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은 다 그저그런데 일정은 촘촘하다.
여길 한 바퀴 돌아보려는 맘을 먹은 지 여러 달,
그동안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어제 수능으로 고생했다고 하루 쉬라네요.
쉬는 게 고생인 경우도 있는데.
언제: 2022년 11월 18일 아침 8시부터 대충 저녁 6시까지. 휴식 12분 포함.
어디를: 충남 금산군과 충북 옥천군에 걸쳐 있는 장령상 - 대성산 - 서대산. 24km
오전에 생각기를, 마성산도 끼어서 '서마장대'라고 이름 붙여볼까 했는데,
해 떨어지니 춥고, 배도 고프고, 으스스한 것이 '집에나 일찍 들어가자.'로 바뀌었다.
누구랑: 평일 남들 일하실 때 약오르라고 산에 갔더니 산행 내내 진짜 한 사람도 못 만났다.
개 짖는 소리가 난데없는 데서 나질 않나, 오늘따라 왜들 이러는 건지.
소요물품: 낱개 포장된 떡 여섯 개, 귤 네 개, 물 1.7L(도증에 500mL보충), 에너지바 한 개.
산행조건: 춥도 덥고 안 하니 요즘이 산행에 딱인 거 같다.
낙엽이 성가셨지만, 그게 또 길안내에는 요긴하다. 사람이 지나가면 자국이 꼭 남는다.
평속: 암 생각없이 걷는다. 발 네 개로.
특기할 점: 아래서는 안개였는데, 위에서 보니 운해라네요. 운무대에는 대포 지니신 예닐곱 분이 자리를 잡고 계셨고.
또한, 이렇게 엮어서 하신 분이 계시긴 하겠으나 암만 찾아봐도 트랙을 구할 길이 없었다. 과문한 탓이다. 덕분에 짧은 알바를 해서 부족한 키로수를 보태주었다.
늘상 보시던 거랑 달라서 신선하시죠?
쎈 산행을 통해서도 용기를 얻지만, 더러는 이렇게 가벼운 산행으로 위안을 삼아보심이.
용암사. 오늘의 시/종점.
옥천IC에서 나와 해장국으로 아침을 때운 식당에서 12분 거리.
이유를 물으면 모르겠다고 밖에 할 수 없는데, 정말 분위기 좋은 절입니다.
앙증맞은 크기의 마애불도 있고.
이보다 쌍둥이 삼층탑이 더 유명하던데...
마애불의 눈높이에서 본 운해.
운해의 힘이랄까
이렇게 거대한 운해는 처음이다.
여기 가서야 알았네유.
운무대에서 보니 더 좋습니다.
아련함까지.
오전 내내 이 운무는 계속되고.
장령산을 넘어왔는데
운무가 아직도.
바람에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다.
아까 사진 찍으러 오신 분한테 물었더니, 자신도 이런 운무는 퍽이나 오랜만이라고. 아마 기온이 낮기 때문일 거라고.
더러는 다른 산들이 주산을 호위하기도 하고, 막아서기도 하고 하는데
여기 있는 산들은 처음부터 얼굴을 다 열어보여줍니다.
오를테면 올라 봐라, 뭐 이러는 건 아닐 테지만.
구름이 물처럼 흘러갑니다.
옥천이라더니 운천이군요.
산들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납니다.
매봉 가기 전에 알바를 잠깐 하고
언뜻 보아도 이쪽 줄기가 더 멋지므로 제 길을 찾아 내려가니 '가지내재'라고 일러주시네요.
매봉은 매봉처럼 생겼고, 제비봉은 제비봉처럼 생겼지요.
장령산에서 대성산까지 친절한 안내가 많기도 하지만, 굳이 이런 안내판까지. ㅋ
용암사에서 여기까지 3시간 걸렸으니까 우리 클럽에 계신 분들은 저 시간에 6-70%면 충분하실 거라는 계산.
천성장마의 주역이기도 하고
천서대계는 안 들여다 봤지만 아마 여기가 중요한 길목일 듯.
이게 장령지맥.
