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의 휘 뿌연 여명과 시작된 우리는 대학이란 미래에 담보 잡힌 시간들을 차곡차곡 채워나갔다.
가방의 무게만큼 미래가 밝을지 확신하진 못하였지만, 선생님들은 과로로 쓰러지시거나 돌아가시기도 하였는데 하루 16시간을 함께 한 600명의 학생들 중에 코피 쏟는 것 외엔 누가 공부로 인해서 입원했다는 이야기는 흘러 나오지 않았다.
일류와 이류. 삼류로 분류된 대학을 각자 공부한 만큼 나누어서 들어간,
스무 살 친구들과의 그 해 4월 우리는 성년식을 치루었고 주민 등록증의 잉크는 이미 말랐기에 구속과 소속의 의미를 가졌던 검청색 교복을 벗고 빡빡이 머리를 촌빨 날리는 장발로 길러 아버님의 양복을 손보아 입고 거리를 나서며 어른같이 보여질거라 생각했던(지금의 포-보턴 양복을 77년도에 이미 입었음...아버지의 양복으로 유행의 첨단였던 셈)
털갈이 하는 중 닭 같았던 우리는 풀려난 자유와 이성의 학우들과,
알콜 램프 위의 사이폰에서 뽀글뽀글 끓어 구석구석 원두 커피 향이 배여 들은 북유럽의 작은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의 `다방` 한 구석을 차지하여 학교 때 본 영화의 요한 스트라우스를 떠올리며
하얀 크림이 동동 뜨는 비엔나 커피라는 것을 먹어 보기도 하고,대부분의 학사 주점이 자리한 지하실의 환기되지 않은 공기와 막걸리 냄새.
기름지지 못한 뱃속에서 역류한 잠시 전의 먹었던 안주들의 비릿한 잔류물의 냄새로 뒤섞인 공기가 스무 살의 영역이라 믿은 곳에서 처음으로 홉의 씁쓰레한 향을 벌컥 마셔 보았다.
매혹적인 황금빛 액체 두 모금에 내 의식은 가물해지고 얼굴과 팔 다리는 선홍색으로 열이 나기 시작하였다.
타고난 소질과 체질은 계발하면 발전되는 법이었고 두 모금의 주량이 두 병으로 늘어나면서 갑옷같이 단단히 무장된 이성을 열어 환희의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잠시 동안의 만남에도 뒤집은 속내에 숨겨진 실밥 조차도 투명하게 보여주는 술의 뻔뻔스런 마력에 포위 되고 말았다.
마침내 술은 나의 종교가 되었다.
술에 대한 나의 광신은 스무 살의 곱빼기 나이를 훌쩍 넘어서까지 이어져.
주신(酒神)인 조지훈님과 이웃 대륙의 주성(酒聖)인 이백을 그 교주로 삼았다.
천상병의 토막토막 천진 무구한 시나 장욱진의 무심의 심플한 동화 같은 그림도 그들과 동반한 평생 벗인 술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삼천리 금수강산은 애국가의 두 번째 소절이다.
사철이 뚜렷한 산하는 급격하기도 하고 완만도 하여 우리 나라의 물은 옛부터 맑고 달기가 그 으뜸으로 쳤다
그 물의 부가 가치를 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수렵체취의 시절에는 떨어진 과실이나 원숭이가 숨겨둔 과일이 바위의 움푹 패인 곳에서 자연 발효된 것을 인간이 먹어본 것이 원주(猿酒)이고
유목 시대에는 가축의 젖으로 유주(乳酒)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대표적 술이 몽골인들의 구유주이다.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는 농경시대에 와서야 만들어졌다 .
청주나 맥주와 같은 곡류 양조주는 정착농경이 시작되어 녹말을 당화 시키는 기법이 개발된 후에야 가능하였고 소주나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는 가장 후대에 와서 제조된 술이다
창세기이후 하느님은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노아에게 포도주재배법과 포도주 생산 비법을 가르켜 주었으니. 오늘날 노아로부터 전수 내려온 포도주는 프랑스인들의 물 값을 최고로 올리는데 기여 하였다.
