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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 (407) 강유와 등애의 대결
사마사가 죽고 대권이 그의 아우 사마소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은 성도(成都)에 빠르게
알려졌다. 강유(姜維)가 위나라의 소식을 듣자마자 후주 유선(後主 劉禪)을 찾아 뵙고
아뢴다.
"사마사가 죽고 사마소가 권력을 잡은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사마소는 낙양을 쉽사리
비우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이것을 기회로 삼아 위를 정벌하여 중원을 회복하고자
하옵니다."
후주는 선선히 허락했다.
강유는 곧장 한중으로 가서 군마를 정돈하며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강유로서는
중원 회복을 위한 세 번째 출정이었다. 이번에도 또 실패하면 후주를 뵐 면목이 없을 것
이었다. 강유가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데 정서대장군 장익(征西大將軍 張翼)이 강유에게
말한다.
"우리 국토는 그 면적이 좁고 물산마저 넉넉하지 못하니 원정길에 오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차라리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방어에 주력하고 군사와 백성을 보살피는
것이 나라를 오래 보전하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지 않소. 지난날 승상께서는 남양 융중(南陽 隆中)의 초려(草廬)에서 나오시기
전부터 천하가 셋으로 나뉠 것을 알고 계셨소. 그럼에도 기산(祁山)에 여섯 차례나 나아가
중원 회복을 위해 노력하셨고, 불행하게도 도중에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루시지는
못했소. 내가 승상의 유명(遺命)을 받든 이상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뜻을 계승하여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해야만 하오. 때마침 위나라에 빈틈이 생겼는데 이 틈에
정벌하지 않으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소?"
곁에서 둘의 대화를 듣던 하후패도 강유의 말에 동조한다.
"장군의 말씀이 맞습니다. 날쌘 기병 부대로 우선 포한(枹罕)으로 진출하고, 조수(洮水)
서쪽 지역과 남안(南安)을 점령하고나면 주변의 여러 고을들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장익도 하후패의 말에는 찬성한다.
"우리 군이 매번 싸움에서 패하여 돌아온 까닭은 출병할 때 시간을 지체했기 때문입니다.
병법에도 '적의 대비가 없는 곳을 공격하고, 적이 생각지도 못할 때 나아가라
[攻其無備 出其不意]고 했습니다. 위군이 방비할 틈을 주지 않고 신속히 출격하면 완승은
문제 없을 것입니다."
강유는 하후패의 의견에 따라 오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포한 지역으로 향했다.
강유의 군사들이 조수에 이르자 그곳을 지키던 위나라 군사들이 그 사실을 옹주 자사
왕경(雍州 刺史 王經)과 정서장군 진태(征西將軍 陳泰)에게 보고했다. 왕경은 칠만의
보기병(步騎兵)을 이끌고 맞서 싸우러 나섰다.
옹주의 군사들과 대치하고 있는 강유는 장익을 불러 은밀히 지령을 내리고, 이어 하후패
도 불러 계책을 전했다. 명령을 받은 장익과 하후패가 떠나고 강유는 조수를 등지고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왕경이 아장(牙將) 몇 명을 이끌고 전열 앞으로 나와서 외친다.
"위와 촉, 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고 있는데, 너는 어찌하여
자꾸만 그 균형을 깨뜨리려 하는 것이냐!"
강유가 코웃음을 치더니 대답한다.
"사마사가 까닭도 없이 제 주인을 멋대로 몰아냈으니 이웃나라가 그 죄를 묻는 것이
도리 아니겠느냐? 하물며 불공대천지원수 나라의 사정이 그러한데 어찌 그냥
내버려두겠느냐?"
강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경은 장명(張明), 화영(花永), 유달(劉達), 주방(朱芳)
네 장수에게 명령을 내린다.
"촉군이 겁도 없이 우리를 상대로 배수진을 쳤으니 모두 수장(水葬) 시켜 버려야겠다!
강유는 용맹한 장수이니 너희 네 사람이 한꺼번에 나가서 싸우되, 적이 물러나는
기색이 보이거든 가차없이 밀어붙여 엄살하라!"