그 가운데 오늘 지나온 장령산-작은산-돌메기산-매봉이 보입니다.
대성산에서 내려올 때 지도를 잘 들여다 봤어야 했는데 대충 보고는 배낭에 찔러넣었더니만.
결국 방장님의 물줄기 원류 탐사도 아니고. 계곡 따라 쫄밋쫄밋 내려와야 했습니다. 다행히 가시밭은 없었고 아찔한 경사가 곤혹스럽게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산에서는 능선을 사수하는 게 현명할 듯.
얼마나 살기좋으면 돌에다 이렇게 새기셨을까, 하며 계속 잘 사시기를 기도함.
(아, 여기서 저는 포장된 마을 안길을 걸어 서대산 코밑까지 갔는데,
제대로 환종주를 하려면 그 마을길 좌우에 있는 잘 생긴, 이름없는 능선을 오르는 것이 훨씬 바람직해 보임.)
마을에서 올려다 보면 이렇습니다.
저는 이보다 좌측(남쪽)으로 능선을 기어올랐는데...
그게 말이죠. 말씀이 아닙니다.
이런 비탈을 만나면 트랙이고 지도고 간에 다 무시하고 제멋대로 치고 오르고 치고 내리는 습관. 바람직하지 않죠.
경사도가 거의 직벽 수준. 저는 또 그런 걸 좋아해서 큰일입니다. 아무 산에서나 능선까지 직선을 긋고 한방에 오른 일. 이제 벗어나야 하는 습관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암튼 서대산 능선으로 기어올라서 천태산 쪽을 바라봅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산줄기에서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세어나 보는 양.
서대산 정상. 904m. 충남 최고봉.
잠시 후에 넘어갈 능선.
현대판 측우기.
오후의 햇살로 조각품처럼 보입니다.
멀리 식장지맥.
중앙에 제비봉 같고요.
그 뒤로 옥천시내가 보입니다.
이짝은 바위가 많고, 그러다 보니 내리막에서 식겁한 구간이 몇 번 나옵니다.
용케도 넘어지거나 미끌리지는 않았습니다.
뒤로 보이는 줄기가 오늘 걸어온 장령산-작은산-돌메기산-매봉-대성산 줄기.
바로 아래로 보이는, 마을 옆으로 감아 올라오는 산줄기가 위에서 언급한 마을 우측 산줄기입니다.
좌측(남쪽) 산줄기는 훨씬 멀리 돌아서 서대산을 오를 수 있는 길이니 환종주 좋아하시는 분들은 걸어봄직 합니다.
그렇게 걸으면 트랙 모양이 다이아몬드 비슷하게 그려질 것 같습니다. 거리는 대략 30km?
서대산의 북쪽으로 벋은 줄기에는 이런 기기묘묘한 바위가 많습니다.
조금 억지스럽지 않나요?
생각보다 밋밋한 제비봉.
그보다는 저 소나무 뒤로 보이는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일이 더 대단합니다.
여기서 내려서면 장령산자연휴양림이고
거기서 다시 제4등산로로 올라야 용암사에 이르는 길과 만납니다.
제4등산로를 이용하여 장령산 방향으로 오르다가 대전 방향을 돌아보니 이렇습니다.
낮이라면 대둔산이나 계룡산도 보일 지점입니다.
랜턴을 켜야겠습니다.
마성산에 다녀왔으면 밤길 걷는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열흘 가까이 늦었지만, 몇 줄 더 적어놔야겠습니다.
상곡리를 통과하면서 본 왼쪽 산줄기. 그게 장령지맥 줄기로군요. 어쩐지 능선이 아주 맘에 들더니만.
그리고 위 글에서 그 이름없다는 봉우리는 국사봉이었군요.
지도도 안 보고 대성산에서 서대산을 직접 직선으로 가려고 한 제가 우습네요.
대성산에서 천태산 방면으로 조금만 더 진행했더라면 장령지맥을 그대로 타고 이동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마을로 완전히 내려섰다가 길도 아닌 비탈로 서대산을 오르는 건 지맥 공부를 안 한 탓입니다.
천서대계 종주도 장령지맥을 타고 가는 것이고...
