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고갯길로 올라
십일월이 절반 지난 수요일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가까이 대형 할인매장은 없어도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에서 웬만한 생필품은 마련이 된다. 나처럼 자차를 운전하지 않는 이에게는 시장을 봐서 나르기도 일거리다. 아내 건강이 염려되고부터 장보기는 전적으로 내가 도맡아 어떨 때는 산행 후 귀로에 배낭을 짊어지고 양손에는 시장 본 생필품을 가득 들고 돌아오기도 한다.
아파트단지 근처 농협에서는 수요일과 토요일은 농산물에 한정한 알뜰 장터가 열러 주민들에게 인기가 있다. 장이 서는 날이면 신선한 푸성귀는 동이 나기 전 구매하려고 장터 바깥에서 매장이 열리기를 줄지어 기다렸다가 장을 봐 가기도 했다. 나도 지난주 그 대열에서 기다렸다가 고구마 박스와 시금치 묶음을 사 온 적이 있다. 한 아주머니가 홈쇼핑 고구마보다 값이 싸다고 했다.
아침 식후 농협의 알뜰 장터가 열리길 기다려 현관을 나섰다. 장터 개장 시각에 맞추어 들렀더니 예상대로 전업 주부들이 여럿 대기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농부들이 땀 흘려 가꾸었을 채소들과 제철 과일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무청이 딸린 무와 시금치를 사서 집으로 짐을 옮겨 놓았다. 이어 현관에서 선걸음으로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책을 챙겨 용지호수로 나갔다.
용지호수 잔디밭 모퉁이 어울림 도서관에 들러 대출 도서를 반납하고 열람대에 놓인 신문을 펼쳐 읽었다. 수년 전 거제로 건너가 교직 말년을 보내면서 그간 수십 년 구독하던 중앙 일간지는 끊어 퇴직 후 종이 신문 열람은 도서관에서 가끔 보게 된다. 지면으로 보는 신문은 인터넷판과 다른 기분이다. 내가 관심이 가는 기사는 문화나 환경이고 면식이 있는 필자가 쓴 칼럼 정도다.
점심때가 되어 도서관에서 나와 도청 후문으로 향했다. 아까 지나친 메타스퀘어 가로수는 갈색으로 물들어 갔으나 은행나무 단풍은 노란색이 곱지 않았다. 도청 광장의 느티나무를 비롯한 다른 조경수들도 단풍이 곱지 않고 푸석푸석 말라가는 듯했다. 도청 후문 식당가에서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 식후 오후 일과는 도서관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다른 일정이 기다렸다.
안민동으로 건너가 안민고갯길로 오르는 산책을 나섰다. 그곳 초등학교 앞을 지나니 교문이 굳게 닫혀 의아했는데 안내문에는 안전을 고려해 방문객은 후문을 이용하십사고 했다. 안민고개로 오르는 들머리 비탈 단감과수원은 택지로 바뀌어 고층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었다. 둔탁한 마찰음이 들려오는 공사 현장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나목이 된 벚나무가 줄지어 선 산책로 데크를 따라가니 길섶에는 꽃잎이 시들지 않은 쑥부쟁이와 물봉선을 봤다. 엊그제 올가을 첫추위가 닥쳐 일시 움츠러들기는 해도 그간 이상 고온이 계속되었음은 물봉선의 선홍색 꽃잎에서 알 수 있었다, 안민고개로 오르내리는 자동차는 아주 드물어 소음이나 매연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자전거 라이딩이나 오후여서인지 산책객도 드문드문했다.
예전에는 샘물이 나왔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샘이 말라버린 약수터를 지나 안민고개 전망대로 갔다. 데크에서 창원대로를 기준으로 산업단지와 업무 주택지구로 나뉜 시가지를 부감했다. 십여 년 전에는 동쪽으로 뻗어간 산등선을 따라 시루봉이나 불모산 정상으로 갔으나 이제는 쳐다만 본다. 생태터널에서 남쪽으로 나가 오후의 햇살이 윤슬로 반짝이는 진해만과 시가지를 굽어봤다.
안민고갯길에서 벚나무가 도열한 남사면 산책 데크를 따라 내려섰다. 아까 올랐던 북향보다 수령이 더 오래되었을 벚나무는 계속 이어졌다. 도중에 장복산 허리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굽이를 더 돌고 돌아 태백동 새동네에 이르니 폐선이 된 진해선 철길이 가로막고 굴다리를 지나니 육교를 건너야 창원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집 근처에서 꽃대감과 커피잔을 들었다. 2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