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적게 분비되고 쉽게 말라 생긴다는 안구 건조증이 염증 질환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인공눈물을 맹신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갈수록 늘어가는 안구 건조증에 관한 따끈따끈한 보고서.
-
뻑뻑함부터 검은 눈동자가 허는 극단적인 경우까지, 안구 건조증
콘택트렌즈 착용 경력 17년 차. 눈이 뻑뻑하기로는 모래알이 들어간 듯하고, 신경을 거슬리는 건조함은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렌즈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내가 안과를 찾은 것은 무리하게 렌즈를 착용하다 부작용이 생겨 검은 눈동자가 헐뻔했다는 무시무시한 진단을 받은 후배의 경험담을 들은 후였다. “여기에 턱을 올리고 이마를 대세요. 평소처럼 편안하게 계세요. 좋습니다. 이제 형광물질로 눈물층을 도포할 거예요. 아프지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서울대학교 병원 강남센터 안과 최혁진 교수는 끝이 오렌지색인 얇은 종이로 안구를 문질렀다(신기하게도 아무 느낌이 없다). 눈물층에 염료를 도포하기 위해 몇 차례 눈을 깜빡거린 후 파란 조명을 비추면 형광물질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 “처음에는 확대경을 통해 평상시 모습을 봅니다. 충혈 정도, 각막에 상처는 없는지, 눈 깜빡임은 안정적인지 등을 말이죠. 가령 본인도 모르게 눈을 꼭 감지 않는 이들이 있는데(특히 하드렌즈 착용자의 경우), 이런 경우 눈꺼풀 아래쪽에 상처가 있는 이들이 꽤 있죠. 또 지나치게 많이 깜빡이는 경우(정상은 1분에 10~15번)도 안구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구요. 그러고 나서 보다 면밀한 검사를 위해 형광 염료를 넣습니다. 여기 사진을 보세요. 연두색으로 염색된 부분이 보이죠. 상피세포가 일부 탈락한, 즉 상처가 생긴 부분만 염색이 돼서 확연히 드러나죠. 그리고 눈이 마르면 형광염료가 쫙 갈라지기 때문에(마치 안구에 번개 표시를 그려놓은 듯 보인다) 몇 초간 눈을 감지 않도록 하고 눈물막 파괴 시간을 측정합니다. 정상은 10초 이상, 그 이하면 의심군에 들어가는데 5초 이하일 경우에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마지막으로 눈물 양을 측정하는 종이를 눈에 꽂아서(이건 꽤 아프다) 5분 내10mm 이상 젖어드는지 확인합니다.” 문제는 본인이 느끼는 증상과 실제 안구 건조증 여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 중에 의외로 건강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증상이 없는데 안구 건조증으로 상피세포에 상처가 심한 이들도 있다. 결국 당신의 눈도 안전지대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면 당신도 위험군!
국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5년간(2005~2010년) 안구 건조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의 수는 매년 11.8% 늘어났고, 진료비는 14%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환자가 105만 명으로 남성 환자에 비해 약 2.2배가 많았고, 그 수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이는 라식, 라섹등의 시력 교정 수술 인구(각막을 절개하는 과정에서 눈물분비 신호를 보내는 신경이 손상되며, 이는 저절로 재생되지만 관리를 소홀이 할 경우 안구 건조증이 만성화될 수 있다)와 장기 렌즈 착용자(렌즈는 정상적인 눈물막 형성을 방해하고 눈물을 흡수해 안구를 쉽게 마르게 한다)의 증가, 환경 오염, 스트레스, 짙은 눈 화장 등의 문제점도 있지만 최근에는 무엇보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으로 쉴 새 없이 눈을 혹사시키는 생활습관이 치명적이다. CJ제일제당 눈건강 브랜드 아이시안의 조사결과(869명을 대상으로 한 달간 조사) 주부와 학생 등 일반인의 39%가 오후 9시 이후 가장 눈이 피로하다고 답변한 것과는 달리 직장인들(38%)은 오후 4시에 이미 눈의 피로도가 최고치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인들이 일반인에 비해 5시간이나 빨리 눈이 지치는 이유는 지속적인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이 원인으로 지적됐으며, 실제 응답자들도 ‘언제 눈의 피로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가’란 질문에 ‘컴퓨터를 사용할 때’(68%)라고 답했다. 앞으로 IT 기기 사용은 늘면 늘었지 줄어들 일이 없으니 안구 건조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안구 건조증은 불치병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최혁진 교수는 아직까지 눈물을 정상적으로 생성시키는 약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주변 습도를 60%로 유지시키는 것. 둘째, 눈꺼풀 위생입니다. 여자들이 아이라인을 그리는 그곳을 살짝 뒤집어 보면 하얀 테가 보이는데 이곳에 기름샘의 출구들이 위치합니다. 이 기름샘의 기능 저하는 안구 건조증의 아주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폐경기 여자들 중 60% 이상이 안구 건조증으로 고생하는 것도 호르몬 변화로 인해 바로 이 기름샘 기능이 저하됐기 때문). 유분이 적절하게 안구에 공급돼야 윤활제 역할도 하고 눈물도 쉽게 마르지 않게 해주니까요. 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눈꺼풀을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묽게 희석시킨 베이비 샴푸를 솜에 묻혀 기름샘(하얀테)을 문질러줬는데, 요즘은 ‘블레파졸’ 등의 전용제품을 약국에서 판매합니다. 또 눈이 건조할 때는 따뜻한 찜질을 하고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세요. 이발소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팀 타월을 얼굴에 올려주면 모공이 넓어지면서 기름이 쫙 나오고 뽀얗게 되잖아요. 눈도 마찬가지랍니다.”
