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오산(金烏山/976m)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산.
금오산(金烏山)의 높이는 976.5m로, 기암 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경사가 급하고 험난한 편이나,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한데 이곳에 금오산성(金烏山城)이 있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崇山)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여 남숭산(南崇山)이라고도 하였다.
금오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금오산의 능선을 유심히 보면 ‘왕(王)’자처럼 생긴 것 같고,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사람 모양인데, 조선 초기에 무학(無學)도 이 산을 보고 왕기가 서려 있다고 하였다.
좁고 긴 계곡 입구에는 금오산 저수지가 있으며 구미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었다. 계곡 안에는 고려 말의 충신이요, 성리학자인 길재(吉再)의 충절과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세운 채미정(採薇亭)이 있다. 일명 '금오서원(金烏書院)'이라고도 한다.
케이블카가 닿는 중턱에는 대혜폭포[大惠瀑布, 이칭: 명금폭포(鳴金瀑布)]가 있다. 암벽에 ‘명금폭(鳴金瀑)’이라고 새겨진 27m 높이의 작은 폭포이나,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하여 명금폭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앞에는 의상(義湘)이 수도하였다는 도선굴(道詵窟)이 있고 해운사(海雲寺)와 약사암(藥師庵)의 절도 있다.
정상의 암벽에는 1968년 보물로 지정된 4m 높이의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 시대의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 말기에 쌓았다는 석성인 금오산성은 북쪽만 트인 천험의 요새로 ‘성안마을’이 있다. 이 산은 1970년 6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행코스 : 금오산 제1주차장 - 대혜문 - 해운사 - 대혜폭포 - 할딱고개 - 마애석불 갈림길 - 금오산성 내성 - 현월봉(정상) - 약사암 - 법성사 갈림길 - 마애여래입상 - 오형돌탑 - 천불상 돌탑(왕복) - 법성사 갈림길 - 법성사 입구 -
금오산 야영장 - 공원관리사무소 - 야은(길재)역사 체험관 - 금오산관광호텔 - 제1주차장
♧산행거리 : 10.9km
♧산행시간 : 4시간 49분
산행 시작점인 제1주차장
탐방안내소
금오산성 대혜문
돌탑 21C, 2000년이 시작되는 21C를 맞아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샘솟기를 기원하면서 21세기를 맞아 금오산 오르는 길목에 돌탑 21기를 세웠다고 한다.
영흥정
해운사(海雲寺)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827∼898)이 창건하였으며,창건 당시에는 대혈사(大穴寺)라고 하였다. 고려 말에 길재(吉再:1353∼1419)가 이 절과 절 뒤에 있는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을 익혔다고 한다.『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도선굴이 “깊이 31척, 넓이가 3척 3촌, 높이 15척으로 세상에 전하기로 도선국사가 수행하던 곳”이라고 적혀있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고향인 선산군 해평면 금오산으로 숨어들어 훗날 영남학파의 주춧돌이 되었다. 1592년(조선 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폐사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25년 철하스님이 복원하였는데, 이때 절 이름을 해운암(海雲庵)이라고 바꾸었다. 1956년 대웅전을 신축하였으며, 이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절 이름을 해운사로 바꾸었다.
도선굴 가는길은 아쉽게도 공사중이다. 예전에 다녀온걸로 위안을 삼으며...
대혜폭포
대혜폭포에서 할딱고개로 오르는 약 500개의 가파른 데크 계단길
할딱고개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선굴과 건너편의 칼다봉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현월봉을 배경으로...
할딱고개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구미 시가지
정상부 계곡에 빙벽이 아직 완전히 녹지 않고 남아있다
오형돌탑/마애석불 가는 갈림길
금오산성 아래 철탑에서 올려다 본 현월봉
금오산성(金娛山城)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만든 산성이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쌌는데 둘레가 5리나 되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나 된다. 금오산성은 고려 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성터로, 고려 말에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왜구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성을 지켰으며,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해 두었던 군창을 두었다. 조선 태종 10년(1410)에 국가적 계획으로 성을 크게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선조 28년(1596)에 다시 고쳐 쌓았다. 인조 17년(1639)에 외성을 쌓는 확장공사가 시행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고종 5년(1868)에 새로 고쳐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성 안에 1개의 계곡과 여러 개의 연못·우물이 있었으며, 대혜창과 내성창이라는 창고, 군기고, 진남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외성의 문터, 적이 알 수 없게 만든 작은 성문인 암문의 형체, 건물터들이 남아있다. 한편, 성 안에는 고종 5년(1868) 무렵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산성 중수송공비가 성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금오산성에서 정상부로 오르는 등산로
정상/약사암 갈림길
정상 약 10M아래 금오산 옛 정상석
금오산 정상 현월봉
현월봉에서...
약사봉
현월봉에서 내려다 본 약사봉과 약사암
약사암으로 가는 동국제일문
약사암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길
약사암(藥師庵)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정상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약사봉 기암절벽 아래 자리한 약사암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래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유적은 전하는 것이 없으며, 현존하는 당우도 모두 근세에 이루어진 것이다. 약사암의 중심 전각은 약사전인데 기암절벽 밑에 남향하여 건립되어 있으며 북쪽의 소봉상 아래도 남향한 요사 1동이 지어져 있다. 요사 좌측으로 300미터 지점의 바위에는 보살입상(보물)이 선각되어 있다. 약사전 안에 봉안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수도산 수도암(修道庵), 황악산 삼성암(三聖庵)의 약사불과 함께 3형제 불상이라고 불리우며 세 불상이 함께 방광(放光)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이 절의 동쪽 암벽에는 약수가 용출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 구멍에서 쌀알이 하나씩 떨어졌다는 전설이 전한다.이 약사암은 옛날부터 참선도량으로 유명해서 오늘날까지 수행승뿐만 아니라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약사암 종각
법성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마애여래입상과 오형돌탑을 보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법성사 방향으로 하산한다
마애여래입상으로 내려가는 일백구십사 계단길
석간수
금오산 마애여래입상(보물 제490호)
오형돌탑
10여년 전 손자를 잃은 한 할아버지가 손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쌓기 시작했다. 뇌 병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손자가 10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할아버지는 '오형학당'이라는 이름의 돌탑을 쌓는 것으로 손자를 기렸다.죽은 손자가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쌓은 돌탑은 현재 금오산의 명소로 자리했다. 이 같은 사연은 과거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된 바 있으며 지금은 금오산을 찾는 산꾼들에게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형돌탑에서 올려다 본 천불상 돌탑(4기)이 산 능선 끝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오형돌탑을 나와 다시 약사암 방향으로 가면서 올려다 본 약사암 종각과 약사봉
2019년 8월에 준공한 일백구십사 돌 계단길
일백구십사 돌계단 끝지점에서 우측으로 약 10여분 가면 오형돌탑에서 올려다 보이던 천불상 돌탑 4기
천불상 돌탑에서 내려다 본 오형돌탑
되돌아 온 약사암/ 법성사 갈림길에서 법성사 방향으로 하산
법성사로 내려서는 가파른 등산로
법성사 인근 등산로 옆으로 활짝핀 진달래
법성사 입구 등산로 끝 지점
금오산 야영장
금오산 공원관리사무소
야은(길재)역사 체험관
금오산 호텔 입구
원점으로 돌아온 제1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