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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寒食)
차가운 음식을 먹는다는 뜻으로, 군주가 은혜를 잊고 참회함 또는 끈기, 충성, 효성, 청렴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寒 : 찰 한(宀/9)
食 : 밥 먹을 식(食/0)
출처 : 춘주좌씨전(春秋左氏傳), 열국지(列國志)
한식(寒食)은 동지(冬至)로 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매년 청명(淸明) 다음 날이거나 같은 날이다. 설날, 단오(端午), 추석(秋夕)과 함께 우리의 전통 4대 명절에 속한다.
계절적으로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이며 조상의 무덤을 보수하는 때로 여겨져 왔다. 한식은 원래 중국에서 들어온 절기였으나 한국에 토착화되었다. 지역적으로는 한반도 북쪽지역이 남쪽지역에 비해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식은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과 개자추(介子推)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중국 춘추시대에 진헌공(晉獻公)에게는 본처(本妻)의 아들 세 명과 첩(妾)의 아들 두 명이 있었다. 헌공은 첩(여희)을 총애했고 여희는 헌공이 죽으면 자기와 아들 두 명의 운명을 걱정하여 헌공으로 하여금 이미 태자로 임명된 본처의 맏아들 신생(申生)을 죽이고, 둘째 아들 중이(重耳)와 셋째 아들 이오(夷吾)를 제거하기 위해 병력을 동원하였으나 두 명의 공자는 진나라를 탈출하여 망명의 신세가 되었다.
둘째 공자 중이는 인품도 훌륭하고 끈기와 용맹을 겸비한 청년으로 대부분 타국에서 환영을 받았다. 그러다 작은 나라인 위(衛)나라를 방문하였는데 위나라는 쫓겨 다니는 중이를 환영하면 혹 진나라의 분노를 살 것 같아 박대하며 쫓아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그 망명의 무리들 중에 두수라는 자가 중이 일행의 돈과 패물 등을 훔쳐 도망하는 바람에 그 일행들은 굶주리고 피로하여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이도 지쳤고, 그를 따르는 10여 명의 수행자들도 지쳤는데 중이가 느닷없이 혼잣말로 "아! 고깃국 한번 먹어 보았으면"라고 하니까 모든 수행원들이 중이를 원망스럽게 생각하고는 고깃국은 커녕 밥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하는 눈치이다.
그때 일행 중 개자추(介子推)라는 신하가 슬쩍 무리에서 나와 없어졌다. 조금 지나가자 다시 그가 나타났는데 어디서 났는지 고깃국 한 그릇을 들고 와서 중이에게 바친다.
중이가 깜짝 놀라 고깃국을 먹으면서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으니 개자추가 돌아서면서 작은 소리로 "공(公)을 위해 자기 허벅지 살을 떼어 그 살로 국을 끓였습니다"라고 말을 하였다.
중이는 그때 눈물을 흘리며 많은 것을 느끼고 다시는 밥 타령을 포함한 어떠한 불평도 하지 않고 오직 고국으로 돌아가 진(晉)나라의 군주가 될 것을 가슴속 깊이 맹세하였다.
한편 진나라는 내부의 권력투쟁 때문에 여희와 그의 아들들이 살해당하고 내분에 의해 나라 사정이 복잡해지면서 망명하고 있는 중이를 다시 모시게 되었고, 귀국한 중이는 진나라 군주가 되어 문공(文公)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망명생활(19년)했던 쓰라린 교훈을 생각하며 진나라를 잘 다스려 춘추오패(春秋五覇)중 두 번째 패권국이 되었다.
진(晉)나라 군주가 된 문공(文公, 중이)은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고 다시 시작하는 차원에서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였는데 망명생활을 같이한 신하들은 거의 1~2등 공신에 임명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잘못하여 개자추를 공신명단에서 빠뜨렸다.
이때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공신명단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항의조차 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멀리 면산(綿山)에 은거하며 어머니께 효도하며 잘 살았다.
