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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昧(samādhi)와 禪(jhāna)의 의미에 관한 통합 연구
- '집중'의 두 층위와 nijjhāna 용례에 의한 '마음에 담음'을 중심으로 -
【초록】
본고는 불교 수행의 핵심 개념인 삼매(三昧, samādhi)와 선정(禪, jhāna)에서 파생된 nijjhāna(nijjhāyati)의 의미 구조를 어원적 분석과 경전의 용례 검토를 통해 통합적으로 고찰한다.
한국어 번역어 '집중'이 지니는 두 가지 의미 층위, 즉 '수렴(concentration)'과 '지향(focus)'으로 구분하고, 이를 빠알리어 경전의 '심일경성(心一境性, cittassa ekaggatā)' 해석에 적용한다.
아울러 nijjhāna 개념을 단순한 '응시'나 '숙고(생각)'를 넘어 '마음에 담음(적재·품음)'이라는 근원적 작용으로 파악함으로써, 이 두 개념이 불교 수행론에서 어떻게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하는지를 논증한다.
『Mahācattārīsakasuttaṃ(MN 117)의 용례 분석을 통해, 팔정도의 여러 요소들이 준비(parikkhatā)된 상태로서의 삼매는 특정 대상에 대한 집중(focus)을 넘어선 '마음의 통일된 상태(unification of mind)'임을 밝히고, 이러한 통일된 마음의 '담는' 방식에 따라 번뇌의 불길이 될 수도, 지혜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님을 고찰한다.
이러한 이해는 삼매와 선정(禪定, jhāna) 수행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하는 통찰을 제공한다.
주제어: 삼매(samādhi), 집중(concentration/focus), 심일경성(心一境性, cittassa ekaggatā), nijjhāna(마음에 담음), 선정(jhāna), 팔정도(八正道), 마음의 통일(unification of mind)
1. 서론: 개념 이해의 문제 제기
불교 교학에서 삼매(三昧)는 사마디(samādhi)의 음역이며, 의역으로는 정(定)이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아니하는 안정된 상태' 또는 '잡념을 떠나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로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어 번역어 '집중'은 두 가지 상이한 의미 층위를 내포하고 있어 개념 이해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국어사전은 '집중'을 "한곳을 중심으로 하여 모임. 또는 그렇게 모음"과 "한 가지 일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음"으로 정의하는데, 전자는 '여럿(다수의 요소)이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하는 현상(concentration)'이고, 후자는 '하나(한 주체)가 특정 대상을 향해 정신적 에너지를 지향하는 행위(focus)'이다.
한편, 4부 니까야에는 √jhā를 어근으로 하는 다양한 파생어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접두사 ni-가 결합한 nijjhāyati와 그 명사형 nijjhāna는 여러 중요한 문맥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nijjhāna를 '깊이 숙고함', '응시함', '관찰함' 등으로 번역해 왔으나, 이러한 번역어들은 언어적 형성인 '생각'이나 시각적 은유에 치우쳐 마음의 내적 작용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고, 동일한 어근이 탐욕적 응시(upanijjhāna)와 가르침에 대한 이해(dhammanijjhānakkhanti)라는 상반된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삼매의 의미 구조를 '집중'의 두 층위로 분석하고,
nijjhāna의 핵심 의미를 '(마음에) 담다, 태우다, 적재하다, 품다'로 파악함으로써, 이 두 개념이 불교 수행론에서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통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2. 삼매(samādhi)의 어원과 의미 구조
2.1. 어원 분석
'samādhi'는 '두다', '놓다'의 의미를 지닌 어근 √dhā에 두 개의 접두사 sam 혹은 sama와 ā가 결합된 형태로 이해된다.
sam은 '함께(together)', sama는 '균형 잡힌(안정된, balanced unification, harmonious integration)'의 의미이고
ā는 ~을 향하여(toward)라는 방향 지시를 의미하고
√dhā는 '놓다(to put, to place)', '두다.'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어원적 결합은 두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sam-ā-dhā는 '함께 모아서 놓다'는 의미가 된다.
둘째, sama-ā-dhā는 균형 상태인 '안정되다.'라는 의미가 되어 '定'이라는 漢譯과 상응한다.
