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라는 것은 다시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겠다.
첫째로는 자의에 의한 세뇌이고, 둘째로는 타의에 의한 세뇌일 것이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강력한가인데 당연히 타의보다는 자의에 의한 세뇌이다.
타의에 의한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고.
자의의 경우는 적절할런지 모르겠지만 일방적으로 이런 경우가 있다.
한 여자가 있고 결혼을 한다.
그 여자는 서울 여자고 남자는 경상도 남자이다.
여자가 결혼을 해서 경상도에 살고 10년이 지나자 경상도 극우가 되었다.
그 과정에는 이런 것이 작용을 할 것이다.
이웃에서 사투리를 않쓰면 따돌리니까.
(사투리를 쓴다해도 경상도는 마음이 경상도로 왔는가까지 따진다.)
남편에게 재산권이 있으니까.
결혼생활을 파탄내고 싶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있으니까.
자신의 삶의 터전이 이미 옮겨졌으니까.
여기 이 변화의 과정에서 남편이 그 사실을 과연 모를까?
너무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남자가 그냥 두는 것은 이기적인 것은 물론이고 심히 미련한 짓이다.
잠시잠깐 서로가 싸우지 않고 편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는 모르는체 할 수 있지만 장기간을 두고는 자신의 배우자에게 한 인간으로써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막말로는 정신적으로 불구자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고 자신을 지켜줄 줄 굳게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실재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이것은 단순하고 일방적이며 과거시제적인 예시이다.
너무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말도록하자.
여자는 대개 남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남자의 직종, 친구, 음주, 신앙, 가정환경, 버릇, 사상 등 말로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한 것까지 여자에게 영향을 끼친다.
물론 남자가 남자같은 경우이다.
남자가 여자같은 경우이거나 배우자에게 무관심한 경우는 배제한다.
지금까지 말한 경우가 자의에 의한 세뇌이다.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당하는 세뇌이다.
일면으로는 자가세뇌이기도 하다.
어쨌든.
'자칭 극우'라던지 지역감정이라든지 당파싸움이라든지 이단사이비라든지 종교라든지의 모든 경우가 그렇다.
신천지는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또는 사랑하며 애정을 느끼는 그런 관계에서 버림을 받는 것이 두렵다.'
이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세력들이 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소개하길 즐겨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다시,
인간은 많은 경우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서 버림받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한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1,32)
또 다른 경우를 말해보자.
무교 혹은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신론자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종종 갖고는 한다.
최근에나 그런 것이지, 예전에는 그냥 '난 무교다'라고 말하면 되었을 것이 지금에 와서는 모임을 갖고 지식을 공유하며 안티주의자가 되어간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자칭 무교주의자'를 세뇌시키고 그들의 교주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또 다시 새로운 종교가 탄생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신론이라는 것은 애초에 이 세상에 없다.
무신론이라는 것은 자신이 종교인 것이며 동시에 자신이 신인 종교이다.
'나를 위해 사는 것' 바로 내가 신이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자신이 진짜 무신론이고 무교주의자면 인터넷뒤에 숨어서 안티하지 말고 모임을 갖지 말고 당당히 홀로서서 말해라.
'나는 나를 믿는다'고.
그러면 최소한 인정은 받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진짜 무신론이고 무교주의자인 것이니까.
언제나 그렇듯 믿던지 말던지 본인 마음이고 나는 좋은 것을 말할 뿐이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던지 좀비랜드에서 신속히 벗어나야한다.