인공눈물로 뻑뻑한 안구의 자극을 줄여주는 것도 대표적인 치료법. 그러나 생리식염수로 눈을 씻어내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첫째, 눈물은 단순한 짠물이 아니다. 눈물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 신이 선물한 훌륭한 방어개제다. 눈물은 온갖 균을 억제하는 항염 성분, 상처가 났을 때 치료를 해주는 성장인자와 재생 성분까지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그런데 눈에 식염수를 부으면 생체적 농도는 맞아도 이런 유용한 성분을 모조리 쓸어내버리는 셈. 그나마 식염수보다는 인공눈물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데,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살 수 있는 일상용품이라고 안전성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이 또한 방부제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과용은 금물. 하루 4~6회 이상 사용하면 보조 성분이 안구에 쌓여 더 뻑뻑하고 건조함을 느낄 수 있으니, 횟수를 제한하고 가능한 방부제가 들어 있지 않은 1회용 제품을 사용하자. 또 히알루론산나트륨 성분의 인공눈물을 과용하게 되면 각막 부작용과 안검염 등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유럽에서는 이 성분의 인공눈물을 무분별하게 사용했다가 각막 표면에 석회화가 일어나 각막이식을 받은 환자들도 속출했다. 사실 최적의 인공눈물은 자신의 혈액에서 분리해낸 자가혈눈물이다. 큰 병원에서 라식, 라섹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사용해본 경험이 있을 텐데 자가혈에서 혈청을 분리해 만든 인공눈물이 자신의 눈물과 가장 흡사하다.
안구 건조증은 염증 질환이다
그렇지만 안구 건조증은 인공눈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까지는 안구 건조증(건선안)은 눈물이 부족하거나 빠르게 마르는 현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최근 연구결과 만성적인 자극으로 인해 생기는 염증성 질환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건조한 눈에 지속적인 자극이 가해지면서 안구 표면이 손상되어 염증 반응이 야기되고, 이를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감지해 사이토카인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면서 눈물샘 기능을 저하시키고, 눈물의 양과 질이 떨어지는 것(안구 건조증이 생기면 눈물 속 성분이 바뀌면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못한다). 그래서 최근 안구 건조증 치료는 부족한 눈물을 대체 할 윤활유제를 넣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염증을 완화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11월 대한안과학회 산하 한국외안부학회 각막질환연구회는 최초로 ‘한국인에 맞춘 안구 건조증 진단 및 치료지침’을 발표했는데, 여기서도 증상의 심하기에 따라 항알레르기제, 항염제 등을 함께 처방하도록 하고 있다. “소염제, 스테로이드, 항염제, 사이클로스 계통을 처방하고, 증상이 심해지면 유일한 안구 건조증 치료제로 알려진(FDA 승인) ‘레스타시스’로 염증을 줄입니다.” 엘러간 사에서 개발한 ‘레스타시스’는 사이토카인을 억제해 눈물분비를 활성화시켜주는데, 지난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실리 아이센터가 미국굴절교정학회지(JR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라식 수술 후 사이클로스포린을 꾸준히 눈에 넣은 환자들이 인공눈물을 넣은 환자들보다 정상시력(1.0)을 회복하는 비율이 높고 회복 속도도 빨랐다. 그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눈물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눈물샘을 막기도 하고, 치료용 콘택트렌즈를 끼거나, 극심한 경우 눈꺼풀을 잠시 봉합하기도 한다.
안구 건조증 자가진단
1~2개에 해당하면 경증 안구 건조증, 3~4개면 중간 등급, 5개 이상이면 중증의 안구 건조증이다.
● 항상 빛에 민감한 편이다.
● 늘 모래가 들어간 느낌이 든다.
● 항상 통증이 있거나 따끔거린다.
● 시야가 흐린 적이 많다.
● 독서를 하는 데 지장이 있다.
● TV 시청을 하는데 지장이 있다.
● 바람이 부는 날엔 불편함을 느낀다.
● 건조한 곳에서 불편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