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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Verdi, Un ballo in maschera)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의 전형인 ‘가면무도회’는 전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막은 리카르도백작(보스턴 총독)의 응접실.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날의 전날 아침이다. 백작은 초청자의 명단에서 아멜리아의 이름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여인이었던가? 이때 리카르도가 부르는 아리아가 La rivedra nell'estasi(기쁨에 넘쳐 만나리)이다. 사모하는 여인에 대한 연민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는 감미로운 아리아이다. 사랑하지만 사랑할수 없는 여인! 백작의 가슴은 아멜리아에 대한 생각으로 꽉차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카르도백작으로 설정된 구스타프왕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개방적이고 활달한 인물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주의여서 스웨덴 외교적 역량을 본궤도에 오르게 한 유능한 군주였다. 그러나 진보적인 정치성향 때문에 보수적인 정적도 은근히 많았다. 구스타프왕은 예술을 사랑하고 로맨스를 추구하는 그런 인물이기도 했다. 무도회와 오페라를 애호했고 모험과 충동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자기에게 정적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천성적으로 로맨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친구이자 개인비서인 레나토의 젊은 부인을 사랑할수 있었던 것이다. 구스타프 왕이 가면무도회 초청자 리스트에서 아멜리아의 이름을 보고 감회에 젖어 있다.
리카르도백작이 가면무도회 참석자 리스트를 살펴보고 있을 때에 측근 중 한 사람이 들어와서 요즘 마을에 마법의 주술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여인이 있다고 보고하면서 잡아들여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작의 시종인 오스카르는 그 점장이가 과연 어떤 여인인지 알아 보고 나서 처벌해도 좋을 것이라고 진언한다. 오스카르는 여자처럼 예쁘게 생겼고 언제나 맵시 있게 옷을 입는 멋쟁이이다. 원래의 극본에서는 오스카르가 왕과 동성연애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오페라에서는 그저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착하고 재치 있는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스웨덴의 오스카르라고 하면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만화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마리 앙뚜아네트가 사랑했던 스웨덴의 멋장이 청년 장교가 오스카르였다.
제2막은 점쟁이 여인 울리카의 집이다. 리카르도백작은 오스카르의 제안에 따라 점장의 여인의 진실(bona fides)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뱃사람으로 변장한후 울리카의 집에 들어선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틈에 아멜리아의 모습도 보인다. 아멜리아는 백각과의 죄스러운 사랑을 떨쳐버리기 위해 번민하던중 울리카라는 점쟁이 여인이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울리카에게 가면 어떤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찾아 왔던 것이다. 울리카는 아멜리아의 호소를 들은후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중에 교수대가 있는 곳에서 약초를 캐어 먹으면 사악한 사랑을 잊게 된다고 말해준다. 아멜리아는 그렇게라도 해야 겠다고 다짐하며 자리를 뜬다. 이 얘기를 백작이 우연히 엿듣는다. 다음은 백작이 운명을 점칠 차례이다. 울리카는 뱃사람으로 변장한 백작의 손을 보고 일순 놀란 듯이 말한다. 오늘 밤 첫 번째로 만나 악수하는 사람에게 살해 당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백작은 반신반의하며 자리를 뜬다.
제3막은 캄캄한 밤중, 백작의 저택에서 멀지 않은 공터이다. 간혹 사형이 집행되는 으스스한 곳으로 묘지들도 있는 곳이다. 얼굴을 베일로 가린 아멜리아가 사형대 밑에서 약초를 캐기 위해 나타난다. 원작에는 눈덮힌 들판으로 묘사되어 있다. 캄캄한 밤중에 하얀 들판....백작과 아멜리아가 마주친다. 아무리 어둡고 얼굴을 베일로 가렸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단번에 서로를 알아본다. 백작에 아멜리아에게 사모의 심정을 털어 놓는다. 이 말에 마음이 움직인 아멜리아도 실은 백작을 사모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사랑의 듀엣이 공허한 밤하늘을 충반하게 만든다. 이때 아멜리아의 남편 레나토가 나타난다. 실은 혼자 밖으로 나간 백작이 걱정되어서 이곳까지 찾아나선 것이다. 당황하는 백작과 아멜리아! 그러나 레나토는 베일로 얼굴을 가린 이 여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충성된 비서이자 친구인 레나토는 이곳에서 백작에 대한 암살 음모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백작은 문득 친구의 한없는 우정을 느끼면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죄책감으로 번민한다. 백작은 레나토에게 암살자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이 어두운 곳으로부터 이 여인을 무사히 도피시켜 달라고 부탁하고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춘다. 레나토는 베일로 얼굴을 가린 아멜리아를 데리고 빠져 나가는중에 백작을 암살하려는 음모자들과 마주친다. 사무엘과 토마소이다. 평소 백작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던 사무엘과 토마소는 이 여인이 백작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고 그 여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베일을 벗긴다. 자기의 부인임을 보고 놀람과 분노에 떠는 레나토! 그는 백작과 아멜리아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날 음모자들과 다시 만나 구체적으로 상의키로 한다. 레나토는 아멜리아를 집으로 데려가 나오지 못하게 한다.
