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09-11-10 00:12 조회 : 1638 |
| | | 아내는 아직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들도 학교에서 오지 않아 텅 빈 방안에서 무료함을 달래던 중 청소를 하기로 했다. 평소 아내를 위해 특별히 해줄만한 것도 해줄 수 있는 능력도 없는 나로써 그 중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도 청소였다. 더구나 지금은 아내가 부재중이고 보면 기회도 좋았다. 나갈 때 몹시 서두른 듯 여기저기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어질러있고 식탁의 그릇들도 흩어져 있다.
청소기의 코드를 뽑아 전원에 꽂고 스위치를 누르면 청소기는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돌아간다. 집진기를 통해 빨려 들어가는 먼지들. 구석구석 빠진 곳 없이, 갔던 곳 되풀이하지 않기. 그러려면 바닥의 구획을 분명하게 그어야 한다. 모두가 그동안의 경험에서 오는 자신만의 원칙들이다.
가장 먼저 거실. 주방과 연결된 이곳은 이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기도 하려니와 손이 가야할 부분이 많은 곳이다. 바닥에 널려 있는 신문지들을 차곡차곡 쌓아 베란다 창고에 갖다 놓고 식탁의 의자들은 미리 식탁위로 옮겨놓아야 일하기가 쉽다. 뒤집어진 채로 던져져 있는 양말 조각은 세탁기에 넣고 엊저녁 먹고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맥주 캔은 두 손으로 납작하게 눌러 재활용품 용기에 담아 놓는다.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감촉. 발바닥의 느낌이 틀리다. 일하는 보람이 즉시즉시 나타나는 곳.
아내의 활동 공간인 주방에 들어서면 아내가 새삼 고맙고 존경스러워진다. 찬장 가득히 정돈된 갖가지 모양의 그릇과 기구들. 아내는 언제 저 많은 물건들을 장만하였을까? 남편의 쥐꼬리만한 봉급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소리없이 꾸려온 아내가 또 한번 기특해진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아내의 공로가 어디 그 뿐이랴. 지금의 이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된것도 따지고 보면 아내의 숨은 노력이었다. 아내는 시집 온지 20여 년 동안 어느 한 곳 적을 두고 직장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잠시 한 날, 한 순간도 집에서 손놓고 지낸적도 없다. 아내의 홈패션 기술과 조리사 자격증이 큰돈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니지만 아내의 규모 있는 살림 운영은 어느 샌가 우리 가까이 적지만 목돈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온 날 밤, 아니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잠에서 깨어 거실에 나와 앉아 정말 이곳이 우리 집인가 하는 생각에 기쁨과 흥분을 음미하며 밤을 밝히곤 했다.
아내는 헌신적이다. 가족들에게 하는 아내의 행동을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 막내아들에게 하던 것과 꼭 같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 밥상 앞에 앉은 어머니는 늘 그러셨다. `나는 생각이 없다고`
아이스크림이 아직 귀하던 시절, 아이들과 남편이 몫을 다투느라 분쟁이 일어나면 생전에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내는 일찌감치 `나는 생각이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분배의 대상에서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분배의 조건을 수월하게 만들어 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컵 자기 몫을 챙기기에 바쁜 철없는 남편과 자식들을 바라보며 아내는 생전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흐뭇한 미소를 보내곤 하는 것이었다.
거실과 주방이 끝나면 안방. 옷장과 침대 그리고 화장대가 놓여 있는 공간을 빼면 청소할 곳이라야 얼마 되지 않는 면적이다. 단조로운 방안 구조 때문일까. 필요이상으로 행복한 얼굴을 짓고 있는 액자 속의 아내가 방을 들어설 때마다 한눈에 들어오곤 하는데 그 때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몇 년 전 홍도에서 찍은 사진인데 분위기로만 봐서는 부부가 여행도 심심치 않게 다니는 것으로 보여지나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남편으로써 어디 한 번 마음 크게 다져먹고 선선히 아내 위해 나선 적이 있던가.
