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다자이 오사무가 마감에 쫓길 때

[누구도]

북클럽] 다자이 오사무가 마감에 쫓길 때

곽아람 기자
입력 2023.07.04. 00:00
북클럽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200


“마감 앞두고 도무지 글이 안 써진다는 내용으로 원고 보내는 저자, 정말 싫어요.”

얼마전 출판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편집자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성의하다는 이유에서였죠.

‘아, 원고를 받는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송고하는 입장에서는 마감은 코앞인데 도무지 영감은 떠오르지 않고, 그러다보면

‘이 상황도 글감이 되지 않을까, 될 거야, 되어야 해’ 스스로를 설득하게 되고,

결국 현재의 심경으로 원고지를 채우게 되고, 그러다보면 또 그럴싸한 글이 나오기도 하고…. 설마, 아닐까요?

일본 소설가들의 서재 이야기를 엮은 책, '작가의 서재'./정은문고
일본 소설가들의 서재 이야기를 엮은 책, '작가의 서재'./정은문고
나는 사실 부끄럽다. 고뇌고 나발이고 다 없다. 왜 안 쓰는데? 실은 몸이 좀 안 좋아서, 라고 궁지에 몰려 눈을 내리뜨고 가련하게 고백하곤 해도 하루에 골든 배트 담배를 쉰 개비 이상 피우고 술은 마셨다 하면 보통 한 되 정돈 거뜬해서 입가심으로 오차즈케를 세 공기나 먹어치우는 병자가 어디 있겠나. 요컨대 게으른 인간이다. 언제까지고 이래서는 도저히 가망이 없다. 이렇게 결론지으면 괴롭지만 더는 자신의 응석을 받아줘서는 안 된다.
일본 작가들이 서재를 주제로 쓴 글을 엮은 ‘작가의 서재’(정은문고)에서 읽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는 다자이 오사무.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그는 1939년 4월 잡지 ‘문예’에 실은 산문 ‘나태라는 가루타(carta)’에서

글이 써지지 않아 책상 머리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심경을 절절히 털어놓습니다.

괴로움이니 고매니 순결이니 순수니, 이제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써라. (…) 노동하지 않는 자에게는 권리가 없다. 인간 실격, 당연한 일이다.
마감에 쫓기다 궁여지책으로 쓴 것이 분명한 이 글은 그렇지만 꽤나 근사합니다.

하긴, 다자이 오사무니까요. 결국 ‘뭘’ 쓰는가가 아니라, ‘잘’ 쓰는가가 중요한 거겠죠. 곽아람 Books 팀장

북클럽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200

#북클럽
#뉴스레터
곽아람 기자
곽아람 기자
문화부 Books 팀장
기사 전체보기

많이 본 뉴스
‘文 비판’ 앵커 발언, 다시보기서 삭제한 KBS... 30시간만에 돌려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행복은 신기루,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 덮고 살아야" 85세 정신과의사 이근후
[함영준의 마음PT] 성공회 원로 주교가 하는 ‘모닝 루틴’


100자평2
도움말삭제기준
100자평을 입력해주세요.
찬성순반대순관심순최신순
좌익아웃
2023.07.04 16:22:33
이 글도 안 써지는 걸 억지로 쓴 거 같은데요. 그냥 남의 글을 옮겨놓기만 했을 뿐입니다. 작자의 글은 별로 없어요.

답글작성
2
0
오병이어
2023.07.04 06:45:59
나오지 않는 글을 쥐어짜는 고통을 이해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 책상 앞에서가 아닌 책상 밖으로 나오면 쉽게 풀릴 듯...

답글작성
1
0


많이 본 뉴스
1
김진표 “윤대통령 어려운 결단…한일관계 회복 잘한 일”
2
천성산 땐 도롱뇽... 민변, 이번엔 고래 앞세워 오염수 헌법소원
3
‘北 찬양 교육’ 해직 교사 4명 특채… 김석준 前 부산교육감 감사원 고발
4
IAEA “日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기준 부합, 방류 문제 없다”
5
러, 흑해 전함들에 검정 페인트 칠… 2차대전 위장술 다시 꺼낸 이유
6
이재명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단 낫다”
7
다시보기 삭제당한 박민식 장관 “KBS, 아직까지 해명도 없다”
8
추미애, 이번엔 이낙연 저격 “재보선 때 사퇴 요구해선 안 됐다”
9
“망치 난동? 테이저건 갑니다” 경찰이 공개한 사건 영상에는...
10
이재명이 여론에 밀려 매각한 방산주… 그후 9개월 수익률 22%, 54%



오피니언
정치
국제
사회
경제
스포츠
연예
문화·
라이프
조선
멤버스
DB조선
조선일보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개인정보처리방침
앱설치(aos)
사이트맵
C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