제4막은 백작 저택에서의 무도회 장면이다. 레나토는 그가 충성을 다바쳤던 백작에 대하여 심한 배신감에 빠져 있다. 그는 결국 백작을 암살하는 음모에 가담한다. 그는 암살 음모자들인 사무엘과 토마소가 있는 장소에 아멜리아를 데리고 간다. 사람들은 누가 백작에게 총을 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항아리 속에 이름을 써넣고 아멜리아로 하여금 뽑도록 한다. 레나토가 뽑힌다. 한편 백작은 사랑과 후회의 마음으로 번민하다가 결국 레나토를 외국에 사절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리하면 아멜리아도 함께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백작이 부르는 아리아 Ma se n'e forza perderti(아, 다른 방법은 없는가?)가 심금을 울린다. 드디어 가면무도회. 모두들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누가 누군이지 모른다. 암삼 책임을 맡은 레나토는 오스카르에게 백작이 누구인지 가르쳐 달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오스카르는 울리카 여인의 말이 생각나서 백작에 대한 암살음모를 느끼고 가르쳐주지 않는다. 순간, 레나토는 아멜리아와 함께 있는 가면을 쓴 남자를 보고 그가 백작인 것을 짐작한다. 순간 레나토의 권총에서 불이 번쩍인다. 쓰러지는 백작! 놀라는 사람들! 백작은 숨을 거두면서 자기를 죽인 레나토를 용서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멜리아는 순결하며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한다. 아멜리아가 절규한다. T'amo, t'amo(당신을 사랑합니다)가 무대를 울리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사족: 요즘엔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것 보다는 스톡홀름을 배경으로 한 공연이 더 정석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다.
주세페 베르디
주세페 포르투니노 프란체스코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년 10월 10일 - 1901년 1월 27일)은 이탈리아의 작곡가로, 주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이다. 베르디의 작품은 세계 각지의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자주 상연된다.
[생애]
베르디는 북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1813년 10월 10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행상인 상대로 조그마한 여인숙 겸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소년 시절의 베르디에게는 이른바 천재 소년다운 에피소드는 아무것도 전해져 있지 않다. 시골에서는 다소 그 음악적 재능이 눈에 띌 정도였다. 1832년 5월 18세 때 고향을 떠나 밀라노로 가서 밀라노 음악원의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실패했다. 음악원의 판정은 첫째로 음악원의 입학 자격 연령을 4세나 초과한 것, 둘째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베르디의 음악은 서투르고 소박하다 하였다. 결국 베르디는 밀라노에서 개인교수를 받아 작곡공부를 시작했다.
