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과 우리말 / 서울 용산
용산과 미르(龍)
용의 옛말 미르(미르)가 사라져
용(龍)을 뜻하는 순우리말이 미르이다. 그래서 용이 사는 냇물이라는 뜻의 용천(龍川)을 미리내(은하수)라 한다. 미리내라는 땅이름을 가진 곳도 있다.
지금의 도로명 개편 이전에 인천광역시 용동에 '미르로'라는 도로 이름이 있었다. 용동의 용(龍)이 미르이기 때문이다.
한미르(hanmir)라는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케이티(KT)가 인터넷 사업으로 처음 서비스한 검색·포털 사이트 이름이다. 이 사이트는 나중에 파란닷컴으로 개편되며 사라졌다.
그런데, 용의 옛말인 이 이름은 지금은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냥 한자말 그대로 ‘용’이라고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미르’가 용의 옛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미르와 미리. 이 두 낱말만 가지고 그 뿌리말을 알아보니 ‘밀’이다.
미르=밀+(으) >밀으 >미르
미리=밀+(이) >밀이 >미리
<훈몽자회>라는 문헌에 보면 용이 옛말로 ‘미르’이다. 그리고 <아언각비> 문헌에는 ‘미리’로 나온다.
용두산(龍頭山), 용마산(龍馬山), 용문산(龍門山), 용화산(龍華山) 등 용(龍)자가 들어간 산이 적지 않게 보인다. 이러한 산들은 산세가 용의 형국이거나 용과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더러는 영(嶺)의 오발음에서 나온 것도 있고, '물'의 연철인 '무르', 꼭대기의 뜻인 '모루'(마루)가 용의 옛말인 '미르'로 오역되어 '용'(龍)자가 취해진 것도 있다.
용은 미르, 미리로 불려왔지만, 한자말인 용을 익혀 써온 탓인지 옛 문헌에 '미르'가 많이 보이지 않고, 땅이름에 있어서도 이의 음역(音譯)이 별로 없다.
'미르룡'(용) <訓蒙子會> 상20 , <石峰壬子文>
'미르진'(辰) <訓蒙子會> 상.1
辰字註'我東方言評龍爲彌里 <頤齋遺稿> 二五.24
(우리의 동쪽 지방 말로는 용을 미리라 한다.)
'龍-무두리' <同文> 하.40
’龍王-무두리한' <同文> 하.11
'muduri-龍'<滿和> P314 '訓門爲久 오래門詰龍爲豫...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추화'(推火: 경남 밀양)라는 지명이 '용'과 관련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있다. 즉 추화 고을 봉성사(奉聖寺) 근처에 있는 산이름이 견선(犬城)의 원래 이름일 수 있는데, 그 산이 바로 '추화' 즉 '밀부리'(밀벌, 밀불)일 것이고, 이것은 용산(龍山), 용봉(龍峰/ 미르부리)의 뜻일 것이라는 점이다.
전국에는 용(龍)자가 들어간 지명이 무척 많다.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읍/면 이상의 행정 지명에서 동물 이름이 들어간 것 중에는 '용'자가 들어간 것이 가장 많다.
용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상상의 동물로 알려져 왔다. 뿔 달린 머리, 비늘로 덮인 뱀 모양의 몸통,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4개의 다리, 내, 강, 호수, 바다 등지에 살며, 춘분 때 하늘로 올라 추분 때 땅으로 내려오는데, 자유로이 공중을 날아 구름과 비를 몰아 풍운 조화를 부린다고 전해 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가 되며, 유럽, 인도 등에서도 신비적이고 민속적인 신앙-숭배의 대상이 된다. 또 불교에서는 사천왕(四天王)의 하나이다. 범과 더불어 동남풍을 가리켜 가운을 이끄는 상서러운 동물로도 생각해 오고 있다.
우리의 낱말 중에도 '거룩한', '높음', '어짊'의 뜻으로 '용'을 취한 것이 많다. 특히 천자(天子)에 관한 것에 이 글자를 많이 취하고 있다. 용안(龍顔: 얼굴), 용루(龍淚: 눈물), 용포(龍袍: 의복), 용궐(龍闕:궁궐), 용상(龍床: 의자), 용거(龍車: 수레), 용가(龍駕: 수레), 용주(龍舟: 배) 등이 그 예이다. 임금의 덕을 용덕(龍德)이라 하고, 지위를 용위(龍位), 은혜나 덕을 용광(龍光)이라고 한다.