그러니까 술은 물의 부가가치를 올리는 최대의 상품인 셈이다
13세기 호란이후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온 이후에도 막걸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로서 각 지방마다 그 맛과 향이 다르고 술의 맑기에 따라 탁주, 약주, 청주로 이름을 달리해서 그 분류로 삼는다.
해가 늬엿 넘어가면서 다홍색 노을로 구름이 물들어 갈 무렵 하루의 일과는 거진 마무리 되고 저녁을 먹기엔 어중간한 시간,
`시마이 사께`라는 일본에서 차용된 말로 부르는 술 추렴 시간을 술시(酒時)라 하여,한잔의 술이 목으로부터 찌르르 넘어가는 순간의 아찔한 맛으로 하루의 고된 노동이 싸그리 사라지는데. 이제는 대를 이어 막걸리를 만들어 온 전통 도가에서 고급한 우리의 전통주들이 쏙쏙 계발되어 그 포장에서도 세계적인 꼬냑의 포장 못지 않다
수출보다는 내수 차지 비율이 높은 술도가들이 재벌기업 군단에 합류 할 수 있었던 것은 주교(酒敎)를 이끄는 교주(敎主)와 교도(敎徒)들의 청탁(淸.濁) 불문의 교세 확장으로 그 기여도는 지대하다.
20년 넘는 동안 한결 같은 나의 술 취향은 푹신한 의자에 몸을 감싸고 이태리제 조명의 조도가 술기 오른 나의 얼굴을 아름답운 참도다리 눈으로 게슴츠레 보여 주어서 술 이외의 것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낯 설은 카페의 오크향 감미로운 꼬냑은 아니다.
집 앞 마젠타 빛 포장마차에서 입에 머물지 않고 목을 바로 통과 해 버린 한잔의 맑은 소주와 벌건 양념으로 누워 있는 닭의 발이라든지 모래집으로 위의 부담을 줄여 주고. 후덕한 주인네의 서비스 국물이라도 달게 받는 곳에서의 술맛.
달이 동그랗게 하늘에서 차갑게 내려 볼라치면..파도 철썩이는 바닷가의 포장마차에서 고추장 찍은 한점의 회를 짭조름 한 바다 내음에 꼭꼭 싸서 한잔의 술과 섞어 먹는 술맛.
장마비에 갇힌 무료한 여름날이거나 댓잎 서걱거리는 가을날 죽헌(竹軒)에 앉아 잘 익은 술통 곁에 두고 반가운 이와 매운 고추 팍팍 들어간 부추전이나 토종 닭 .푸욱 삶아 모락모락 김 오른 고깃점에 기울인 술맛.
그러나 뭐니 해도 향긋한 술맛과 구수한 안주와 풍취 뛰어난 술자리의 백미는 마음 맞는 술벗이다.
한잔의 술을 나누는 대화는 눈빛이고, 취한 향에 끄덕이는 고개짓은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지음(知音)이 어디 거문고의 연주뿐이랴.
술잔에 떠 있는 달은 삼켰건만 그림자요
호수위에 희롱 하는 달 뜨러 간 이태백이는 아직도 물 속에 있는데
나는 그가 남긴 `월하 독작`을 나직히 읊조려 본다.
"月下獨酌월하독작"
"李白이백"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 사이 놓인 한 동이 술을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친한 이 없이 혼자 마시네
擧盃邀明月 [거배요명월]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를 대하니 셋이 되었구나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 달은 전부터 술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는 부질없이 흉내만 내는구나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한동안 달과 그림자 벗하며
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행락은 모름지기 봄에 맞추었다
我歌月排徊 [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니 달은 거닐고
我舞影凌亂 [아무영능란] 내가 춤을 추니 그림자 어지러워
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깨어서는 모두 같이 즐기고
醉後各分散 [취후각분산] 취한 뒤에는 제각기 흩어지네
影結無情遊 [영결무정유] 길이 무정한 놀음 저들과 맺어
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세 /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