옛날에 암자가 있어 ‘부처를 바라보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조선 말기에는 박해를 피해 모여든 천주교 신자들의 공소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오지 마을 불바래기에는 단 한 가구만 남아 있다. 1960년대 말 들어온 노부부가 전형적인 산중 분지인 이곳에서 밭농사를 짓고 버섯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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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간이 허락한다면 홀로 산행을 통해 옛정취를 느껴가면서 수필 한수를 쓰고 싶은길이네요
백양사쪽에 지인이 있어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자료즐감입니다.시간내어서 가보고픈 길이네요~~
좋은자료 즐감입니다,
가는 가을의 고운빛깔 고이 간직하고 싶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