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린이, 등린이, 이렇게만 부르기에는 미안한 구석도 있고
게다가 '아줌마'라는 칭호가 결혼 여성 일반에 대해 문화적으로 자칫 비하의 뉴앙스도 담겨 있는 듯하므로
'등린이 아줌마'라는 어휘가 잠깐 세간의 이목을 끌 수는 있겠으나 이만 접어두기로 했다.
원래 이 여성의 닉네임이 '샘터'였다.
원래는 1998년, 당시 서예 사부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이후 전통 규방공예 '샘터공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닉네임을 가진 분이 또 계시니 산에서는 다른 이름이 낫겠다 싶어
새로이 '가칠(佳七)'이라 지어주기로 했고, 본인이 맘에 들어하니 다행이다.
'일곱 가지의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이란 뜻이긴 하지만, 실속은 우리말 '까칠하다'의 한자식 표기다.
실로 한까칠하다. 그만큼 싫고 좋음이 뚜렷하다.
예로부터 닉네임, 즉 호(號)는 15세에 이른 양반가 남성에게 부모나 스승이 지어주는 것이었다.
우리식으로 성인식을 치르고 이제 지식인 사회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의미로 그리하였다.
스스로 지어서 부르는 것을 '자호'라 하고,
자신이 생활하는 건물의 이름을 '당호'나 '택호'라 하기도 한다. 사임당이니 난설헌이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하므로 이가 '가칠'이라는 닉네임을 갖게된 것은 이제 산행 문화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 된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아마 아니겠지만, 이번 산행에서 가칠님이 제법 날아다녔다.
산행일시: 2022년 10월 22일 9시 50분 ~ 17시 10분. 약 7시간 20분(휴식 40분 포함)
산행코스: 덕주골 - 덕주사 - 마애불 - 덕주봉(트랭글에서는 '마애봉'이라 되어 있다) - 영봉 - 중봉 - 하봉. [왕복]
대략 14,5km, 평균경사도 19.4%, 평속 2.1km/h.
산행상황: 아직은 춥지 않아 시원한 바람. 부분별로 햇살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다만, 대기가 뿌옜다.
종주가 아니고 월악산 하나만 다녀오는 경우에는
대개 보덕암에서 영봉을 올랐다가 이리로 내려오는 게 일반적이다.
보덕암에서 하봉, 중봉, 영봉을 차례로 오르면 4km.
덕주골이라는 이름에 맞게 계곡이 좋다.
덕주골에서 1km 올라오면 덕주사. 주차를 여기에다 해 놓을 수도 있다.
덕주사 앞 계곡에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덕주사에서 덕주산성을 지나 그럭저럭 워밍업이 되는가 싶을 때쯤 마애불을 만나게 된다.
조각이 깊지는 않으나 규모가 대단하다.
마애불 옆으로 돌아올라가면 산신각이 있고, 그 아래에 샘물이 있다. 맛이 좋다.
마애불에서 다소 까칠하게 오른다.
계단이 많아서 산 타는 재미는 덜하지만 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몸에 전해진다.
그때쯤 뒤돌아보면 멀리 주흘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나무가 대부분이지만 오를수록 소나무와 바톤 터치를 한다.
생태학적으로는 침엽수가 활엽수의 공격을 피해 건조한 땅으로 옮겨가는 거라지만.
오르는 방향에서 오른쪽(동쪽)으로 바위 절벽의 위용이 대단해 보인다. 저 능선 위를 타고 넘는 것이 월악환종주다.
대대로님께서 나더러 하산할 때 저 길로 내려오라고 하신 것 같은데,
저 길로 내려오면 도로를 만나는 게 아니고 죽~ 내려섰다가 다시 아득히 올라야 한다. 그래서 결국 그 유명한 만수릿지로 향하게 된다.
어쭈, 이 사람이.
내가 주흘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에도 계단을 거침없이 오른다.
2주 전에 두타산-무릉계곡 갔을 땐 얼굴이 아주 말씀이 아니더니만, 감기 기운 때문이었다나 머라나.
간식도 먹을 겸 살짝 비탐길로 넘어오니 같은 걸 보더라도 확실히 경관이 더 좋다.
평소 하는 행동으로 보아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웬걸. 먼저 넘어가는 가칠. 어허, 이 사람이.
비탐에는 바위도 널찍하고 바람도 시원하다. 왼쪽으로 부봉 1~6봉. 가운데 횡으로 질러가는 능선이 대간길.
동창교에서 송계삼거리로 올라오는 능선.
월악환종주 때 이 길로 올랐었다.
보덕암쪽에서 오르려고 했다가 주차하려던 곳에서 사유지라면서 출입을 막았으므로.
훤한 대낮에 영봉 앞에 서 보긴 첨이다. 새삼스럽다.
왼쪽은 중봉.
이정표에는 덕주봉. 트랭글에서는 마애봉.
트랭글에서 말하는 덕주봉은 용암봉과 만수봉 앞에 있는 봉우리.
월악환종주를 하면서 가 봤지만 밤에 갔으니 거기가 거기같다. ^^
암튼 월악환종주를 하려면 여기서 비탐으로 빠져야 한다.
이거이 월악환종주 길인 거 같다. 낮에 보니 느낌이 다르다.
월악산의 동남방향. 시루봉 대미산 황장산으로 흘러가는 백두대간 길일 텐데 까막눈이라서 먼 산이 뭔 산인지.
영봉 정상에는 서로 인증 사진 찍으려고들 북새통이어서 기냥 내려와서 올라다 본다.
가을이 가을가을하다.
동창교에서 오르는 능선. 이쪽에서 보니 더 가파라 보인다.
동창교에서 오른 송계삼거리는 영봉과 덕주봉 사이에 있다.
