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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을 읽었다. 어릴 때 우리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자라면서 나를 중심으로 돌고있다고 생각한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도 세상을 중심으로 돌고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마치 코르페니쿠스가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이 되기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세상의 중심이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빅터 프랭클 박사의 생존수기에서 언급되었듯이 카포나 마름은 수용인이나 소작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 여기에 대한 반응은 우리 각자가 가진 권리이자 선택이기 때문이다. 마치 전교 1등과 같이 좁은 분야에서의 성공은 모든 사람이 이루기는 어렵지만 매일 1시간 공부와 같은 성취는 모두 같이 이루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과 같다. 즉 어떤 일이 발생하든 그 것을 내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어릴 때와 같이 다시 행복하게 된다. 결국 착각이 아닌 실제로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면 체력이 저하되기에 해야할 일을 줄이는 것이 좋다. 하지만 하고싶은 일은 늘려가야 한다. 일이 없다면 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이 많지않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속성을 고려함이 현명한 선택이다. 은퇴를 일찍하는 것은 좋다. 해야할 일이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고싶은 일은 그만큼 늘려야 한다. 사는 이유가 뭔가생각하면 쉽게 이해되는 주문일 것이다. 3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인 점은 당연하다. 두배 이상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서희가 소손녕과의 담판에서 강동 6주를 얻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외교술이 아니라, 군사·외교·국제정세를 종합적으로 활용한 전략 때문.
📜 사건 배경
* 시기: 993년
* 고려 vs 거란(요나라) 1차 침입
* 거란 장수: 소손녕
* 고려 외교관: 서희
* 결과: 고려가 강동 6주 확보
1️ 명분 싸움에서 승리
소손녕은 “고려는 고구려 땅을 계승했다면서 왜 요나라와 대등하려 하느냐”라고 압박.
이에 서희는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다. 오히려 그 땅은 우리의 옛 영토다.”라고 역공.👉 고려가 압박받는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영토적 정통성을 가진 주체라는 논리 전환
2️ 군사적 현실 계산
* 거란은 80만 대군을 동원했지만
* 고려는 청야전술로 버티며
* 완전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
소손녕 입장에서도:
* 장기전은 부담
* 송나라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함👉 협상이 서로에게 유리한 선택
3️ 국제정세 활용
당시 동북아 삼각구도:* 요(거란)* 송* 고려
서희는 “우리가 송과의 관계를 정리하겠다.”라는 외교적 카드를 제시. 즉, 고려를 적이 아닌 완충국으로 만들겠다는 전략
4️ 실질적 보상 확보
협상 결과:
* 고려는 압록강 동쪽 땅을 확보
* 강동 6주 설치
* 국경선 북상; 전쟁에서 밀리지도 않았고 영토는 오히려 확장
🎯 핵심 이유 정리
1. 고구려 계승 논리로 역사적 정통성 확보
2. 거란의 군사적 부담 파악
3. 송-요-고려 국제정세 활용
4. 외교적 담판 능력 66
⚔️ 벌지 전투 (Battle of the Bulge)
*기간: 1944년 12월 16일 ~ 1945년 1월 25일
*장소: 벨기에·룩셈부르크 아르덴 숲
*교전: 독일군 vs 연합군(미·영 중심)
📌 왜 “벌지(Bulge)”인가?독일군의 기습 돌파로 연합군 전선이 지도상에서 불룩 튀어나온 모양(bulge)이 되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
🧠 독일의 목표
지휘: 아돌프 히틀러
목적:
1. 연합군 전선을 분열
2.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항구 탈환
3. 서부전선에서 협상 유리한 위치 확보
🔥 전투 전개
* 혹한 속 기습공격
* 연합군 초기 혼란
* 미군의 완강한 방어; 특히 벨기에의 바스토뉴에서 미 101공수사단이 포위 상태에서도 버텨냄. 미군 지휘관 조지 S. 패튼은 제3군을 급히 북상시켜 바스토뉴를 구원했다.
❄️ 전황 반전
* 날씨가 개며 연합군 공군 투입
* 독일군 연료 부족
* 병력·물자 열세; 결국 독일군 공세 실패.
