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2016년 1월 다보스에서 클라우스 슈왑 세계경제포럼 회장이 처음 제시한 것으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각각 증기기관, 전기, 디지털 기술로 대표되는 1차, 2차, 3차 산업혁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은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3D프린팅, 바이오기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으로 다소 산만했고 '디지털·물리학적·생물학적 영역이 융합하는 기술혁신' 같은 정의도 모호했지만 어쨌든 경제와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그 후, 각각의 기술은 그 나름의 속도로 발전해 갔지만, 산업혁명에 필적할 만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새삼 산업혁명 수준의 대전환이 임박했다는 예언이 잇따르고 있다. 2022년 말 채팅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AI는 여러 첨단 기술 중 하나에서 다른 모든 기술과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가장 중요한 기술로 그 위상이 변화했다. 이 같은 시각은 AI가 경제의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서 성장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AI 혁명론의 대표적인 주창자는 정부다. 정부는 2030년까지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고 현재 1%대 후반에 머물고 있는 잠재성장률을 다시 3%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가 지난 8월 22일 발표한 '새 정부 경제성장 전략'의 핵심은 '기술 선도성장'인데, 이를 위한 30대 선도 프로젝트 중 15개가 AI에 관한 것이다. 총 68쪽 분량의 이 발표 자료에는 AI라는 단어가 267번 나온다. 대통령실에는 AI 미래기획수석이 신설됐고,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출범했다. AI에 베팅하는 듯한 움직임이지만, 실제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AI는 모든 베팅이라고 생각한다」(9월 29일)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저출산 등으로 2030년에는 1%대 초중반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한국의 산업은 중국의 기술력에 밀려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고, 심지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까지 목을 조이고 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AI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된다면 그 대폭발을 틈타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AI 대전환은 성장 저하를 반전시킬 유일한 돌파구"라는 발언은 정부의 절박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AI의 경제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대런 아세모글루는 AI가 가져올 생산성 향상은 과대평가돼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채팅GPT를 만든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알트먼이 "AI 산업에 거품이 끼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AI의 잠재력이 높다고 해도 현실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1970년대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이 광범위하게 도입됐지만 생산성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던 데 대해 역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MIT 교수인 로버트 솔로는 컴퓨터는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술이 생산성을 본격적으로 높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다.
AI의 노동시장 영향은 또 하나의 물의종이다. 사실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성장률이 아니라 'AI에 의해 내 일도 빼앗겨버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AI가 코딩(개발자) 삽화(일러스트레이터) 번역(번역가) 서면작성(변호사) 작곡(작곡가) 등을 인간 못지않게 해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특히 AI는 여러 분야에서 초급 수준의 업무를 대체함으로써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뛰어들어 경험을 쌓을 기회를 빼앗아버릴 가능성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의 역사는 기술 격변기에는 어떤 자는 큰 기회를 얻지만, 또 어떤 자는 생계가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라는 파도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구세주처럼 AI가 나타났다(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는 시각이 더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좀 더 냉정해야 한다. 안대를 쓰고 달리는 말처럼 낙관론만 펴지 말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기술혁신이 올바른 정책과 연결되지 않으면 과실 공유가 아니라 불평등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맹목적인 AI 전 베팅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