눈을 돌려 무심코 아내의 화장대를 본다. 알지 못하는 남자의 눈에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진열품이다. 두세 가지 밖에 안되는 물건들로 아내는 용케도 화장이란 걸 하고 다닌다. 마땅한 외출복 한 벌 없다고 벼르고 나간 쇼핑에서 자신의 옷 대신 남편의 겨울 잠바를 사들고 들어오는 아내이고 보면 그깟 얇디얇은 막 한 벌 얼굴에 덜 씌우면 어떠랴.
이제 청소도 바야흐로 종반으로 내닫기 시작한다. 안방과 마주한 딸아이의 방, 몹시 어수선하다. 긴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아빠의 눈을 생각지 못한 여자만의 은밀한 용품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 따라서 청소를 한 효과도 가장 확실하게 나타나는 곳이다.
아이는 요즘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다. 고3.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어려운 것이리라. 다행인 것은 아직껏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는 것이다. 제 엄마의 말을 빌리면 학교 성적만 받쳐주면 부족할 것이 없다는 아이였다. 한 가지 신경을 쓰게 하는 것은 금년에 소위 명문대학에 진학한 오빠와 비교되어 모든 일에 자신 없어 하는 아이가 더욱 기를 못 펴는 것은 아닐까하는 염려다.
한 때는 자기학교 사회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열병을 앓는가 하더니 농구선수 이상민, 교육 방송에 나오는 강사 선생님을 비롯해 그 대상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딸아이의 사춘기는 그렇게 넘어 가는구나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성격이 단순하고 겁이 많고 순진한 반면 작은 일에도 순간적으로 열을 잘 받는 아이를 보면 역시 피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아이였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피아노를 바라보며 딸아이가 건반을 두드려본 것이 언제쯤일까 더듬어본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피아노 학원의 권유로 아이가 콩클 대회에 참석했던 일이다. 그 때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히 우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무슨 사회단체의 이사장이자 명예박사의 이름으로 된 상장과 트로피를 안고 돌아올 때만 해도 우리 가족은 딸아이가 대단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줄 알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잘못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은 것 또한 다행이었다.
딸아이에 대한 잘못된 판단은 또 한가지가 있는데 네 살 때였을 것이다. 아이는 한글을 읽어낼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그날그날의 일기를 거뜬히 써내려 가는 것이었다. 한 살 위인 제 오빠가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 애를 태우게 하는데 비해 놀라운 현상이었다. 그만큼 영악스러웠던 아이의 변신을 바라보며 피아노 건반의 먼지를 닦아낸다. 인형을 안고 해맑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 초등학교 때의 딸아이의 사진을 바라보며 닥쳐올 험한 세상살이를 어떻게 견뎌낼까 안쓰러워진다.
딸아이의 방에서 시간이 지체되었다 싶어 서둘러 나온다. 이제 현관 옆의 아들의 방을 거치면 끝이다. 일주일에 한번, 아니면 한 주일 걸러 한번 내려와 하룻밤 머물다 가는 방이지만 아들의 체취는 방안 어느 곳에든지 배어있다. 책꽃이의 책들과 옷가지들마저 그대로 있어 비어있는 방으로 보이지 않는다. 입시 지옥에서 벗어난 것이 올 3월이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으려는 듯 녀석은 지금 이러저러한 모임에도 참가해야 되고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아 학교공부는 뒤로 미루어 놓은 낌새다.
녀석을 생각하면 어제나 마음이 뿌듯하다. 그리고 든든하다. 우선 키가 아빠보다 훨씬 크다. 단 1mm도 보태지 않고 정확하게 181cm다. 한때는 아이가 자라는 재미에 거실 벽 한 모퉁이에 눈금을 그어놓고 틈만 나면 녀석을 세우곤 했었다. 키 작은 제 아빠의 마음을 알기나 하듯 아이는 쑥쑥 자라주었다. 6,25때 먹지 못해 자라지 못한 이 아빠의 한을 마침내 네가 풀어주는구나 하는 마음에 전율했었다.
