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잎을 묶으며
-유홍준-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발 시퍼런 깻잎을 묶으며 쓴웃음 날려보낸다.
가난에 찌들어 한숨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오르는 깻이파리처럼 부풀고
무슨 할 말 그리 많은지
맞다 맞어,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거푸거푸 웃음을 날린다
말 안 해도 뻔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가야
흰 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 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에 흰구름 몇 덩이 머물다 가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한나절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는, 이 얼마만의 기쁨
💜 같이 가는 길에
https://m.cafe.daum.net/dreamt/TFjc/16548
찡찡한 하늘
100년만에 한가위 보름달 크게 뜬다는데..
얼굴 보여주기 싫나?
아침 일찍 큰조카집으로
어제 애들이 모두 지들 집에 가버려 집사람과 나만
이젠 차례도 어른들만 모여 쇠어야할까?
젊은 사람들에겐 명절 차례도 크게 의미없이 받아들인다
세대가 달라지면 풍속도 달라지는 거겠지
도착하니 이미 큰형님네와 동생네가 와있다
아직도 큰형님께서 손수 진설을 하신다
우린 지금도 범벅
형님이 하시는 것만 바라 볼 뿐
항상 형님이 앞장서 하시니 우린 크게 관심 가지고 있질 않다
장조카가 주관하여 차례를 모셨다
조카가 강신하고 술잔 올린 뒤 모두 절 두 번
잠시 기다렸다가 국 그릇 내리고 숭늉 올린 뒤 숭늉에 수저 담궜다 수저젓가락 걷은 뒤 잘 돌아가시라고 절 두 번
이로써 차례가 끝났다
음식 장만하여 진설할 때까지 그 공을 들였지만 막상 차례 지내는 시간은 10여분도 안된다
이게 타당한 일일까?
어떤 집에선 인터넷 차례도 지낸다고 한다
차례지내는 의미가 뭘까?
조상을 기리며 그 유지를 받들어 모시겠다는 다짐이 아닐까?
모르겠다
작은형님네가 차례 모시러 오지 않았다
이제는 화목이도 결혼해 며느리 얻었으니 추석엔 집에서 지내시겠다고
어쩜 일리있는 말이다
큰형님께 추석 차례는 각자 집에서 모시고 설 차례만 함께 모여 모시는게 어떻겠냐고
설엔 서로 세배도 해야하니 모두 모여 차례모시는게 좋을 것같다고
내 주위에 그렇게 하는 집안도 많다
그럼 젊은 애들도 부담이 덜 할 것같다
생각해 보자 하신다
내일 작은 누님 팔순이시란다
어? 월요일인줄 알았는데...
큰누님께 전화드렸다
일요일엔 교회나가셔야하기 때문에 작은누님 팔순에 가시기 어렵단다
평생에 한번인데 큰누님이 빠지시면 되겠냐며 내일 내가 모시러 가겠다고
생각해 보자신다
큰누님께선 일요일엔 교회를 빠지시지 않고 다니신다
다른 무엇보다도 교회가 우선
그래도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며 꼭 가시자고
식사하는데
어? 배가 넘 뱅뱅
가스가 차 오르는 것같다
왜 이러지
아침에 변비 생기던데...
내가 어제 무얼 잘못먹었나?
토란국에 밥말아 몇술만 먹었다
피곤해 자꾸 눕고 싶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동생이 산소에 다녀 오자고
큰형님께선 힘드셔서 가시기 어렵겠다고
우리만 다녀 오자고 했다
좀 괜찮은 것같아 내가 운전하고 금호리 산소로
도착하니 동생네도 바로
부모님 묘소에 올라가니 말끔하게 벌초되어 보기 좋다
작은형님께서 고생 많으셨다
가져온 과일과 송편 차려 놓고 어머님이 커피 좋아하셨다며 동생은 커피도 한잔 타 올린다
오로지 자식들 바르게 잘 살기만을 기도하시던 어머님
형제간엔 우애있고 화목하게 지내야한다 강조하셨던 우리 어머님
어머님 소원대로 나름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고조할머니부터 작은아버님들까지
묘소를 일일이 찾지는 못하고 합동으로 절을 올렸다
이제는 한분 한분 찾아 다니는 것도 어렵다
모두 한곳으로 모으는 것이 어떨까?
어차피 찾아다니지 못할바엔 한 장소로 모아 평장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형님께서 주관하시니 알아서 하시겠지
성묘도 일찍 마쳤으니 어디라도 놀러 가면 어떻겠냐고
동생이 한재골 트래킹 하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그도 괜찮겠다
인경이네도 별 일 없으면 한재골로 오라고
오늘은 집사람이 점심을 사겠단다
그도 좋지
집에 들러 집사람은 운동화 갈아 신고 한재골로
배가 넘 벙벙하다
왜 이러지
인경이네도 와서 한재골 트래킹
한재골은 산중턱을 깎아 트래킹 코스를 만들었는데 경사가 거의 없어 평지를 걷는 것과 비슷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오늘은 명절인데 길가 주차장은 차 댈 곳 없을 정도
막 걸으려는데 갑자기 뱃속 이상
안되겠다
화장실 다녀 와야지
화장실 갔더니 줄줄
어? 아침엔 변비로 힘들었는데..
뒤따라 걷는데 힘이 든다
땀도 나고
몸 상태가 이상해진다
특별히 먹은 것도 없는데...
