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그친 이튿날
어제 오후 날이 저물면서 겨울을 재촉할 비가 제법 촉촉하게 내렸다. 같은 생활권에 사는 초등 동기들이 열흘 뒤 베트남을 다녀올 일정을 잡아 놓고 사전 모임을 가져 얼굴을 내밀었다. 14명이 사나흘 떠나는데 8명이 모여 여정을 의논했다. 고소 공포를 심하게 느끼고 나라 밖으로 나간 경험이 적어 조용하게 지내고 싶으나 주변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동행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친구가 경영하는 마산 댓거리 고깃집에서 소고기 육회와 삼겹살을 구워 놓고 자연스레 술잔이 오갔다. 친구가 잔을 권해 와 바닥에만 채우고 비우지 않았더니 어디 건강이 좋지 않냐고 걱정했다. 평소 내 주량을 아는 친구인지라 그러할 법도 했는데 곁에 다른 친구가 ‘이렇게 얼굴빛이 좋은데 아프긴 어디 아플까’라 염려 놓자고 했다. 나는 원하지 않게 잠시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봄 나는 그간 즐기던 술을 단번에 끊었다. 청년기에 담배보다 술을 먼저 시작했는데 여태 40년 넘게 마셨다. 술은 체질에도 맞아 웬만큼 마셔도 마신 푯대가 드러나질 않아 언행이 그렇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취기가 오르려는 기미가 보이기라도 하면 좌중을 벗어나 슬그머니 집으로 가 일찍 잠들어 음주로 인한 주사나 구설수가 있을 리가 없고 이튿날 근무에 지장도 없었다.
약처럼 한두 잔만 들면 되겠으나 나는 양이 차질 않아 마시려면 소주 기준 서너 병은 마셔야 하고 맥주는 양이 가늠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안주에 부담이 적은 곡차를 즐겨 마셨는데 퇴직 직전 근무지 거제 연초 와실에서 퇴근 후 날마다 혼술로 마셨더니 몸에 탈이 와도 끊지 못해 소주로 바꿔 마셨다. 재발이 잦던 부고환염은 곡차에서 맑은 술로 바꾸고는 병원 찾을 일이 없었다.
나는 연전 퇴직하면서 산행이나 산책은 꾸준히 다니며 줄기는 술은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마시고 70대 후반쯤 이르러 절주나 금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퇴직 즈음 내다본 음주 구상은 이태도 못가 자발적 의지로 끊었다. 지기들과 마주 앉아 잔을 기울이면서 갖는 교류의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음주로 인한 건강에 탈이 난다면 가족이나 형제자매에게 볼 면목이 없다.
코로나 와중에 몇 해 사이 초등 동기생 셋이 먼저 세상을 등졌다. 생활권이 달라 나와 대면 기회가 적고 친하게 지내지 않아도 서로 근황 정도는 아는 사이였다. 이런 세 친구가 코로나와 무관하게 생을 하직했는데 나중 알고 보니 지나친 음주가 원인일 수 있었다. 앞으로 그럴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내가 친구를 문병 감은 받아들이겠으나 내가 병석에 누워 친구를 맞고 싶지 않다.
가을이 이슥해진 십일월 중순 아침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책 3권을 배낭에 넣어 현관을 나섰다. 간밤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날이 무척 쾌청했다. 하루를 야외 현장 학습이 아닌 도서관에서 보낼 생각으로 엘리베이터를 나섰더니 비가 그친 하늘은 파랗고 높았다. 이른 아침 가끔 공중에 나타나던 뭉게뭉게 피어나던 흰 구름 한 무더기가 모여졌다가 순식간에 흔적이 없어졌다.
집을 나올 때 배낭엔 책을 챙겨 도서관으로 가려던 마음은 바꾸어 자연 학교로 향했다. 한랭전선이 엄습한다는 주말 예보를 접해 도서관은 날씨가 추워질 내일 감이 맞을 듯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의 집으로 건너가 고택 담장에서 늦가을 고목을 치올려봤다. 이후 메타스퀘어 가로수가 갈색으로 물드는 사림동 주택지에서 사격장으로 올라 잔디밭을 거닐었다.
잔디밭 바깥 트랙을 서너 바퀴 걷고 소목고개로 올라갔다. 쉼터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어제 다녀온 ‘술뫼 둔치’ 물억새를 소재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자리에서 일어나 호젓한 길을 걸어 소목마을로 내려가니 남향집 삽짝 밖은 알록달록 핀 소국이 햇살을 받아 화사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살펴보니 꿀벌 몇 마리가 날아와 꽃가루를 모은다고 꼼지락거려 피사체로 삼았다. 2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