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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기브온 평화조약 / 한성진 목사
초점:신약론
요약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을 속이고 화친의 언약을 맺음에서 신약 교회의 예
표를 본다. 진멸 당할 자들이 언약으로 삶을 얻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원리를 보여준다. 여기에 구원의 과정이 있는데 먼저 여호와의 소
식을 들었듯 구원은 복음을 들음에서 말미암음을, 왕도와 같은 기브온이 화
친함은 믿음에는 겸손의 요소가 필요함을, 동족 가나안인들을 배반하여 침
공을 받듯 세속을 철저히 회개해야 함을, 그들이 이스라엘의 약점인 언약을
노린 것은 새 언약되신 그리스도만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음을 예표한
다. 더구나 그들이 속인 벌로 받은 성전을 위해서 나무 패며 물긷는 임무는
신약 성도들의 만인 제사장직과 선교직을 암시한다.
강해
오늘은 "기브온의 거민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이스라
엘은 여리고와 아이를 정복함으로 중부 가나안 정복을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기수를 남으로 돌려 남부 가나안 정복에 나서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싯점에서 두 가지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나는, 가나안 여러 족속
들이 이스라엘과 대항하기 위해서 동맹을 맺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근린에
사는 기브온 거민들이 이스라엘을 속여 화친은 맺은 일입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두 번째인 기브온 사건입니다. 가나안의 히위
족속의 하나인 기브온 거민들이 살아 남기 위하여 사신들을 먼 타국인으로 가
장시켜 이스라엘을 속이고 화친을 맺는 내용입니다. 여기 기브온은 신약교회
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럼 기브온을 통해서 계시되는 교회론은 무엇입니까?
1. 신약교회의 회원자격은 무엇입니까?
수9:7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들에게 이르되" 했습니다.
여기 기브온족을 히위족속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신20:16-17에 "오직 네 하
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있는 자
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대로 하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브온은 가나안에 사는 히위 족속이므
로 진멸의 대상이었습니다.
더구나 기브온은 가나안의 중심부에 속하는 예루살렘 북서쪽 8km에 위치한
대단히 큰 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브온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성이요 가나
안의 중심적인 성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족속이 멸망의 대상에서 빠진다는 것
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신약의 성도 역시 본래는 가나안 족처럼 영
원히 멸망할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거하는 세상을 성경에서는 장망성
(사19:18)이라고 부릅니다. 장망성이란 장차 망할 성이라는 뜻입니다.
신약 교회의 회원은 이방인들이 주요한 멤버인데 본래 이방인들의 위치가 그
것입니다. 엡2:11-12에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손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 속의 언
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
고 했습니다. 엡2:3에도 "진노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즉 멸망 받을 기브온 거민의 위치나 본래 신약 성도들의 신분이나 조금도 다
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기브온은 멸망 받을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기브
온이 수단을 쓰지 않고 자신들을 솔직하게 소개하고 그 애원함이 간곡했다 해
도 결코 용납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나안 여자를 외면하
심과 같습니다. 물론 주님의 본 의도는 따로 있었지만 이것이 구약적인 사고
였습니다. 이방인도 이와 동일합니다. 이방인의 살 길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브온은 비상한 방법을 고안해 내게 됩니다. 이 기브온이 취한 방식
이 바로 신약 시대 죄인들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방식이란 점에서 우리는 놀
라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2. 그럼 이방인이 사는 길이 무엇일까요?
그 길은 하나지만 약 4 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복음을 듣는 단계입니다.
본문 9-10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
님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심히 먼 지방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명
성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또 그가 요단 동편에 있는 아모
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
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기브온은 놀라우리 만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소상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도리를 예표하는 출애굽 사건을 알고 있었음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입니다. 기브온이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그들이 이 소
식을 들었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본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인하여" 했고 또
"들으며" "들었음이니이다" 했습니다.
이 내용은 라합의 신앙고백(수2:9-11)과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라합이 구원
을 받은 것처럼 기브온의 경우가 그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식을 들었습
니다. 이것이 구원의 원리입니다. 구원은 구원의 복음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이와같이 신약 시대는 전도가 구원의 유일한 방법입니다(고전
1:22). 롬10:14에도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우선
복음을 듣고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음은, 겸손의 단계입니다.
기브온이 살아 남기 위하여 얼마나 겸손했는지 모릅니다. 기브온을 연구해
보면 그들은 대단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수10:2에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성"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왕도란 도성의 크기와 전통과 그 영향력을 암시합니
다. 성도 컸지만 그들은 원래 가나안 초기 원주민인 호리 족속으로 오랜 전통
을 가졌으며 그들의 영향력도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고 그 세력도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협력 여부에 따라서 가
나안의 각종 문제들이 좌지우지 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들의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기록을 보면 기브온은 가나안의 4대 성읍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므
로 교만하려면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려면 얼마든지
대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
의 교만을 꺾고 겸손히 이스라엘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화해를 구했
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일입니까?