2.2. 심일경성(心一境性, cittassa ekaggatā)의 두 해석
삼매의 본질적 정의는 '심일경성'이다. 『Chūḷavedallasutta』(MN 44)에서는
"cittassa ekaggatā ayaṃ samādhi 마음의 집중, 이것이 삼매다."라고 규정한다.
ekaggatā는 '하나(eka)'와 '최상(agga)' 그리고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 -tā의 결합으로,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단일 대상에 고정된 지향(focus)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성(unification)이다.
"idaṃ sutvā devā tāvatiṃsā ekaggā samāpajjiṃsu
이것을 듣고 삼십삼천의 신들은 하나가 되어(ekaggā) 들어갔다(等至, samāpajjiṃsu)."
수행 상황이 아닌『Janavasabhasuttaṃ』(DN 18)에서의 'ekaggā samāpajjiṃsu'는 각기 다른 심리적 층위에 있던 신들이 '개별적 지향'을 내려놓고 '평탄하고 균등한(sama) 통일 상태'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즉 일치된 동일한 마음 상태임을 보여준다.
3. nijjhāna(nijjhāyati)의 의미 구조: '마음에 담음'
3.1. 어원적 고찰: jhāyati의 두 의미와 그 통합
빠알리어 동사 jhāyati는 산스크리트어 kṣāyati(√kṣai, 태우다)와 dhyāyati(√dhyai, 명상하다) 두 어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의미는 표면적으로는 무관해 보이나, '마음에 담음'이라는 은유는 이 둘을 하나로 통합한다.
'태움'의 측면: 무엇을 마음에 담되, 탐진치(貪瞋癡)라는 가연성 법을 담을 때 마음은 불타오른다. 이는 경전에서 upanijjhāyati가 탐욕이나 진에로 인한 '응시'의 문맥에서 사용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명상'의 측면: 무엇을 마음에 담되, 지혜(paññā)에 의해 법(法)의 의미를 담을 때 마음은 맑아지고 깊어진다. 이는 dhammanijjhānakkhanti의 문맥과 일치한다.
즉, jhāyati는 '대상을 마음에 담는 근원적 작용'을 지시하며, 그 대상과 담는 방식의 차이가 두 상반된 결과를 낳는 것이다.
3.2. 경전 용례 분석: '마음에 담음'의 다양한 양태
3.2.1. 탐진치(貪瞋癡)를 '담는' 경우: upanijjhāyati
『Brahmajālasuttaṃ』(DN 1)과 『Pāthikasuttaṃ』(DN 24)에 등장하는 마노파도시카(manopadosikā) 신들의 예는 '담음'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santi, bhikkhave, manopadosikā nāma devā, te ativelaṃ aññamaññaṃ upanijjhāyanti.
te ativelaṃ aññamaññaṃ upanijjhāyantā aññamaññamhi cittāni padūsenti.
비구들이여, 마노파도시카라는 이름의 신들이 있다.
그들은 지나치게 오래 서로서로를 응시한다.
그들은 지나치게 오래 서로를 응시하여 서로의 마음을 더럽힌다."
여기서 upanijjhāyati는 단순한 '바라봄'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감정(瞋)을 마음에 '가득 담는' 행위이다. 그 결과 마음은 더럽혀진다.
『Aggaññasuttaṃ』(DN 27)에서는 남녀 간의 탐욕적 응시가 묘사된다.
"itthī ca purisaṃ ativelaṃ upanijjhāyati puriso ca itthiṃ.
tesaṃ ativelaṃ aññamaññaṃ upanijjhāyataṃ sārāgo udapādi,
pariḷāho kāyasmiṃ okkami.
여자가 남자를 과도하게 응시하고, 남자도 여자를 과도하게 응시한다.
그들이 과도하게 서로를 응시하여 탐욕이 생겼고, 열병이 몸에 들어갔다."
이 경우에는 '탐욕(貪)'이라는 방식으로 마음에 담음으로써 몸까지 달아오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Upakkilesasuttaṃ』(MN 128)에서는 수행 중 발생하는 문제로 확장된다.
"atinijjhāyitattaṃ kho me rūpānaṃ udapādi,
atinijjhāyitattādhikaraṇañca pana me rūpānaṃ samādhi cavi.
참으로 나에게 형상들에 대한 과도한 응시가 생겼고,
형상들에 대한 그 과도한 응시를 원인으로 하여 나의 삼매는 떨어졌다."