제 엄마가 이 아이를 가졌을 때를 생각하면 아내는 참으로 할 말이 많다. 만삭이 된 아내가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넌지시 지나가는 말로 했을 때 서른다섯 살 늦장가를 간 남편은 아이들처럼 웬 자장이냐고 무 자르듯 잘라버리니 아내는 그저 마른 침만 삼킬 수밖에 없었단다. 그러면서 자기 좋아하는 돈가스는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잘도 먹더라는 아내의 이야기는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두고두고 전해오는 전설이다. 이제는 그만 잊어주었으면 좋으련만 앞으로도 얼마나 더 이어져 내려갈지 죄를 지은 당사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였을까. 아기를 넘겨주던 간호사는 말했다. `아이가 겨우 미숙아를 면했으니까 신경 써서 키우셔야 될 거예요.` 다행히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네 살이 지나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침착하고 차분한 아이였다. 한 살 밑의 제 동생이 시골 동네의 한 가운데 있는 커다란 웅덩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녀석은 손을 내밀어 동생을 살려낸 아이다. 하마터면 시골생활 2년만에 두 아이를 다 잃을 뻔 했다고 둘이는 놀란 가슴을 얼마나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녀석을 위해 한 일이라면 고등학교 3년간 충실한 기사 노릇을 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차편이 닿질 않는 학교여서 등하교 길을 모두 태우고 다녀야 했는데 아침은 출근길이어서 괜찮았으나 밤12시가 지난 시각에 데리러 가야하는 하교 길은 고통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면 새벽 한시 두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다. 아이는 오가는 차안에서 토막 잠을 자곤 했다. 주어진 여건을 나름대로 이용하고 적응해 가는 방법이 신기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상위권에 들기는 했으나 앞서 나가지는 못하던 아이의 성적이 고등학교에서부터는 눈에 띄게 발전하더니 마침내 졸업 때까지 한 번도 전체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아내는 말한다. 남들이 평생 받을 효도를 우리는 이미 다 받은 것으로 치자고. 살아가면서 일이 뜻대로 안되고 짜증날 때 녀석을 생각하면 위안이 되곤 했다.
이제 청소기를 그만 거두어야 할 차례다. 전원에서 코드를 빼고 누름 단추를 눌러주면 길게 나왔던 줄은 힘차게 본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마위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딩동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려 모니터를 보니 아내다.
1998년 11월 作 |
| 임재문 | 09-11-10 01:34 |  | 뭐 일거 삼득이라는 말도 있는데, 도랑치고 가재잡고 청소하고 가족사를 다 돌아보셨습니다. 애절하게 들려오는 그 한마디 마디마다 정감이 일어납니다. 저도 아내를 위해 설겆이를 거들고는 합니다. 물론 청소도 하는데, 제 아내를 따라가려면 한참 애를 먹어야지요 ㅎㅎ 좋은 글 고맙습니다. | |
| | 강승택 | 09-11-10 06:54 |  | 한국수필 작가회에 처음 올린 저의 글에 가장 먼저 방문해주신 임재문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가정의 소중함인 것 같습니다. 남자가 부엌일이라면 할 일이 못되는 것으로 알았지만 이젠 우리네 의식도 많이 바뀌었지요? 임선생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세요~ | |
| | 임병식 | 09-11-10 09:17 |  | 강승택선생님
회원이 되심과 동시에 작품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작품에서 필력의 내공이 보통이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이글이 타문학지에 발표한 글이 아니면 제가 관계하는 수필계에 싣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실런지요. | |
| | 강승택 | 09-11-10 11:43 |  | 임병식 회장님, 감사합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씀,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
부족한 글, 실어주신다면 저야 더 없는 기쁨이지요. 관계하시는 책, 한 번 보고싶군요.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 |
| | 임병식 | 09-11-10 11:57 |  | 고맙습니다. 사무실에서 메일이 갈 겁니다. 주소를 알려주시면 가울호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 |
| | 최복희 | 09-11-10 14:52 |  | 잔잔하고 정감 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미소를 짓다가 코끝이 시큰하기도하고 가슴 쿵클한 감동도 오고, 행복하게 살아오신 가정사를 아주 잘 엮으셨네요. 지루함 없이 청소기 뒤따라가며 재미나게 읽었네요.ㅎㅎ 수필의 진미를 맛보았습니다. | |
