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측천무후가 당태종의 궁녀로 입궁하지 않고 어릴 때 아예 셋째 아들[서자까지 합치면 9남] 진왕 이치[당 고종]의 아내[진왕비]가 되었다면 총애를 받으면 권력이 강력해지지만 총애를 잃는 순간 입지가 불안해지는 후궁과 달리 권력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으나 입지와 안전성은 철밥통급인 진왕비의 안정적인 삶을 오래 누렸을 것이고 이후 태자비-황후-태후의 단계를 천천히 밟으면서 자연스럽게 내명부를 차지했을 것이며 여황제가 되고 싶다는 야망은 접게 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한 성격하는 중국사의 흔한 황후 또는 태후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예로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는 왕족-왕족부인,세자-세자부인,왕-왕후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았죠. 비록 조선 현종의 공처가 성향도 있지만 명성왕후 김씨의 성격과 영향력 때문에 후궁을 두지 못했더라도 명성왕후 김씨는 왕비-대비의 위치에 안주하고 살았습니다. 아예 왕이 된 아들에게 회초리를 휘두르고 대놓고 여왕행세를 한 문정왕후보단 낫다는 생각입니다. 한성격해도 궁중암투를 한 적 없으니 욕심도 적어지죠.
첫댓글 황후 해 먹으면서 장손무기나 저수량같은 거물들까지 다 밀어낸 측천무후가(장손무기는 관롱귀족과 산동귀족 사이에 걸처 있는 당대 최고 거물입니다. 이런 인물이 측천무후에게 나가떨어졌어요) 권력이 불안정했다고 보이지도 않는걸요 뭐. 그래도 귀족세력들의 배척때문에 불안하지 않았냐 한다면 고작해야 아버지대에 개국공신으로 출세한 벼락출세자가문이라는 태생적 문제고.
나름대로 능력도 보여주고 뭣보다도 측천무후가 무수리에서 다시 황궁으로 돌아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남 이충이 데꺽 죽어버린 일, 3남 이현(당중종)이 영 뭐같은 인물이었다는 점. 이 두가지가 결정적 요인이겠지요.
그것은 고종황제가 측천무후를 지지해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황후가 권력을 행사하려고 해도 황제의 도움이 없으면 가문빨이 매우 약한 측천무후는 낙동강 오리알에 불가해집니다. 게다가 진왕비에서 황후단계까지 천천히 밟고 올라왔다면 황후 자체의 권력이 강했겠지만 후궁에서 황후로 벼락출세했으니 절대로 혼자서는 장손무기를 건들 수가 없죠.
@게임좋은 진왕비에서 테크를 밟아 황후가 되든 바로 올라오든 말든 그런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걸로 가문빨이 커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측천이 아무리 차근차근 올라와도 그것으로 장손무기와 저수량같은 거물을 몰아낼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황후 자체의 권력은 원래 강하지 않으니까요. 가문이 높지 않은 황후가 황제의 지원 없이 문벌귀족 최상위 핵심인사에 손을 댄다? 폐위되기 십상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처왔든 상관없이.
중국사에는 여왕이 없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