한편 이 사실을 늦게 알게 된 문공은 부랴부랴 개자추를 찾게 되었고, 면산까지 직접 가서 찾았으나 개자추가 산에서 나오지 않자 신하 중 한 명이 "개자추는 효성이 지극하여 산에 불을 지르면 나올 것"이라는 보고에 문공은 불을 질렀고 산이 다 탔으나 개자추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문공이 군사를 풀어 수색해보니 큰 버드나무를 껴안고 새카맣게 탄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두말할 것 없이 개자추와 그의 어머니인 것이다. 유사성어로 할고충군(割股忠君)과 포목소사(抱木燒死)가 있다.
그 일을 직접 목격한 문공은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부터 한 달 동안 불을 쓰지 않도록 조치하고 불이 없는 동안 모든 음식은 차게 먹도록 하여 개자추에 대한 미안함을 기리게 되었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찬 음식 먹는 기간을 한 달을 사흘로 사흘을 하루로 줄여 개자추를 기리고 있다.
요즈음은 사람들이 점점 사나워지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과격한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또 과거에 '군자국(君子國)'이라는 예의 바른 나라 소리를 듣던 윤리(倫理), 도덕(道德), 예절(禮節)조차 이제는 기대하지 못할 지경까지 왔다.
이에 사람들은 이렇게 잘못되어 가는 사회 무질서를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지만 필자는 학교 교육과 함께 부모에 의한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부모님께 효도를 하면 그것을 보고 크는 아이들이 효도하지 않을 리가 없다. 내가 이웃 어른들을 공경하면 자라는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어른을 공경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사서(四書)중 대학(大學)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교훈이 있다. 수신이 먼저요, 그 다음은 가정을 잘 다스려야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천하가 평화로움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가정교육에 방점(傍點)을 찍고 싶다. 내가 도둑질하면서 아들에게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면 교육이 되겠는가?
상류기탁하류난청(上流旣濁下流難淸 / 윗물이 이미 흐린데 아랫물이 맑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나라의 윗물은 정화될 수 없을 만큼 흐려있다. 아랫물까지 맑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허무한 꿈이 아닐까 한다.
한식(寒食)
분야 : 정일
계절 : 봄(음력 3월)
날짜 : 양력 4월 5일경
다른이름 : 고초일(苦草日), 금연일(禁煙日), 숙식(熟食), 냉절(冷節)
관련속담 :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관련풍속 : 성묘(省墓), 산신제(서울지역), 개사초(改莎草), 제기차기, 그네타기, 갈고리던지기
정의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고대 중국의 풍습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금연일(禁烟日), 숙식(熟食), 냉절(冷節)이라고도 한다.
한식은 음력을 기준으로 한 명절이 아니다. 따라서 한식은 음력 2월에 있을 수도 있고, 음력 3월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2월 한식과 3월 한식을 구분하는 관념이 있다. 그래서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세월이 좋고 따뜻하다고 여기며, 3월에 한식이 있으면 지역에 따라서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
유래
한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춘추시대의 인물인 개자추(介子推) 설화이다. 개자추는 망명해 있던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를 위해 헌신했고, 중이는 마침내 진 문공(晉文公)으로 즉위했지만, 개자추에게는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분개한 개자추는 면산(聃山)으로 은둔했고, 뒤늦게 이를 깨달은 진 문공이 개자추를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진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타죽고 말았다. 그래서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만을 먹는 한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의 개화(改火) 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원시 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이 생명을 가지며, 생명이란 오래되면 소멸하기 때문에 주기적 갱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오래 사용한 불을 끄고 새로 불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개화 의례를 주기적으로 거행했는데, 한식이란 구화(舊火)의 소멸과 신화(新火) 점화까지의 과도기란 설명이다.
그리고 한식이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것도 28수(宿)의 하나이며 불을 관장하는 심성(心星)이 출현하는 것이 이때이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개자추의 죽음은 구화를 끄면서 제물을 태우는 관습을 반영한 설화라고 한다. 이 중 개화의례와 관련짓는 후자의 설이 더 유력하다.