왕경의 명령이 떨어지고 네 장수는 각기 군사를 이끌고 좌우로 나뉘어 강유를 향해 달려
나간다. 강유는 자신을 에워 싼 위장들을 당해내기 어려운 듯, 잠시 싸우다가 본영으로
도주하기 시작한다. 왕경은 전군을 휘몰아 강유의 뒤를 바짝 쫓는다. 강유는 군사들을
이끌고 조수 서쪽으로 달아난다. 강가에 거의 다다를 무렵, 강유는 갑작스럽게 말을
멈추고 아군을 돌아보며 크게 외친다.
"들어라! 사태가 위급하다! 분발하여 싸우자!"
"와-! 싸우자!"
강유의 외침을 들은 장수들은 기세를 드높이며 일제히 말머리를 왕경의 군을 향해
돌린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역습하기 시작한다. 도망치던 강유의 군사가 이렇게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위군은 당황하여 전열을 갖추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이때,
장익과 하후패가 두 갈래로 나누어 짓쳐 들어와 도망치려는 위군의 뒤를 막아선다.
앞뒤로 포위 당한 위군이 어쩔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강유가 그 속으로
뛰어들어 위군을 더 큰 혼란 속으로 몰아 넣는다. 위군은 서로 밟혀 죽은 자가 절반이고,
급한 마음에 조수에 뛰어 들어 익사하는 자도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매서운 촉병의 창칼에 목이 떨어져나간 수도 일만이 넘어 위군의 시체는 몇 리 들판을
가득 메웠다. 왕경은 겨우 백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사력을 다해 촘촘한 포위망을 뚫고
도망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달려 적도성(狄道城) 안으로 달려간 왕경은 그
이후에는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다시는 나와서 싸우려들지 않았다.
큰 승리를 거둔 강유는 힘껏 싸운 군사들을 격려하고 다시 적도성으로 나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 장익이 강유에게 간한다.
"장군께서는 오늘 싸움에서 칠만의 적군을 격파하는 큰 공적을 세우셨습니다. 이미
위엄을 크게 떨치셨으니 이쯤에서 군사들을 거두셔서 전공을 보전하십시오. 다시
출전했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뱀을 잘 그려놓고
다리까지 그려넣는 격[畫蛇添足]이 될 것입니다."
강유는 버럭 성을 내고 말한다.
"그렇지 않소! 쇠뿔도 단 김에 빼야 하는 법. 오늘 위군의 간담은 서늘해졌을 것이오.
반면 우리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있소. 이 여세를 몰아서 공격하면
적도성 하나 쯤 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오. 그런 심약한 소리로 군사들의 사기를
꺾지 마시오."
장익은 강유의 격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강유를 두세 차례 더 설득해보았지만 강유는
끝내 장익의 말을 듣지 않았다. 강유는 군사들을 다독여서 적도성으로 진격했다.
옹주 정서장군 진태는 왕경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벼르고 있었다. 마침 연주 자사
등애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진태를 찾아 왔다.
진태는 등애를 반가이 맞으며,
"어떻게 이렇게 때맞춰 달려오셨습니까?"
하고, 묻는다.
등애가 웃으며 대답한다.
"대장군이 특명을 내리셨소. 장군을 도와 적을 격파하겠소."
진태는 든든한 응원군을 얻어 얼굴이 활짝 핀다. 그리고 등애에게 묻는다.
"등 장군께서는 좋은 계책이 있습니까?"
"조수에서 큰 승리를 거둔 강유가 강병(羌兵)을 다시 끌어들여서 관롱(關隴)에서 우리와
싸우고 네 고을에 격문을 돌렸더라면 우리에게 큰 걱정거리가 되었을 거요. 그러나 강유
가 어리석게도 적도성이나 공략하기로 했다니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소. 적도성
은 워낙 성곽이 견고하여 어지간해서는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오. 저들은 적도성에서
병력만 소모할 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없게 될 것이오. 우리는 항령(項嶺)에 군사를 주둔
시킨 것처럼 행세하고 은밀히 진군하여 뒤를 기습하면 저들을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오."
"그것 참 절묘한 계책이오!"