이듬해 베르디에게 기회가 왔다. 밀라노 악우협회(樂友協會)가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연주했을 때 베르디는 대리 지휘자 역할을 했는데 이 때의 역량이 인정되어 악우협회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은 것이다. 이리하여 최초의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가 작곡될 예정이었으나, 1834년에 베르디는 취직 차 일단 귀향하였고 그리고 1836년 아버지 친구의 딸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 동안에도 밀라노의 화려한 오페라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어 1839년 처자를 데리고 밀라노로 이주하였다. 이 해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가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어 다소의 성공을 거뒀다. 26세의 일이었다. 유명한 악보 출판업자인 조반니 리코르디가 이 오페라의 출판을 신청해 왔고, 스칼라 극장에서도 3편의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해 왔다. 전도가 양양하였으나 아들과 처를 차례로 잃어버리고, 더욱이 스칼라 극장이 오페라 부파를 작곡해 줄 것을 요구했기에 구상을 변경해서 <하루 만의 임금님>을 작곡했으나 무참히 실패하여 자신을 잃은 베르디는 한때 작곡을 단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친구들의 원조나 조언으로 베르디는 이 위기를 극복하여 1842년부터 1850년에 걸쳐 14곡의 오페라를 썼다. 이러한 작품 가운데에는 <제1회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1843), <에르나니>(1844), <잔 다르크>(1845), <레냐노의 전쟁>(1849) 등 애국적인 독립정신을 구가한 작품이 특히 뛰어났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의 압박하에 있어 완전한 독립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물론 이탈리아 독립 운동의 외침도 점차 높아졌으나 베르디의 오페라는 그러한 이탈리아인들의 기분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베르디는 오페라에 애국주의를 주입함으로써 오페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의 베르디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참으로 애국의 상징이었다.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외로부터도 초청되어 런던이나 파리에서 자작을 상연하여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오페라들은 베르디의 대표작으로는 생각되고 있지 않다. 사실 19세기 중엽의 이탈리아인들을 열광시킨 것은 사실이나 베르디가 참으로 원숙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모습을 보인 것은 1850년 이후의 일이다.
1850년 37세의 베르디가 40일 동안 단숨에 작곡해낸 <리골레토>는 이듬해 3월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어 오페라 사상 드물게 보는 영광을 불러일으켰다. 베르디도 다소 자신을 가졌던 듯하며 특히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 초연 전에 거리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무대연습 때에도 가수에게 악보를 주지 않고 초연의 전야 겨우 악보가 주어졌다고 한다. 베르디의 생각대로 이 아리아는 일세를 풍미한 명가가 되었고 그의 명성은 더욱더 상승했다.
<리골레토> 이후의 베르디는 그의 독특한 선율미와 극적 구성력을 마음껏 구사하여 여러 가지 인간감정, 등장인물을 정확히 묘사하여 여러 가지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일트로바토레>(1853), <춘희>(1853), <돈 카를로스>(1867), <아이다>(1871), <오텔로>(1887), <팔스타프>(1893) 등이 그 주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작품에서 전과 같은 애국주의는 후퇴하고 어떤 정황, 또는 환경에서의 '인간 그 자체'의 표현이 의도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인간성'을 오페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아마 모차르트와 비견할 만한 최고봉이라 하겠다. <리골레토>, <춘희>, <아이다> 모두가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된 <오텔로>는 비극 오페라의 최고봉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인간성을 이만큼 훌륭히 오페라화할 수 있었던 작곡가는 아직까지 없다. 같은 셰익스피어로 된 <팔스타프>는 베르디의 유일한 희극이다. 여기에는 오페라 부파의 정신 승화, 고답적인 웃음의 교묘한 음악화가 보인다.
오페라 사상 이와 같은 불멸의 작품이 작곡된 시기에 베르디의 신변에도 잡다한 변화가 일어났다. 1859년 재혼하고 1861-1865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국회의원이 되는 등 음악 이외의 일로 나날이 바빠졌다. 한편, 오페라 이외의 작품도 착수하였는데 최대 걸작은 이탈리아의 애국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죽음을 애도하여 쓴 <레퀴엠>이다. 부와 명성에 둘러싸인 베르디는 밀라노의 호텔에서 뇌일혈로 쓰러져 1901년 1월 27일 87세의 일생을 마쳤다.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우뚝선 이 거장, '소리'를 위하여 일생을 건 이 거장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례식에는 20만이 넘는 대군중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Domingo/Barstow/Nucci/Sumi Jo/Georg Solti - Verdi's opera 'Un ballo in maschera'
이탈리아 비극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희생과 헌신이 그 특징입니다.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끝까지 사랑하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거나 변심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병들어 죽거나(<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라 보엠>의 미미),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고 목숨을 바치거나(<리골레토>의 질다, <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 구할 수 없을 때는 함께 죽는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아이다>, <토스카>). 이처럼 이탈리아 비극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여주인공이 극의 핵심이 되는 ‘프리마 돈나(prima donna) 오페라’입니다.
