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화제 고르기
☺ 좋은 글은 좋은 요리보다 맛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요리를 하려면… 문학 작품은 일종의 <담화(discourse)>입니다. 그러니까 작가와 독자가 주고받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일상 생활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은 어떤 장르로도 쓸 수 있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은 맞으면서 틀리는 말입니다. 문자로 쓴 것을 모두 문학에 포함시키기로 하면 철학(哲學) 역사(歷史) 자연과학(自然科學)까지도 문학 속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는 사람들은 먼저 <문학적 제재(題材)>와 <비문학적 제재>의 차이를 알고 어떤 제재를 시로 쓰는 것이 효과적인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장에서는 먼저 문학적 제재는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가운데 시로 써야 할 것들은 어떤 것들이고, 그렇게 고른 화제를 보다 새롭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가 알아보기로 합시다.
1) 시의 화제
문학적 제재의 범주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생활에서 주고받는 담화의 유형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것입니다. 글을 쓰려는 욕망은 말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적 담화의 유형은 크게 <그것은 이렇다>라고 객관적 정보를 알리려는 유형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며 주관적 정보를 알리려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앞의 것은 과학적인 설명문으로 쓰는 것이, 뒤의 것이 문학 작품으로 쓰는 것이 적합합니다.
문학적 제재는 다시 글로 쓰려는 말하려는 목적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아주 애틋한 사랑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합시다. 하지만, 사람마다 부각시키고 싶은 것이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또 어떤 사람은 현재의 자기 심정을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하던 그 사람과 언제 어디서 만나 어떻게 사랑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할 것이고, 좀 특수한 사람은 그녀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웃을 때는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그림처럼 그리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교훈(敎訓)>, <정서(情緖)>, <과정(過程)>, <재현(再顯)>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전하기 위해 이야기합니다.
이런 욕망은 시대나 민족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도 이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장르(genre)를 마련하고, 쓰려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장르를 택해 왔습니다. 말하려는 사람의 담화 욕망에 따른 장르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교훈>을 전달하려는 담화 - 교술(敎述) - 수필 ② <현재 심정(心情)이나 상상>을 전달하려는 담화 - 서정(抒情) -시 ③ <어떤 과정(過程)>을 전달하려는 담화 - 서사(敍事)- 소설 ④ <어떤 과정을 재현(再顯)>하려는 담화 - 극(劇)- 희곡
종래 문학의 장르는 흔히 <시>․<소설>․<희곡>으로 분류해왔는데 왜 위 분류는 네 가지로 분류하느냐구요? 아, 지금부터 2300여년 전에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나눈 것을 1850년경 독일의 역사철학자 헤겔(Hegel)이 정리한 <3대 장르> 체계를 말씀하시는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학 작품을 <3대 장르>로 나누고 있지만, 수필이나 넌픽션 같은 것들을 포함시킬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문학을 <모방(模倣) 문학>과 <교훈(敎訓) 문학>으로 나누기도 하고, 종래의 3대 장르에 수필을 포함시켜 4대 장르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종래의 3대 장르 체계나 새로 제시된 4대 장르 체계 모두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제기하고 싶은 이의는 위 분류에서 네 번째 장르로 분류한 <희곡>을 과연 문학 속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이제까지 서구에서는 극을 최고의 문학으로 꼽아왔습니다. 그리고 극의 원형인 ‘발라드댄스(ballad-dance)’를 문학의 기원으로 꼽아 왔습니다. 그러나, 희곡이 ‘공연(公演)’을 전제로 하는 장르라면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다는 조건에서 벗어나고, 연기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완성하는 공동작(共同作)이라는 점에서 또 차이가 나며, 무엇인가 준비하기 위한 글마저 장르로 인정하면 시나 소설을 쓰기 위해 메모한 것도 장르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희곡은 <행위예술(行爲藝術)>과 <언어예술(言語藝術)>의 중간 장르로 보고, 우리가 흔히 수필이라고 부르는 교술(敎述)을 문학의 기원으로 보며, 시와 소설은 이에서 갈라져 나온 <파생(派生) 장르>로 보고 있습니다.
문학의 기원은 제사 지낼 때 춤추고 노래하는 ‘원시 종합예술’이 아니냐구요? 글쎄요.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원시시대에 이런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기보다는 말로 기도하는 방식이 먼저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들이 다급할 때 어떤 방식으로 기도하나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교술은 시와 소설의 속성들을 모두 포괄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목적에서 탄생된 장르는 문학사가 진행됨에 따라 그 목적에 적합한 문학적 관습(literary convention)을 축적해왔습니다. 그리고 작가와 독자들은 그에 따라 글을 쓰고 작품을 감상해왔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쉽게 쓰고, 잘 전달하려면 자기가 쓰려는 목적에 적합한 장르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물론 모든 제재는 그 성질과 다른 장르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재를 다른 장르로 표현하려면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것과 같은 어려움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수정과 보완의 거쳐도 미흡한 작품이 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황순원(黃順元)의 「소나기」라는 단편소설 아시지요? 참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소설론(小說論) 입장에서 보면 스토리와 갈등이 박약한 작품입니다. 특히 서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선생께서 시인으로 출발하여 소설가로 활동한 분이라서 너무 서정적인 제재를 소설로 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다시 시로 바꿔 쓴다고 해보세요. 모든 이야기를 빼고, 소년이 자다가 부모님으로부터 그 소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나 좀 더 나이가 들어 어릴 적 그 소녀에 대해 회상하는 수법으로 써야 하고, 그렇게 바꾸자면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빼내야할 겁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시와 소설의 화제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의미합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그럼 당신의 가슴 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세요. 앞에서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를 했으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어떨까요?