진태는 등애의 계책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진태와 등애군은 즉시 계획을 실행했다. 군사를 오십 명씩 묶어 이십 개의 부대를
선발대로 보냈다. 선발대로 가는 부대에게는 무기 대신 깃발, 북, 뿔피리, 횃불을 만들
재료를 들게 했다. 그리고 낮에는 조용히 잠복해있다가 밤에만 행군하여 적도성 동남쪽
산등성이와 골짜기에 매복하게 했다. 촉군이 오거든 일제히 북을 울리고 뿔피리를 불어
요란하게 세를 과시하고,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화포를 쏘아 적을 놀라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준비를 마친 군사들은 촉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진태와 등애는 각각 이만의 군사
를 이끌고 적도성을 향해 출동했다.
강유는 며칠 째 적도성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성곽이 함락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근심에 빠져 있었다. 성곽이 두껍고 높아서 계속되는 맹공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어느날
황혼이 내릴 무렵, 위군 진영으로 보낸 정탐꾼이 무려 네댓 차례나 급히 달려와 적군의
상황을 보고한다.
"적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한쪽은 정서장군 진태(征西將軍 陳泰),
다른 한쪽은 연주 자사 등애(兗州 刺史 鄧艾)라고 적힌 깃발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강유는 즉시 하후패를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하후패가 강유에게 말한다.
"제가 촉나라와 운명을 함께하기로 하고 장군을 찾아왔을 때 말씀드렸다시피, 등애는
위나라의 인재 중의 인재입니다. 어려서부터 병법에 밝고 지형을 지혜롭게 활용할 줄
압니다. 그런 자가 군사를 몰고 오는 것이니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후패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강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적들은 먼 원정길에 피곤한 상태일 것이니, 쉴 틈을 주지 않고 지체없이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오."
그리하여 강유의 지시에 의해 장익은 적도성에 남아 성을 공략하고, 하후패는 진태와
맞서기 위해 출격했다. 강유 자신은 등애를 맞아 싸우러 나갔다.
강유의 군사가 오 리쯤 갔을 무렵 동남쪽에서 갑작스레 포성이 터지더니 뒤이어 북과
뿔피리의 소리가 땅을 울리고 화광이 하늘을 뒤덮었다. 강유가 급히 말을 몰아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보니, 사방이 위군의 깃발로 가득했다. 그 모습에 놀란 강유의
입에서는,
"앗! 등애의 매복지계(埋伏之計)에 걸렸구나!"
하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강유는 하후패와 장익에게 급보를 보내 적도성을 버리고 퇴각할 것을 명했다. 이로써
촉군은 왕경군을 격파한 것 이외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한중으로 다시 철수하기
시작했다. 강유가 후방에서 적의 추격을 끊으며 후퇴하고 있는데 배후에서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끊임없이 울려와서 강유군의 기슴을 철렁하게 했다. 강유가 검각(劍閣)
땅에 이르렀을 때쯤, 적이 소란만 일으키고 공격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제야 이십여
곳에서 울리던 불소리와 횃불이 모두 적의 위장술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강유는
군사들을 거두어 종제(鍾堤)로 물러나 그곳에 주둔했다.
후주는 강유가 조수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하여 그에게 대장군(大將軍)의 지위를 내렸다.
강유는 등애와 진태에게 속아서 군사를 물린 일에 대해서 속으로 부끄러워하며 대장군의
인수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위나라를 정벌할 준비에 전념했다.
강유가 위를 다시 칠 생각에 몰두한 사이, 위군은 적도성 밖에 주둔했다. 적도성을 지키고
있던 왕경은 등애와 진태를 성 안으로 맞이하여 촉군의 포위를 풀어준 것에 대해
사례하고, 큰 잔치를 열어 대접하고, 삼군에게도 고루 푸짐한 포상을 했다.
진태는 낙양에 있는 위주 조모에게 표문을 올려 등애의 공로를 알렸다. 조모는 등애의
공로를 인정하여 등애를 안서장군(安西將軍)에 봉하고 부절을 주어 호동강교위
(護東羌校尉)에 임명하며 진태와 더불어 옹주, 양주 일대를 지키게 했다.
진태가 등애에게 축하 잔치를 베풀며 말한다.
