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승리의 삶 -“ 악마의 유혹, 하느님의 말씀, 구원자 예수님”
2023.2.26.사순 제1주일 창세2,7-9;3,1-7 로마5,12-19 마태4,1-11
지금 세계는 전쟁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총칼만 안들었지 흡사 좌우의 갈등이 내전 상태를 방불케 합니다. 누구나 소망하는바 평화인데 역설적으로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류시작과 더불어 시작된 전쟁입니다. 교황님 홈페이지를 보니 “교황님의 슬픔과 평화를 위한 지칠줄 모르는 호소”라는 제하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종식을 위한 끊임없이 노력해온 기사가 길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2월초 일간신문에서 스크랩한 기사를 읽어봤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1월7일 하루에만 러시아군 전사자가 1천명을 넘었다고 주장했고, 러시아군은 지난 한달간 우크라이나군 6500명이 전사했다며 맞섰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2월24일 개전이후 러시아군 전사자가 13만 3190명이 전사했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니 개전이후 정확히 1년이 넘게 계속되는 전쟁입니다. 1년간 러시아군 전사자가 13만 3190이라니 한달 평균 1만명이 넘고 우크라이나군까지 합치면 한달 평균 2만명쯤 전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남의 일같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뿐이 나의 아들이 전사했다면, 하나뿐인 내 남편인 가장이 전사했다면 그 가정의 불행과 비극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얼마나 끔찍한 어처구니 없는 전쟁인지요! 전세계가 혼돈 상태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미친짓이요 악마의 소행이라 개탄하는 교황님입니다. 새삼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그러니 이런 전쟁을 영적전쟁의 상태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예로부터 수도생활을 영적전쟁이라 일컬어 왔습니다. 총칼만 안들었지 내외적으로 영적전투 치열한 전장터같은 세상입니다. 제가 참 많이 강조해온 주제도 영적전쟁이요 ‘주님의 전사’로서 우리의 신원입니다. 사랑의 전사,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입니다. 어제 조용히 피정왔다가 떠나는 목사님의 다음 메시지에 화답하여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는 오늘 피정을 마치고 떠나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오후 4시 떠나는데 떠나기전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우연히 <어떻게 살아야합니까?>책을 읽으며 면담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연락을 드립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고, 저는 하루하루 산다고,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산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저의 지론을 피력했습니다.
“삶은 영적전쟁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 모두가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평생 전사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 그래서 영적전쟁에 승리를 위한 영적훈련이 필수입니다.”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야하고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모범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승리자 파스카 예수님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어떻게 영적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저는 셋으로 나눠 묵상했습니다.
첫째, 유혹의 현장입니다.
악마의 유혹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세상에 악마의 유혹없는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에덴동산에도 악마를 상징하는 뱀의 유혹이 있었고, 이집트 탈출시 이스라엘 백성도 유혹을 통과하지 못해 죄를 짓고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복음도 예수님과 악마와의 영적전투가 참 치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악마의 유혹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요 이 유혹없이는 영적성장도 없습니다. 오늘 창세기에서 하와와 더불어 아담이 유혹에 빠져 죄를 짓는 장면이 너무 생생한 가르침이 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애초부터 유혹하는 악마와 대화하지 말고 침묵했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분별의 지혜요 선택입니다. 이점에서 하와도 아담도 실패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먹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는 데 정말이냐?”
악마의 유혹에는 이렇게 교묘한 과장이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대답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와 역시 과장하여 말합니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와 역시 부풀려 과장하여 악마의 유혹에 화답함으로 유혹에 말려듭니다. 마침내 유혹에 빠져 나무 열매가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또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워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습니다. 부부가 유혹에 빠져 넘지 말아야 할 마지막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악마는 늘 우리와 함께 있기 마련입니다. 사실보다 과장하여 부풀려 말하며 부추길 때 우리는 본의 아니게 유혹하는 뱀의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과장하거나 부풀려 부추기는 말을 듣거나 이런 마음이 들면 즉시 입을 닫고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분별의 지혜입니다.
하와가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면 미풍에 끝났을 유혹이, 유혹에 넘어감으로 미풍이 태풍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미풍을 태풍으로 유혹하는 악마의 유혹이요, 태풍을 미풍으로 바꾸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악마의 유혹에 대한 최상의 무기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악마와의 치열한 영적전쟁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광야에서의 악마의 유혹이 참으로 집요합니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는데 사십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몹시 시장하신 상태중의 유혹입니다. 세차례 아슬아슬한 유혹인데 예수님은 하느님 말씀으로 세 차례에 걸친 공격을 일언지하에 격퇴하셨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당신의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서두의 말이 벌써 예수님의 허영을 부추기는 유혹입니다. 참 견디기 힘든 것이 배고픈 몸의 욕구 식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세기의 하와와 아담과는 달랐습니다. 단호히 하느님 말씀으로 물리칩니다. 하와처럼 악마와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이래서 평생 말씀 공부가 필수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이렇게 말씀 공부와 훈련으로 평상시 영혼을 튼튼히 했을 때 즉각적으로 악마의 유혹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악마의 공격은 무엄하게도 하느님께 대한 시험입니다. 간교하게도 먼저번 유혹과 같이 예수님의 허영심을 부추김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말씀 훈련의 달인인 예수님께 허영심이 있을리 없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하며 악마도 성경을 인용합니다. 하나 예수님은 거두절미 대화를 끊어버리고 한말씀으로 악마를 제압합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정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믿음이 약하면 악마의 성경의 인용에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의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과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런 하느님께 대한 철석같은 믿음과 사랑에서 나오는 분별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세 번째 악마의 공격입니다. 세상 모든 영광과 권력, 부귀영화를 통한 단도직입적 지칠줄 모르는 참으로 집요한 악마의 유혹입니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참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약하면 모두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감미로운 것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위와 같은 유혹들에 빠져 패가망신하는지요! 예수님의 단호한 대응이 참으로 통쾌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참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용기와 희망을 주는 믿음의 모범, 믿음의 용사 예수님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계시기에 살 희망과 용기가 생깁니다. 이 모든 유혹이 40일간 단식후의 극한 상황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얼마나 하느님으로, 하느님 말씀으로 무장된 예수님의 삶인지, 그 사랑이, 믿음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이런 영적승리에 이어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하니 천사들의 양식으로 심신의 허기를 채웠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또한 은총의 미사시간 때마다 생명나무의 열매, 천사의 양식인 주님의 성체를 모심으로 심신의 원기를 회복합니다.
여기 주목할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광야에서 악마와의 영적전투중 예수님의 보이지 않는 배경 둘, 성령과 천사들입니다. 바로 성령과 천사들이 늘 우리의 도움이 되고 계심을 생각한다면 용기백배, 사기충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예수님 유혹에 실패했지만 사탄의 유혹은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되는 영적전투, 악마의 유혹이니 방심은 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했을 때 베드로를 통한 사탄의 유혹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을 모독하던 자들을 통한 마지막 사탄의 유혹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마태27,40)
셋째,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영적승리의 모범, 참으로 하느님의 용사, 새아담 예수님께서 늘 함께 계시기에 살 희망이, 살 용기가, 살맛이 납니다. 아담과 새 아담 예수님의 비교가 참 적절하고 은혜롭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합니다.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우리는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고, 한 사람의 순종으로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결정적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참으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이런 구원자 주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심으로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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