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지나치게 덥다.
산속 계곡 도시라고는 하지만 도심은 역시 직사광선을 피할 수 없는 곳이다.
도시 관광코스를 두 등분해서 오늘은 동쪽 부분을 다녀 볼 생각이다.
숙소가 구도시 센터인 관계로 문을 나서면 광장이다.
이미 광장 벤치에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곱은 길에 트렘과 자동차 길이 혼잡하게 섞어있다.
강쪽으로 한 골목만 걸어가면 시청이다. 줄무늬를 입힌 작지만 아담한 건물이 시청이다.
일차대전 이전 항거리ㅡ오스트리아 이중 제국시절에 지은 건물이다.
재미나게도 지금의 시청자리에 살고 있던 사람이 시청을 세울 터를 팔지 않아 많은 금을 주고. 철거하는 자신의 집에서 나온 벽돌로 강 건너에 지어준 집이 아직도 있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재미난 이야기가 집 앞에 게시되어 있다.
강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물을 막아 놓은 작은 댐이 있다.
도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유원지 같은 호수가 있는 꼴이다.
호수가를 산책하다 벤치에 앉아 있는 부부를 만났다.
그들도 여행 중인 부부이다.
터키 패티에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가 패티에 니키아로드를 걷고 월리 대니즈 해변까지 갔다왔다고 하니 무척 좋아한다.
마치 과거의 경험을 공유한 오래 전 친구를 만난 듯하다.
강을 따라 내려오면 맥주공장. 성당과 수도원 그리고 모스크를 보고 라틴 다리까지 왔다.
맥주 공장 앞에서 우리와 같이 도시 지도를 보면서 무엇을 열심히 찾고 있는 젊은 부부를 보았다.
아이가 4명이다. 두 명은 유모차에 한 명은 걷고 작는 아이는 엄마가 가슴에 안고 있다. 젖먹이인 셈이다. 가장 큰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니
약 2년 터울에 아이가 넷인 셈이다.
폴렌드에서 온 여행객 가족이다.
야영도 하면서 아이 4명을 대리고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폴렌드에 오면 자신의 집을 찾아와 달라고 매일 주소를 적어 준다.
이들과 해어지고 라틴다리에 서니 너무 초라한 다리에 실망스러웠다.
아무런 표식도 없이 길 모퉁이 건물 일 층에 박물관이 전부이다.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자리이다.
1차 대전의 서막이 울린 장소이기도 하다.
그때 그 자리의 사진들을 보고 뒤 골목 자미로 갔다.
항상 같은 생각이지만 성당이나 교회보다 자미가 일반인에게는 쉽게 다가 설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많다.
열린 광장과 같은 역할을 자미가 하는 셈이다.
자미에서 나온 시간이 1시가 넘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여행자 거리로 갔다.
거리 가득 여행자이다.
이스람 분위기가 많이 난다.
간판도 음식점도 물담배를 피우는 카페도 터키를 많이 닮았다.
소고기를 덩어리로 넣은 수프를 빵과 같이 먹었다.
같은 음식점에 7일 전 자그레브 교회에서 만난 단체 관광객을 다시 만났다.
오늘 저녁 이스탄블에서 레이오버 해서 귀국한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광장 밴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다 아침에 만난 터키 부부를 다시 만났다. 지금보니 두부부가 같이 왔다고 한다. 한사람만 앤지니어이고 나머지 3사람은 모두 교사라고 한다.
이 사람들 다시 한 시간 후 성당 앞에서 다시 만나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하루 동안 자미에 앉아 쉬기도하고. 성당과 수도원에서 파이프 올간을 보고 다시 길을 건너 온통 성화로 가득한 보스니아 정교회를 보았다.
서로 다른 종교가 좁은 공간에 서로 섞어 있듯이 여행자 거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붐빈다.
숙소앞 작은 자미. 문이 닫혀있다.
수도원과 같이 있는 성당.
이슬람 자미.
자미에 들어가기 전 신자들은 이 곳에서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보스니아 정교회 건물과 입구.
카토릭 성당앞에서 터키 두 부부와..
성당내부.
시청청사.
계곡 사이에 사라예보가 있다. 도시입구이고 바로앞에 시청청사가 있다.
폴렌드 부부 여행가.
맥주 공장. 박물관은 입장료가 있어 입구만 보고 나옴.
거리의 어떤 분수도 그냥 마실 수 있는 미네랄이 풍부한 물.
라틴 다리앞 .
보스니아 동방 정교회 입구.
15세기 지은 전통양식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