"강유가 야반도주한 것을 보면 적잖이 놀랐나 보오. 힘이 다 빠졌을테니 감히 다시
쳐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오."
그러자 등애가 웃으며 대답한다.
"아마 촉군은 또 공격해 올 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다섯 가지 이유가 있소. 첫째는 촉군이 물러갔다고는 하나 촉군은 승세에 있었고 우리는
열세에 있었기 때문에 강유는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오. 그리고 촉군
은 제갈공명 때부터 잘 훈련받은 정예군이지만 우리군은 대장이 시도때도 없이 교체되어
훈련이 부족하니 두 번째 이유가 될 것이오. 또, 촉군은 이동할 때 주로 배를 이용하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신속하게 움직이는데 반해 우리는 육지로 이동하니 이동하는 것에
만도 큰 힘을 빼고 있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요. 네 번째 이유는 지형 때문이오.
적도(狄道), 농서(隴西), 남안(南安), 기산(祁山) 네 땅은 모두 우리가 싸워서 막아야 하는
지형이오. 촉군이 동쪽을 치는 척하다가 서쪽을 치는 전력을 쓸 수 있고[聲東擊西], 남쪽
을 치는 듯 하다가 북쪽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우리는 병력을 네 군데로 분산 시켜 적이
어느 곳으로 오더라도 막을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만 하오. 만일 촉군이 병력을 한
곳으로 모아 한꺼번에 쳐들어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군사 사분의 일로 그들을 감당해
내야만 하오. 마지막 이유로는 군량 걱정이 없다는 것에 있소. 촉군이 남안과 농서
지역으로 나오면 강족(羌族)의 식량을 얻어 먹을 수 있고, 기산 지역으로 나오면 그곳의
보리를 베어 먹으면 되오. 사정이 이러하니 촉군은 틀림없이 다시 출격할 것이오."
진태는 등애의 말을 듣는 내내 눈빛을 빛내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공께서 적에 대해 그토록 귀신처럼 꿰뚫고 계시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허허허!"
진태와 등애는 대화를 할 수록 말이 잘 통하고 뜻이 잘 맞았다. 마침내 의기투합하여
망년지교(忘年之交,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됨)를 맺었다. 등애는 옹주, 양주 방면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요충지마다 영채를 세워서 촉이나 오가 기습적으로 침공해 올 것을 철저히
대비해두었다.
종제에 주둔하고 있는 강유는 연회를 열어 제장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다시 위를 칠 계책
을 논의하자고 말문을 열었다. 강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영사 번건(令史 樊建)이 말한다.
"지금껏 대장군께서 여러 차례 출군하셨으나 완승을 거두신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조수 일전에서 처음으로 위군을 완벽하게 굴복시키시어 위엄을 떨치셨는데
무엇하여 무리하게 또 출전을 하려 하십니까? 다시 나갔다가 형세가 불리해지기라도
하면 직전의 공로까지 빛이 바랠 것입니다."
번건의 말을 듣는 강유의 얼굴에는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장수들을
두루 훑어보며 다시 입을 연다.
"그대들은 위나라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 우리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장수들은 서로 흘끔거리며 눈치만 볼 뿐 대답을 하는 자가 없다. 강유는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우리가 위나라를 이길 수밖에 없는 까닭은 다섯 가지가 있다."
장수들이 이번에는 모두 입을 모아 그 다섯 가지가 무어냐고 묻는다. 강유는 다섯 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첫째는 위군은 조서에서 크게 패하고 많은 군마를 잃어 예기가 꺾여있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후퇴하였으나 군사를 하나도 잃지 않았다. 둘째는 우리는 병력이 이동할 때 배를
타기 때문에 수고스럽지 않으나, 위군은 육로로 이동하니 싸우기 전부터 지쳐있다.
셋째는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훈련하고 실전 경험을 쌓았지만 저들은
오합지졸이다. 넷째는 우리가 기산으로 나아가면 기산의 넉넉한 보리를 취하여 군량으로
삼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들은 각 방면을 모두 수비하느라 병력을 분산해야만 하는데
우리는 한 곳을 목표로 병력을 집중시킬 수 있으니 저들이 무슨 수로 우리를 당하겠는가?
