胸中 旣無半點物欲 已如雪消爐焰 氷消日
흉중 기무반점물욕 이여설소로염 빙소일
眼前 自有一段空明 始見月在靑天 影在波
안전 자유일단공명 시견월재청천 영재파
가슴 속에 조금의 물욕도 없다면
집착은 이미 눈덩이가 화롯불에 녹고
얼음이 햇볕에 녹는 것 같이 된다.
눈 앞에 한 조각 밝은 마음이 있다면
언제나 달은 푸른 하늘에 있고
그림자는 물결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채근담』(건국대출판부) 후집 제74조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고의 지혜서를 꼽는다면
서양에는『탈무드』가 있고, 동양에는『채근담』이 있다.
이름을 얻는(떨치는) 것은 높은 나무 위에 올라 간 것과 같다. 우러러 보이고 잘 보이긴 하지만 떨어질 위험도 많고 흔들어 대는 바람도 세다. 역사 속에 수많은 위인과 영웅이 스쳐 갔지만 명예와 부를 함께 이룬 사람은 거의 없다.
관우, 제갈량, 장량을 예로 보자. 중국의 역사 인물로 왠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물욕이 없었다는 점. 촉의 관우(운장)는 유비(현덕), 장비(익덕)와 의형제로 원나라 때 소설가 나관중이 지은 장편 역사소설『삼국지연의』에 충신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송대 이후 중국 민중 신앙의 대상으로 명부의 귀신들을 관장하는 관제(關帝)로도 추앙받고 있다. 국내에도 조선시대 말까지 관제묘가 있었다. 관우는 조조(맹덕, 위나라 조비의 부)가 준 금은 보화 등 부를 버리고, 의리를 좇아 쫓겨난 개 신세가 된 주군이자 의형인 유비를 찾아 떠났다. 그는 죽을 때까지 안위나 부귀공명을 버리고 오로지 의형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일관하다 전사했다.
무후(武侯)로 존경받고 있는 유비의 책사 제갈량(공명)은 철저한 자기관리형이었다. 신출귀몰한 일화와 달리 후세의 사가들은 그를 전투에 능한 장수형이나 전략가라기 보다 관리형이라고 평가한다. 나라의 살림 전체를 맡았던 그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지만 청렴결백하게 살았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사후 남겨진 재산은 밭 몇뙈기와 초가집 한 채가 전부였다고 한다. 제갈량은 촉(촉한)의 유비가 죽은 후 어린 아들 유선이 부족하면 나라를 가지라는 제안에 대해 자신은 그런 뜻이 없다고 사양하고 위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출진할 때 촉왕 유선에게 올린 상주문 <출사표>는 두고 두고 충신의 표상이 된다. “선제의 창업 아직 반에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 붕조하다”라는 서두로 시작된다. 국가의 장래를 우려한 전문은 제갈량의 진정을 토로한 정열적인 고금의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을 읽고 울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일컬어졌다. 위의 사마의와 대진 중 병사했다
제갈량처럼 능력이 뛰어나고 나라의 동량이었던 위의 책사 사마의(중달, 서진의 시조)은 그와 반대의 처신으로 간적으로 치부된다. 사마 가문은 제갈량 사후 유선의 촉을 멸망시키고 위를 천하의 제패국으로 만들지만 조조의 후손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음(손자 사마 염)으로써 간신난적의 오명을 얻게 된다. 한나라의 한신과 장량의 처신도 대비된다. 주군인 한고조 유방에게 자기는 휘하에 거느릴 병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고 하던 한신은 장량의 권고를 무시하다가 유방 사후 그의 처 여후에 의해 종루에서 궁녀들에게 맞아 죽고 만다. 그러나 장량은 문무공신들을 도륙했던 여후도 독수(毒手)의 칼날을 겨누지 못했다. 거병 초부터 유방의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노관이나 여동생의 남편인 번쾌를 제외하고 외부인 가운데 역량이 컸던 사람 중 살아남은 사람은 그 뿐이다. 그 이유는 여후가 세속을 초월한 장량의 평상시 행동에서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던 탓도 있겠지만 나라를 통일 한 후(그 이전부터) 명리를 버리고 산으로 은거한 그의 현명함에 있다. 이에 이름과 몸을 보전할 수 있었다.
