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엄마의 무게감(김해숙, 비비안나, 배우)
사람들은 가끔 연기자인 저를 ‘국민 엄마’라고 합니다. 사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호칭은 감사하지만,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제가 그렇게 불릴 정도로 자격 있는 사람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제 아이들의 엄마로도 한참 부족한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국민 엄마가 되라고 격려해주시는 것이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에 노력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다행히 오랜 기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여러 배역을 맡아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이제는 힘든 연예계에서 여러 어려움에 처한 후배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신앙인으로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저는 1975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꾸준히 연기만 해왔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어 보는 것은 배우로서 누리는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물론 맡은 배역의 인물의 삶이 너무 힘들고 아파서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역을 맡아서 연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짧은 촬영에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동안 쉬는데 우울증이 생기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연기를 하면 정신을 잘 다스리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어 우울증도 자연히 극복되니 연기 일은 하느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가장 좋은 몫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인생에서 힘든 일을 많이 겪으며 살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상처도 받고 인생의 고통을 깊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고민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항상 저의 부족함을 먼저 돌아보게 하며 저를 정화하고 결국에는 마음의 평화도 찾게 해줍니다. 마음을 다잡고 성호를 긋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의지하면 어려운 일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제 안에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은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기도를 통해 주님과 성모님이 저와 함께 계신다는 것, 언제나 제 마음을 깊이 알아주시고 제 편이 되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연기를 할 때입니다. 모든 것을 잊을 정도로 즐겁고 집중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이런 탈렌트를 주신 것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어느 신부님께 “배우로 나이 드는 것이 힘들다”고 말씀드리니 “나이는 누구나 드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일을 하니 좋은 것”이라 하셨지요. 또, “예전과 다르게 몸도 아파서 슬플 때가 많다”고 했더니 신부님께서는 약 먹고 쉬어서 회복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씀인데도 무언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이 드는 것을,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라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