수행 중 나타나는 표상(相, nimitta)조차도 '과도하게 담는(ati-nijjhāyita)' 집착이 생기면 삼매가 무너진다. 이는 '담음'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담는가'가 핵심이고, 균형(안정감)이 깨어지면 삼매에 머물 수 없음을 시사한다.
3.2.2. 지혜(paññā)로 법(法)을 '담는' 경우: nijjhānaṃ khamanti
『Alagaddūpamasuttaṃ』(MN 22)에서는 법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nijjhāna의 긍정적 역할이 드러난다.
"te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tvā tesaṃ dhammānaṃ paññāya atthaṃ upaparikkhanti.
tesaṃ te dhammā paññāya atthaṃ upaparikkhataṃ nijjhānaṃ khamanti."
그들은 그 법을 완전히 배운 후, 그 법들의 의미를 지혜로써 철저히 검토한다.
그들이 지혜로써 의미를 검토할 때, 그 법들은 nijjhāna를 견딘다/허용한다."
자주 오역되는 "nijjhānaṃ khamanti" 구문은 '법들이 (수행자의) nijjhāna를 견딘다'는 의미이다. 즉, 수행자가 법의 의미를 마음에 '담으려는' 시도에 대해 법이 그 '담음'을 허용(용인)한다는 뜻으로, 이는 곧 납득이며 이해(understanding)이다.
같은 맥락은 『Cakkhusuttaṃ』(SN 25.1)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yassa kho, bhikkhave, ime dhammā evaṃ paññāya mattaso nijjhānaṃ khamanti,
ayaṃ vuccati — 'dhammānusārī'.
비구들이여, 만약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법들이 이와 같이 지혜로써 nijjhāna를 견딜 만한 것이 된다면, 이 사람을 '법을 따르는 자'라 한다."
마따소(mattaso: 적당히, 어느 정도)라는 부사는 '담음'의 정도를 나타낸다.
지혜라는 방법으로 법을 '적당히, 어느 정도' 담을 수 있게 될 때,
즉 '이해하는 만큼' 그는 법수자(法隨者)이다.
"te na ceva aññamaññaṃ saññāpenti na ca saññattiṃ upenti,
na ca aññamaññaṃ nijjhāpenti, na ca nijjhattiṃ upenti.
그들은 서로 서로 동의(동일하게 앎, 想)하게 하지도 않고 동의하게 되지도 않는다.
또한 서로 서로 nijjhāpenti도 nijjhattiṃ도 않는다." 『Kosambiyasuttaṃ』 (MN 48.)
수행 상황이 아닌 경우의 nijjhāpenti와 nijjhattiṃ도 '납득(이해)하게도 納得 되지도.'는
'받아들이다.' 혹은 '담다' → '納得(이해)'의 맥락으로 '담다'가 기본적인 의미가 된다.
3.2.3. 공성(空性)을 '담는' 경우: nijjhāyeyya yoniso
『Pheṇapiṇḍūpamasuttaṃ』(SN 22.95)는 nijjhāna의 가장 심오한 차원을 보여준다.
"tamenaṃ cakkhumā puriso passeyya nijjhāyeyya yoniso upaparikkheyya.
tassa taṃ passato nijjhāyato yoniso upaparikkhato rittakaññeva khāyeyya,
tucchakaññeva khāyeyya, asārakaññeva khāyeyya.
눈 밝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응시하고, 지혜롭게 검토한다.
그렇게 그가 보고, 응시하고, 지혜롭게 검토하는 동안에,
그것은 그에게 그저 공허한 것으로, 텅 빈 것으로, 알맹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yathā yathā nijjhāyati, yoniso upaparikkhati.
rittakaṃ tucchakaṃ hoti, yo naṃ passati yoniso.
그가 (그것을) 응시하고 지혜롭게 검토하면 할수록,
지혜롭게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그것은) 공허한 것이 되고, 텅 빈 것이 된다."
이 구절에서 nijjhāyati는 이어지는 요니소(yoniso: 지혜롭게, 근원적으로)라는 부사와 연결되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마음에 담아서 작동을 한다. 그 결과 담은 결과는 '공(空)'이다. 이는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가 아니라, 집착할 만한 실체가 '담겨 있지 않음'을 깨닫는 통찰이다.
4. ekaggatā에 대한 경전 용례 검증
본고의 논지를 검증하기 위해 『Mahācattārīsakasuttaṃ』(MN 117)의 용례를 분석한다.