📉 결과
* 독일군 약 7~10만 명 사상
* 연합군도 큰 피해(약 8~9만 명)
* 독일의 마지막 대규모 서부 공세 실패
* 전쟁 종말 가속화
🎯 역사적 의미
👉 나치 독일의 마지막 도박
👉 서부전선 주도권 완전 상실
👉 이후 연합군의 독일 본토 진격 가속 70
⚔️ 아우스터리츠 전투(1805년 12월 2일) - 별칭: 삼제회전(三帝會戰, Battle of the Three Emperors)
*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
*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
📍 장소; 현재 체코의 슬라브코프(옛 아우스터리츠) 인근
🧠 배경
* 제3차 대프랑스 동맹전쟁
* 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가 프랑스를 견제
* 나폴레옹은 독일 지역에서 빠르게 기동해 적을 분리
🎯 나폴레옹의 전략
1️ 일부러 약해 보이기
* 우익을 약하게 보이게 배치
* 고지(프라첸 고지)를 일부러 비워둠
2️ 적 유인
* 연합군은 프랑스 우익을 공격하려 대규모 이동
* 중앙이 약해짐
3️ 결정적 중앙 돌파
* 프랑스군이 프라첸 고지를 기습 점령
* 연합군 전선 분열
📉 결과
* 연합군 대패 (약 3~4만 명 손실)
* 오스트리아 항복 → 프레스부르크 조약
* 신성로마제국 해체 (1806년)
🌍 역사적 의미
👉 나폴레옹 최고의 전술 승리
👉 유럽 세력 균형 붕괴
👉 프랑스 대륙 패권 확립 87
칠천량 비극(七千良悲劇)은 1597년 임진왜란 중 발생한 칠천량 해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이순신 장군의 승리와 원균의 패배 후, 조선 수군의 큰 위기가 시작되었고, 이 사건은 조선 수군의 전반적인 패배를 상징하는 중요한 전투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 칠천량 해전 배경
* 임진왜란: 1592년 일본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
* 조선 수군의 지도자: 이순신 장군
* 그러나 1597년 7월에는 원균이 수군 사령관으로 지명. 원균은 이순신의 지휘 스타일과 전략을 따라가기 어려웠고, 전술적 경험과 리더십에서 부족.
⚔️ 칠천량 해전; 1597년 7월,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천량(현재의 경상남도 거제 인근)에서 일본 수군과 맞붙습니다.
* 일본군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한 숙련된 전략과 대규모 함대로 조선 수군을 압박.
* 조선 수군은 원균의 지도력 부족과 불리한 지형, 전략적 준비 부족 등으로 큰 피해.
🔥 비극의 원인
1. 원균의 전략 실패;
* 원균은 전투 준비가 부족했고, 일본군의 기습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조선 수군의 군사 지휘 체계가 불안정하여 효과적인 지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 불리한 해상 전술을 사용하여 일본의 강력한 함대와 맞서기에는 너무 미약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2. 전략적 실수; 원균은 이순신 장군의 훈련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고, 해상 전투에서의 경험도 부족했다. 이로 인해 일본군에 쉽게 패하게 되었다.
3. 충분한 준비 부족; 조선 수군은 대규모 일본군에 비해 훈련과 군수지원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압도적인 피해를 입었다.
4. 기대와 현실의 차이; 원균은 자신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졌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훈련 부족과 전략적 실수로 인해 패배했다. 이로 인해 조선 수군은 엄청난 손실을 겪었고, 이후 이순신 장군의 복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 칠천량 해전의 결과
* 패배: 조선 수군은 이 전투에서 큰 패배를 당했으며, 약 200척의 배가 파괴되거나 낙오했다.
* 원균 사망: 원균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그의 지도력 부족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 조선 수군의 후퇴: 전투 후 이순신 장군이 복귀하여 조선 수군을 재건하고, 이후 한산도 대첩을 포함한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88
발리앙(Balian of Ibelin)과 살라딘(Saladin)의 타협은 제3차 십자군 전쟁 직전, 예루살렘 함락 직후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성지의 평화적 이전과 시민 보호를 위한 현명한 협상으로 알려져 있다.
📜 배경
* 시기: 1187년
* 장소: 예루살렘, 십자군 왕국
* 주요 인물:
**발리앙 오브 이벨린 – 예루살렘 수비 책임
**살라딘 – 이슬람 측 지도자
* 사건: 1187년 10월, 하틴 전투에서 십자군 연합군이 참패 → 살라딘이 예루살렘으로 진격
⚔️ 발리앙의 대응
1. 예루살렘 수비
* 발리앙은 시민과 병력을 조직해 예루살렘을 방어하려 했지만, 병력과 보급이 부족했다.
