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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신 10:13)
모든 인생의 소원은 행복입니다. 사람들이 죽어라 일하고, 땀 흘리고, 돈 벌어서 저축하는 것은 다 행복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죽어라고 공부시키는 것도 행복하기 위함입니다. 문제는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조건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은 행복해야 마땅합니다. 대한민국은 인구비율로 교회가 제일 많은 나라이며, 세계 10대 강국에 속해 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데에다가 교육열도, IT산업도 세계최고입니다. 국민 개개인을 보면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두뇌를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을 우습게 아는 유일한 나라, 중국 옆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행복지수를 조사해보면, 178개국 중 102위입니다. 행복도에서 서울은 세계 10대 도시 중 꼴찌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전보다 모든 면에서 나아졌는데, 왜 많은 이가 힘들어 할까요? 혹시 우리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시다. 행복이 무언지도 모른 채 그냥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봅시다. 행복하려면 행복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봄으로, 고단한 인생길이 아니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거니는 행복인생이 됩시다.
첫째,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소원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 6:14)고 약속하십니다. 그 소원이 얼마나 간절한지 “반드시”라는 말을 쓰십니다.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셨고, 에덴동산을 준비하셨고, 여자 하와를 창조하셔서 남자 아담에게 짝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고,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셨고 풍성한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요 10:10).
우리는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자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를 향해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행복자임을 믿읍시다.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의 복입니다(갈 3:9). 또한 우리는 근심과 슬픔을 주는 세상에 속으면 안 됩니다. 세상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좇아가서도 안 됩니다. 세상이 말하는 행복은 신기루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만 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고 억울하게 죄수가 되었지만, 행복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고, 요셉의 행복을 소원하셨기 때문입니다(창 39:2). 하나님은 우리와도 함께해주십니다. 지금도 우리의 행복을 소원하십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반드시 잘 됩니다. 반드시 행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가 행복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있어야 행복하다”, “머니(money)가 매니(many)해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집은 사도, 가정은 못 삽니다. 음식은 사도, 식욕은 못 삽니다. 좋은 침대는 사도, 잠은 못 삽니다. 십자가 목걸이는 사도, 천국은 못 삽니다. 진정한 행복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과 규례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하라”고 명령하기도 하시고, “하지 말라”고 명령하기도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명령은 마치 차선과도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규례는 네비게이션과도 같습니다. 차선을 잘 지키고 네비게이션을 잘 활용하면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듯,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면 행복한 인생을 삽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도 같습니다(시 49:20). 하나님은 이미 우리 손에 성경이라는 인생의 정답을 쥐어 주셨습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전하고, 성경대로 가르치는 것, 이것이 곧 행복의 길입니다. 다른 것을 다 가졌어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인 성경에서 떠나있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뻐하고, 구합시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이 복이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신 4:40 11:27).
셋째, 예수 십자가가 행복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합니다. 또한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큰 행복을 누립니다. 이처럼 인간의 행복은 사랑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십자가는 사랑의 절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셨기에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마다 사랑을 누립니다. 동시에 예수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하게 합니다. 예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회복되면,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가족도, 이웃도, 성도들도 사랑하게 됩니다. 심지어 나에게 아픔을 준 원수도 사랑하게 됩니다.
행복하려면 예수 십자가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명보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십자가 사랑을 회복하면 사명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많은 일을 하지만, 세상은 교회를 왕따시킵니다. 그 이유는 가장 중요한 십자가 사랑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잊고, 십자가 사랑 없이 일하다 보니 성도들도 지칩니다. 인천순복음교회가 창립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표어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으로 화목하고 힘 모아 충성하자”입니다. 십자가 사랑을 먼저 회복합시다. 예수 십자가가 생명의 길이요, 행복의 문입니다(시 16:11).
넷째, 사명이 행복
일에 대한 자세에 따라 사람들은 생업인, 직업인, 소명인으로 나뉩니다. 생업인은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직업인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경제적 기반이나 사회적 위치를 보장받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소명인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이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명으로 일하는 소명인입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세 사람의 석공이 성전을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사람은 밥 벌어 먹으려고 하는 수 없이 일합니다. 둘째 사람은 의무로 일합니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운다는 사명감으로 일합니다. 첫째 사람은 일을 할수록 비참합니다. 벽돌이나 나르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둘째 사람은 조금만 기분이 안 좋으면 짜증을 부립니다. 의무감으로 하다 보니 몸만 피곤합니다. 셋째 사람은 벽돌을 나르면 나를수록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전이 세워진다는 기쁨에 힘들어도 행복합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이라는 똑같은 시간이 주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사명으로 사느냐, 어쩔 수 없이 사느냐입니다. 사명으로 살면, 단칸방에서도 행복합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기뻐한 이유도 분명한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고전 10:31). 우리에게도 7대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에 따라 살면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단 한 순간도 무의미한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사명자로서 살아가고, 그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누립시다.
