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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한 대답, 과격한 말 .
성경본문: 잠언 15: 1-2
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삿
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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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월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어린이 주일로 지켰고, 이번 주는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저는 어버이날 부르는 두 곡의 노래 제목이 늘 헷갈립니다. “낳으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이 곡은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곡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라는 곡은 “어머님 은혜”입니다.
다시 되새겨 보니 구분은 될 것 같은데, 어버이날에 어머니만 들어간 제목이 눈에 걸립니다. 아버지 은혜, 아버님 마음, 이런 곡은 없나요? 아버지에 대한 다른 곡들을 찾아 보니 요즘 동요 중에 “엄마 아빠 사랑해요”(박상문 작사 작곡, 이소영 노래), “엄마 아빠께”(박민식 작사, 강동수 작곡) 라는 곡들이 있습니다. 또 아빠만 꼭 집어서 “아빠 힘내세요”(한수성 작사, 권연순 작곡) 라는 곡도 있었습니다. 제가 속이 좁아서 왜 아빠 곡들만 없지 라고 해서 찾아 본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 모든 엄마, 아빠들, 부모님들 참으로 존경하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자식들을 내리사랑으로 키우시고 돌보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속 안썩이는 자녀로 잘 살겠습니다. 100세 시대에 어버이 되시는 어르신들 모두 건강하시고 하늘 소망 가득하게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올해는 여름이 무척 길고 겨울은 매우 짧을 것이라는 예보를 보았습니다. 이제는 4계절의 경계도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5월은 기온 상으로 지내시기 적당한 계절입니다. 가정의 달에 자녀들, 부모님들, 가족들과 함께, 좋은 곳도 다니시고, 맛 있는 음식 드시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말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위력적입니다.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자기가 한 말은 그대로 돌려 받는 것이 돌고 도는 인생 스토리입니다.
또한 “칼에 베인 상처는 바로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을 인격 살인, 언어 살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말 한 마디의 위력은 엄청 납니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말을 적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보다 설화(舌禍)에 휩쓸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매일 화면에 나와서 말을 하는 정치인들이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이 말 실 수 할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아무리 인기 있는 사람도 말 한 마디 잘못하면 그냥 퇴출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아마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직업이 목사인 듯 합니다. 목사는 말을 많이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말하는 것이 곧 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말을 조심해야 할 직업을 꼽으라면 당연히 목사가 일 순위로 꼽힐 겁니다. 그 뒤로, 정치인, 연예인, 교수(교사), 인플루언서, 유명 강사, 유튜버 등이 말을 많이 하는 직업군 입니다.
저도 언제 어떤 설화에 흽쓸릴지 모르기 때문에 언어 선택에 매우 조심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이 조심한다고 해서 다 지켜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화근 덩어리입니다. 말과 혀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야고보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관련 구절을 읽어 드립니다.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아멘.
혀는 온 몸을 더럽히고,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말(혀) 때문에 다툼이나 오해나 곤란을 겪어본 경험이 수 없이 있을 것이기에 이 말씀이 충분히 납득이 되실 겁니다. 거룩한 찬송을 드리는 입에서 저주하는 악독한 말도 쏟아낸대고 하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은 말(혀)의 중요성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사역 하시는 동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떡을 먹으려고 하자 유대교 장로들은 예수님에게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고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습니까?”(마 15:2)라고 물었습니다. 율법을 어겼다는 항의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은 소화 기관을 거쳐서 다 배출이 됩니다. 깨끗하게 정리가 됩니다. 그렇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 번 쏟아내면 수습도 안 되고 정리가 안 됩니다.
이에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마 15:19)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온갖 체면과 전통과 관습을 지키는 것보다, 실제로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을 밖으로 배출하는 입(혀)에서 나오는 것들이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 하신 겁니다.
외식적인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말만 잘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인정 받고 칭찬 받는 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걸 맞는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입니다. 구별되고,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양날의 칼 같은 말(혀)를 다스리는 것은 우리 모두의 큰 숙제입니다.
이렇듯 성경에서는 말과 혀를 조심 하라는 말씀이 무수히 많습니다. 특히 잠언서에는 거의 말(혀)에 대한 말씀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그 많은 잠언서 말씀 중에서 분노 하는 말과 유순한 말을 대비하여 보고, 지혜로운 자의 말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특별히 한 달 동안 암송하실 잠언 15장 1절의 말씀이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되어 5월 한 달 동안 내 말과 내 혀가 온 가족과 이웃과 직장을 평안하게 만드는 의의 무기로 사용되어 지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1절을 읽어 드립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아멘.
