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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덕수장씨(德水張氏)의 시조 장순룡(張舜龍)은 본래 위구르계 사람으로 충렬왕 때 고려에 귀화했다. 그는 원나라 세조 때 필도치(必闍赤)라는 벼슬을 지낸 장백창(張伯昌)의 아들이다. 《덕수장씨족보(德水張氏族譜)》와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그는 충렬왕비 제국공주(齊國公主)를 따라 고려에 귀화하여 첨의참리(僉議參理),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을 지내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져 덕수현(德水縣)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으므로 후손들이 덕수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덕수장씨(德水張氏)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을 배출하였다.[1]
기원[편집]
장순룡과 장백창은 위구르인이라고 전해지는데,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민족이다. 현재 중국의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와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민족이며 주요 지역은 설련하이다. 임천 이씨 시조 이현(李玄), 경주 설씨 시조 설손(偰遜)도 장백창과 같이 위구르 사람으로 설련하 출신이라고 하는데, 돌궐, 몽골족, 아랍인, 이슬람인들이 설련하 지역에 살고 있지만 현재에는 모두 위구르인으로 정의하고 있어서, 세부적인 민족 출신을 파악하기 어렵다.
[출처] 덕수 장씨는 위구르 장씨,,(작은 매형의 집안)|작성자 헌책
위구르쪽에서 이주해온 설손과 설장수, 노국대장공주의 호위병으로 따라온 덕수장씨의 시조 장순룡 등 아랍과 이슬람 계통의 이주민도 보인다. 그리고 거란과 여진족, 원나라 등에서 이주해온 북방 유목민의 경우, 그들의 장점인 말총 기술 등을 이용해 갓이나 신발 등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의복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들이 조선시대에는 '백정'의 무리가 되어 육류가공뿐 아니라, 각종 피혁제품 제작(갓바치), 놀이꾼(재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내국인 노비가 이주민과 결혼할 경우 면천시켜주기도 했고, 또 그 자식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여겨지는 '장영실'이었다.
장영실의 아버지의 이름은 '장성휘'로 송나라 소주와 항주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는 세종실록에 장영실의 면천과 벼슬을 주는 문제를 가지고 세종이 조말생 등과 상의하면서 나온 기록이다. 그 기록에 의하면 장영실의 아버지는 중국 송나라에서 귀화한 외국인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동래현 관노비(관기)였다. 그래서 장영실로 어머니를 따라 천민인 노비출신이었다.
출처 : 에듀인뉴스(EduinNews)(http://www.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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