"seyyathidaṃ —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yā kho, bhikkhave, imehi sattahaṅgehi cittassa ekaggatā parikkhatā —
ayaṃ vuccati, bhikkhave, ariyo sammāsamādhi saupaniso itipi, saparikkhāro itipi."
비구들이여, 이것이란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기억이다.
비구들이여, 이 일곱 가지 요소들에 의해 준비된(parikkhatā) 마음의 집중(cittassa ekaggatā)이,
비구들이여, 이것을 성스러운 바른 삼매(ariyo sammāsamādhi)라고 한다.
그것은 또한 원인을 가진 것이라고도 하고, 필요한 것을 갖춘 것이라고도 한다."
이 경문에서 주목할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바른 삼매(sammāsamādhi)는 팔정도의 다른 일곱 가지 요소(정견→정념)에 의해
'준비된(parikkhatā)' 상태로 제시된다.
둘째, 이는 바른 삼매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집중 행위가 아니라,
여러 선(善)한 마음 요소들이 함께 모여 형성하는 통합적 상태임을 의미한다.
셋째, '심일경성'이 여기서는 대상에 대한 좁은 집중(focus)보다는,
일곱 가지 요소들이 하나로 통합된 상태(unification)로 이해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통합으로서의 삼매' 개념은 비유적 표현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Jāṇussoṇibrāhmaṇasuttaṃ』(SN 45.4)의 수레의 비유에서,
'평온(upekkhā)은 짐(dhura)의 삼매(samādhi)이다'라고 설해진다.
여기서 '짐(dhura)'은 믿음, 지혜 등 수레를 끄는 핵심 요소들을,
'삼매(samādhi)'는 이 요소들이 조화롭게 기능하도록 하는 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평온은 치우침 없는 균형의 상태로서,
이 구절은 삼매가 단순한 대상 고정(one-pointedness)이 아닌,
수행적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며 통합된 상태(unification of mind)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Anupadasutta』(MN 111)의 용례도 주목할 만하다:
"vitakko ca vicāro ca pīti ca sukhañca cittekaggatā ca ...
일으킨 생각(vitakka)과 지속적 고찰(vicāra)과 희열(pīti)과 행복(sukha)과 마음의 집중(cittekaggatā)이 ..."
초선(初禪)의 구성 요소로서 'cittekaggatā'는 다른 요소들과 함께 열거된다. 이는 심일경성이 다른 요소들과 병존하면서 마음의 통일성을 담당하는 기능을 수행함을 보여준다.
5. 삼매와 nijjhāna의 상보적 관계: '통일된 마음'과 '담음'의 작용
5.1. 삼매: 마음의 통일된 상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른 삼매는 단순한 대상에 대한 집중(focus)이 아니라 여러 선한 마음 요소들이 하나로 통합된 상태(unification of mind)이다.
5.2. nijjhāna: 통일된 마음의 작용 방식
삼매가 마음의 통일된 상태를 지칭한다면, nijjhāna는 그 통일된 마음이
'무엇을 어떻게 마음에 담는가'를 지시한다.
통일된 마음은 그 자체로 이미 안정되고 균형 잡힌 상태이나,
그 마음이 대상을 '담는' 방식에 따라 결과는 상이해진다.
『Upakkilesasuttaṃ』(MN 128)에서 atinijjhāyitatta(과도한 응시)로 인해 삼매가 무너지는 이유는, '담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과도함이 '안정(安定)'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즉, 삼매라는 통일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담는' 방식이 지혜롭고 균형 잡혀야 함을 시사한다.
5.3. 통합적 이해: '통일'과 '담음'의 선순환
삼매와 nijjhāna는 다음과 같은 선순환 관계를 형성한다:
1. 삼매의 확립: 팔정도의 여러 요소들이 준비되어
마음이 통일된 상태(concentration as unification)에 이른다.
2. 지혜로운 담음의 조건: 통일된 마음은 산란함이 없어,
대상을 지혜롭게 담을(nijjhāna) 준비가 된다.
3. 법의 납득: 통일된 마음이 법의 의미를 지혜로 담을 때(dhammanijjhānakkhanti),
법은 그 담음을 허용하고 수행자는 법을 납득한다.