이와 같이 구원의 은총도 겸손을 필요로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편에서는
택하심과 성령의 부르심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의 영
역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를 위해 신자가 할 일은 기도와 전도이며 불신
자는 회개하고 겸손히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죄인이 복음을 듣고 그
리스도를 믿을 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님을 믿는데 중요한 마음이 겸손입니다. 교만한 자가 예수님을 믿
을 리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참으로 자신의 처지와 상태와 미래가 어떠한 것인지 깨닫
고 진실로 겸손한 마음으로 주 앞에 나와야 할 것입니다.
주남선 목사의 일화 중에 경상도 함양의 어느 잔치 집에서 있었던 일이 있습
니다. 주목사님께서 그곳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장정 하나가
자기 소매를 걷어 부치고 "예수를 믿지 말고 내 주먹을 믿으시요"하며 대들
어 그 잔치집은 웃음판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사람이 산
에 칡을 캐러 갔다가 큰 바위에 눌려 결국은 그 손을 자르게 되었습니다. 이
것은 저주라기보다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러한 교만한 사
람은 그 교만이 꺾어지지 않는 한 구원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받
으려면 기브온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이 작
용하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거룩을 추구하는 배반의 단계입니다.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했습니다. 이것은 곧 동족인 가나안과의 배반을 암
시합니다. 그래서 10장을 보면 아모리의 다섯 왕이 동맹하여 기브온을 칩니
다. 이 일은 기브온의 배반을 암시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구원의 성장을 위
해서는 이 배반이 절대 필요합니다. 라합도 구원받기 위해 자기 동족을 배반
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를 정탐하러 온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을 살렸습니다.
모세도 바로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이처럼 이제 성화적인 구원으로 장성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배반해야 합니
다. 이 세상의 임금인 사단을 배반하고 사단이 만든 미혹의 문화를 거절하고
육신의 소욕을 거절해야 하고 죄를 거절해야 합니다. 고후6:17-18에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
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
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을 고후7:1에서는 거룩이라고 정의합니다. 성도는 거
룩해야 합니다.
딤후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대를 본 받지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
다. 즉 이 패역한 세대에서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서도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습니다. 아합 시대의 백성들은 여
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렸습니다. 그 결과 하늘의 문이 닫혔습니다. 그
러므로 이 세속을 철저히 배반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그리스도를 믿는 언약의 단계입니다.
본문 3-4절에 "기브온이…꾀를 내어"라고 했습니다.
여기 "꾀"라 했는데 기브온의 입장과 구속사적인 의미로는 놀라운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정말 놀라울 만큼 지혜로웠습니다. 그들은 이스라
엘의 약점을 간파했습니다. 하나님께 언약하고 맹세한 것은 생명을 걸고 지킨
다는 이스라엘의 약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점을 노렸습니다. 언약
을 의지함! 이것이 기브온이 구원을 받은 절대적인 원인입니다. 여호수아가
꼼짝 없이 당했던 것도 이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로 맹세한
영구불변의 맹약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번복할 수 없습니다.
그 좋은 예가 삼하21장에 나타납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른 사울이 이 언
약을 무시하고 기브온 거민을 학살했습니다. 그랬다가 이스라엘에 3년 연속
기근이 들어 멸망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의 자손 중 일곱
을 택하여 기브온 거민들에게 넘겨 주어 죽게 합니다. 그 후에야 이스라엘에
는 기근이 사라집니다. 이처럼 언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특징이 있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지키지 않는 편이 죽음을 당합니다. 그래서 창15장과 렘34장
을 보면 당시의 언약은 동물을 쪼개어 그 사이를 지나며 그 피로써 맹세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견고한 약정입니다.
그래서 기브온이 이스라엘의 이 약점을 노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언약 안에 머무르기만 한다면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신을 먼 원방에서 온 것처럼 가장합니다. 곰팡이 난 떡, 찢긴 가죽부대, 낡
아진 옷과 신발로 위장하고 우리는 원방에서 온 사신인데 이스라엘과 화친하
기 위해서 왔다고 여호수아를 속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위장술과 그들의
겸손과 고백 앞에 여지없이 속고 맙니다. 그래서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로 그들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그들은 이 언약을 통하여 자
신들의 삶을 위한 영원한 안전을 보장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약 성도들의 구원의 비밀입니다. 저 유명한 요3:16절의 말씀
을 기억하실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
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 신약 성도들의 구원의 길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길은 바로
새 언약을 통해서 입니다. 새 언약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영구불변
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으
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와 그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구원의 방법은 그리
스도의 새 언약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
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
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
라"(벧전1:18-19)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누구든지 새 언약되신 예
수 그리스도만 나의 구주로 믿으면 모두 영생을 얻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기브온이 살게 된 원인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묻지 않는 실수였으나 기브온
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즉 여호수아의 실수가 기
브온에게 커다란 복음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새 언
약에서는 어떤 죄인도 주 앞에 나아오면 그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
억하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죄의 목록을 영원한 깊은 바다에 던져 버리십니다.