천자의 위광을 빌어 자기 몸을 도사리는 악행을 할 때, 곤룡(袞龍)의 소매에 숨는다고 하며, 입신출세의 관문을 용이 되어 오른다 해서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용 가는데 구름간다', '용 못 된 이무기', '용이 만난 듯'과 같은 속담도 있다. 미천한 집안에서 큰 인물이 나면 '개천에 용 났다'고도 한다. 용은 이처럼 성수(聖獸)로 알려지고, 길상(吉詳)의 상징으로 신성시되어 국가적인 여러 설화를 만들어냈다. 용은 봉황과 더불어 민간 신앙의 하나인 풍수 사상을 나타낸다고 여겨져 지형이 용의 형국인 곳은 평안과 부귀영화가 깃든다 해서, 성(城)자리, 묘자리로 써서 복을 빌었다. 고려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천안의 왕자산에 주둔할 때 이곳의 땅모양이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이라는 윤계방(尹繼芳)의 말을 듣고 성을 쌓아 천안도독부를 두어 군사 훈련을 해서 후삼국을 통일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울의 용산
서울에는 용산(龍山)이라고 하는 산이 있다. 용산(龍山)이란 산은 지금의 용산구 원효로4가, 산천동와 마포구 도화동, 마포동 사이에 있는 산이다.
그러나 용산이 산(山)이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선 산처럼 보이진 않고 하나의 언덕으로 보인다.
집들이 들어서기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용산 남쪽 산비탈과 그 북쪽 언덕으로는 나무들만 없을 뿐이지 용산의 형상은 거의 제대로 나와 있었다. 만약, 그 집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나무들을 심고 찢겨 나간 언덕 일부를 옛날 모양대로 복원했더라면 용산의 산모양은 옛날처럼 제대로 살아나 한강 경치를 즐길 좋은 명승지가 되어 관광 장소로도 크게 발돋움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치가 좋았던 그 용산 산억덕은 일제 강점기 이후 무방비로 서서히 무허가 주택들로 덮여 가더니 지금은 산자락을 가득 메운 아파트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차 완전히 산머리를 가리고 말았다.
이 산이 그 유명한 옛날의 용산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산천동 언덕이나 원효로4가의 강가 언덕 정도로나 알고 있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 초기만 하더라도 이 산과 그 일대를 거의 모두 ‘용산’으로 불렀다. 그렇던 용산은 뒤에 한강로쪽에 용산역이 생기고 그 곳이 상권 지역으로 발달해 가면서 용산이란 이름은 차츰 그쪽으로 옮겨가 버렸다. 본래의 용산 지역과 새로운 용산 지역이 생기면서 구용산(舊龍山)이니 신용산(新龍山)이니 하는 이름으로 구분지어 말해 오기도 했다.
요즘에 와서는 ‘용산’이라 하면 대개 용산역을 중심으로 하는, 이 주위의 너른 지역을 우선 떠올린다. 그래서 용산에 산다고 하면 지금의 원효로4가쪽이 아닌 신용산, 즉 한강로 일대의 어디쯤 사는 것으로 알게끔 되어 버렸다.
경치가 좋았던 '용산'이란 산은 이제 우성아파트, 현대아파트, 삼성파트 등 아파트군에 묻혀 그 옛날의 정취를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원래의 용산이었음을 용산성당과 그 아래 용산신학교 자리가 용산의 원터였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미리미, 미리메(미르뫼) 등의 이름은 용산이란 이름의 토박이 땅이름인데, 전국 여러 곳에 이런 이름이 있다.
2022년, 대통령 집무실이 서울 용산으로 옮겨지면서 그 집무실 이름을 국민들로부터 응모를 받았는데, 그 응모작 중에는 ‘용’의 뜻이 들어간 ‘미르’라는 이름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예부터 용이 임금을 상징하여 국민의 대표가 옛날로 치면 왕이어서 이 이름을 생각한 사람이 많았던 것이고, 더구나 그 집무실의 위치가 용산이어서 많은 사람이 미르를 생각했을 것이다.
경기도 안성의 미리내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가면 한국 천주교회의 사적지인 미리내성지가 있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묻혀 있는 성지로, 천주교 성지라면 거의 아는 곳이다.
성지의 이름인 '미리내'는 순우리말로 은하수라는 뜻이라는 것은 다 안다. 그러나 정작 그 이름이 왜 나왔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리내는 이 지역의 토박이 땅이름이다. 마을 이름도 미리내이고 골짜기 이름도 미리내이다. 미리내라는 이름은 이곳을 흐르는 내(하천) 이름 때문에 나왔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의 이름 유래가 적혀 내려오고 있다. 역시 용문산이니 용(龍)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용이 드나드는 산", "용이 머무는 산"
용문산의 원래 이름은 미지산이라고 전해 온다.
‘미지’는 미리의 옛 형태이고 미리는 경상과 제주지방의 ‘용’의 방언이며 ‘용’의 옛말인 ‘미르’와도 용문이 비슷하여 ‘용’과 관련이 있다. 즉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뜻에서 별 차이가 없으며 언제부터 ‘미지산’에서 ‘용문산’으로 바뀌어 불렀는지 정확치 않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용이 몸에 날개를 달고 드나는 산이라 하여 ‘용문산’이라고 칭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떻든 용의 옛말이 ‘미르’나 ‘미리’인데, 이 말이 아직 입에 쉽게 올려지지 않음은 아쉬운 대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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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말
-미르(미리); 경상도와 제주도의 방언
* 친척 땅이름
-미리머리(용게.龍溪). 대전시 유성구 용계동
-미리목(용항.龍項). 강원 평창군 평창읍 용항리
-미리미(용산.龍山). 대전 서구 용촌동
2022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