이렇게나 지금 우리가 유리한 점이 많은데 언제까지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하후패가 신중하게 의견을 내놓는다.
"등애는 나이가 어리지만 계략과 지혜가 있습니다. 근래에 안서장군으로 지위까지 높아
졌다니 필시 각 처에 방비를 단단히 해두었을 것입니다. 형세가 이전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심스러운 하후패의 말에 강유는 버럭 성을 낸다.
"하후 공! 내가 그깟 놈을 두려워해야 한단 말이오? 적의 능력을 높이 사는 말로 아군의
예기를 꺾지 마시오. 나는 이미 결심을 굳혔으니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농서지역
부터 손에 넣을 생각이니 모두들 두고 보시오!"
강유가 단호하게 나오니 더이상 장수들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강유는 몸소 선봉을 맡아
선두부대를 이끌고 출진했다. 제장들은 각자의 군사를 이끌고 그 뒤를 따라나갔다.
종제를 출발한 촉군은 기산으로 향했다. 이것은 강유의 네 번째 출정이었다.
강유의 출정은 초장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기산에 거의 다다라 가는데 앞서 갔던
정탐꾼이 황급히 달려와 보고한다.
"위군이 이미 기산에 아홉 개의 영채를 세웠습니다. 방어 태세를 단단히 갖춘 듯
보입니다."
"그럴 리가......!"
강유는 인상을 찌푸리며 본인이 직접 가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기병 몇 사람만을
거느리고 근처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과연 정탐꾼의 말대로 기산에는
아홉 개의 영채가 뱀처럼 길게 들어서 있었다. 마치 마치 뱀의 머리와 꼬리가 맞닿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영채는 영채의 앞과 뒤가 서로를 지원할 수 있도록 치밀한
계산 하에 세워진 것이었다. 강유는 감탄하며 뒤를 따르던 장수들을 향해 말한다.
"하후패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군. 영채들의 절묘한 진형(陣形)은 제갈 승상의 지혜를
떠올리게 하오. 등애의 솜씨를 보니 제갈 승상 못지 않소."
강유는 본영으로 돌아와서 장수들을 불러 모아 말한다.
"위군이 저렇게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소. 그렇다면 등애가 반드시 이곳에 있을 것이오. 지금부터 산골짜기
어귀에 목책과 영채를 세우고 그곳에 나의 깃발을 요란하게 꽂아 놓으시오. 매일 백여 명
의 정찰대를 출동시키되, 나갈 때마다 옷과 갑옷을 갈아입히고, 깃발도 청(靑)·황(黃)·적
(赤)·백(白)·흑(黑) 오방기(五方旗)를 차례로 바꿔 들게 하시오. 허장성세로 그리하는
것이오. 그 사이에 나는 주력군을 이끌고 동정(董亭)땅으로 은밀히 진군하여 남안을
기습하겠소."
강유의 명에 따라 기산 어귀 영채에는 부장 포소(部將 包素)가 남아 그곳을 지키고,
강유는 전군을 이끌고 남안을 향해 출동했다.
촉군이 기산으로 올 것을 짐작하고 등애는 진태와 함께 일찌감치 기산에 영채를 세우고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촉군은 날마다 정찰만 하다가 돌아갈 뿐, 싸움을 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등애는 산 위에 올라 적진을 살폈다. 그리고 진태를 불러
말한다
"강유는 여기에 없는 것이 분명하오. 동정을 탈취한 후 남안을 습격하려고 나선 것이
틀림없소. 정찰대는 겨우 일백이나 될까 하오. 옷과 갑옷만 갈아입고 깃발만 바꿔 들어
우리 눈을 속이고 있는데 마필을 교대시키지 않아 말들이 헐떡이는 것을 보니 수비장의
무능도 알만 하오. 진 장군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적의 영채로 나가면 금방 승리를
거둘 것이오. 그런 다음 촉군이 동정으로 가는 길을 기습하여 퇴로를 끊으시오. 나는 군사
들을 이끌고 남안을 구하러 가되, 가는 도중 있는 무성산(武城山)을 취하겠소.
