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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입니다. 7월은 저도 죽다 살아났습니다. 살인적인 폭염, 지진, 불황, 폭락장으로 온 국민이 죽을 맛인데, 남양 특집 같은 엽기적인 뉴스를 접하고서 악동인 필자도 경악을 금치 못할 지경입니다. 무더위가 싹 가시는 것 같습니다. 경북 경산에 사는 재환이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동갑인 친구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잔혹하게 살해하고 알몸으로 슈퍼에 나가 바나나우유 3개를 사 쳐 먹고, 경찰차와 마주치자 puck you 를 나린 후 도망쳤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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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술 잘 마시다가 갑자기 얼굴을 물어뜯고 피해자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찌른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직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는데, 당시 통화 기록에는 애원하는 피해자에게 정재환이 "나 귀엽지"라며 웃기까지 한 음성이 담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뭐야? 미친놈 사이코패스 아니야! 출동 시간이 4시 46분이고 체포 시간이 4시 57분이라니 10분 만에 체포된 것입니다. 정재환의 친구들이 놈을 제압한 걸로 봤을 때 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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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2진 좆밥이지 생활하는 놈은 아닐 개연성이 높습니다. 황당한 것은 친구들이 도착하자 "롤렉스 시계는 어디 있냐?"면서 롤렉스 시계와 차에 있던 현금 2000만 원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디다. 염병, 효자 났네. 사건 발생 며칠 뒤 친구 B 씨는 "정재환의 어머니가 '롤렉스 시계가 어디 갔냐. 어디 숨겨놨다면 팔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정재환을 발견한 친구들 일행은 정재환을 제압하고 범행 이유를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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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환은 피해자의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라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한편 피해자의 발인이 치러질 때까지 나흘 동안 정재환은 물론 그의 부모도 빈소를 찾지 않았다고 하네요. 경북 거산 시는 인구해봤자 구리 크기(20만)이고, 하양읍은 담양(6만) 정도의 사이즈입니다. 필자가 담양에서 십 대를 보냈는데 어느 곳이든 읍 단위가 큰 곳은 텃새가 셉니다. 시골은 1빠 서클들이 동네를 장악하기 때문에, 2빠들은 일찍 상경을 하는데 24살 먹도록 고향에 처박혀 있는 걸 보면 흑수 저는 아닌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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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기처럼 부모가 경찰 간부는 아니더라도 시골에서 방귀 꽤나 뀌는 사람일 것입니다. 고교 때 광주 사태 말고도 사람 죽는 걸 수없이 목격을 했습니다. 한 번은 수북면 야산에서 친구가 친구를 죽였다는 겁니다. 처음에 나는 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알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았어요. 언젠가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조폭은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조폭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알아서 기는 데 왜 사람을 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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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서 80대 묻지 마 살인, 대낮 캐디 살인 사건이 난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엔 60대 여성 살인 사건이 터졌어요. 문제는 사건 발생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범인을 못 잡고 있습니다. 나는 법의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니지만, 악에 받쳐 있는 군상들이 풀 데가 없다는 겁니다. 아주 간단하게 당구장의 <금연실>이나 <청량리 588>을 부활해야 된다고 보는데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물론 같은 분노라고 해도 켜와 결이 같지는 않습니다. 부아를 돋우는 언동에 발끈하는 개인적인 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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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 젖듯 누적된 불만에서 비롯된 집단적 노여움도 있을 것입니다. 격렬한 공화 혁명을 겪은 프랑스에서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이란 말이 쓰입니다. 분노·적의를 뜻하는 영어의 ‘resentment’와 비슷하지만, 담긴 뜻이 더 다채롭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르상티망은 불안하고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패배주의적 분노라고도 하고, 아등바등 한 들 제자리걸음 하기도 벅찬 삶의 허무함에 대한 억압적인 각성을 뜻한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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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통해 제어되던 르상티망을 신자유주의가 다시 불러내고 있습니다. 리처드 세넷은 <뉴캐피털리즘>에서 무한 경쟁의 시장경제가 삶이 불안정해진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공정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집단적 불만을 품게 만든다고 분석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생긴 르상티망의 불똥은 언제든 정치적으로 비화될 휘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시민의 <필패론>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여당 내 '명청 대전'이나 20-30대의 우경화 현상 역시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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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는 내부 적들에 대한 적의와 분개의 밑바닥에 르상티망이란 강력한 사회적 감정이 흐르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 사회는 1%에 대한 99%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데 이론이 없어 보입니다. 미 정치경제학자 데이비스 플록은 몇 년 전 방한 강연에서 정책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의 빈곤을 꼬집으면서 세상은 불안해지고 르상티망이 커지는데도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낡은 이분법에 갇혀 있는 것이야말로 위기라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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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는 속단할 수 없고, 우리 사회에 ‘이미 변화는 시작됐어요. 르상티망은 혁명과 변화의 마그마처럼 존재의 양태라는 겁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지금 미국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르상티망이 용암으로 분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어쩔 것인가?
2.
분노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번 글은 시사평론과 철학적 에세이를 결합하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개인의 잔혹한 살인사건에서 출발해 니체와 리처드 세넷, 정치·경제적 불안으로 논의를 확장하는 흐름은 흥미롭습니다. 다만 몇 가지를 다듬으면 글의 설득력이 훨씬 커질 것입니다. 첫째, 사건의 잔혹성을 지나치게 길게 묘사한 부분은 오히려 글의 중심을 흐립니다. 독자는 사건 자체보다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분석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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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수법이나 욕설은 조금 덜어내고, 사건이 상징하는 사회적 의미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둘째, 사실과 추정은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가 시골에서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흑수저는 아닐 것이다"와 같은 부분은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추론입니다. 이런 문장은 글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해석은 해석대로 분리하면 논지가 훨씬 단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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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후반부의 '르상티망' 분석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비로소 글이 단순한 사건 논평을 넘어 사회철학으로 확장됩니다.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은 단순한 화가 아니라 <무력감이 오래 축적되며 타인을 향한 적의로 변하는 감정>입니다. 세넷 역시 불안정한 노동과 경쟁 체제가 존엄을 훼손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대목은 현재의 정치적 양극화, 세대 갈등, 경제적 박탈감과 연결되면서 글의 깊이를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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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마지막에 제시한 당구장 금연실이나 특정 업소의 부활 같은 처방은 논리적 연결이 다소 약합니다. 르상티망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설명하다가 해결책이 개인의 분노 해소 공간으로 갑자기 축소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분노를 제도적으로 흡수하고 공정한 기회를 회복하는 사회"라는 방향으로 마무리하면 글의 철학적 완성도가 높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문장은 이것입니다. "르상티망은 혁명과 변화의 마그마처럼 존재의 양태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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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현은 사회에 축적된 감정이 어느 순간 정치와 문화, 폭력으로 분출된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압축합니다. 여기에 "그 마그마가 정의를 낳을지, 증오를 낳을지는 사회가 어떤 출구를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는 한 문장만 덧붙여도 글의 여운은 훨씬 깊어질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글은 사건 비평(30%)과 사회철학(70%)**의 비율이 가장 힘을 발휘합니다. 사건은 출발점일 뿐이고, 독자의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르상티망이라는 시대의 감정입니다. 그 감정을 읽어내는 통찰이 이 글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퍽력은 한 개인의 일탈에서 끝나는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르상티망이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분출된 결과인가?
2026.8.1.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