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신발 끈을 풀 때가 아닙니다"
에베소서 6장 10-20절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에서 출항해
미국 뉴욕에 도착 할 예정이었던
거대한 배가 있었습니다.
출항 당시 선원은 총 2,223명이었습니다.
이 배에는 체육관, 수영장, 호화로운 시설 등을 갖춘
최대 규모의 여객선이었습니다.
순조로울 것만 같았던 이 배가
위험을 만난 건 출반한 지 4일 만인
4월 14일 밤 11시 39분이었습니다.
항해사는 전방에서 높이 20미터의
거대한 빙산이 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모든 엔진을 ‘후진’으로 바꿔놓고
배를 좌현으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맙니다.
거대한 빙산이 배의 오른쪽을 때렸습니다.
결국 이 배는 차가운 바다로 가라 앉고 맙니다.
바로 타이타닉 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극 지방에 떠다니는 빙산을 보면
그 거대한 크기에 입을 쩍 벌린다.
그런데 이건 전체 빙하 면적에
10%정도에 불과하답니다.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나머지 90%는 수면 아래에 존재합니다.
수면 아래에 있는 빙하가 훨씬 더 크죠.
이처럼 영적인 세계도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큽니다.
지난 2년 넘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난리였습니다.
사회, 경제, 교육,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IMF보다 더 큰 위험이
우리에게 찾아왔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나요?
눈에 보이는 문제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작은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현미경으로 봐야 보이는
작은 바이러스가 이렇게 만드는데
하물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는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까요?
이처럼 우니는 무엇보다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세상에나.
우리가 이제껏 싸워왔던 모든 싸움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혈과 육은 눈에 보입니다.
피가 나면 붉은 게 보입니다.
몸이 안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보입니다.
즉, 우리는 사람을 상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혈과 육을 가진 인간과의 싸움이
우리의 전쟁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통치자,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 자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다가올
유월절이 기대되었습니다.
얼마 후면 우리 선생님 예수께서
왕의 자리에 오르실 것이고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에 대해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장판이 된 상황 가운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3:2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제자들은 깜짝 놀란다.
요한은 그게 누군지 묻습니다.
예수께서는
“떡 한 조각을 주는 자가 그니라”라고 하시며
가룟 유다에게 그걸 주십니다.
바로 그때,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이 가룟 유다를 조정하러 간 것입니다.
사탄이 가룟 유다 마음에 들어가서
뭘 했습니까?
자신이 모시던 선생님이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팔아버렸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가 뭘까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 것 때문인가요?
예수님이 자기를 덜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
바로 사탄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곁에 제자로 있던
유다도 사탄에게 당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깨어 있어야 할까요?
나는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의 싸움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이걸 깨닫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실패와 좌절에 억눌리게 만듭니다.
세상의 성공에 목이 마르게 합니다.
왜 예수를 믿으면서도
돈의 유혹을 넘어서지 못하나요?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인지(仁智)부족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적인 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원래 사탄의 종노릇 하던 자들입니다.
사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노예를 빼앗긴 거다.
하루아침에 대적인 예수에게 빼앗겼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다시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온갖 포화를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사업에 실패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
건강이 나빠지기도 합니다.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인 전쟁 중입니다.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들이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 경험이 있습니다.
어릴 적 옆집엔 영두 형네가 살았습니다.
나이가 비슷해서 어릴 때 자주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형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신도시로 이사 간 것입니다.
그 후 옆집엔 다른 사람이 이사 왔습니다.
점을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집 문에 절 표시를 크게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학교나 교회를 다녀오면서 옆집 절 표시를 보면
이상하게 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처음엔 그냥 두통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어머니께 알렸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시는 어머니께서는
이게 영적인 것임을 바로 알아차리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며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걸 봐도 머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기도가 더 세었던지
옆집은 멀리 이사 갔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이런 일이 왜 생겨야 했을까요?
지금은 압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세계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그 사람을 보내셨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영적인 것이 아닌 게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영적인 세계 안에서
육적인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분보다 큰 것이 있나요?
없습니다.
주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령을 우리에게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영적인 존재입니다.
또한 천사와 사탄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영적인 세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누구보다
영적인 세계에 능통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끌림 속에서
삼중천도 다녀왔습니다.
그가 회심했을 때도
육적인 예수님을 만난 게 아니라
영적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또한 그는 수없이 많은 환난과 고통 중에서
영적인 힘들을 경험했습니다.
반면 사탄은 끊임없이 그를 공격했습니다.
사람들을 선동해서 죽이려고 했고,
감옥에도 집어넣었습니다.
