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최인호님의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를 읽고 있다.
읽으면서 내내 우리 부모님을 많이도 생각하게 했다.
나의 아버지....
난 아직도 아빠라고 부른다.
법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바르게 사셨다.
그리고 항상 당당하셨고 우리들에게는 아주 따뜻하신 분이셨다.
아버지...!
어렸을 때 생각이 납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시면 아빠는 이불을 다 개키시고는
우리를 무릎에 앉히시고 노래를 불러 주셨죠...
어느날은 클레멘타인이란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어쩐지 슬픈노래다 생각했는데 당신께서 우리에게 그 노래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나와 동생은 그 이야기를 들이며 얼마나 울었던지....
그날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었었죠.
가끔 아빠가 집에 계실때는 엄마랑 같이 부침개를 부쳐 주셨었죠.
그때 그 부침개가 얼마나 맛있던지....
그 부침개는 행복의 맛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때 우린 행복을 먹은 것입니다.
한번은 당신이 집에 계실 때면 가끔 가지고 노시던 화투요,
패를 땐다고 하나..?
어느날밤 그걸 가지고 동생과 같은 그림 짝맞추기, 그러니까
지금 말하면 민화투를 친거죠.
그렇게 치다보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치다가
우리방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인지 갑자기 문을 열고
그 광경을 보셨죠.
당신은 그때 아무말 없이 그 화투들을 가지고 나가시며
"자거라" 그렇게 닥 한마디만 하셨죠.
그후로 우리집에선 화투가 사라졌었죠.
지금까지도....그래서 난 지금도 그 흔한 고스톱도 못친답니다.
치는 법을 몰라요.
학교 다닐때 친구들과 술마시며 늦을 때가 많아서
늦게 집엘 들어가면 주무시지 않는 티만 내셨죠.
헛 기침을 하는 식으로...
꾸중을 듣진 않았어도 그 소리가 어떤 꾸중보다도
더 무서웠던거 당신은 아시나요?
그래서 우린 집에 늦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흠" 하는 헛기침 소리가 무서워서....
당신은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습니다.
큰소리 한번 내지 않으셨지만 우린 그래도 아버지
당신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당신 때문에 우린 옆길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그렇게 바르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의 말 없는 무언의 가르침 때문에 우린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제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나도 부모가 되어보니
당신의 교육방법이 너무도 옳은 방법이란걸 알겠습니다.
당신의 말없는 실천이 ...
그것이 우리를 가르친 커다란 교육이었다는 것을....
아버지, 아니 아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초라해 보이는 뒷 모습은 싫습니다.
그 말없는 미소로 마음으로 우릴 지켜 주세요.
당신의 그 미소가 나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어깨 펴고 예전처럼 힘차게 걸어가세요...
아직은 당신에게 마음을 의지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난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당신이 보호해 주셔야 할 어린아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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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버지 늘...^^^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질않는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마시는 술잔의 절반은 눈물이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오늘 울아부지만나러 갑니다요`~야홋~^^
그런 멋진 아버님이 계심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유년시절 어렵사리 뒤늦게 얻은 딸자식을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그 사랑 다 받지도 못하고 친정 아버님 가시고 시아버님 만나 얼마나 존경하며 다시 사랑 받았는데...아버님, 다시 먼 길 떠나셨으니...지금도 아버님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