길가 정자에서 쉬면서 가져간 과일 한조각씩
입맛이 별로 나질 않는다
왜 이러나
되돌아 오는데 다급
빠르게 먼저 걸어 화장실로
또 줄줄
설사가 나며 배는 벙벙
뱃속에 가스가 많이 찬 느낌
어제 내가 먹은 음식에 문제 있나?
특별히 문제 될게 없는 것 같은데...
다시 또 급해 화장실로
이거참
점심 때가 훌쩍 지났다
도토리 수제비나 먹자며 담양쪽으로
손두부와 수제비가 맛있는데 오늘은 휴무
그 건너편 메밀꽃 필무렵으로
여긴 정상 영업
식당 주변을 잘 가꾸어 놓았다
각종 수석과 다육식물의 전시
이런 정도 가꾸려면 주인의 아이디어와 공력이 많이 들었겠다
고기는 많이 먹었으니 메기탕이나 먹자고
뱃속이 가스 찬 것 같아 맥주 한잔 하면 꺼지지 않을까하고 맥주 한병 시켰다
맥주를 마셔 보아도 마찬가지
아니 술맛이 전혀 없다
내가 술맛을 잃을 땐 어딘가 고장 났다는 신호
무슨 일로 뱃속이 이럴까?
메기탕이 나왔는데 전혀 입맛을 느낄 수 없다
누릉지 몇 번 떠 먹다가 말아 버렸다
이 좋은 날 탈이 붙다니...
다시 또 화장실
식사하고 커피한잔 마시자는 걸 난 안되겠다며 집사람을 재촉해 집으로
몸이 쓰러질 듯 피곤해 져버린다
집에 와서도 줄줄
안되겠다며 양귀비 대 좀 있는 걸 달여 마셨다
집사람은 매실물을 타다 준다
좀 있으니 설사가 멈추는 듯
그대로 떨어져 낮잠 한숨
집사람이 성당 가자며 깨운다
내일은 작은 누님 팔순에 가야하니까 아침 미사를 보기 어렵다며 오늘 다녀 오자고
일어나 보니 어느새 4시 40분
참 많이도 잤는데 몸은 개운치가 않다
또 화장실로
다행히 설사는 멈춘 것같은데 배가 아프다
왜 이러나
이런 상태론 미사 보기 어렵다니까 그럼 오늘은 쉬자고
큰누님 전화
내일 일이 걱정 된다고
형제 팔순에 가기 위해 하루 예배드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용서할거라며 내가 모시러 가겠다고
마지 못해 그러라며 목사님께 전화해야겠단다
구순이 다 되신 분이 교회에 참으로 열심이시다
다시 떨어져 잠한숨
조사장 전화
오늘 면민노래자랑 있는데 구경 안오시냐고
이따가 가겠다고 하니 자긴 먼저 나가겠단다
그럼 먼저 만나 바둑이나 한 수 두자고
집사람은 넘 빠르다기에 시간 맞추어 오라며 난 100원 택시를 불러 타고 바둑 휴게소로
조사장이 나와 기다리고 있다
노래자랑 시작하기 전에 얼른 한 수 두자고
중반전 들어 내 집모양을 크게 만들었다
흑도 하변에 모양 형성
흑의 약점을 파고 들어 모양을 깨러 들어갔는데 몇 수 잘못받아 대마가 갇혔다
이게 사느냐 죽느냐로 승부 결정
흑의 약점들을 선수로 찔러 결국 탈출에 성공하니 흑이 투석
대마가 살게 되어 더 이상 비비적 거릴곳이 없다
조사장은 친구가 찾아 와 같이 나가고 난 남수 동생과 노래자랑 구경하러
집사람도 나왔다
집사람은 앞에 가서 구경하겠단다
남수 재봉 승훈 노열동생이랑 테이블 하나 잡아 술한잔 하자고
난 술맛이 없어 맥주 한잔 마시겠다니
남수 동생이 가져다 준다
맥주 한모금 하려는데 속이 받혀 들어가질 않는다
단단히 고장났나 보다
앉아 있는데 피곤이 엄습
이대론 견딜 수 없어 집사람에게 먼저 들어가겠다고 전화
택시 불러 타고 집으로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떨어져 자 버렸다
일어나니 밤 11시
집사람이 오질 않았다
아직도 노래자랑 끝나지 않았나?
전화해 보니 받질 않는다
몇 번을 전화해 보아도 마찬가지
괜히 불안한 생각이 스친다
노래자랑 구경가서 이렇게 오래 있어 본 적이 없던 것같은데...
11시 반이 넘어서니 집사람이 전화
마지막 경품 추첨 구경하고 있다며 금방 가겠다고
아이구야
7시부터 밤 12시까지 참 오래도 했다
그래도 다른 일없이 구경하고 있다니 안심이 된다
12시 넘어 집사람이 들어 왔다
예전엔 새벽 한시까지도 했었단다
우린 노래자랑 구경하다가 일찍 와 버려 그런줄 전혀 몰랐나 보다
다시 또 잠자리로
구름이 불그레 물들어 온다
님이여!
추석잘 쇠셨겠겠지요
구름사이 보이는 둥근 보름달에 소원도 빌었으리라
서로 나눈 따뜻한 정 생각하면서
오늘도 무탈한 일상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