여기서 ‘분노’라는 단어는 순식간에 펄펄 끓어 오르는 물 같이 극렬하게 솟구쳐 오른다는 뜻입니다. 물을 끓이면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 100도에서 물이 끓어야 하는데, 불을 켜자마자 물이 펄펄 끓는 것과 같습니다. 예비 동작 없이, 예측 불가능 하게 갑자기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미국 영화 배우 브래드 피트가 주연으로 나온 “세븐(Seven, 1995)”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세븐은 교회 전통으로 내려져 오는 일곱 가지 죄악을 뜻합니다. 교만(Pride), 시기(Envy), 분노(Wrath), 나태(Sloth), 탐욕(Greed), 탐식(Gluttony), 음란(Lust)입니다. 분노가 여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는 분노를 중대한 인간의 범죄로 규정하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노는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일으키는 죄의 모습입니다. 일상 속에서 오고 가는 말 가운데는 분노를 쉬게하는 유순한 말이 있고, 노(분노)를 격동 시키는 과격한 말도 있습니다. 말을 사람으로 바꾸어 보면, 분노를 잠재우는 화평케 하는자(peace maker)가 있고, 듣고만 있어도 분노하게 만드는 분노 유발자(trouble maker)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화평케 하는자 이십니까? 분노 유발자 이십니까? 아마 이 자리에서 제가 가장 분노 유발자에 가까울 겁니다. 저의 급한 성격 다 아시잖아요. 오늘 이 말씀은 누구보다도 제가 가장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러분과 평범한 대화를 하는 중에 갑자기 짜증 내고, 싸우자고 대들고, 막말 까지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판 싸우든가, 아니면 화를 머금은 채 자리를 떠나 버리고 말 겁니다.
이유 없이 내 마음을 격동시켜 분노하게 만드는데 참아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유 없이 화를 내는 분노 유발자들을 상대하면서 유순하게 대답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건들지만 않으면 나는 분노 안해, 나는 분노의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유순하면 나도 유순하고, 상대 방이 분노 하면 나도 분노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식으로 상대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스스로 분노 할 상황을 맞이 했을 때와, 분노 유발자를 상대할 때, 두 가지 경우에서 모두 다 유순하게 대답하여 분노를 쉬게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막상 현실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도대체 말이 안통하는 무지막지한 사람, 무례한 사람, 큰 소리부터 치고 보는 사람, 이런 분노 유발자들을 상대 하면서 참으면서 유순하게 대답하고 왔다고 하면 남들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니,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참아,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고, 바보 아니야,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초장에 확실히 눌러 줘야 해, 나 깥으면 찍소리 못하도록 뭉게 놨을 거야”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그 분노 유발자가 누구입니까? 분노를 유발하는 사람이 항상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 입니다. 상대 방의 입장에서는, 내가 분노 유발자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은 절대로 분노유발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뿐 이라고 항변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진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그 사람이 분노해서 가만히 있는 나의 노를 격동 시켰기 때문에 그에 맞서 말을 맞 받았을 뿐이지,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자는 상대방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나의 말과 혀의 상태가 어떠 한지를 제대로 알고,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유순한 대답과, 과격한 말의 개선이 이루어 집니다. 남탓만 하면서 자신은 문제 없다는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영원히 분노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잠언 15장 1절, 이달의 암송 말씀은 분노유발자들을 만나서 강경한 맞대응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을 눌러 이겨서 본 때를 보여 주라는 말씀도 전혀 아닙니다. 이 말씀의 화살은 내게로 향하여 있습니다. 내 자신의 말의 습관, 태도, 자세를 가장 먼저 살펴 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나를 살펴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내 말(혀)을 살펴 보시고, 성령이 내 마음과 생각과 태도를 평가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한 점검의 기회를 가져 보라는 것이 1절의 말씀입니다.
가장 먼저 내 안에는 숨겨져 있는 분노와 격동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거친 말, 무례한 말, 저질스러운 말, 불손한 말, 상처를 입히는 칼 날 같은 말, 비아냥 거리는 말, 저주하는 말, 하찮게 여기는 말, 판단하는 말, 평가 하는 말, 불손한 말, 불편을 주는 말들이 쏟아져 나올지 모르는 불안 마음 상태가 내 안에 있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수시로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는 이러한 더러운 말들을 다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끊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 내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에게도 화평케 하는 자로서 유순한 대답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분노유발자로, 트러블 메이커로 불화를 일으키는 주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이어지는 2절을 읽어 드립니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아멘.
우리가 오후 예배 시간에 함께 배웠던 고린도 전서에는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기억 나시죠.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했으니, 우리 안에는 능력과 지혜가 충만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련한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입니다. 무능한 자가 아니라 능력이 있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2절 말씀처럼, 지혜로운 자라면 미련한 것들을 입에서 쏟아내지 말고, 선한 것들을 쏟아 내야 마땅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에서는 지혜로운 말들을 많이 하기 보다 미련한 자들과 같은 어리석은 말들을 쏟아내어 불편함을 주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나는 미련한 말은 안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아서 세 가지 경우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이건 비밀인데 아무한테도 말하지마, 너만 알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당부를 받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만 들으면 입이 근질거려 참지를 못하고 약속 까지 깨면서 입을 가볍게 움직이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언행입니다. 팔랑귀가 되어 가볍게 처신 것도 문제지만, 입이 방정 맞은 것도 참으로 문제입니다.
