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맺고 푸는 선의 드라마
매듭
끈은 문화의 시작이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끈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호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끼 끈 문양을 한 원시 시대의 승문토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끈이 문자와 같은 의사 전달이나 기억을 위한 흔적으로 사용된 직접적인 예는 결승문자와 같은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끈이 끈의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맺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문명의 원초적인 기술은 바로 끈을 이어가고 맺는 매듭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칡이나 등 넝쿨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만약 그것을 끊어 서로 맺게 하면 인간의 문학적 산물로서 하나의 끈이 되고 매듭이 된다. 그것은 언어와 같은 하나의 의미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문화는 끈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재료로 사용하는 지푸라기는 새끼를 꼬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기술의 기초가 바로 이 끈 만들기이며, 그것을 어떻게 맺는가에 의해서 짚은 짚신이 되기도 하고 가마니가 되기도 하고 바구니나 멍석이 되기도 한다.
한국인의 의상을 보아도 단추가 아니라 모두 끈이 달려 있어 매도록 되어 있다. 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실용적인 기능이요 장식이다. 한국의 저고리에서 옷고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맺고 풀고 잇고 끊는 끈의 관계로 나타낸 것이 한국인의 인간관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고립 무원의 상태를 끈 떨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끈의 사상을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호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매듭이라는 수예품이다. 매듭의 형태와 그 의미를 산출하는 기호 체계는 코, 몸, 손의 세 가지 요소로 분절된다.
'코'는 평매듭, 감기매듭, 국화매듭처럼 매듭 코가 기호 표현으로되어 있는 것으로 그 의미 작용은 옷고름의 코처럼 부드 러움과 여유를 나타낸다. 그러나 '몸'은 매듭이 감긴 부분으로서 가닥을 결합시키고 뮤음으로써 매듭의 강함을 나타낸다. '손'은 매듭의 끝으로 술 같은 것, 옷고름으로 치면 옷고름 자락을 뜻한다.
'손'은 맺는 것과 반대로 푸는 쪽의 의미 작용이 있어서 아무리 복잡하게 매어진 것이라 해도 '손'은 다시 풀 수 있는 열쇠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몸'과 '손'이 대립항을 이루고 '코' 가 그 중간의 매개항을 이룬다. 이 세 개의 균형 속에서 매듭은 아름다운 구조를 갖게 되고 인간이 만나 서로 인연을 맺기도 하고 원을 풀기도 하는 운동을 한다.
운동은 모두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매듭은 그러한 운동과 그 궤적을 공간화하여 구조화한 것이다. 매듭은 끈의 문화로 상징되는 한국인의 마음을 시각화한 언어다.
우리 문화 박물지 중에서
이어령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