내가 무성산을 선점하면 강유는 틀림없이 상규(上邽) 땅을 취하려고 할 것이오. 상규에는
단곡(段谷)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길이 좁고 산세가 험준하여 군사를 매복하기에
적합한 곳이오. 저들 군사가 무성산을 통과할 때, 나는 단곡에 매복해 있다가 엄습하겠소.
강유는 무성산에서 대참패를 하게 될 것이오."
진태는 등애의 계책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한다.
"등 공의 계책은 참으로 신묘하오. 내가 농서땅을 이십삼 년이나 지키고 있지만 공처럼
지리를 세심히 살핀 적이 없었소. 공께서는 속히 떠나시고 나는 공의 말대로 이곳의
영채를 공격하고 강유군의 퇴로를 끊겠소."
등애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서 무성산 아래에 도착했다. 이틀을
갈 거리를 하루만에 도착했으니 아직까지 촉군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등애는 영채부터 세우고 아들 등충(鄧忠)과 장전교위 사찬(帳前校尉 師纂)에게 군사 오천
씩을 주어 단곡 입구 좌우에 매복해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두 장수가 단곡 입구로 떠나
고 등애는 영채에 세워 두었던 깃발을 모두 내리도록 하고 조용히 소리를 죽인 채 강유
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강유는 동정을 거쳐서 남안을 향해 가던 도중 무성산 앞에 이르렀다. 하후패가 무성산의
지형을 휘둘러보더니 강유에게 말한다.
"저 산이 남안 가까이에 있는 무성산입니다. 무성산을 취하면 남안은 거의 손에 넣은 것
이나 다름 없겠다고 보겠는데, 문제는 등애입니다. 워낙 꾀가 많고 지형을 잘 이용할 줄
아는 터라 미리 와서 방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등애의 능력이 그 정도란 말이오?"
강유가 놀라며 하후패에게 묻는데 산 위에서 갑자기 천둥 소리 같은 포향이 터지더니
함성이 크게 일고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왕왕 울려온다. 그리고 이어서 깃발이 일어나
기 시작하는데 모두 위군의 것이다. 그 한복판에 있는 황색 깃발에는 "등애(鄧艾)"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촉군은 당황한 나머지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이, 위군의 정예병들은 산 위에서 내려와 촉군을 향해 무기를 휘두른다.
위군의 엄청난 기세를 당해내지 못한 촉의 전군(前軍)은 무력하게 패하고 말았다.
강유는 급히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전군을 지원하러 갔지만 이미 위군은 촉의 전군을
격파하고 산 위로 가버린 후였다.
"내가 직접 등애와 단판을 짓겠다!"
강유가 기세 좋게 무성산 기슭까지 가서 등애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강유는 등애군을 자극해서 전장으로 끌어내려고 군사들을 시켜 갖은 욕설을
퍼붓게 했지만 등애는 꼼짝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 때까지 등애가 응전(應戰)해오지 않자
강유는 우선 군사를 물리기로 했다. 그러자 산 위에서 또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위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유는 약이 단단
히 올랐다. 치미는 화를 참지 않고 군사들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산 위로 진격하라!"
강유 군이 함성을 치며 산 위로 짓쳐가는데 산 위에서 바위와 통나무가 우박처럼
쏟아진다. 촉군이 더이상 앞으로 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삼경(三更)까지 위군을 기다리던
강유는 다시 군사들을 철수시키려 했다. 그때 또 다시 산 위에서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울려댔다. 위군은 역시나 나타나지 않았다.
강유는 군사들을 산 아래로 옮겨 그곳에 방어진을 치도록 했다. 군사들이 바위와 나무를
운반해서 목책과 보루를 쌓고 있는데 산 위에서 또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거세게 울려
댔다. 위군의 공격 없는 위협에 여러 차례 속은 촉군은 북소리와 뿔피리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였다. 위군이 산 위에서
물밀듯 쏟아져 나오더니 촉군을 가차없이 공격했다. 촉군은 어둠 속에서 허둥지둥하며
본채로 달아나기에 바빴다.