3. 새언약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새언약은 온 인류적입니다.
본문 9:6에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 했습니다. 기브온 사신들이 진술한
"원방"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의 구원의 범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이 시대의 구원의 대상이 전 세계적이요 초시대적이라는 것입니다.
행1:8의 예수님의 지상 명령처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
지" 그리고 마28:19처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의 특징입니
다.
다음은, 새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본문 4-5절에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 했습니다.
또 그들이 이스라엘을 속일 때 "포도주와 떡"을 가지고 왔는데 거기에도 귀
한 진리가 있습니다. 포도주와 떡은 새 언약의 증표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상징입니다.
고전11:23-25에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
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
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
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신바와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떡과 포도주가 나오면 반드시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 예로 야곱이 이삭에게 축복 받을 때도 창27:25을 보면 별미와
포도주를 드렸는데 별미는 고기로 그리스도의 살을 포도주는 그의 피를 나타
냅니다.
창25:34에서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빼앗을 때도 떡과 팟죽이었습니다. 창
14:18에도 소돔을 침략한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군대를 파하고 돌아올 때 그
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멜기세댁이 떡과 포도주로 맞이하며 아브라함에게 축복
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잡히시던 날 밤에 떡과 잔을 주시며 하신 일이 다
른 것이 아니고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브온이 가져온 포도주부대는 해어지고 찢겨졌으며 그들이 가져온
떡들은 마르고 곰팡이 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죄인을 위해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실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다음에, 새언약은 새 삶을 약속합니다.
본문 4절에 기브온은 "옷과 신발" 까지 준비했습니다. 옷과 신발은 삶의 상
징으로 새언약이 죄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임을 암시합니다. 새언약이 옛언
약과 다른 점은 옛언약은 돌비에 쓴 율법이지만 새언약은 마음의 비에 성령으
로 기록한 언약으로 신자의 삶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점입니다
(고후3:3).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 받아
야 합니다.
다음에, 새언약은 섬기는 삶이 그특징입니다.
그리고 기브온은 한결같이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8, 9, 11) 했고, 23
절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영원한 종을 삼았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섬기는 삶
을 강하게 특징짓는 신앙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신약 성도는 섬김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본을 보이시고 당부하시던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의 계명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래서 요
일3:23-24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
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
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종의 정신으로 섬기고 사랑할 때 우리는 한 없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
니다. 그래서 신약 성도는 사랑의 특징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제
자입니다. 기브온의 비밀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기브온에게는 또 놀라운
임무가 주어집니다.
4. 그 임무는 제사장의 임무였습니다.
이 귀한 임무가 주어진 배경은 이렇습니다. 그것은 기브온과 화친의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은 3일 후에 그들의 정체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
들은 가까운 히위의 가나안 족속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커다란
실수였습니다. 이에 대한 백성들의 격동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로
언약한 맹세였기에 그들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 대신
기브온에게 힘든 임무의 벌을 내립니다. 그 임무는 21절과 23절에 기록된대
로 온 회중과 성전을 위하여 영영히 나무 패며 물 긷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
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23절에 이 일을 저주라고 했습니다. 그
지경은 물이 귀하고 샘이 깊었습니다. 당시 기브온의 우물은 지하 80m에 위
치해 있었고 꼬불꼬불한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서 그 어두운 곳에서 물을 길러
내는 일이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귀한 축복이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인 레위 지파가 할
일을 기브온 사람들이 담당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날마다 나무를 패
서 제단에 쓸 나무를 제공했고 날마다 물을 길러 제물을 씻고 제사장들이 씻
을 물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비할데 없는 제사장적인
사명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약 성도들에게 천사도 흠모할만한 놀라운 임무를 맡기셨기 때문입니
다. 벧전2:9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말
씀합니다. 신약 성도들은 만인 제사장입니다. 신약의 성도가 구약의 제사장들
이 받은 특권 중에서 받지 아니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신약 성도들은
제사장들처럼 모두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성령이 제사장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또 제사장들처럼 신약 성도들은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과 직접 대면
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지성소 앞까지 나갑니
다. 또 신약 성도들은 제사장들처럼 남의 죄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특권
이 주어졌습니다. 세계복음화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제는 신약 성도들의 사
명입니다. 이 사명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21절대로 그것은
매일 나무 패고 물긷는 일입니다.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먼저, 성령의 불을 지피는 일입니다.
