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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성공자가 되기 위한 조건
마가복음 4:8~9, 20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얼마 전 히말라야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가운데 한 사람인 엄홍길 대장과 그의 둘도 없는 후배인 박무택이라는 사람과의 관계를 그린 영화입니다. 박무택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 도중 설맹(snow blindness, 雪盲)으로 조난을 당해 바위에 매달려 얼음이 된 채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엄홍길 대장은 박무택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2005년 휴먼원정대를 꾸려 해발 8,750m 에베레스트 데스존으로 산악 역사상 시도된 적 없는 등반에 나섰습니다. 무수한 죽음의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 시신을 찾아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주검을 거두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도 이럴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공의 정상을 오르는 데 큰 노력과 위험이 있게 마련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희생도 따를 수 있습니다. 평탄한 성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오르고 또 올랐지만, 정상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오르면 내려올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성공이 꼭 행복으로 이어질 수는 없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나라의 TV뿐 아니라 여러 SNS를 통하여 성공시대, 성공 신호, 성공의 비결, 성공해야 할 이유 등과 같은 제목하에 성공에 관한 관심을 이끄는 프로그램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책도 예외는 아닙니다. 자기 계발서나 읽기만 해도 성공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성공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인 부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의하여 얼굴에서는 여유로운 미소들이 사라졌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점차 스트레스의 지수는 높아가고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공이란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이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가 암 투병 중에 써 내려간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라는 책에서 그는 삶의 목적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적인 기준에서 성공은 이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성공의 인식이기도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이 이뤄지는 것이 성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이뤄진 성공이라도 세상의 공격을 받으면 쉽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내 판단으로 성공했다 실패하였다고 결론 짓는 것이 아닌 내게 생명 주신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인이시며 내 인생의 결론을 평가하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추켜세우고 나 자신도 성공적인 삶이라 여겼어도 하나님의 실패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다른 사람들 역시 실패자라고 낙인을 찍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이 성공자라고 하시면 그 사람은 영원한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눅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쉬운 말 성경에서는 “당신들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의로운 체하고 있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의 깊은 속마음을 다 알고 계신다오. 사람들에게서 높임을 받는 것들이 하나님 눈에는 가증스럽게 여겨진다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높임을 받으려는 노력이 하나님의 눈에는 가증한 위선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내 인생의 결산은 나도 아니고 다른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분의 뜻을 두시고 세상의 시간의 흐름에서 이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타난 핵심 주제입니다. 막 4: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뿌려진 씨는 완벽한 좋은 씨입니다. 이 씨의 속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NIV에서는 “Still other seed fell on good soil. It came up, grew and produced a crop, some multiplying thirty, some sixty, some a hundred times.” 라고 하였는데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려면 반드시 땅속에서 껍데기를 깨고 썩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씨가 되고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성도 각 사람의 마음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돌아가셨다는 것은 우리와 다시 살리심을 받기 위함입니다. 이 목적과 뜻이 ‘It came up’ ‘나타나다, 이르게 되었다.’라는 말씀에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역할은 좋은 씨로 우리 안에 뿌려졌고 우리는 그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 즉, 하나님의 뜻이 이루는 것이 영원한 성공입니다. 세상의 성공은 신기루 같아서 잡은 것 같았는데 사라질 것뿐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그 말씀이 성취되어 얻게 되는 성공은 영원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성공에 이르게 되는 3가지 조건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사랑을 표현하는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둘째는 낮아짐을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셋째는 날마다 새롭게 하는 마음입니다.