어리석게 행운을 좇는 인생이 되지 말고, 행복을 누리는 인생이 됩시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가 행복이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행복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행복입니다. ‘내 마음대로’ 가 아니라, ‘말씀대로’,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는 행복자가 됩시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행복자로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더 이상 세상의 행복을 좇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행복 속에서 감사 감격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행복은 어디에
본문: 신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요술쟁이들이 행복의 비밀을 인간으로부터 없애기로 결정하고 어디에 행복의 비밀을 숨겨야 할 것인가에 대해 숙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혜 있는 한 요술쟁이가 "땅속 깊이 행복의 비밀을 묻어 두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대표 요술쟁이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땅을 깊숙이 파 결국은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요술쟁이는 행복의 비밀을 바다 속 깊은 곳에 숨기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표 요술쟁이는 인간들은 물 속 깊은 곳까지라도 잠수하는 법을 배워 결국은 행복의 비밀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때 또 요술쟁이는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숨기자고 합니다. 그러자 대표 요술쟁이는 이번에도 안되겠다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기어코 가장 높은 산꼭대기까지라도 올라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요술쟁이들은 한숨을 내리쉬고 올려 쉬면서 인간이 발견할 수 없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고 한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대표 요술장이는 전혀 뜻밖의 장소를 제안합니다. "행복의 비밀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인간 마음속 깊이 숨기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리석게도 그들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의 비밀을 찾으려고 결코 시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불과하지만, 이 전설 속에 들어있는 핵심을 불행하게도 우리 대부분의 인생들은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독일 시인 칼 붓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산 너머 언덕 너머 먼 하늘에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아, 나는 그것을 찾아 남 따라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 왔다네 산 너머 언덕너머 더욱 더 멀리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행복과 불행은 마음 가운데 함께 살고 있습니다. 행복은 마음의 느낌인 것으로 사실이 아닙니다. 행복은 어떠한 불행 속에서도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은행의 예금이나, 토지나, 높은 지위나, 부자의 품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불행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한 예로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권력자들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최대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행 속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로마 원로원에 보낸 편지나 남긴 글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에 대중불교의 기초를 닦은 원효는 불교를 더 공부하려고 당나라 유학의 길을 가는 도중에 산 속 토굴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너무 목이 말라 어둠 속에서 물을 찾다가 바가지가 손에 잡혔고 그 속에 든 물을 마시니 감로수 처럼 시원하고 맛이 있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날이 밝은 다음에 보니 어젯밤, 바가지로 생각한 것은 오래된 해골이었고 그렇게 맛이 있었던 물은 그 속에 고인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원효는 여기서 깊이 생각했습니다. 이 더러운 물을 어젯밤에는 그렇게도 맛있게 마셨는데 지금은 왜 구역질이 날까? 결국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나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세상은 기쁨의 낙원도 되고, 괴로움의 지옥도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지만 현명한 자는 마음속에서 행복을 키웁니다.(잠17:22)
사람은 모두 행복을 추구합니다. 행복은 사람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이고 목적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불물을 가리지 않습니다. 벨기에의 작가 마테를링크는 파랑새라는 아동극을 발표했습니다. 형제가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아 헤매고 다녔습니다. 여러 날 허기진 채로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그 어디에도 파랑새는 없었습니다. 이 형제는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와보니까 그렇게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집안에 있는 새장 속에 있었습니다. 이 동화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집안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마음속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내 곁에 있다는 말입니다.
유명한 어느 목사님께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행복이란 외부적인 환경에서 오는 줄로 알았기에 늘 어둡고 추운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면서 좀더 행복한 가정과 어린 시절을 가졌더라면, 좀더 행복한 학창시절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늘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이 지난 후에도 늘 부족한 것을 들추어내며 원망을 자주 했습니다. 세월이 십 년, 이십 년 흐르는 동안 사정이 달라져 소위 말하는 외부환경이 무척이나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고요히 생각해 볼 때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전보다 더 행복한가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그 가난하고 춥고 배고프던 그 시절이 아름답고 행복하게까지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겪고 난 지금에 와서 깨닫는 것은 행복이나 불행은 외부적인 조건이 나 환경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깨달음이라 생각됩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행복은 불신에 있지 않습니다. 볼테르는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노년에 글을 썼습니다. "나는 태어나지 않았기를 원한다." 행복은 쾌락에 있지 않습니다. 바이론 경은 어느 누구보다도 쾌락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벌레 같은 인생, 고민, 그리고 슬픔이 나를 외롭게 만든다."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습니다. 미국의 백만장자 제이 골드는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다." 행복은 지위와 명예에 있지 않습니다. 베콘스 필드경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젊었을 때는 실수 투성이었고 중년에는 투쟁뿐이었다. 이제 늙으니 후회뿐이다." 행복은 군사적인 영광에 있지 않습니다.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싸움에서 승리한 후 그의 막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는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만이 가능합니다.(시33:12)
성경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고 하셨습니다. 또 에이브라함 링컨은 "사람은 자기가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행복을 원하십니까? 여러분들 마음 깊은 곳에 행복의 열쇠가 숨겨져 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먼저 행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고, 또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축복하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고, 도와주고, 베풀 때 행복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도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행복의 전제조건이 없을 때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참된 행복은 찾을 수 없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할 때 얻을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경외할 때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 록펠러라는 대재벌이 있었습니다. 그 가문에서 부통령이 나오고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가문 중에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록펠러는 너무 가난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으로부터 부자가 되는 한 원리로 십일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듣고 십일조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일자리를 구해서 주급 30달러를 받고 너무 기뻐서 화장실에 가서 그 돈을 세어보았습니다. 마치 천하를 얻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돈 중에서 3달러를 하나님께 십일조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되면서 위장병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려는 염려보다 돈을 지키려는 염려로 인해 걱정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돈을 도적 맞을 것 같으니까 집에 철조망을 쳤고, 개를 길렀지만 염려가 사라지지 않아서 신경쇠약에 걸리고 위장병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어느 날, 그는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가난할 때는 잘 살게 해 달라고 해서 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돈 때문에 제가 죽게 생겼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감동이 왔습니다. "탐심을 물리치고 나를 위해 좋은 일에 써라." 그래서 그는 많은 돈을 하나님께 바쳐 교회당을 지었는데 그 교회가 뉴육의 허드슨 강변에 있는 리버사이드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돠"(시128:1,2)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시115:13)