그러나 베르디의 중기 오페라 가운데는 <시몬 보카네그라>나 <가면무도회>처럼 남자주인공이 여주인공보다 훨씬 중량감을 갖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면무도회>는 마침내 소프라노의 희생 행렬에 종지부를 찍고 테너 주인공에게 죽음을 선사한 전복적인 작품입니다. 넘치는 혈기와 질투심으로 결국 소프라노를 죽게 만드는 테너 주인공의 기본적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가면무도회>의 남자주인공 구스타프 3세는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이며 연인을 배려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현실의 스웨덴 국왕 암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주인공 구스타프 3세는 18세기에 스웨덴을 통치했던 계몽전제군주입니다. 이 오페라의 원작인 외젠 스크리브의 <구스타프 3세 또는 가면무도회>는 1792년에 실제로 일어난 국왕 시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요. 국왕 구스타프 3세는 귀족들의 횡포를 없애고 평화로운 국가를 만들려고 애썼던 인간적인 통치자였습니다. 형식에 매이는 것을 싫어했고 문화예술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귀족의 권한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귀족들의 불만을 사 앙커스트룀이라는 젊은 장교에게 가면무도회장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3세의 대관식을 묘사한 그림.
이처럼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소재를 취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베르디는 <가면무도회>에서도 정쟁보다 등장인물의 심리와 관계에 초점을 맞춰 극을 이끌어나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대본작가 안토니오 솜마에게 “애정과 우정을 둘러싼 갈등의 드라마”를 써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솜마는 베르디의 다른 어떤 대본작가보다도 열정적인 시구(詩句)를 짓는 데 능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애정과 우정을 둘러싼 갈등의 드라마
오페라의 첫 장면은 스웨덴 국왕의 넓은 접견실에서 시작됩니다. 귀족들이 모여 국왕 구스타프 3세의 덕성을 찬양하지만, 그 안에는 국왕을 증오하며 암살하려는 무리도 섞여 있습니다. 시동 오스카가 다음날 열릴 가면무도회의 초대손님 명단을 가져오자 왕은 그 명단에서 사랑하는 아멜리아의 이름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아리아 ‘아, 다시 한 번 그녀를 보게 되리’를 노래합니다. 그때 아멜리아의 남편인 충신 레나토가 다가와 국왕 시해 음모를 귀띔하며 왕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때 대법관이 나타나 ‘백성을 현혹시키는 울리카라는 점쟁이를 추방해야 한다’고 왕에게 알리지만, 시동 오스카는 ‘그녀가 빛나는 별을 바라볼 때’라는 아리아로 울리카를 변호합니다. 호기심을 느낀 왕은 뱃사람으로 변장하고 점쟁이를 찾아가기로 하지요.
아멜리아 역시 왕에 대한 사랑을 잠재울 치료법을 구하러 울리카를 찾아왔다가 비법을 얻어 돌아갑니다. 왕의 손금을 본 울리카는 그가 가까운 친구에게 살해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울리카가 시킨 대로 아멜리아는 음산한 곳을 찾아와 약초를 캐며, ‘풀을 뜯어 내 사랑을 잊을 수만 있다면’ 하는 아리아를 간절하게 부릅니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뒤를 따라온 왕이 나타나고, 두 사람은 격정적인 사랑의 이중창을 노래합니다. 그때 왕을 시해하려는 무리가 다가온다고 알리러 레나토가 그곳에 찾아옵니다. 왕에게 자기 망토를 입혀 도망시킨 뒤 레나토는 베일을 쓴 여인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려고 합니다. 레나토와 아멜리아를 포위한 암살자들은 여인의 정체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남편이 죽을 위험에 처하자 아멜리아는 스스로 베일을 벗어 던집니다. 레나토는 자기 아내의 얼굴을 보고 경악하며 극도의 배신감을 느낍니다.
집에 돌아온 레나토는 아멜리아에게 자결을 강요하며, 왕의 초상화를 향해 ‘너였구나, 내 영혼을 더럽힌 자가’를 분노에 차서 노래합니다. 반란을 꾀하는 이들은 레나토의 집에 모여 제비뽑기로 왕의 암살자를 정합니다. 뽑힌 사람은 바로 레나토입니다. 한편 왕은 사랑을 단념하고 레나토와 아멜리아 부부를 그들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전출 임명장에 서명합니다. 시동 오스카는 ‘가면무도회에 암살자들이 오니 무도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하지만, 왕은 아멜리아에게 작별을 고하러 무도회장으로 갑니다. 레나토는 칼로 구스타프를 찌르고 가면무도회는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죽어가면서 왕은 레나토에게 아멜리아의 순결을 보증한 뒤 암살자들 모두를 사면하고, 백성들에 대한 사랑을 거듭 고백하며 세상을 떠납니다. ▶가면무도회장은 오페라의 결말을 장식하는 무대이다. 구스타프 왕이 무도회에서 암살당한 뒤 오페라의 막이 내린다.