4. 통찰의 심화: 담을 때 있는 그대로 (nijjhāyeyya, yoniso),
공성(空性)으로 현상의 실체 없음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 생긴다.
5. 삼매의 성숙: 이러한 통찰은 다시 삼매를 더욱 안정되고 성숙한 상태로 이끈다.
5.4. 선정(jhāna) 수행의 본질
초기불교에서 바른 삼매는 색계 선정(jhāna)이고 심일경성을 핵심으로 한다.
특히 제2선의 정형구는 삼매(定)와 선(禪, 담음)이 함께 나타난다: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
생각과 숙고의 고요해짐으로써 안으로 맑게 가라앉은, 마음의 단일하게 된,
생각이 없고 숙고가 없는 안정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의, 두 번째 담음(을 구족)."
여기서 'dutiyaṃ jhānaṃ(두 번째 선)'에서 jhāna는 바로 '담음'의 의미를 지닌다.
즉, 선정은 '통일된 마음이 대상을 지혜롭게 담는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참선(參禪) 수행은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수행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궁극적으로 '담음'과 '비움'을 넘어선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집약적 수행법이다.
6. 현대적 해석과 함의
6.1. Samādhi와 Concentration
바른 삼매는 단순한 '집중(focus)'과 구분해야 한다.
SN 45.4에서 삼매가 '평온(upekkhā)'과 결합되어 'dhurasamādhi'로 표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진정한 삼매, 즉 바른 삼매(sammāsamādhi)는 결코 긴장된 집중 상태가 아니라,
짐의 무게(수행의 책임)조차 평온하게 담아내는 안정된 균형감을 동반함을 시사한다.
6.2. '마음에 담음'의 양면성과 수행적 함의
nijjhāna 개념이 주는 핵심 통찰은 '담음' 그 자체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담는가'가 관건이라는 점이다.
동일한 어근 jhāyati에서 파생된 upanijjhāyati(탐진치적 응시/담음)와
dhammanijjhānakkhanti(법에 대한 납득/법을 담음)이 상반된 결과를 낳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수행자에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 수행의 질(質)에 대한 성찰: 단순히 대상을 집중하는 시간이나 강도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상을 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 균형의 중요성: atinijjhāyitatta(과도한 담음)가 삼매를 무너뜨리듯,
수행에서도 지나친 집착이나 노력은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 지혜의 필요성: 대상을 지혜(paññā)로 담을 때 비로소 법은
그 담음을 허용하고(nijjhānaṃ khamanti), 진정한 이해와 통찰이 생긴다.
7. 결론: 삼매와 nijjhāna 이해의 지평 확장
본고는 삼매(samādhi)의 의미 구조를 '집중'의 두 층위(concentration/focus)로 분석하고,
nijjhāna(nijjhāyati) 개념의 핵심 의미를 '마음에 담음'으로 파악하여, 이 두 개념의 상보적 관계를 통합적으로 고찰하였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어 번역어 '집중'은 '수렴(concentration)'과 '지향(focus)'이라는 두 가지 의미 층위로 구분될 수 있으며, 이는 삼매 이해의 분석적 도구로서 유효하다.
삼매의 본질적 정의인 '심일경성(cittassa ekaggatā)'은 '단일 대상에 대한 집중(one-pointedness)'과 '마음의 통일된 상태(unification of mind)'라는 두 해석이 가능하며, 이는 각각 'focus'와 'concentration' 개념에 상응한다.
둘째, nijjhāna는 '대상을 마음에 담는 근원적 작용'을 지시하며,
그 대상과 담는 방식에 따라 번뇌의 불길이 될 수도(upanijjhāyanti),
지혜의 자양분이 될 수도(dhammanijjhānakkhanti)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공성(空性)을 있는 그대로 담을 때(yoniso nijjhāyeyya)는 가장 심오한 통찰의 상태로 나아간다.
셋째, 삼매와 nijjhāna는 상보적 관계에 있다.
바른 삼매는 여러 선한 마음 요소들이 통일된 상태(unification)로서, 이러한 통일된 마음이 지혜롭게 대상을 담을(nijjhāna) 때 비로소 법에 대한 진정한 납득과 통찰이 가능해진다.
반대로, 지혜로운 담음은 삼매를 더욱 안정되고 성숙한 상태로 이끈다.