둘째, 행복은 우리가 회개하여 주님께 용서함 받음으로 의로움이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환경 가운데 행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단이 그들을 유혹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자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을 누렸던 바로 그 곳에서 그들은 벌거벗은 수치 때문에 몸부림치고, 하나님께 지은 죄로 인해 불안과 공포가 들어와 절망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행복이란 결코 좋은 환경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행복이란 의를 동반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담과 하와의 후손된 이 땅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스스로 의를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위해 의롭게 되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을 때 얻게 되는 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얻게 되며 이러한 의로움이 있을 때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한 수치와 불안, 공포에서 해방되어 행복의 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51:4)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시51:7,8)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셋째, 행복은 마음의 평강을 통해 얻게 됩니다.
부귀영화로 온 세상을 호령할 명예와 권세를 가졌다 해도 마음 속에 평강이 없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마음의 평안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자기 양심과 이웃과 화목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아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할 때 우리는 죄에 대해 참소하던 우리의 양심과도 화목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쁨으로 우리는 이웃의 허물과 죄도 용서할 수 있게 되어 이웃과도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양심과 또한 이웃과 화목하며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평안하지 않으면 행복은 누릴 수 없습니다.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 버렸음이여"(애3:17)
넷째, 참된 기쁨을 가질 때 우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르는 슬픔과 허무도 더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영화와 달리 허무와 절망이 따르지 않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어주시는 것으로 참된 기쁨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1절에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곧 기쁨의 샘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천국 소망의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한 천국을 예비해 두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천국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음을 깨달아 알 때 우리는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을 갖게 되며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부귀나 영화, 공명이나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행복,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령 충만과 영원한 천국의 소망 안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기쁨 가운데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행복을 누리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이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만히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시37:4)
다섯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선을 행할 때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 5)
루이자 메리 올컷의 <작은 아씨들>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네 자매에게는 아주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자기들의 음식을 가엾은 이웃에게 주고 마른 빵과 우유만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그 날 아침, 이 자매들보다 더 기분 좋은 사람들은 그 도시 전체에서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3:12)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고아와 객과 과부를 돌보는 자(신14:29)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베풀고, 돕는 사람에게 행복이 찾아옵니다.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14:21)
여섯째,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때 행복이 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겨울이 좋다. 흰 눈을 볼 수도 있고, 사람을 강하고 진지하게 만들어주니 겨울이 좋다." 봄이오면 또 이렇케 말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따뜻하니 봄은 봄대로 좋다." 여름, 가을에 대해서도 "초목이 우거지고 활기에 넘치는 여름은 또 그 나름대로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가을도 좋다. 가을은 우리들에게 겸손을 가르쳐주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니까."
이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춥고 게을러져서 싫다. 여름이 되면 덥고 땀이 나서 싫다. 가을이 되면 처량하고 허무해져서 싫다. 봄이 되면 꽃샘바람이 불고 노곤해서 싫다."하고 '싫다', '싫다' 소리를 연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면 '아, 어서 여름이 되었으면' 하고, 여름이면 '아,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어디에 갖다놓아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여건에 관계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합니다. 고독하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좋아하고, 병들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다고 좋아합니다. 하는 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케 해주심에 대하여,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단련시키고 정화시켜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복음의 길이 열리면 하나님의 일을 하니 좋고, 다치고 고난 당하고 순교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살전1:2)
일곱째,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위스의 법률가요 철학자인 C.힐티(1833∼1909)는 「생명이 없는 사상」을 지적하고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복음을 실천하는데서 온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삶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증거했습니다. 특히 그의 대표작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에서 그는 『잠 못 이루는 밤은 인생과 인생의 방향을 성찰해보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말하며 그 시간에 성경을 보며 변화를 받을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신29: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15:16)
결론적으로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행복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고, 행복은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때 찾아옵니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행복을 깨닫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