내용
한국에서 한식을 언제부터 명절로 여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문종 24년(1070) 한식과 연등 날짜가 겹치므로 연등을 다른 날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늦어도 고려 전기에는 한식이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식에는 금화(禁火)와 성묘의 풍습, 투란(鬪卵: 계란 위에 누가 그림을 더 잘 그리는지를 겨루는 유희) 놀이가 있었으며,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 한식의 시기가 변하였는데, 고려 후기에는 동지 후 105일이었지만, 전기에는 그보다 7일 정도 빠른 양력 3월 30일 무렵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에도 한식은 중요한 명절로 지켜졌다. 한식을 주제로 한 많은 시가 전해지는 사실도 이를 반영한다. 한식에는 금화와 개화가 행해졌다. 세종 13년(1431)에 한식 사흘 동안 불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명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으며, 매년 임금은 내병조(內兵曹)에서 바친 버드나무를 마찰하여 일으킨 불을 궁중에 있는 관청과 대신 집에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상 숭배였다. 왕실에서는 종묘 제향을 지냈고, 종묘에서 제외되었거나 후손이 없는 왕과 비빈 등에 대해서는 성묘를 했다. 허물어진 능묘를 보수하기도 하였다.
또 민간에서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절사(節祀)라 하여 산소로 올라가 성묘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한식과 추석이 가장 성하여 교외로 향하는 길에 인적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농가에서는 이날을 기하여 밭에 파종을 했다.
이렇듯 한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특별한 행사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특히 불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조상 숭배와 관련한 많은 행사들을 하고 있다.
집안에 따라서는 사당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많은 가정에서는 성묘를 하고 간단한 제사를 지낸다. 이때 서울 지역에서는 제사에 앞서 먼저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성묘의 대상은 기제사를 받는 조상도 있지만,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먼 조상이나 후손이 없는 사람인 경우도 많다.
또 손 없는 날 또는 귀신이 꼼짝 않는 날로 여겨 산소에 손을 대도 탈이 없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소에 개사초(改莎草: 잔디를 새로 입힘)를 하거나 비석 또는 상석을 세우거나 이장을 한다.
한편, 한식은 농사를 준비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소를 부려보기도 한다. 또 한식 무렵이면 볍씨를 담근다. 그러나 씨를 뿌리면 말라죽거나 새가 파먹는 고초일(苦草日)이라 하여 씨를 뿌리지는 않는다. 또 강원도 지역에서는 과일나무의 벌어진 가지 사이로 돌을 끼워넣는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를 하는데, 열매를 잘 열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한식의 날씨를 살펴서 그 해 시절의 좋고 나쁨이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곧 한식에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면 시절이 좋거나 풍년이 든다고 하며, 어촌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폭풍이 불고 큰비가 내리면 그 반대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식날 새벽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일찍 오고 저녁에 천둥치면 늦게 온다는 믿음도 있다.
인접국가사례
중국에서 한식은 산서(山西)지방에서 시작되어 남북조시대 말부터 전국적인 행사로 확대되었다. 시행 초기에는 날짜도 일정하지 않았지만, 후한(後漢)시대부터 동지 후 105일 전후 3일로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24절기의 하나로 한식과 날짜가 겹치는 청명(淸明)은 동지 후 107일로 밀려났으며 한식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그리고 한식은 농사의 시작과 겹치므로 풍년을 기원하여 제기차기, 그네타기, 갈고리 던지기 같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하였으며 당나라 무렵부터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상묘(上墓)가 중요한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남송 때부터 한식의 금화(禁火) 풍속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명나라 때에는 한식 자체가 폐지되었다. 대신 청명이 다시 부각되었으며, 청명의 날짜도 다시 동지 후 105일로 환원되었다.
한식(寒食)
정의
명절의 하나.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며, 한식에는 성묘를 한다.
내용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음력 2월 또는 3월에 든다.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드는 해는 철이 늦다. 그래서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아 3월 한식에는 꽃이 핀다’는 말이 전한다.