풍랑도 만나서 죽을 위기를
여러 번 겪게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탄의 계략에 넘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영적인 경험을 토대로
영적인 승리를 위한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영적인 세계가 실재한다는 게 믿어지나요?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사탄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닙니다.
영적인 상대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적을 육적인 힘으로 이기려는 것은
마치 투명 인간과 싸우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10절입니다.
에베소서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영적인 힘은 어디서부터 올까요?
열심히 운동장 뛰면 영적인 힘이 생기나요?
건강식품을 잘 챙겨 먹으면
영적인 능력을 겸비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주 안에서’ 강해집니다.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포도나무 비유가 등장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지이기에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잘 붙어 있는 건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걸 말합니다.
예수님과 친해져야 합니다.
주님과 친해지면 그 안에서 영양분을 먹습니다.
말씀의 양식, 기도의 물줄기가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으면
사탄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맙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일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친밀해져야 합니다.
그게 주 안에서 강건해지는 비결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친밀해 짐으로
주 안에서 강건해지길 축복합니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11절을 읽어봅시다.
에베소서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여기서 “간계”란 말은
“비밀스러운 계획”, “간사한 계획”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드러내 놓고 우리를 넘어뜨리지 않습니다.
앞에 “장애물 주의”라는 간판을 크게 붙여 놓고
우리를 그리로 오라고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보이지 않는 함정에 빠뜨리는데 능합니다.
그래서 그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대적하기 위해서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바울은 13절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에베소서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설명은
14절부터 17절까지 이렇게 나왔습니다.
에베소서 6:14-17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바울이 에베소서를 쓸 당시는 감금 상태였습니다.
그는 주변에서 그를 지키고 있던
로마 군인들을 보면서 글을 썼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 군인은 세계 최고였기에
그들의 무장 상태 역시 최고였습니다.
육적인 전쟁을 위해 이렇게 무장을 하는데,
하물며 더 치열한 영적인 전투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예전에 청년부 성경 공부를 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게임을 해본적 있지?
레벨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는 열심히 시간을 써가며
레벨을 올리는 방법이 있지.
또 다른 하나는 현금 결제(현질)를 해서
아이템을 사는 것이지.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당연히 아이템으로 게임을 가는 거지.
이걸 사면 게임이 달라지잖아.
혼자 힘으로 하면 한계가 있던 게임이었는데
아이템을 사면 게임이 정말 쉬워지지.
이걸 흔히 ‘템빨’이라고 하잖아?
영적인 원리도 이와 비슷해.
우리에겐 예수의 피 값으로 지불한
성령의 전신갑주가 있어.
이걸 입어야 인생이 쉬워지는 거야.“
우리가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면 지칩니다.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는 건 뭘까요?
결국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게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고,
이미 주신 승리를 내 것으로
확신하며 살아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으로 가득 찬 사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귀의 공격에도 끄떡없습니다.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내 안에 사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문제, 자녀에 대한 걱정,
경제적인 부분,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주님으로 충만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으로 충만한 삶은
어떻게 살 수 있나요?
기도가 답입니다.
본문 18절을 읽어보자.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여기에 보면 ‘기도, 간구, 구하라’는 말이
반복해서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반복은 강조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려면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와 같습니다.
먼저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호흡을 멈추고 15분만 있어도 요단강 건넙니다.
하물며 영적인 호흡은 어떤가요?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호흡은 멈춥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으니 점점 힘은 빠지고
나중에 죽은 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죠.
반대로 숨을 제대로 쉬는 곳에서는
기운이 달라집니다.
눈빛도 빛납니다.
기분이 상쾌합니다.
중고등학교 때면 방학이 기다려졌습니다.
놀러가기 위함이 아니라
수련회 가려고 그랬습니다.
수련회에 가면 재미있는 물놀이와 푸짐한 간식,
친구들과의 밤새 놀이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았던 건
기도회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숨쉬지 못했던 영혼이
완전한 회복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늦게까지 기도해도
다음날 완전히 회복됩니다.
영이 새로워지면 육신도 새로워집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제목이 ‘나를 위한 것’에서 그치지 말고
‘주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을 따라 간구하기에 응답이 빠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을 보면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 함께 베드로전서 5장 10절을 읽어보자.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고 굳건하고
온전케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값으로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좌절의 쓴맛을 통해 하나님을 의심하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구원의 복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전쟁터에서는 신발 끈을 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전쟁이 매일 벌어지는 현실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아직은 신발 끈을 풀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할 때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전신갑주로 무장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분께서 허락하신 전신갑주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듭니다.
끝까지 싸우십시오.
주 안에서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