| | 강승택 | 09-11-11 19:17 |  | 최복희 선생님,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격려말씀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가만 생각해보면 여자는 더욱 성숙해지는 반면 남자는 점점 어린애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저만의 생각일까요? 한국수필 작가회, 여성분들이 많으셔서 제 마음도 푸근하답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세요 | |
| | 박원명화 | 09-11-10 19:58 |  | 선생님의 잔잔한 글속에서 가족애의 자상함과 살뜰한 모습을 봅니다. 좋은 글 올려 주시고, 작가회 회원으로서의 첫 날개짓에 기대가 됩니다. 선생님 글 솜씨를 보니 오랜 필력으로 다져진 내공임을 느낌니다. 아내사랑이 별것이겠습니까. 조금씩 도아가며 서로의 마음을 읽어가는 것에서 건강한 가정을 이룩하는 길이라 여겨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 | 강승택 | 09-11-10 20:22 |  | .아, 우리의 사무국장님, 다녀가셨군요. 그러지않아도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저를 위해 이모저모 애써주신 박선생님께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박선생님께만 살짝 말씀 드리는데요, 저 사실은 지난 번 출판 기념회때 빈손으로 갈 수 없어 다소간의 축의금 준비 했었거든요. 그런데 깜빡 회비생각을 못했지 뭡니까. 무슨 이야긴지 아시겠지요? 아구 부끄러워라~ 다시 한번 감~사!!! | |
| | 박영자 | 09-11-11 12:50 |  | 강승택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남편들만 있다면 늘 평화가 유지 될 것 같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담담하고 소박하게 표현한 문장이라 쉽게 읽히는 좋은 글입니다. 남편에게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테니까요.선생님 가정에 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소서, | |
| | 강승택 | 09-11-11 18:57 |  | 박영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오랫동안 교직에 계셨더군요.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열악한 환경속에서 수고 많으셨지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
| | 윤행원 | 09-11-11 16:17 |  | 강승택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을 보니 남자보다 여성 분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ㅎㅎ..모범 가장으로 부터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문자 글도 보내주시고,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시니 강 선생님의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듭니다. 앞으로 수필동인으로서 많은 활동을 기대합니다. | |
| | 강승택 | 09-11-11 19:07 |  | 윤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문득 떠올린 사람이 가수 나훈아씨~ 어쩌면 턱수염이 그리도 잘 어울리십니까. 호방한 면이 있는가하면 세심한 부분도 있으시고. 성락교회에서 1박할 때 비오는 어둠 속을 뚫고 쏘주 한병 사러 가시던 모습은 두고 두고 잊지못할 명장면이었습니다. | |
| | 정희승 | 09-11-11 17:20 |  | 청소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식구들 과거를 불러내 각각 깨끗이 닦아내는 것 같습니다. 때로 부연 먼지 속에 잊혀져가는 아름다운 추억을 호명하여 닦아줄 필요가 있지요. 집 안에 광이 반짝반짝 나는 것 같습니다. | |
| | 강승택 | 09-11-11 19:13 |  | 정희승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작품 `서진과 서표`처럼 격조높은 수필에 비하면 저의 글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작문에 불과합니다. 직접 뵙지 못했지만 좋으신 분일 것 같습니다. 자리 함께하는 기회 있으면 좋은 말씀 듣고 싶습니다. | |
| | 이희순 | 09-11-12 13:02 |  | 진공청소기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의 역사를 열어주는 신기한 열쇠인 듯합니다. 늘 그렇게 평화로이 흘러가는 한 줄기 강물을 봅니다. | |
| | 강승택 | 09-11-12 22:54 |  | 이희순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청소기를 따라 방안 곳곳을 다니다 보면 새삼 가족 모두가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평소 잘하지도 못하면서 마음만 앞서는 못난 남편에 아빠이지요. 부끄러울 뿐입니다. 좋은 인연으로 같이하고 싶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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