23절에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라고 했습니다. 나무는 제단의
불을 지피기 위한 것으로 기도를 통한 성령의 사역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장작을 패는데서 기도의 방법을 발견합니다. 나무를 팰 때 도끼로 나
무의 중심을 겨누듯 기도는 주님의 뜻 중심과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다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중언 부언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힘있고 노련하고 쪼개
질 때까지 한 곳만을 내리쳐야 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힘과 믿음과 확신이 있
어야 합니다. 속히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
작을 패는 일은 땀을 많이 흐르며 두 손이 부릅트는 노동입니다. 이처럼 기도
는 힘써서 해야 하고 제단 뿔을 부여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의 장
작 많이 패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제단에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
게 하십시다.
다음은, 복음운동을 하는 일입니다.
27절에 "물 긷는 자를 삼았더니" 했습니다.
기브온의 사명은 나무패는 일 만이 아니라 주의 성전과 회중을 위하여 물 긷
는 일이었습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으로 전도운동의 예표입니다. 그
런데 기브온의 우물의 내부는 캄캄합니다. 이처럼 성경도 우물과 같아 의미를
모르면 캄캄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놀라운 생명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
도들은 날마다 말씀을 배우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물을 길러 회중에
게 먹여야 합니다. 오늘날 어떤 사상을 받음을 '물을 먹었다'는 표현으로 곧
잘 쓰는데 일리가 있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물은 좋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말씀이요(엡5:26, 시1:3, 암8:11) 나쁜 의미로는 세속적인 사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물은 말씀의 물, 신앙의 물, 복음의 물입니다. 이 물을
먹여야 합니다. 전도하자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
면 전도해야 합니다.
제가 이 시간을 빌어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신약과 구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구약의 관계는 구약이 뿌리라면 신약은 나
무와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해석하려면 반드시 신약으로 해석해야 합
니다. 구약 해석한다고 신약에서 벗어난 딴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
이비 교주는 선악과를 해석하면서 거기서 혼음교리를 도출해 냈습니다. 이것
은 신약에 없는 딴 소리입니다. 이것은 자의적인 해석입니다.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다가는 멸망한다는 사도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겠습니다. 구약 성경
은 반드시 신약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약은 덮여 있는 책
이 되어 단순한 역사적 고전의 오해를 받거나 잘못된 해석이 내려져 복음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물론 구약은 그 기록 자체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
습니다.
구약 없는 신약 역시 그렇습니다. 신약은 대체로 진리의 표현 방식이 평이하
게 나열하는 서술식입니다. 그런데 이 서술적인 진리들을 구약의 역동적인 사
건에 담아서 전파할 때 그 복음이 좀 더 구체적인 교훈이 되고 강력한 폭발력
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창세기 1
장의 창조의 사건에 담아 설명해 보십시오. 혹은 그리스도의 승리적 진리를
다윗이 골리앗을 쳐부순 사건에 담아서 전하여 보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성경
은 살아있는 말씀이지만 더욱 구체적으로 살아 역사하는 역동적인 메시지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이 두 성경은 서로 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보
면서 배경 연구를 철저히 하면서 성령의 조명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
치 샛별이 떠오르는 것처럼 깨달아지는 역사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베드
로의 교훈입니다(벧후1:19).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볼 때 신약 교인들의 사명이 기도와 전도운동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나무 패고 물 긷는 성도들이 되십시
오. 이 일은 신약 교회에 맡긴 가장 귀중한 임무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은혜의 불길로 타오르고 말씀으로 충만하고 날마다 전도하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과 지상에서 동시에 잘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서 더욱 귀히 사용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에 대해 초대 교회가 좋은 모범
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전통을 이어 받아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기브온 사람들은 그 후에도 계속하여 이스라엘을 위하여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에도 그들은 성의 재건을 도왔고, 다
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거룩한 여호와의 성막이 기브온으로 옮겨져서 하나님의
제단을 모시는 최고의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가 기브온의 최고의 전성기
입니다. 이곳에서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려 응답을 받았습니다. 다윗과 솔
로몬은 메시야 시대의 예표입니다. 즉 이것은 신약시대에 복음의 중심이 이방
인들에게 있을 것을 암시하는 귀한 예고인 것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기브온 족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셔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
러므로 이제 해야 할 일은 과감하게 세속을 배반하고 맡겨진 임무에 충성합시
다. 성령의 불을 일으킵시다. 말씀으로 충만합시다. 전도합시다. 종의 정신을
가집시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사랑합시다. 온 세상에 복음운동을 일으킵시다.
그래서 신약의 성도답게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귀한 성
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