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류를 찾아가
주말부터 찾아온 올가을 첫 추위가 누그러지지 않은 십일월 둘째 월요일이다. 아침 여섯 시 현관을 나섰더니 바깥은 어둠이 사라지지 않은 여명이었다. 가을이 이슥해지자 낮은 점점 짧아지고 밤이 길어져 감을 실감한다. 창원대학에서 김해 불암동으로 오가는 97번 좌석버스를 타려고 사림동 정류소로 향했다. 김해에서 경전철로 낙동강 강가로 나가 하굿둑으로 걸어볼 요량이었다.
창원대학 종점에서 타고 가는 손님은 없었으나 시내를 관통하면서 승객이 늘더니만 장유에서는 학생과 일반인이 빼곡하게 타 입석으로 가는 승객들도 다수였다. 자연학교 학생으로서 등굣길에 모처럼 만원 버스를 타본 경험을 했다. 김해 시내로 들어가 문화원 앞에서 내려 경전철 수로왕릉역에서 사상 방면 객차를 탔다. 김해 시청과 대저역을 지나 공항을 앞둔 등구역에서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가니 마을 어귀 ‘등구마을’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는데 거북 형상 조형물도 같이 보였다. 빗돌에 마을 내력을 짧게 소개한 글귀는 예전 강마을에 거북이가 올라와 붙여진 지명이라 했다. 강둑으로 나가 강물이 흘러가는 하굿둑 방향으로 걸었다. 역방향은 대저로 올라가 김해 대동면으로 가는 길로는 화명대교에서 교량에 확보된 인도를 따라 낙동강을 건너갈 수도 있다.
자전거길과 산책로를 겸한 둑길 양편에는 벚나무가 도열, 아득하게 소실점이 맺어졌는데 다대포로 향해 너울너울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강 건너도 구포에서 사상으로 내려가는 둑길과 강변 생태 공원이 펼쳐졌다. 백양산 기슭에는 대학 캠퍼스와 아파트가 빼곡한 주거 밀집지였다. 등구에서 남쪽으로 가니 공항이 가까운 덕두마을이 나오고 경전철 철로가 강심을 건너갔다.
둑길에는 배재황 시비 ‘오막살이’가 나왔는데 그는 광복 전후 활약한 아동문학가로 진해 대장동 출신이었다.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니 독립운동가 조정환과 이수강 선생 흉상이 모셔 있었다. 두 분 얼굴 조각상 사이에는 재일거류민단에서 이은상 선생 ‘고향길’ 시비를 세워두었다.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끌려간 경남인이 해방 후 환국하지 않고 눌러살며 망향의 그리움을 담아 세웠다.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둑길에는 산책객이 아주 드물었다. 벚나무는 내년 봄을 기약하고 나목이 되어 겨울을 날 채비를 했다. 제방을 뒤덮은 가시박이나 잡초들은 제초가 되어 말끔했다. 갯버들이 무성한 둔치에 물억새는 바람에 서로 몸을 비벼 일렁이고 갈대는 시든 꽃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해 흔들렸다. 십대에 익혔던 박목월의 ‘나그네’와 조지훈의 ‘완화삼’이 빗돌에 새겨져 있었다.
서낙동강대교 지나서 맥도생태공원이 펼쳐진 둔치로 내려섰다. 예전 김해평야 남단은 을숙도를 앞에 두고 삼각주를 형성했는데 낙동강 본류 외에 서낙동강과 맥도강이 제법 큰 물줄기였다. 맥도강에서 가까운 둔치라 맥도생태공원이라 불렀다. 체육시설과 함께 연꽃단지를 비롯한 생태 공원이 꾸며져 겨울이면 을숙도와 인접한 곳이라 북녘에서 찾아오는 겨울 철새들의 서식지다.
근년에 들어 당국에서는 겨울철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이 빈번해 철새 도래지에는 탐조객 출입을 아예 금지 시켰다. 내가 사는 생활권인 주남저수지도 마찬가지라 둑길 탐방로는 개방하지 않는다. 나는 작년 연말 맥도생태공원을 찾았다가 조류인플루엔자를 예방한답시고 탐방로를 개방하지 않아 멀리 감치 떨어져 지나쳐 보고만 왔다. 이번에도 벌써 출입을 제한하는 펼침막이 붙었다.
탐방로 통제 기간이 11월 초부터 3월 말까지니 다섯 달이었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철새 도래지를 찾아갔는데 서식지 탐방을 제한한다는 펼침막이 실망스러워 월담하듯 펼침막을 비켜 습지 구역으로 들어섰다. 강물 가장자리는 까만 물닭이 떼 지어 헤엄쳐 다니고 철새 먹이터로 가꾼 벼나 보리 경작지는 선발대로 내려온 기러기 무리가 보였다. 고니들은 공중에서 나래짓을 펼쳤다. 2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