다음날 날이 밝자 강유는 전군을 무성산 아래로 집결시켰다. 그리고 군량과 마초, 수레와
기계 장비를 모아다가 산 아래에 놓고 이것들을 목책처럼 둘러세웠다. 그리고 목책 안에
군사들을 주둔시켜서 적을 포위하도록 했다. 지구전을 노린 것이었다.
그날 밤 이경(二更), 등애는 군사 오백에게 횃불을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가 촉군의 수레와
기계 장비에 불을 놓게 했다. 양군은 어둠 속에서 밤새도록 혼전을 벌였다. 촉군은 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싸움을 하느라 영채를 완성하지 못한 탓에 본채로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군사들을 이끌고 돌아온 강유가 하후패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남안을 얻기는 이미 틀린 것 같소. 차라리 먼저 상규 땅을 취하는 것이 낫다고
보오. 상규는 남안 일대의 곡식을 저장하는 곳이니 그곳을 우리가 점령하면 남안은
자연히 위태로워질 것이오. 하후 공은 무성산에서 적을 막고 계시오. 나는 상규로
출격하겠소."
이리하여 강유는 정예군과 맹장들을 모두 이끌고 상규를 향해 나섰다. 행군 도중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왔다. 강유는 지형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산세가 험하고 길은 굽이쳐
있었다. 강유가 향도관(嚮導官)에게 물었다.
"이곳의 지명은 무엇인가?"
"단곡(段谷)이옵니다."
향도관의 대답을 듣자마자 강유는 인상을 쓰고 말했다.
"거 참 불길한 이름이다. 단곡의 단(段)자가 끊을 단(斷)자와 음이 같구나. 누군가 이
골짜기 입구를 끊어 놓기라도 한다면...... 기분 나쁜 곳이다."
강유가 길을 가기를 망설이고 있는데, 전군에서 전령이 달려와 아뢰었다.
"산 뒤에서 흙먼지가 뿌옇게 일고 있습니다. 복병이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강유는 전령의 말을 듣자 마자 군사들에게 후퇴를 명했다. 퇴각을 위해 말머리를
돌리려는데 길 양 쪽에서 사찬과 등충의 복병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복병의 기습에
강유는 맞서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뒤로 달아나며 군사들을 물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퇴로 앞에서 큰 함성 소리가 점차 촉군을 향해 다가온다. 등애가 군사들을
휘몰아 달려온 것이다. 사찬과 등충, 등애의 군사들을 강유군이 모두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강유군이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위기의 순간, 다행히 하후패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강유군은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유는 다시 기산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 때 하후패가 강유에게 말한다.
"기산 영채는 이미 진태에게 당했고, 수비장 포소는 싸우다 죽었습니다. 모든 군사는
한중으로 퇴각했다고 합니다."
"아......! 그렇단 말인가......"
위군의 기습에 여러 번 당한 강유는 더이상 동정땅을 취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군사를 돌려 외딴 산길로 조심스럽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에서 등애 군사들이
추격해왔다. 강유는 장수들에게 군을 이끌고 퇴각하게 하고 자신은 후군이 되어 등애군
의 추격을 끊었다.
퇴각을 계속하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산 속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뛰쳐나와 길을
막았다. 강유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위의 장수 진태가 거느린 군사들이었다. 순식간에
강유는 위병들에게 둘러싸였다. 강유는 사람과 말이 모두 지친 상태라 포위를 뚫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마침 앞서 갔던 탕구장군 장의(盪寇將軍 張嶷)가 강유의 소식을 듣고 기병 수백을 이끌고
달려왔다. 수백의 기병이 달려드니 위군의 포위망에 약간의 틈이 생겼다. 강유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겨우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장의는 위군의 빗발치는
화살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간신히 한중으로 돌아온 강유는 장의의 충성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어 후주에게
표문을 올려 장의의 자손들에게 벼슬을 내리도록 청하였다. 장의 뿐만 아니라 이번 싸움
으로 죽은 장졸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죽은 자들의 가족은 모두 강유를 원망했다.
강유 또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등애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였던 것 또한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리하여 패전의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대장군의 인수를 내놓고
직위를 후장군(後將軍)으로 내려 놓았다. 이는 공명이 가정(街亭)에서 패하고 스스로 승상
의 직위를 내놓았던 일을 본받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