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리 냉이
나는 한 뼘이라도 텃밭을 가꾸지 않아 땅을 직접 일구어 거두는 푸성귀는 마련할 수 없다. 퇴직 후 첫해만 연로한 분이 힘에 겨우 경작을 미뤄둔 밭에 내가 채소를 가꾼 푸성귀를 식탁에 올릴 수 있었다. 이를 제외하곤 텃밭을 가꾸지는 않음에도 봄 한 철은 근교 산자락을 누비면서 채집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로 우리 집 식탁은 풍성하고 이웃과 지기들에도 아낌없이 나누어 먹는다.
봄철에 넘치는 산나물은 묵나물로 만들어 두면 다른 계절에 먹을 수 있으나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산야에서 찬으로 삼을 수 있은 대상은 자생지가 어딘지 나는 훤해 다른 계절에도 종종 찬거리를 마련한다. 겨울이 오기 전과 해동 후 들녘의 냉이와 초여름 강변으로 나가 꺾어온 죽순도 찬으로 삼았다. 청정지역에 자라는 돌나물이나 머위도 뜯으면 식탁에 오른다.
입동이 지나 소설 절기를 앞둔 십일월 중순이다. 그간 고온 현상을 보이던 날씨였는데 올가을 첫 추위가 닥쳐 기온이 내려가 풀리지 않은 화요일이다. 추위가 와도 아직 영하권이 아니라 된서리가 내리지 않고 지표도 얼지 않은 때다. 이즈음 강변 둔치 경작지 언저리 붙어 자랄 냉이를 캐보려고 동마산병원 앞으로 나가 함안 대산을 거쳐 의령 지정 두곡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보름 전 의령 지정 거름강 둔치 의병의 숲에 가꾼 가을꽃을 완상하려 나선 길과 겹치는 동선이었다. 그날 남강이 낙동강 본류에 합수하는 두물머리에 조성된 숲과 가을을 장식한 꽃을 감상했다. 귀로에는 임진란 의병장 곽재우를 기리는 빗돌과 휘하 손인갑 부자 충절을 새긴 쌍절각을 둘러봤다. 지정 마산리로 나와 송도교를 건너와 대사 구혜에서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복귀했다.
이른 아침 교외로 나가는 시골 버스에는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타고 내리면서 칠원 읍내를 벗어나니 승객은 줄었다. 대산 구혜를 지난 남강 하류에 가로놓인 송도교를 건너니 지정 마산리였다. 그곳은 지정면 소재지와 제법 떨어진 강변인데 사립 중학교가 명맥을 잇고 있었다. 지정 초등학교를 비롯한 다른 면 단위 관공서는 세간을 거쳐 신반으로 가는 길목인 봉곡리에 자리했다.
시골을 다녀보면 ‘마’ 자와 결합 된 지명으로 마산과 마전이 흔했다. 마산의 경우는 말 ‘마(馬)’일 테고 마전은 삼 ‘마(麻)’로 추정된다. 지명에 말이 등장함은 주변 산세가 말을 닮았다든가, 말과 얽힌 전설이 서린 경우다. 마전은 의외로 동일 지명이 여러 고장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우리네 선인들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다. 옛날에는 길쌈을 해서 삼베를 짰기에 삼을 심어 키웠다.
지정 마산리에서 강변을 따라 가면 성당리가 나오는데 교통이 불편한 오지라 보건진료소가 있었다. 성당리에 딸린 마을이 백야인데 지난여름 항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3관왕을 달성한 김민우 선수가 그 마을 누구네 손자라는 펼침막을 봤다. 백야에서 남강이 흘러온 벼랑을 따라가면 정곡면 적곡으로 강 건너는 한국전쟁 와중에 가요 ‘처녀 뱃사공’ 노랫말이 지어졌다는 법수 악양이다.
낯선 동네를 찾아간 한 사내는 마산리에서 성당리로 가는 둔치 경작지 언저리를 살폈다. 남강 하류는 낙동강 본류가 아니라 4대강 사업 구간에서 제외되어 강바닥의 모래를 퍼내지 않고 둔치 경작지도 살려두었다. 현지 농민들은 국가 하천 부지에 푸성귀나 잡곡을 가꾼 수확물은 소득 창출에 도움이 되지 싶다. 모래흙이 쌓인 충적토에는 무는 종아리가 굵어졌고 풋풋한 마늘이 자랐다.
둔치 비닐하우스 단지 근처는 가을에 싹이 터 잎줄기를 펼쳐 자란 냉이가 보여 배낭의 호미를 꺼내 캐 모았다. 장소를 옮겨 시멘트 포장 농로를 따라 성당리로 가는 길섶에서도 냉이를 캐고 앞 작물을 거두어간 휴경지는 야생으로 자란 돌갓과 함께 냉이가 웃자라 너풀너풀했다. 사내는 허리를 굽히기도 하고 쪼그려 앉기도 하면서 냉을 캐 봉지 채워 배낭에 담아 송도교를 건너 구혜로 왔다. 2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