첫째로 영원한 성공을 거두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사랑을 표현하는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무성하여 결실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땅’은 영어로 ‘good soil’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좋은’이란 단어는 헬라어에서 ‘칼로스’(καλός)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에 드는, 매력적인, 사랑스러운’이란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내려 그 안에서 성취하는 사람입니다. ‘좋은’이란 단어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시시며 창 1:3 ,4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할 때 ‘좋았더라’의 단어를 ‘토브 טוֹב’ 라고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뜻한 대로 이뤄질 때 ‘즐겁고 유쾌한’ 감정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 안에 말씀이 담긴 것을 성취하십니다. 막 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들으라’는 명령어는 단순히 귀로 듣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하는 것과 복종하는 행위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 1:2에서 복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기를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나타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행 13:22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면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하였을까요?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가 블레셋의 거인 장수를 물맷돌 다섯 개로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주의 말씀으로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의 기준점이 다윗이 될 정도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상 9: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표현하는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마음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표현할 때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사랑한다는 것은 반쪽짜리 사랑에 불과합니다. 사랑은 표현하고 행동할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하였고,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찬송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무엘하 6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옮기도록 하였습니다. 궤를 옮기면서 큰 축제를 벌였고 다윗도 왕관과 왕복을 벗어버리고 군중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며 노래하였습니다. 삼하 6: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노래 부르며 수금 치며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이런 다윗의 마음을 받으시고 그에게 약속의 말씀을 심어 영원한 언약의 상징이 된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계보를 통하여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영원한 성공을 이루는 조건에서 낮아짐을 기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세상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끔찍한 실패자로 낙인찍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쁜 아내를 얻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녀와 더불어 행복한 가정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극악한 죄인을 다스리는 십자가에서 대낮에 벌거벗겨진 수치와 모진 채찍을 맞으시고 양손과 양발에는 대못에 박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게는 세상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승리자로 우뚝 세움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뚫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살림을 받으시고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이 가지셨고 모든 영적 존재와 피조물의 으뜸이 되시는 분으로 세움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성공자로 세움을 받으셨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낮아짐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빌 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인간으로 오셨고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습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무엇이 못나서 나는 이 모양인가 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었거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 여러 사람의 흠모를 받다가 미끄러져 초라한 신세가 되고 나면 견딜 수 없는 좌절감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눅 14: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스스로 높은 자리를 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낮아짐의 자리는 영원한 성공자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결코,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낮은 자리에 기꺼이 앉으셔서 모든 것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자리 천한 자리에서 나를 영원한 보좌에 높이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 영원한 성공입니다. 이 성공은 마음이 겸손하여 낮은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이뤄지는 축복임을 명심하십시오!
세 번째 영원한 성공을 거두는 조건은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과거의 마음을 돌이키고 새롭게 하라는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의 외침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에 가졌던 악한 마음에서 돌이켜 새롭게 변화되도록 권고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은 땅을 기경한다는 것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농부들이 쟁기를 가지고 굳어 있는 땅을 뒤엎어 놓습니다. 땅에 깔린 돌들을 제거하고 흙을 부드럽게 하여 그 가운데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날마다 하나님 말씀의 거울에 비춰서 잘못된 부분은 무엇인지를 살피고 돌이키는 회개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좋은 땅이 되어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내리시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성취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막 4: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리고 좋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거두는 결실의 양이 다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라도 수 없는 비바람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때로는 짐승들에 의하여 밟힐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여야 합니다. 그 은혜를 구하는 것이 좋은 열매를 맺는 비결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부지런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 심긴 하나님 말씀의 씨앗이 자라 결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다윗과 같이 말씀으로 새롭게 되며 찬송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자세와 열심에 따라 차등으로 결실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결실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림의 분량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영원한 나라에서 얻게 될 부활의 몸을 입는 영혼에게 주어진 영광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함을 믿고 땅에서 없어지고 썩어질 것이 아닌 영원한 성공을 거두기를 힘써 일할 때 어떤 이에게는 삼십 배로, 어떤 이에게는 육십 배로 그리고 백배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하였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성취되는 것이 영원한 성공을 이루는 비결입니다.
말씀으로 거둬진 결실은 영원히 변함없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성공자로 세움을 받기를 소원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부지런히 감사와 찬송을 게을리하지 말고 낮아짐을 오히려 기뻐하며 소망 중에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의 진리로 새롭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