넷째, 『Mahācattārīsakasuttaṃ』(MN 117)의 용례는 바른 삼매가 팔정도의 다른 요소들에 의해 '준비된(parikkhatā)' 상태임을 보여주며, 이는 삼매를 단순한 대상 집중보다는 여러 선한 마음 요소들이 통합된 상태로 이해해야 할 근거를 제공한다.
『Jāṇussoṇibrāhmaṇasuttaṃ』(SN 45.4)의 수레 비유에서 삼매가 '평온(upekkhā)'과 결합된 점은 삼매가 단순한 대상 고정이 아닌 균형과 통일의 상태임을 재확인시켜 준다.
결론적으로, 삼매는 '마음의 통일'과 '대상에의 지향'이라는 두 측면을 포괄하는 다층적 개념이며, nijjhāna는 그 통일된 마음이 대상을 대하는 구체적인 작용 방식이다.
초보 수행자에게 삼매는 특정 대상에 대한 집중(focus)으로 접근되지만, 바른 삼매 수행 단계에서는 모든 정신적 요소들이 하나로 통합된 상태(unification)로서 체험된다.
또한 선정이 깊어 갈수록 '담음'이 아닌 '비움'으로 진행되고, 무색계 선정에서는 하나에 대한 집중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심리 상태에서 법을 지혜롭게 담을 때(nijjhāna) 비로소 해탈의 지혜가 열린다.
이러한 이해는 삼매와 선정 수행에 대한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을 경계하고, 불교 수행론의 풍부한 지평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참고문헌
1. Dīgha Nikāya (장부)
- DN 1: Brahmajālasuttaṃ
- DN 18: Janavasabhasuttaṃ
- DN 24: Pāthikasuttaṃ
- DN 27: Aggaññasuttaṃ
2. Majjhima Nikāya (중부)
- MN 22: Alagaddūpamasuttaṃ
- MN 44: Chūḷavedallasutta
- MN 48: Kosambiyasuttaṃ
- MN 50: Māratajjanīyasuttaṃ
- MN 95: Caṅkīsuttaṃ
- MN 101: Devadahasuttaṃ
- MN 108: Gopakamoggallānasuttaṃ
- MN 111: Anupadasutta
- MN 117: Mahācattārīsakasuttaṃ
- MN 128: Upakkilesasuttaṃ
3. Saṃyutta Nikāya (상응부)
- SN 22.95: Pheṇapiṇḍūpamasuttaṃ
- SN 22.102: Aniccasaññāsuttaṃ
- SN 25.1: Cakkhusuttaṃ
- SN 45.4: Jāṇussoṇibrāhmaṇasuttaṃ
4. Aṅguttara Nikāya (증지부)
- AN 3.66: Kesamuttisuttaṃ / Kālāma-sutta
- AN 3.67: Sāḷhasuttaṃ
- AN 4.193: Bhaddiyasuttaṃ
- AN 6.46: Mahācundasuttaṃ
- AN 10.33: Ubbāhikāsuttaṃ
- AN 11.9: Saddhasuttaṃ
5. Pali Canon E-Dictionary Version 1.94 (PCED)
Abstract
This study provides an integrated analysis of samādhi (concentration) and nijjhāna—a mode of contemplation derived from the root jhā—through etymological investigation and canonical review. It distinguishes between two layers of the Korean term for 'concentration': 'concentration' as the convergence of various elements (unification) and 'focus' as the orientation of a single subject (one-pointedness). This distinction illuminates the two interpretative traditions of cittassa ekaggatā in Pāli scriptures: one-pointedness versus unification of mind.
Furthermore, this paper redefines nijjhāna beyond mere 'gazing' or 'reflection,' identifying it as the fundamental act of 'holding in mind' (internalizing). By analyzing the Mahācattārīsakasutta (MN 117), the study demonstrates that sammā-samādhi, as a state 'prepared' (parikkhatā) by the other seven factors of the Noble Eightfold Path, signifies a 'unification of mind' rather than simple object-oriented focus.
The study further explores the dual nature of jhāyati (to burn/to meditate): depending on how one 'holds' the object in mind, it can either fuel the fires of defilements (upanijjhāyanti) or provide the nutrients for wisdom (dhammanijjhānakkhanti). By integrating samādhi as the unified state of mind and nijjhāna as the mode of engaging with objects, this study reveals the complementary dynamics of Buddhist meditative practice and expands the horizon of Buddhist contemplative the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