한식은 어느 해나 청명절(淸明節) 바로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에 든다. 이때는 양력 4월 5, 6일쯤으로 나무심기에 알맞은 시기이다. 우리 나라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나무를 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4절후 속에 들어 있지는 않으나 습속으로 전해 내려오며,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묵은 불(舊火)을 일절 금단하던 예속(禮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중국의 옛 풍속으로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또한, 개자추전설(介子推傳說)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이 국란을 당하여 개자추 등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방랑할 때,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된 문공을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뒤에 왕위에 오른 문공이 개자추의 은덕을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개자추는 벼슬을 마다하고 면산(緜山)에 숨어(혹은 19년을 섬겼는데 俸祿을 주지 않으므로 숨었다고도 전한다.)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으므로 개자추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 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雜神祭)인 야제(野祭)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제사)하고, 민간에서는 술·과일·포·식혜·떡·국수·탕·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지낸다. 이를 명절제사, 곧 절사(節祀)라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의 묘가 헐었으면 봉분을 개수하고 주위에 식수도 하고 사초(莎草)도 한다.
만일 조상의 묘가 멀 때에는 묘지기가 대리로 제향(제사)를 올려준다. 이날 성묘하는 습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曹)에서는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은 그 불씨를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주었다. 한식날부터 농가에서는 채소 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 흔히, 이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만 아니라 국가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믿어 매우 꺼린다.
▶️ 寒(찰 한)은 ❶회의문자로 집에서는 풀을 깔고 잘만큼이라는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艸+艸(맹; 풀), 人(인)의 합자(合字), 춥고 밖에서는 얼음이라는 이수변(冫; 고드름, 얼음)部의 언다는 데서 춥다를 뜻한다. 집안에 풀을 깔고 사람이 누운 모양, 추위를 나타내며, 이수변(冫; 고드름, 얼음)部는 얼음으로 역시(亦是) 추위를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寒자는 ‘차다’나 ‘춥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寒자의 금문을 보면 宀자와 艹자, 人(사람 인)자, 冫(얼음 빙)자가 그려져 있었다. 특히 사람의 발이 크게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는 얼음이 있다. 발아래에 얼음을 그린 것은 집안이 매우 춥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불도 없이 풀(艹)을 깔고 있으니 추위를 견디기가 어려운 모습이다. 해서에서는 모습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寒자는 이렇게 변변한 이불도 없이 차가운 방 안에 있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차다’나 ‘춥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寒(한)은 ①차다, 춥다 ②떨다 ③오싹하다 ④어렵다 ⑤가난하다, 쓸쓸하다 ⑥식히다 ⑦얼다 ⑧불에 굽다, 삶다 ⑨중지하다, 그만두다 ⑩침묵하다, 울지 않다 ⑪천하다, 지체(사회적 신분이나 지위)가 낮다 ⑫추위 ⑬절기(節氣)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로 찰 냉(冷), 서늘할 량(凉), 찰 름(凜)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더울 서(暑), 따뜻할 난(暖)이 있다. 용례로는 정도에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가엾고 딱함을 한심(寒心), 춥고 차가움을 한랭(寒冷), 겨울철에 기온이 급작스레 내려가는 현상을 한파(寒波), 추위를 느끼는 병을 한질(寒疾), 가난하고 지체가 변변하지 못함을 한미(寒微), 추위와 더위 또는 겨울과 여름을 한서(寒暑), 추위로 말미암아 받은 손해를 한해(寒害), 겨울철의 찬 기운을 한기(寒氣), 살갗에 느끼는 차가운 감각을 한각(寒覺), 찬 기운과 서늘한 기운을 한량(寒凉), 가난하나 깨끗함을 한소(寒素), 몸에 열이 나면서 오슬오슬 춥고 괴로운 증세를 오한(惡寒), 몹시 심한 추위를 혹한(酷寒), 추위를 막음을 방한(防寒), 지독한 심한 추위를 극한(極寒), 몹시 혹독한 추위를 열한(烈寒), 추위를 피하여 따뜻한 곳으로 옮김을 피한(避寒), 찬바람을 쐬어 생기는 오한을 객한(客寒), 모진 추위나 추위의 괴로움을 고한(苦寒), 배고픔과 추위를 기한(飢寒), 추위를 견딤을 내한(耐寒), 친족이 없이 고독하고 가난함을 단한(單寒), 찬 것이 오면 더운 것이 가고 더운 것이 오면 찬 것이 감을 한래서왕(寒來暑往),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순망치한(脣亡齒寒), 빈한함이 뼈에까지 스민다는 뜻으로 매우 가난함을 일컫는 말을 빈한도골(貧寒到骨),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면 건강에 좋음을 이르는 말을 두한족열(頭寒足熱), 외로이 자는 방안의 쓸쓸한 등불이라는 뜻으로 외롭고 쓸쓸한 잠자리를 이르는 말을 고침한등(孤枕寒燈), 봄 추위와 노인의 건강이라는 뜻으로 모든 사물이 오래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춘한노건(春寒老健) 등에 쓰인다.
