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윤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버려진 말들 사이를 걷다』(푸른사상 시선 191). 2024년 6월 30일 간행. 시인은 버려진 말들에 대한 관심을 거두거나 회피하지 않고 동행하며 인간 가치를 추구한다. 시인의 시어들은 창작 과정에서 힘을 발휘해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창조한다. 시 세계의 토대를 이루면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확장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 시인 소개
2014년 『농민신문』, 201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근로자문화예술제(은상), 동서커피문학상(은상), 신라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꽃 앞의 계절』, 동시집으로 『호라이의 탄생』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이다.
■ 시인의 말
자격을 뛰어넘는 것들이
지문으로 남아 있다
어떤 날은 바람의 통증으로
어떤 날은 시계의 통증으로
들여다보고픈 그곳
■ 작품 세계
봉윤숙 시인은 에네르게이아(energeia)의 시어들을 통해 인간 가치를 추구하는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인유나 반어 등의 비유와 상상력을 통해 작품의 구체성과 아울러 환기력을 획득한다. 창조적인 시어의 변주로써 이 세계의 부분과 전체를 연결해 세계 속에 존재하는 그 자신은 물론 공동체의 가치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작품 속의 시어들은 죽어 있는 기계처럼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하게 움직이며 그 역할을 한다. (중략)
봉윤숙 시인은 유한한 시어들을 무한하게 사용하는 활동을 보이고 있다. 시어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의미화로써 새로운 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어들은 창작 과정에서 힘을 발휘한다. 곧 에네르게이아의 활동을 추구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어들은 제한되거나 고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움직여 시 세계의 토대를 이루면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확장한다. 이와 같은 면에서 봉윤숙 시인의 시어들은 활동성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화자는 “간신히 앞가림을 피한 사람들/돌아보면 아득한 낭떠러지가/각자의 뒤쪽에 있”는 처지를 안타까워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하지 못하고 한 발씩 물러나는 바람에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곧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이다. 화자는 그 버려진 말들 사이를 걷는다. 버려진 말들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회피하지 않고 곁에서 동행한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버려진 말들 사이를 걷다
봉윤숙
모두들 말의 착지점에서
딱 한 발짝 물러서 있다
아무리 시위를 당겼다 놓아도
딱, 그쯤에서 떨어지고야 마는
한 발짝 바로 앞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후렴을 시작하려는 찰나
간헐적으로 비상구가 보이지만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 역설
그 사이를 지친 저녁들의 퇴근과
앞다투는 고층의 창문들과
자신들의 가장 연약한 취약점으로
밥을 벌러 가거나
밥을 먹으러 간다
햇살과 기진맥진해진 바람을 따라
숨을 헐떡이는 와이퍼가
허송세월을 걷어내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도
비겁하거나 난처한 혹은 무신경한
그 경계를 절묘하게 비껴서 있을까
간신히 앞가림을 피한 사람들
돌아보면 아득한 낭떠러지가
각자의 뒤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