① 버스 속에서 장미꽃을 들고 앉아 창 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아가씨를 만났다. ② 버스에서 내려 카페로 들어가는 데 그 아가씨가 급히 따라내려 오면서 차 속에 머플러를 떨어뜨렸다며 건네주고 돌아서려고 했다. ③ 일부러 내려서 전해주고 다시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가 고마워 차나 한잔하자고 했다. ④ 그게 인연이 되어 그 후 자주 만나고 나 혼자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⑤ 그녀는 누군가 사랑하고 있지만 부모도 없이 어린 동생들 두 명을 뒷바라지하느라고 결혼할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⑥ 어느 날 오후 그녀로부터 전화가 오고, 바쁘지 않으면 생맥주 한 잔을 사달라고 했다. ⑦ 생맥주를 파는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뭐,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시다. 독자들에게 결혼은 꿈 속의 일이 아니라 현실의 일이라는 교훈을 말하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그녀를 만나게 된 이야기나 그녀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간단히 쓰고, 결혼은 왜 이상이 아닌가, 우리는 어떻게 이상과 현실을 조절해야 하는가를 화제로 삼아 교술로 쓰는 게 좋을 겁니다.
그녀의 아름다움, 또는 그 아름다운 아가씨가 고뇌하는 것에 대한 애달픈 심정을 말하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그녀를 만나게 된 과정이나 그녀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모두 빼버리고 그녀에 대한 느낌이나 상상을 시로 쓰세요. 교술과 시는 어떤 일을 겪고 난 다음 자기 생각을 중심으로 쓴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교술은 그녀를 만나게 된 과정은 부분적으로 쓰고, 그녀에 대한 논리적인 내 생각을 <혼합화법(mixed speech)>으로 써야 합니다. 그리고, 시는 그녀를 만나게 된 과정은 생략하고 그녀에 대한 내 느낌이나 상상을 <작가적 어법(authorial speech)>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써야합니다.
<혼합 화법>과 <작가적 화법>이 뭐냐구요? 이와 같은 분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것으로서, 그들은 어법의 유형을 크게 <모방적 어법(figural speech)>과 <작가적 어법>으로 나눕니다. 앞의 어법은 극의 대사처럼 대상을 흉내내서 말하는 방식을 말하고, 뒤의 것은 시처럼 자기 생각으로 말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혼합어법은 작중 인물의 말을 흉내낸 부분과 자기 생각을 말하는 부분을 함께 쓰는 소설적 어법을 말합니다. 시와 수필의 차이를 좀 더 알고 싶으면 전자책에 도표로 그려놨으니 그걸 보세요.
이와 반대로 서사나 희곡으로 쓸 때는 내 느낌이나 생각은 배제하고, 그녀와 내가 주고받은 말을 그대로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이야기만 다루는 게 아니라 만나서부터 사랑하게 된 과정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장면화(場面化)시켜 연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설로 쓸 때도 극처럼 과정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녀와 내 말을 그대로 그리는 모방적 어법을 줄이고, 시를 쓸 때처럼 자기 생각과 느낌을 함께 말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관계도 도표로 보려면 전자책을 열어 보세요.
물론 교술 가운데는 넌픽션이나 자서전 같이 전체 과정을 다루는 <서사적 수필>이 있습니다. 이런 유형은 소설과 마찬가지 전 과정을 작품으로 쓰되, 자기 중심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대상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소설과 차이가 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 작품 속에 다 담을 수는 없느냐구요? 가능하지요. 문학의 장르는 <단일→다수>, <단순→복잡>한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하지만, 현대로 접어들면서 각 장르는 서로 넘나들면서 통합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예컨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사르트르(J. P. Sartre)의 「구토(嘔吐)」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소설과 철학적 에세이를 합친 형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는 문학에 영상과 음악과 미술을 통합시킨 형태로서, 앞으로 한 20년 이내에 문학은 문자매체(文字媒體)를 벗어나 영상과 음악을 결합시킨 형태로 바뀔 겁니다. 활자 매체를 통해 지각에 호소하는 것보다는 모든 매체를 이용하여 전감각(全感覺)에 호소하는 방법이 훨씬 더 잘 전달되니까요.
하지만, 문학이 이런 방향으로 바뀐다고 해도 장르에 대한 이해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매체를 이용하던, 그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만 달라질 뿐 우리가 표현하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앞에서 담화의 목적은 문학 이전에도 존재했었고, 문학 이후에도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는 사람은 먼저 각 장르의 정신과 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할 일】 ○ 각 장르의 특질을 조사하여 시작 노트에 정리해 두십시오. ○ 이제까지 쓴 자기 작품이나 작품으로 쓰려고 하는 제재들을 살펴 보면서, 그 제재가 시에 적합한가 검토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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