▶️ 食(밥 식/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은 ❶회의문자로 饣(식)은 동자(同字)이다. 사람(人)이 살아가기 위해 좋아하며(良) 즐겨먹는 음식물로 밥을 뜻한다. 사람에게 먹이는 것, 먹을 것, 먹게 하다는 飼(사)였는데 그 뜻에도 食(식)을 썼다. 부수로서는 그 글자가 음식물 먹는데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食자는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食자는 음식을 담는 식기를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食자를 보면 음식을 담는 식기와 뚜껑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食자는 이렇게 음식을 담는 그릇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밥'이나 '음식', '먹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대부분이 '음식'이나 먹는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食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모양이 바뀌어 飠자나 饣자로 표기된다. 그래서 食(식)은 ①밥 ②음식 ③제사 ④벌이 ⑤생활 ⑥생계 ⑦먹다 ⑧먹이다 ⑨현혹케하다 ⑩지우다 그리고 ⓐ먹이, 밥(사) ⓑ기르다(사) ⓒ먹이다(사) ⓓ양육하다(사) ⓔ사람의 이름(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음식을 청해 먹은 값으로 치르는 돈을 식대(食代), 부엌에서 쓰는 칼을 식도(食刀),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일을 식사(食事),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음식점이나 식당에서 먹을 음식과 바꾸는 표를 식권(食券), 밥을 먹기 전을 식전(食前), 식사를 마친 뒤를 식후(食後),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을 식기(食器), 음식만을 먹는 방 또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집을 식당(食堂), 뜻밖에 놀라 겁을 먹음을 식겁(食怯), 음식에 대하여 싫어하고 좋아하는 성미를 식성(食性), 음식(飮食)을 만드는 재료를 식료(食料), 남의 집에 고용되어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를 식모(食母), 음식(飮食)을 먹고 싶어하는 욕심을 식욕(食慾),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으로 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을 식언(食言), 각종 식품을 파는 가게를 식품점(食品店), 음식을 먹은 뒤에 몸이 느른하고 정신이 피곤하며 자꾸 졸음이 오는 증세를 식곤증(食困症),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식이위천(食以爲天), 식량으로 옥을 먹고 계수나무로 밥을 짓는다는 뜻으로 물가가 비싸 생활이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식옥취계(食玉炊桂), 생선을 먹을 때에 한쪽만 먹고, 다른 쪽은 남겨둔다는 뜻으로 민력을 여축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식어무반(食魚無反), 근심 걱정 따위로 음식 맛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식불감미(食不甘味), 집게손가락이 움직인다는 말로 음식이나 사물에 대한 욕심 또는 야심을 품는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식지동(食指動),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음이라는 뜻으로 수고는 많이 하나 얻는 것이 적음을 일컫는 말을 식소사번(食少事煩), 사방 열 자의 상에 잘 차린 음식이란 뜻으로 호화롭게 많이 차린 음식을 이르는 말을 식전방장(食前方丈), 식량이 떨어져 기운이 다함을 일컫는 말을 식갈역진(食竭力盡), 음식을 잘 차려 먹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식불이미(食不二味), 맛있는 고기만 먹고 지내면서 누리는 부귀를 일컫는 말을 식육부귀(食肉富貴), 식객이 삼천 명이라는 뜻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음을 이르는 말을 식객삼천(食客三千), 나라의 녹을 받아먹음을 일컫는 말을 식국지록(食國之祿), 나라의 녹봉을 받는 신하를 일컫는 말을 식록지신(食祿之臣), 소라도 삼킬 정도의 기개라는 뜻으로 어려서부터 기개가 뛰어남을 이르는 말을 식우지기(食牛之氣)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