* 성문과 성벽을 강화했으나, 살라딘군의 포위와 압박은 너무 강력했다.
2. 평화적 협상 선택
* 장기전은 도시 파괴와 시민 희생을 초래할 가능성이 컸다.
* 발리앙은 저항보다는 협상을 선택하여 최소한의 피해로 시민들을 보호하려 했다.
🤝 타협의 내용; 발리앙은 성내 무슬림을 학살하겠다고 위협했고 기독교인을 학살하면 더 큰 십자군이 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해서 쿠르크족으로 반대파가 많아서 학살을 계획했던 살라딘에게 명분을 부여
* 예루살렘 시민 안전 보장
* 살라딘은 예루살렘 시민들을 살해하지 않고 보호하겠다고 약속
* 시민과 기사 일부는 몸값을 지불하고 안전하게 도시를 떠날 수 있음
* 무기와 성문 인도
* 발리앙 측은 일부 무기와 성문을 내주며 항복
* 도시 점령을 최소한의 충돌로 해결
* 결과
* 예루살렘은 피해 최소화 상태로 살라딘에게 넘어감
* 시민들은 몸값을 내고 안전하게 탈출 가능
* 발리앙과 기사단도 살해 없이 철수
🌍 역사적 의미
1. 인도적 접근: 살라딘은 다른 정복자들과 달리 도시 주민과 기사단을 학살하지 않고 안전을 보장
2. 십자군과 이슬람 간 타협의 사례: 극단적 폭력 대신 협상과 상호 존중을 보여준 사례
3. 발리앙의 지도력: 제한된 자원으로 도시와 시민을 보호하며, 책임감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음
4. 제3차 십자군 전쟁에 영향: 예루살렘 평화적 항복으로 인해 후속 십자군 전쟁에서는 도시 탈환 대신 전략적 점령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됨 101
일본은 진주만기습의 전략목표를 단기적으로는 일부 달성했지만, 전략적·장기적으로는 실패했다.
📌 사건 개요;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하기 위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이 공격은 곧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이어졌다.
🎯 일본의 전략 목표
1. 미 태평양 함대의 무력화
2. 동남아시아(특히 석유 자원 지역) 점령 시간 확보
3. 미국의 전쟁 의지를 꺾어 조기 강화를 유도
✅ 단기적 성과
* 전함 8척 중 4척 격침, 다수 손상
* 항공기 약 300대 파괴
* 2,400명 이상 미군 사망 → 태평양 함대에 일시적 타격 성공, 일본은 이후 동남아시아와 필리핀 등지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다.
❌ 전략적 실패 요인
1. 항공모함 부재; 공격 당시 미 항공모함은 항구에 없었고, 이후 태평양 전쟁의 핵심 전력이 됨.
2. 핵심 시설 미파괴; 연료 저장시설·조선소·잠수함 기지 등을 공격하지 않아 미 해군의 회복이 빨랐음.
3. 미국의 결집; 공격 다음 날,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의회에서 “치욕의 날” 연설을 하고 참전을 선언. 고립주의 여론이 사라지고 미국 사회가 전쟁에 단결.
4. 산업력 과소평가; 미국의 압도적인 산업 생산력은 전쟁 장기화 속에서 일본을 압도. 결과적으로 일본은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에서 패배했다.
🧭 결론
| 전술적 목표 | ✔ 성공 (일시적 타격) |
| 전략적 목표 | ✖ 실패 (미국 참전 및 장기전 초래) |
👉 즉, 진주만 기습은 전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치명적인 오판이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일반적 평가다. 최소한 연료저장시설을 파괴했다면 내부 목표인 6개월이 아닌 1년을 벌 수있었고 그동안 동남아의 석유자원을 확보했다면 차선이 될 수있었다. 107/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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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제1편 계計
제2편 작전作戰
제3편 모공謀攻
제4편 형形
제5편 세勢
제6편 허실虛實
제7편 군쟁軍爭
제8편 구변九變
제9편 행군行軍
제10편 지형地形
제11편 구지九地
제12편 화공火攻
제13편 용간用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