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처럼 방황하다가 애타게 기다리는...오 주님 나 이제 갑니다-” 복음 성가를 부르노라면 그 뜻을 알고 은혜속에 목청을 높여 부르는 이들을 보면 진정 저들의 심령은 탕자에 속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23)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유치부 아이들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들도 예외 조항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근 팔십 평생을 신앙생활과 목회를 하시다 은퇴하신 분도 기도하면서 자기가 죄인임을 목이 메어 고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60회 생신을 맞을 즈음에서 부랑자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사역하던 전도사님의 고백도 성자처럼 살았을 법한데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리 생각에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더해감에 따라 죄가 없음으로 만족한 삶을 살아갈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말로 판단해 보건대, 적어도 그 자신은 주님 안에서 성장해 갈수록, 그는 더욱 더 큰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A.D.59년에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전15:9) A.D.64년에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엡3:8) A.D.65년에는,“죄인 중에 네가 괴수니라”(딤전1:15)
처음에 그는 자신을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모든 ‘성도’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더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자신을 모든 ‘죄인’ 중에서도 최악의 인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동행하면 할수록 자기에게서 더 많은 죄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가 죄를 더 많이 범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를 더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두운 불빛에 보지 못했던 옷의 누추함이, 밝은 태양 빛 밑에서 완연히 드러나듯이, 그가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더 가까이 갈 때에 그는 더 명백하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기의 삶을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죄에 대한 우리의 깨달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비례합니다.
당신은 주님을 섬기는 삶이 더해 갈수록 진정 자신이 더 중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시편51편: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
1. 일기가 올 해 들어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세계가 엄청난 폭우로 인한 홍수와 지진, 산불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구의 종말을 향하여 가는 모습입니다. 깨어 기도하며 주에 일에 힘써 영혼을 구원하여야 하겠습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면서 영혼을 치유하며 구원하는 사역을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찬양사역의 장비를 싣고 다니는 제 차량이 노후되어 (뉴카렌스 2007년식) 계속 어려움이 있습니다. 많은 장비를 싣고 다니다 보니 차가 무리가 많이 가는 모양입니다. 중고차라도 말썽 없이 장비를 싣고 다닐 수 있는 자량을 후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죄인된 자신의 발견 본문 : 눅18:13
칼라일은 말하기를 '죄가 죄인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했고, 풀러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죄 속에 있는 것은 인간이요, 죄를 회개하는 것은 성자요 죄를 뽐내는 것은 악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폐단 중 가장 큰 것이 자신들의 죄인된 처지에 무지하다는 점입니다. 만일 그 처지를 올바로 알고 시인한다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얻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주님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의 큰 목적 중 하나가 불신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과 이웃 앞에 죄인임을 온전하게 깨닫게 해주는 데 있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내용으로 깨닫게 해주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죄의 참된 개념을 알려줌으로 깨닫게 함(롬4:3)
1) 죄의 본질을 알려줌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치 않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죄에 대한 참된 개념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육을 통해 죄에 대한 올바른 기독교적인 견해, 성경의 개념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의 본질은 인간의 외적인 과오나,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비윤리적인 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교육은 죄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본질을 찾아야 함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는 말씀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죄의 본질이요, 그 결과 모든 악과 불의를 범하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육은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근거로 모든 인류가 이미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로, 또 타락한 본성을 지닌 상태로 태어났음을 가르쳐 줍니다. 죄의 본질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을 때 진리로 나아오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2) 죄의 권세와 영향력 안에 있음을 알게 해줌 또 사람들이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치 않는 이유는 외적인 행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 법도 어기지 않고 나쁜 짓고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을 통해 아무리 외적으로 죄를 범치 않았을지라도 인간은 모두 죄의 권세와 영향력 속에 있는 존재임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즉 마음과 생각으로 범하는 숨겨진 죄, 또 최선을 알면서도 행치 못하는 죄, 살인이나 도둑질은 하지 않았으나 시기나 질투 같은 정신적인 범죄를 짓는 것 등등, 이와 같은 죄도 무섭고 추한 것이요 심판받을 대상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죄의 권세와 영향력 밖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음을 깨우쳐 줌으로써 자신도 죄인 중에 한 사람임을 시인케 하는 것입니다.
2. 성경과 성령님의 감화를 통해 발견케 만듬(롬7:9)
1) 성경의 거룩성과 대비시킴(롬7:9) 그릇된 것, 오류가 있는 것은 표준이 되는 기준과 척도에 의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죄인임을 부인할 수 없도록 유도하는 교육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진리와 의와 거룩함의 표준입니다. 인간이 만든 윤리와 법의 기준앞에 당당하던 사람들도 성경의 법과 명령과 가르침 앞에 서면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처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7:14)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죄의 속성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은 그 근원부터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교육과 성경 말씀의 선포를 통해 죄인됨을 깨닫도록 교회가 노력하는 것입니다.
2) 성령님의 지적을 받게 만듬 사람이 하나님과 이웃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것을 고백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일입니다. 그와 같은 고백은 하나님의 사죄 은혜와 영생 구원에 이르게 되는 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이르는 이 과정 역시 성령님의 사역 중 하나입니다(요168).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은 성령님의 주도적인 사역을 보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님만이 인간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이론적인 교육과 더불어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예배에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케 하여 자신의 죄인됨을 자각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예수와 사귐으로 확신케 만듬(딤전1:15)
1) 그 은혜를 앎으로 깨우치게 됨 더러운 것은 밝은 햇빛 아래서 그 실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병원의 수술실, 보석감정인의 감정실에는 보통 전구보다 몇 배 더 밝은 특수 전등이 설치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병의 원인과 상태, 보석에 낀 이물질을 확실하게 확인키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인됨은 어떤 이론이나 경험보다 의와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으로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그분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과 그 은혜를 알게되고 그 은혜 앞에 섰을 때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추하고 불쌍한 죄인인지를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주여…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라고 부르짖게됩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은혜와 희생에 비해 자신은 그 얼마나 세속적이며 타락한 영혼과 삶을 지닌 존재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2) 그 사랑을 체험함으로 깊이 깨닫게 됨 또 그리스도와 계속 교제함으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바울 사도처럼 주님을 오래 섬긴 분이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한 뜻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교훈, 그리스도의 계명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성도라면, 자신의 부족함과 무지함과 한계를 깊이 깨닫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한계적 존재를 늘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죄인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는 존재임을 확신케 됩니다.
결론 이처럼 죄인됨을 자각시키기 위한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의 공의와 법을 알게 해줌으로써 죄를 이해하게 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해줌으로써 죄인됨을 고백케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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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주신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