Domingo/Ricciarelli/ Cappuccilli/Grist/Abbado - Verdi's opera 'Un ballo in maschera'
Riccardo: Plácido Domingo
Amelia: Katia Ricciarelli
Renato: Piero Cappuccilli
Oscar: Reri Grist
Ulrica: Elizabeth Bainbridge
The Royal Opera Chorus
Orchestra of the Royal Opera House
Conductor: Claudio Abbado
The Royal Opera House, 1975
절묘하게 배합된 긴장과 이완의 음악
<가면무도회>에는 두 가지 판본이 있습니다. 1859년 로마 아폴로 극장에서 초연된 원작판(스웨덴 스톡홀름 궁정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스톡홀름 판’이라고도 부릅니다)과 ‘국왕 시해’라는 소재가 검열에 걸려 부득이 미국 보스턴으로 배경을 옮겨야 했던 개정판(보스턴 판)입니다. 개정판에서는 국왕 구스타프 3세를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로 바꾸어놓았습니다. ▶<가면무도회> 개정판 장면으로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라몬 바르가스)와 아멜리아(안젤라 바람비오)의 연기 장면.
국왕 구스타프와 아멜리아는 내면의 어린아이 같은 동경과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사회의 규율과 대립하는 행위를 하는 인물들입니다. 이들보다 훨씬 냉정하고 성숙한 레나토(바리톤)는 사회적 규율과 대의를 위해 왕에게 이성적이고 단호한 통치자의 길을 걷게 하려는 충신이죠. 궁정의 어릿광대 역할을 하면서 왕의 자유로운 감성을 부추기는 앳된 시동 오스카(소프라노)는 레나토의 정반대 지점에 위치합니다. 10대의 시동 역이 늘 그렇듯이. 오스카는 여성 가수가 남자 역할을 노래하는 ‘바지 역’(trouser role)입니다. 메조소프라노 또는 알토 가수가 맡게 되는 점쟁이 울리카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에 등장하는 발랄한 점쟁이 프레치오실라와는 다른 어둡고 초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줍니다.
전체적인 음악의 구성은 베르디의 이전 어느 작품보다도 참신합니다. 억눌러 왔던 내면의 격정을 마침내 분출하는 남녀주인공의 이중창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비교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오페라에서 가장 극적인 아리아는 배신당한 레나토가 부르는 ‘너였구나, 내 영혼을 더럽힌 자가’입니다. 도입부에서는 목관악기가 아멜리아의 주제를 연주하면서, 순결하고 행복했던 날들에 대한 레나토의 회상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아리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금관악기가 동반하는 셋잇단음표의 연속적인 리듬이 레나토의 강렬한 복수 의지를 표현합니다. 후반부에는 하프와 플루트가 다시 레나토를 부드러운 회상으로 이끄는 듯하다가 다시 셋잇단음표가 나타나며 현실의 절망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무도회 장면에서도 레나토와 암살자들의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극도의 긴장을 명랑한 오스카의 음악이 이완시키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베르디의 독창성과 음악적 실험정신이 각별히 빛난 작품입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구스타보/리카르도-아멜리아-레나토-오스카 순)
[음반] 주세페 디 스테파노/마리아 칼라스/티토 곱비/에우제니아 라티 등. 안토니오 보토 지휘,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956년 녹음, EMI
[음반] 플라시도 도밍고/카티아 리차렐리/레나토 브루손/에디타 그루베로바 등.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980년 녹음, DG
[DVD] 플라시도 도밍고/조제핀 바스토우/레오 누치/조수미 등. 게오르크 솔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빈 국립오페라합창단, 존 슐레징거 연출, 199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 실황. TDK
[DVD] 루치아노 파바로티/에이프릴 밀로/레오 누치/해롤린 블랙웰 등. 제임스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피에로 파시오니 연출, 1991년 공연 실황, DG
글 이용숙(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