둘째, “나 오늘 말을 너무 많이했지, 내가 혼자 너무 떠들었나, 말이 많아서 미안해”라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말 해봐야 이미 많은 말을 한 것을 주어 담을 수 없습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실수도 커지고 자기 위신도 낮아집니다. 쓸데 없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입니다. 듣기와 말하기를 8:2로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언어 습관이라는 말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그 사람 참 이상해, 그 친구는 진짜 아니지 않아, 그 인간 말도 꺼내지마” 이런 식으로 자리에 앉았다 하면 온통 남의 뒷담화에 열을 올리는 경우 입니다. 이런 뒷담화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왜 만나려고 할까요? 내가 그런 뒷담화에 동조하고 맞장구 쳐주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사람에 대해 평가하고, 비판하고, 욕하고, 심지어 저주하는 것은 사탄이 주는 악독한 마음입니다.
이런 세 가지 경우가 나의 언어 습관에 들어가 있다면 나는 지혜로운 자로 살지 못하고 미련한 자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의 지혜와 능력으로 살지 아니하고, 잘난척 하는 내 말 주변과 하찮은 지식에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일방 통행 하는 독불장군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중에 한 분도 이렇게 하지 않고 계실 거라 믿고, 앞으로도 이렇게 하지 않으실 것도 믿습니다.
2절에서 말하는 지혜 있는 자들이 말하여야 하는 선한 것들이 무엇이겠습니까? 깨끗한 말, 진실된 말, 공감해 주는 말, 위로해 주는 말, 인정해 주고 칭찬 하는 말, 사랑하는 말, 감동을 주는 말, 죄를 물리치는 말, 거짓을 싫어하는 말, 진리를 앞세우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우리는 예수님 이라는 지혜를 마음에 담고 살면서도 이런말들을 잘하고 있지 못합니다. 오히려 냉랭하고, 건조한 말들로 거의 의무 적인 대화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를 취할 때가 많습니다. 죄와 악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남들 다하는 데 뭐, 이정도는 괜찮아“라는 식으로 구별됨과 거룩함을 우리 스스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분노유발자에서, 미련한 자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말과 행동을 성령이 주장(인도)하시도록 내 입(혀)를 맡겨 드리지 않는다면 말 실수, 말로 인한 분쟁에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은 화목과 평안을 소망하고 기원하는 달입니다. 가정에서 화목과 평안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요? 바로 말입니다. 혀를 조심하면 화목 합니다. 말을 조심하면 평안 합니다. 유순하게 대답 하면 평안 합니다. 분노하는 말을 쏟아내면 격동 시키며 분란이 일어납니다. 지혜로운 말을 하면 가정에 향기가 납니다. 미련한 말을 쏟아 내면 가정에 사랑의 온기가 사라집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지인들과 만남에서 화목을 이루느냐 분란을 만드느냐는 나의 말 한마디로부터 시작 된다는 것을 꼭 기억 하십시오. 남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의 원인이자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시고 말(혀)를 다스리는데 주의 하고 또 주의 하십시오. 마음이 다스려지면 좋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실 겁니다.
또한 나는 그리스도의 지혜와 능력을 지닌 사람 이라는 사실도 잊지 마십시오. 순간 순간 말을 하기 전에 내 안에 함께 하고 계신 예수님을 떠올리시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러시면 성령이 나의 입(혀)를 다스려 주셔서 정제되고 순화되고 진실된 말들을 하도록 도와 주실 겁니다. 말하기 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연습하시고 훈련하셔야 합니다.
제가 읽었던 「말의 품격」(이기주, 황소북스) 라는 책을 이야기 하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말의 품격을 4가지 사자성어롤 사용하여 제목을 달았습니다.
① 이청득심(以聽得心) 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듣는데 집중하십시오.
② 과언무환(寡言無患),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 말을 줄이도록 노력하십시오.
③ 언위심성(言爲心聲), 말은 마음의 소리이다. 말로 품격의 향기를 발하십시오.
④ 대언담담(大言淡淡) 큰 말은 힘이 있다. 말로 사람의 마음을 얻으십시오.
분노의 말, 유순하고 지혜로운 말에 대해서 언급하는 오늘 본문과 여러 가지로 통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여러분들이 한 달 동안 이 말씀을 붙잡고 다니시다가, 화가 나고 분노하는 마음이 솟구쳐 오르면, 손으로 입을 막으시면서 “유순한 대답, 유순한 대답”이렇게 내 스스로에게 외쳐 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진정 되어서 과격한 말은 생각에서 사라지고 분노를 쉬게하는 유순한 대답들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모두가 다 유순한 대답을 하면서 세상을 하평케 하는 자들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유순한 말로 상대 방의 분노를 잠재우며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가시고,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지혜있는 말을 많이 하셔서, 모든 삶의 자리에서 화목과 평안을 이루어 가시는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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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입과 혀를 다스릴 힘이 없사오니, 저희들의 입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셔서, 유순한 말과 지혜있는 말로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 화목의 주인공이 되게 하옵소서. 겸손과 사랑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김민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