이제 산에 입문하는 사람의 무식함이 그대로 배어납니다.
앞으로 지맥 공부를 좀 해야겠습니다.]
첫댓글 멋진 산행하셨내요.
기똥찬 운해 기똥찬 풍경때론 홀로 여유롭게 즐기는것도 참 좋은거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평소 존경하는 해피맨님께서 응원해주시니 땀도 나고 힘도 납니다.
기맥/지맥 산행하시는 모습 잘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역시 국가대표분들의 격은 다르신 것 같습니다. 건승하십시오.
구름이 춤추는 곳 구경 잘 하였습니다.
즐거운 산행을 하였군요!
최대한의 예의와 존경을 담아 절을 올립니다.
머잖아 뵐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콩작거립니다.
수능감시하신다고 수고 해떠요~ㅎ
ㅎㅎ 어떤 땐 제 관심이 학교인지, 산인지 좀 헛갈리기도 하는데... 감사합니다, 영스님. 늘 행복하시길.
예전에 천성장마 걸어본 기억이남니다 천서대계는 내공부족으로 아직...충남 제일산이 마을에서 보니 동네뒷산 같습니다
겨울 문턱을 넘어서고 찬바람이 문안인사를 하네요 건강한 겨울 나시길요.....
언제나 고마우신 지부장님. 잘 지내시지요? 뵈러 가야 하는데... 이처럼 힘드네요.
천서대계는 아시다시피 천태산-서대산-대둔산-계룡산을 엮어만든 100km짜리, 이짝 동네에선 나름 젤 쎈 코스입니다.
물론, 저 같은 허약체질에겐 구간별로 잘라서야 가까스로 가능하려나요?
그리고 서대산. 그거 호남산인 듯요. 으찌나 가파른지. 1시간 반은 죽었다 생각하고 올랐습니다. ^^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이르니, 어? 올해 내가 뭐했지, 싶고 산 욕심이 슬슬 생깁니다.
지부장님께서도 언제나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하루 놀기 좋은코스로 잘 다녀오셨네요.
서대산 두번 올라봤는데
오를때 마다 입에 단내가 난다는 ㅎㅎ
즐건 저녁 되세요.
ㅎㅎ 고맙습니다.
오전 내 운해를 싫도록 감상하면서 두건님이라면 훨씬 좋은 사진을 담으실텐데, 생각했어요.
천서대계를 두 번이나 하셨으니... 대단하십니다.
늘 평안하세요.
팔개대장님~ 수능치러내시느라 욕보셨습니다.
하루 소풍처럼 다녀오신 충남제1산~
운해 모습보니 저도 가봐야겠다 싶어지네요.
^^ 대장님 만난 것처럼 반가운 후기 흐뭇하게 함께해 봅니다.
고마워요, 깽이님 ~~ 잘 지내시지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때
의미있는 시간들로 일상을 채우고 계시리라 믿어요.
저는 오늘 한강지맥(먼드래재~화방재)에 와서 심들어 혼났어요. 고작 15km에. ^^
서대산은 멋진풍광을 자랑하는것같습니다
서대산 운해한번담으로
언제 한번 와 보셔요. 용암사로 ~~
지난달 10월초 천성장마삼 혼자 가다보니 대성산 근처 좌측으로 서대산 방향 푯말이 보이더군요 갈까말까 망설이다 다음에 꼭 가보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삼성산 지나서는 멧돼지 소리에 깜놀하고 10초 뒷쯤에는 멧돼지 모습에 간이 콩알만해졌습니다 사진.설명 감사합니다
아, 다녀가셨군요. 맞아요, 그게 장령지맥인 거 같아요.
제가 조금만 덜 게을렀더라면, 그러니까 장령지맥을 한번만 찾아보고 갔더라면, 하고 무릎을 칩니다. 제가 아직 배움이 짧아서 실수를 많이 합니다.
아, 그게 멧돼지 소리였을까요? 들개가 되어버린 제법 큰 개의 소리같던데요... 난데없는 데서. ㅋ
다음에 뵈면 산행에 관해 잘 가르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