내가 주변 산줄기에 완존히 넋이 나가버린 동안에도 가칠은 꾸준히 걷는다.
영봉에서 중봉이 1.1km 거리에 있지만, 한참 내려갔다가 한참 올라야 해서 배가 고프다. 점심을 먹고 올라간다. 밥과 김치, 사과와 감,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 우아하게 ~ㅗ
뒤에 것이 영봉, 가까이 선 것이 중봉.
중봉에서 하봉 사이에는 쪼만한 봉우리 두 개가 들어있는데 뾰오족하다.
당연히 계곡도 깊고
중봉 아래 가을도 깊다.
월악수리봉 방면. 월악산에서 속리산 사이에 대단한 봉우리들이 많다.
이게 하봉이다.
충주호가 뿌옇게 보인다. 산길을 걷다가 물빛을 보면 이유없이 반갑다.
하봉에서 보덕암까지는 1.9km.
가칠을 놔두고 잠깐 내려갔다 오기도 거시기하고.
월악의 가을빛이 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하봉에서 돌아오다가 치어다본 중봉.
소나무가 좋다.
대미산 방향.
'대미'라는 말은 퇴계 선생께서 지으신 이름이다.
그렇다면, 속리산에서 여기까지, 여기부터 소백산까지. 양대 생활문화권이 나뉘었다는 얘기.
영봉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아서 얼른 내려왔다. 사람들은 대개 모여있는 곳에만 있다.
돌아다보는 가칠.
영봉에서 덕주사는 1시간 반이면 충분히 내려온다.
돌아오면서 보니 가칠이 이 가파른 길을 어떻게 올랐지, 싶다. 힘든 표정도 없었다.
벌써 저녁빛이 스민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른다.
이렇게 산행을 마친다.
11월에는 순창 강천산, 합천 가야산이 리스트에 적혀 있다. 코스를 골라봐야겠다.
첫댓글 덕주사에서 덕주산성과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가지고 정과 망치로 세겼다는 마애불을 보며
오른 월악산 단풍이 참 곱게 물들었으것 같습니다.
사모님 닉네임도 만들어 주셨고 두 분의 아름다운 산길따라 눈감고 그려보니
참 좋은곳이라 다시한번 느끼게 되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장님.
이 사람에게 불어온 바람이 일시적이거나 가벼운 게 아닌 모양입니다. ^^
다음 산행지를 벌써 서너 개는 정해 놓은 듯합니다. 저야 짐꾼이니 속내까진 모르것슴다만.
옆지기님 아끼시는 그 마음이 보이는듯 하네요 온 산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갑니다
지부장님, 언제나 감사합니다.
제 역할: 짐꾼, 운전기사, 응급치료사, 산행 관련 상담사, 사진사, 준비 운동 트레이너.
하지만, 산행이란 정직한 세계인지라
본인의 발로 걷지 않으면 다 소용없겠지요. ^^
나와바리을 다녀 가셨군요
좀더 단풍이 예쁜곳을 알려드릴걸 그랬습니다
담에 한번더 오시지요
수고하셨습니다
맥가이버님~~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그런데 댁이 이 동네셨던가요? 넘 부러워요.
어제 여기 와서 너무 좋아하는 걸 보고
아내 왈, 이사올까?
월악산은 언제나 좋지요.
가칠님 닉이 좋습니다, ㅎㅎ
ㅎㅎ 고맙습니다, 두건님.
가칠이 두건님께 두건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더군요.
아, 바느질 실력을 모르시겠구나아.
참고로, 이번 주 제주도 간다며
청바지 뜯어서 가방 하나 만들었네요. ^^
@팔개 우와~
바느질 실력이 장난 아니네요.
배낭 너무 이뻐요.
탐나는데요. ㅎㅎ
@두건(頭巾) 알아봐주실 줄 알았어요. ㅋ
두건 잘 만들어보라고 할게요.
운치 있는 풍경과
고즈녁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산행기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단풍 산행을 가고 싶다는
욕구가 다시금 스물 스물 올라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올 단풍은 예년만 못하다는게
불만 아닌 불만이네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joon님의 건강하신 걸음에 에너지를 받곤 하는 1인입니다.
단풍이 예년만 못한 것 같으면서도
저로서는 너무나 행복한 걸음이었습니다.
자연 속에 설라치면 감당키 어려운 감동이 밀려오고요.
10km대의 짧은 걸음에 관한 후기가 우리 카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은 삽화처럼,
가볍게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
팔개님 성격이 참 좋으신 것 같습니다...
발빠른 산꾼들이 걸음 느린 사람들 보살피기가 쉽지가 않을텐데..
아마도 아내에 대한 철철 넘치는사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니면 밥 굶길까봐서? ㅎㅎ
ㅋㅋㅋ 아마도 굶고 싶진 않은 모양이쥬 ~
진강산님의 힘있는 산행에 견줄 엄두도 안 나는 산행 솜씨인 게 그나마 다행. ^^
별 재미없을 산행기를 흥미롭게 봐 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함께같은 공간에서 같이 땀흘리며
함께 경치를 본다는것은
그무엇보다 귀중한것입니다
아마도 산에서 가장 의지하고 신뢰를 하지않을까싶네요
다녀오시면 혹시 반찬이 달라지지않습니까...ㅎ
늘 두분 즐거운 행복한 산행되십시요
전 중부지부장을 지내신 황금산님 왈, "이쯤 되면 머슴 아뉴?"
저하고는 동갑인지라 편히 말했는지는 몰라도. ㅋ
응원 감사드리고요,
동영상으로 레펠하시는 거 몇 번 뵈었는데,
요즘 흔히 하는 말로, ㅎㄷㄷ ㄷㄷㄷㄷ
안전 강하하셔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