고대 로마시대 영웅 카이사르(시저)도 물욕이 없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최고 관직 콘술(통령)에 올라 민중의 큰 인기를 얻었으나 돈을 잘 빌리는 천재로 일컬어지는 것으로 보아 축재에는 관심이 없었던 같다. 귀족 출신으로 민심 파악의 수완이 능해 민중과 친근한 입장에 서서 로마와 기타 속주에서 군무에, 그리고 실제의 정책 운영면에서 착실하게 성과를 거둬 명성을 획득하고 대정치가로서의 기반을 구축했다. 콘술로서 국유지 분배법안을 비롯한 각종 법안을 제출해 크게 민중의 인기를 얻었다. 인간적인 매력도 풍부, 뛰어난 웅변술과 함께 인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가 갈리아 원정에 대한 기록을 남긴 문학·역사서『갈리아 전기』는 간결한 문체와 정확한 현실파악 등으로 라틴 문학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진다. 문학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대개 물욕이 없다. 공화정권의 파괴자, 또는 반대로 제정의 초석을 굳힌 인물 등 정치가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구구하나 서양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역사는 우리에게 ‘이름(명예)을 얻으려면 물욕을 버리라’고 극명히 알려준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물욕에 눈이 어두워 비리를 저지르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하고서도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하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면 어떻게 변해야 하나? 그 해답은 간단하다.
첫째, 마음을 열어야 한다.
둘째,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셋째, 욕심을 버려야 한다.
넷째, 반성하고 참선해야 한다.
자기부정에서 자기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쉬우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죽음 앞에선 자세로 이에 임하라.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다. 생사를 초월하게 되면 자신을 비우고 세상에 진솔해 질 수 있다. 저자도 책을 낼 때마다 고뇌 속에 이같은 과정을 거친다. 즉 생의 끝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버리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면 세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책을 낼 때 마다 대미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욕으로 미화된 부분을 찾아내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거친다. 역설적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버릴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병아리가 부화하듯이 자신의 틀을 깨고 버리는 것이다.
나이 40∼50이 되면 인생의 후반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를 알차게 살려면 자기자신을 위한 자서전을 써보아라. 저자도 10년전 써 본 적이 있다(『황소같이 일만하면 망한다』동현출판사, 1997년). 자료를 준비하는 데만도 3∼4년이 걸릴 것이다. 이 기간을 중간휴식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 전후반으로 나눠 경기가 진행되는 축구의 경우 중간 휴식시간에 전반기 경기에 대한 반성을 해야 후반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 세상에 엎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①)을 알게 된다. 그 다음은 후천적인 영향에 의해 내가 있어 세상이 존재한다는 자만(②)을 갖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세상을 알게되면 겸허한 마음이 생겨 원점으로 돌아가 세상이 있어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③)하게 된다. ①과 ③은 세상을 보는 시각은 같으나 ①은 속세에 때묻지 않은 자연 의 마음이고 ③은 ②을 통한 자각의 마음이다. ③의 단계를 갈등과 번뇌 속에 넘게 되면 자기를 비우고 버리는 깨닫음을 얻게 된다. 이 단계는 자기해체로 무아(無我)의 경지(④)이다. 이 무에서 새로운 나(⑤), 유(有)가 나온다. 즉 없는 것이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에 신중해 비방과 칭찬에 동요되지 않는다. 마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지혜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깨끗하고 텅 빔이 마치 깊은 못이 맑고 환한 것과 같다.” 불교 성서『법구경』에 나오는 말이다.
멀리 보고 뜻을 세우면 겸양지덕(謙讓之德)이 생겨 현실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자신을 비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문이 없는 대로의 세계가 열린다. 이것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걸어온 삶의 철학이다. 이것이 바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환국철학사상연구소장 한재 신 충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