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는 결코 연륜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서 엘리바스는 "우리 중에는 머리가 세기도 하고 연로하기도 하여 네 부친보다 나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 역시 연장자일수록 지혜가 있다는 전통적 사고에 근거한 말로서 자신들의 지혜가 욥의 지혜보다 탁월하다는 주장입니다. 즉 엘리바스는 욥이 자신들을 향해 지혜가 없다고 반박한 데 대하여 오랜 경험을 가진 선인들의 지혜 전승을 계승한 자신들도 지혜가 충분히 있으며, 그러한 지혜가 욥의 지혜보다 탁월하다고 재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과응보론적 사고에 근거하여 욥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한 것이요, 따라서 욥은 자신들의 충고에 따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자신들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에 근접한 지혜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욥은 그만 자기 고집을 버리고 자기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바스의 이러한 주장은 지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진정한 지혜란 결코 연륜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어린 사람에 비하여 오랜 경험을 가진 연로한 사람이 더 많은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분명, 오랜 경험 속에서 더 많이 축적됩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연로한 사람들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대통령이 국가 원로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두고 그들로부터 국가 경영에 관한 조언을 듣는 것도 원로들의 경험을 소중한 지혜의 자원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국가 원로들의 지혜로운 말을 무시하고 젊은 관료들의 말만 따랐다가 나라를 분열시키는 우매자 되고 말았습니다(왕상12장). 하지만 연륜이 비록 삶의 지혜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지식, 곧 하나님의 지혜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오래 산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전혀 가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연륜이 진정한 지혜에 이르게 한다면 연로한 사람일수록 진리에 가까이 이르러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연로한 자라도 진정한 지혜에는 까막눈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디모데의 경우처럼 연소한 자라도 진정한 지혜에 이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결코 오래 살았다거나 얼마 살지 못했다 거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인이라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요 노인이라고 공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32 9) 는 욥의 말처럼, 참된 지혜는 결코 삶의 길이나 지식의 깊이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시119:100)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과 같이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며, 얼마나 그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알기에 최선을 다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연로하다고 해서 자신을 지혜롭다고 여기고, 자기보다 연소한 사람에게 무조건 자신의 말에 따르기를 요구하는 완고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는 사람과 경혐과 지혜도 소중하지만 진정한 지혜, 구원에 이르는 지혜,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아는 지혜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힘쓰는 것은 물론, 그분의 말씀을 늘 묵상하기에 힘써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직장에서 가장 큰 권위와 판단의 기준은 연륜이나 학문의 깊이가 아닌 하나님의 분명한 뜻에 있음을 기억하고, 섣불리 내 지식과 연륜과 감각만을 내세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막어서는 죄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